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28과 나의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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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23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림 : 그리스도의 탄생 : 11세기초 벽화,좌우 3.50m 피라스(수다) 대성당 북쪽 측량 내벽에 있던 것. 카트툼(수단) 국립미술관.  성모는 중앙에 호화스런 침대 위에 누워있고 성자는 말굽형의 창문이 다린 석조건물같은 말구유위에 누워있다. 그 위쪽에 소와 당나귀가 있다. 성모자 좌우에 세명의 대천사가 서있고 성모의 발 밑에는 아주 작게 그려진 성  요셉이 보인다. 그 위쪽에는 두명의  목동(알니아스 및 레코데스)이 있고  그 뒤에 3명의 동방박사의 말을 탄 모습이 보인다. 그 위쪽에는 매우 손상되어 있지만 탄생을 축복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좌하에는 한 명의 왕이 있다. 전체적으로 중앙 아시아의 불화의 느낌이 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히브리어 ‘임’(함께:with)과 ‘마누’(우리와:us)와 ‘엘’(하나님:God)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와 이토록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있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구약에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은 창5:21-24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 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드셀라와 에녹보다도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인간의 죄의 문제는 그대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죄의 문제도 해결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담에덴동산을 쫓겨나던 그 때에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서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다시 예언해 주셨습니다.

힌두교의 본산인 인도에 젊은 선교사가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그곳에서 힌두교 승려한 사람을 알게되어 함께 길을 걷던 중 선교사가 그만 개미굴을 건드려 본의 아니게 많은 개미를 밟아 죽였습니다.
이를 본 승려가 깜짝 놀라며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많은 생명을 죽였소.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 개미들이 우리조상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선교사도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하죠 모르고 저지른 실수인데...” 그래서 승려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승려는 한참을 개미굴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음...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개미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선교사는 어리벙벙하여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신 까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직접 이야기 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 오신 것입니다.”

2. 임마누엘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

육신을 지니신 예수님은 구원자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다. 이것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육신을 지니고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은 치료자로 오셨습니다. 마 4:24 “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신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은 위로자로 오셨습니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지금 당장 당신에게로 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히 11:6).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요 14:27).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5:1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지금 하나님께로 나아오셔서 참 평안을 받으십시다. 그리고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시다 그만두신 적이 없으십니다. 모든 일은 끝까지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중간에 헤어진다면 그 사랑을 끝까지 한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결론입니다.

사랑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복음도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믿음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늘 함께하십니다. 요 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함께하신다구요? ‘영원토록’입니다. 할렐루야!

4.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는 어떤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지요.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하면 특별할 때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지요. 보통 때에는 하나님을 잃고 살다가 특별할 때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으로 느끼지는 않는지요.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귀여운 딸이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아빠, 나 오늘 에버랜드에 놀러 갔게, 안 갔게?”
“갔지!”
“어 아빠! 어떻게 알았어?”라며 딸을 신기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아빠! 나랑 엄마랑, 그리고 친구 엄마 두 명이랑, 친구 둘하고 같이 갔게, 안 갔게?”
“같이 갔지! 여섯명이”
아이는 “우리아빠 천재다 천재... 어떻게 6명이 갔다 온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빠, 그 에버랜드에서 5월이 어린이 달이라고 어린이들에게 인형을 선물로 주었게, 안주었게?” “주었지!” 그러자 딸이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도 이건 못 맞출 거야. 그러면 그 인형이 검은색이게 아니게?”
“검은색이지!”
그러자 이제는 아빠가 아니라 신처럼 생각하고는 “아빠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에버랜드가 용인에 있게? 다른 곳에 있게?”
“용인에 있지!” “아빠는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알지” 아이는 눈물까지 흘렸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이 딸의 질문을 맞히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더 쉬운 일입니다.
이 어린아이처럼 질문을 해 볼까요? 맞혀보세요.
“우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게 아니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게 안주셨게?”
“참세를 하나님이 기르시게 안기르시게?”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아시게 모르시게?”
더 이상 무엇을 더 물어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임마누엘’은 주님과 同苦同樂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결단을 미루지 마십시오.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교회에 다닌 것하고 주님을 영접한 성도하고는 다릅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사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칸트는 한 여인과 사귀고 있었는데 도무지 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견디다 못해 칸트에게 청혼했습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칸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며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결론을 내리고 칸트는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여인의 아버지가나와 말했습니다.
“너무 늦었소.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오”라고 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되는 것,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청소년 집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바구니에 예쁜 십대 소녀의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가끔 장난기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진을 빼내려고 보다 사진 뒤에 이렇게 쓰여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주님께 드릴 것이 없으나, 나 자신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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