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42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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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9:9-13
“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이 별로 실감이 안 나시는 분이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간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의인이 아닌 죄인입니까?

우리 나라는 역사의 ‘친일진상규명법’을 2004년 3월 2일에서야 국회를 통과해서 그나마 역사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규명하여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친일진상규명’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모두 9명으로 구성되는 ‘친일 진상규명위원회’는 앞으로 3년간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편찬할 예정입니다.
‘친일진상규명법’은 일제시대 당시 일본군과 싸우는 부대를 토벌하거나 토벌하도록 명령한 행위와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살상하거나 체포 또는 이를 지시한 행위 등을 친일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학도병이나 징병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와 중앙의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황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와 침략의 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등도 친일 반민족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입법이 지금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친일의 잔재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자신이 친일파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겁내고 있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1.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기록한 마태

그림 : 복음서 기자  마태 : 마탭고음서에서의 첫 구절이 기록된 복음서는 바로 위에서 본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성 마태는 왼손으로 따로 두루마리를  잡고 오른손을 턱에 고이고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시대는 카로링조에 들어가고 있지만, 그 강한 장식성 (테두리만이 아닌 인물묘사에 있어서도) 그  색감등에 있어서 물론 멜로빙가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8세기. 사본화 31*23.8cm 빈 국립도서관. 그런데 마태는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누가 기록한 것입니까? 바로 마태 본인입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리’는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걷어 로마정부에 바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악질적인 공무원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조선에서 세금을 걷어 일본에 바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마태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친일파입니다. 즉 친로마파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 된 것처럼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이 알려지기가 제일 창피하고 부끄러웠을 것 같은 본인이 스스로 자신을 죄인이라고 그것도 성경에 버젓이 기록을 하다니 정말 이 사람 속된말로 간덩이가 분 사람 아닙니까?
마태가 이렇게 솔직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친일파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것도 스스로 나는 죄인이라고 말하고, 고백하고 스스로 기록한다면 그 사람의 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인정하고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는 기록하는 것까지 자신의 손으로 그것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성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2. 건강한 자가 문제입니다.

오늘 문제는 사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한 마태와 세리들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의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랴”고 했습니다. 문제는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들이 상당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문제를 예수님께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이 죄인이니 예수님도 똑같은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고하셨습니다. ‘건강한 자’는 이수퀴오(ijscuvw)로 힘이 ‘강한, 완전한, 무엇이든 할 수 있는’의 뜻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잘 관찰해 보면 어떤 사람입니까? 한마디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를 침략합니까?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이 침략하여 뺐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2-4)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했습니다. 건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칫하면 교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큰 병을 앓은 적은 없지만 늘 골골댑니다. 어르신들 앞에서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가끔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쑤십니다. 저는 육체적으로도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건강 하시다구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아주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 강하게 부디 치기만 해도 사망 아니면 중상입니다.

그럼 ‘병든 자’는 누구입니까? 어디가 많이 아픈 사람입니다. 의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은 힘이 없다고 인정합니다. 건강한자에게는 의원은 필요 없지만 사람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의원이 없으면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결국은 그대로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을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의원의 도움이 없이는 안됩니다.
바리새인들은 검사의 눈으로 죄인들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의사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의사는 사람이 병들었다고 해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사람을 볼 때 병들어 쓸모 없게 되었다고 소망을 끊지 않습니다. 의사는 병자에 대해 병만 치료해 주면 건강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의사로서 죄인을 치료해 주심으로 살리러 오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에게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주로 오셨습니다.

3. 세관을 떠나 예수님을 따른 마태

세관 문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강제로 걷고있는 마태를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은 그의 겉모양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일 만큼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그도 부르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고 또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자 된 사람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부름에 모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마태 역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베드로야고보는 어부였다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태는 어부하고는 다릅니다. 비록 사람들의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그 자리는 돈을 만지는 자리고 싶게 놓고싶은 위치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제일 정보화가 잘 이루어져 제일 좋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국방연구소?, 미 항공 우주국?, 아니면 CIA? 아닙니다. 바로 국세청입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기관입니다. 당시에도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자리를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름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돌아 볼 것도 없이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모두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한 데이비드 브레어너드는 “나는 설교에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을 한번도 뺀 것이 없다.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한 사실을 깨닫는 자들에게 굳이 다른 교훈들을 가르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데 고상하게 포장하기 위한 필요한 약간의 액세서리나 옵션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4. 죄 사함을 선포하신 예수님

오늘 본문 앞 마태복음 9:2절에 중풍병자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죄 사함을 명했던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자 서기관이 깜짝 놀라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고 했습니다. 죄사함의 선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할 수 있느나?”고 하였습니다.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포하시자 주제넘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고 예수님을 맹렬히 비난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의 생각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곧 죄 사하실 권세가 있는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옆을 보십시오? 거기 보이시는 분이 죄인 갖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뒤를 보십시오? 보시는 분이 죄인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앞을 보십시오. 바로 저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앙교회는 자칭 의인이 많기보다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성도가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의인이 많으면 피 바람이 일지만 죄인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자들이 많으면 평화가 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이제 죄의 문제는 더 이상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마태는 자신이 죄인임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 기록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간절히 의원을 기다리는 병자의 심정으로 우리 죄를 속하실 주님을 찾으시기를 그리고 마태처럼 속히 뛰어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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