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36과 나의 성전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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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2:13-22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우리는 가끔 어부출신들인 제자들만을 기억한 나머지 제자들이 무식한 것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 17절은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69편 9절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를 떠올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케 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말씀을 기억하여 연상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연상하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한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는 산헤드린공의회 회원들이나 대제사장이 가만히 있을리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장차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할 것을 예언했지만 그 때마다 제자들은 정확히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청결사건을 지켜본 제자들에게 이상한 느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예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데 직접적인 빌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건 자체를 문제삼고 싶었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것을 트집잡지는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문제를 삼은 것입니다.

1. 목숨을 건 성전청결사건이었습니다.

그림 : 성전을 깨끗이 하심 : (마21:12-13,막11:15-18,눅 19:45-46,요2:13-22). 엘 그레코의 1570-1575년 유화로 크기는 117*150cm 이며 미네아폴리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엘 그레코가 로마시대상을 그린 작품으로 건물을 배경삼아 넓은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성전에서 장사꾼들은 쫓아내는 이  그림의 주제는 교회정화가 상징한다. 예수님은 사역초기부터 왜 이토록 부담스러운 언행을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오신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며 결코 뒤로 물러서거나 이제부터 복음을 전하시면서 만나게 될 모든 일정을 미리 확정지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준비하시고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고 하셨습니다. 목숨을 이미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도둑이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상벨? 경찰? 아닙니다. 할머니라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그래 나 죽여라, 나 죽이고 훔쳐가라!, 나 죽이기 전에는 못나간다.’ 소리를 치시면 도둑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죽음을 겁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금요일 저녁에 체포하여 밤 세도록 심문을 했지만 죄목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이 성전청결사건 때 하신 말씀을 책잡고 나왔습니다.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마26:61),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막14:58)라고 고소했습니다. 죄를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던 가야바에게는 더 없는 죄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건과 이 때 하신 말씀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고 하셨습니다.

2. 왜 성전을 청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을 처음 만든 것은 광야생활 가운데서 였습니다(출25-30장). 이 때는 정확히 성전이라고 사용하지 않고 성막이라고 했습니다. 외형적인 모습을 성막이라고 부르고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속죄제와 각종 제사가 드려질 때 비로소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계실 성막을 만드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생각한대로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철저하게 하나님이 일러 주신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5장은 언약궤와 진설병상, 금 촛대 등 성전 안에서 제사드릴 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가리켜 주십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6장에서 성막과 휘장 만드는 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성막이 성전이 되기 위해서, 제사드릴 때 필요한 물품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 또한 하나님이 시키신 방법대로만 해야지 조금도 임의로 드릴 수 없습니다. 레위기는 바로 이러한 제사드리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된 책입니다. 아론레위기 9장에서 첫 번째 제사를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론은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흠 없는 수송아지와 양을 잡아 드린 것입니다. 첫 번째 제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번제물과 기름을 하나님께서 불로 사르셨습니다. 이를 보고 온 백성이 소리를 지르고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 광경을 보고 너무 흥분할 탓일까요? 아론의 아들 나답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다가 분향하다가 여호와의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이 땅에 임재하실 때 이렇게 엄격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민수기는 왜 이스라엘민족의 숫자를 세었습니까? 성막을 보호하고 행군할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성막을 지키는 역할을 맡기셨는데 하나님은 만일 누구든지 성막의 근처만 와도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민3:38).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은 이 땅의 중심이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유일한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곳은 죄인인 인간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성전을 더럽히고 망가트린 그곳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격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 갔으면 여호와의 불이 나와 모조리 불살라 버렸을 것입니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마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이때부터 예수님을 잡아죽일 궁리만 하게된 것입니다.

3. 사흘 동안에 일으킨 성전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성전’은 ‘나오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외형적인 ‘성전’을 말하는 ‘히에론’과 다른 뜻입니다. 즉 구약의 성막을 ‘히에론’이라고 한다면 성전은 ‘나오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이 ‘나오스’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들(고전3:16, 17, 계3:12)에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가 예배할 참 성전이셨던 것입니다(요4:20-24).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성전은 완성된 것이 아니고 건축 중에 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바른 자세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헤롯이 건축 광이었고 유대인의 민심을 잡으려는 마음에서 건축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헤롯은 B.C.20-19년에 성전 재건에 착수했고 그 후 헤롯이 완공하지 못하고 알비누스 총독 시대(A.D.62-64)년경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막13:1)대로 A.D. 70년에 철저히 부서졌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재건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내면적인 성전을 말씀하신다면 이들은 장막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었습니다.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라고 했습니다. 당시 헤롯에 의해 동원된 인원은 약 18,000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많은 인원을 가지고 46년간이나 공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마치지 못한 성전을 어떻게 사흘만에 세운다는 것인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황당무계한 조롱의 말로만 들렸던 것입니다.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말씀에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이 말씀을 이해하고 믿었습니다(요2:22).

하나님이 처음에 이 땅에 임재하신 곳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창3:8). 그리고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은 더 이상 에덴동산을 아담(사람)에게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의 에덴동산은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에덴에 아담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을 떠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시고 광야에서 모두 죽일 수 없어 모세의 간곡한 기도로 이 땅에 임재하시기를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25:8)을 만들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방법은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임시거처로 이 땅에 머물러 계시던 하나님은 친히 성전이 되셔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 안에서만 속죄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의 희생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된 것입니다.

AIDS에 걸린 어느 여인의 병실에 목사님이 문병을 갔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목사님의 말씀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병실의 침대 옆에 예쁜 여자아이 사진을 발견하고 “저 아이가 누구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제 딸인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계속해서 목사님은 “그럼 저 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여인은 대답하기를 “저는 제 딸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의 어떤 죄도 모두 용서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이제 다시는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가 필요할 뿐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모든 성도들을 모두 성전인 것입니다. 또한 이 성전은 다시는 더럽히면 안됩니다. 더럽히는 그 자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하나님의 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회개한 성도는 하나님이 친히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 임재하셔서 거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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