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50과 십자가상에서 남기신 일곱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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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23:33-46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을 나눠 제비 뽑을쌔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4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그림 :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  턴토렛토가 1565년에 그린  캠버스 유화로  크기는 536*1224이다. 르네상스 융성기에는 기독교의 주제 중에서도 낙관적인 인생관,신과 인간의 조화된 세계관 등을 나타내는 테마를 주제로 주로  삼았다. 그러나 틴토렛토가 태어난 16세기 중반은 종교적인 위기 시대였고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순교가 중심적인 주제로 나타났다. 작자는 보통 쓰는 원근법에 따라 사실적인 공간을 설정한 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몸과 몸에서 발산되는 둥근 광채를 중심으로 하여 일종의 영적인 분위기 안에 구도를 잡았다. 그리스도의 처형 장면을 마치,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토목 공사장처럼 묘사한 것은 당시 수시로 일어나고 있던 순교사건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보인다. A. D. 33년 4월 초순 금요일 일기 화창한 어떤 봄날 예루살렘성 밖으로 세 사람의 십자가의 죽음 행렬이 엄숙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목적지는 히브리말로 골고다요, 아람어로 된 말을 해석하면 해골이란 동산인데 여기까지 와서 각자가 메고 온 십자가에 이 세 사람을 달았습니다. 그 중에 중앙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7곱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부활하시기 전에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몹시 지쳐있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게 할만큼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한계를 보이고 계셨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말씀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밑에 따라왔던 마리아 및 사람들에 의해서 이 말씀은 낱낱이 전하게 되었고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늘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실 수 있습니다. 멀리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와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들었던 갈릴리 사람들과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랍니다.

첫째 마디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눅 23:34)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기간 내내 외치셨던 말씀이 용서와 사랑입니다.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혹 악을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38-44)

자신을 죽이는 자들은 지금 몰라서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죄가 얼마나 중한지도 모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용서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그 죄책감에 모두가 온전히 이 세상에 남은 생애를 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죄인의 몸으로 제일 비참한 상태에 계십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을 구원한다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 보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소리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사하여 주옵소서”의 원문 ‘압히에미’는 “울부짖다, 용서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다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울부짖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둘째 마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강도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고 했습니다. 이 고백이 진심이면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비방하였다고 했습니다. 객관적이요, 비판적이요, 야욕적인 말이었으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현재도 십자가를 신앙적으로, 주관적으로,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강도처럼 비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했습니다.

지금도 강도처럼 죽어가면서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방하는 자가 많습니다. 고난과 십자가에서는 선한 말이 나오기 힘든 모양입니다만 중앙에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구세주임을 알았다면 구원을 호소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강도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천국의 주인이십니다(계 22:1-6).

셋째 마디

“예수께서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
십자가에 달리신 상태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땀과 피범벅이 되어있어서 눈을 바로 뜨기도 어려웠습니다. 쓰라림을 참으시며 눈을 뜨신 예수님께 어머니 마리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어머니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죽더라도 함께 죽겠다는 것이 어머니 아닙니까? 25절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클로바의 아내 마리아막달라 마리아 등 네 여인이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면서 부탁하였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어린시절 어머니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애타게 찾았습니다(눅 2:41-51). 예수님께 이런 어머니와의 어린 시절부터 기억이 필립처럼 돌아갔을 것입니다. 바로 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어머니 마리아를 지금도 부탁하고 계십니다.

넷째 마디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 46)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된 절규였습니다. 죄 없는 자가 정죄를 당하고 허물없는 자가 박해를 받으며 은혜 베푸는 자가 잔인하게 죽어 가는 일이 역사상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죄를 홀로 지시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는 순간 주님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세 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은 세상에 대하여는 더 할 말씀이 없고 성경에 응하기 위한 말씀을 하실 뿐이었습니다. 이런 절규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은 인간의 죄를 사하는 순간입니다. 잠시 아들의 모습을 외면하셨지만 우리에게 놓인 장막을 걷어내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섯째 마디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하셨습니다.
육체를 입고계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십자가 밑에 있었던 요한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섯째 마디

“다 이루었다”(요 19:30)
원문의 ‘텔레오’는 “완수하다, 결론짓다, 완전히 하다, 청산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창세기부터 아담의 죄 때문에 내려오는 죄의 고리가 단절되었습니다.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와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겨야 합니다. 아담의 죄 그것은 우리의 죄였습니다. 이제 마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죄를 짊어지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않은 분들입니다.

일곱째 마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예수님은 아버지란 말씀을 즐겨 사용하셨는데 산상설교 가운데서 17번, 유월절 다락방에서 45번(요 14, 16장), 요한복음 17장에서 6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말씀을 아버지로 끝맺으셨습니다. 아버지란 명칭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신을 갖게 하는 이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들은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해도 아버지 손에 맡기고 부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체로부터 분리되려는 찰나에 있는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11시가 넘어서 우리집 옆 아파트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싸우는지 여자들 엉엉 우는소리와 무엇을 집어던지는지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자려고 누웠다가 옷을 빨리 챙겨 입고 나가보았습니다. 딸이 얼마나 잘못한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딸을 마구 때리며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말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딸을 때려서 일단 우리 집으로 피신시키고 제가 그 아저씨에게 가서 “진정하시고 좀 마음을 가라앉히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파트 복도에 흩어진 책과 노트들을 담아서 갖다 주었습니다. 잠시 후 진정이 되었는지 동생인 아들을 보내서 데리고 오라고 아빠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런 마음으로 “가서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말해라 다 너희들 잘 되라고 그러시는 거야”라고 부탁하고 보냈습니다. 보내 놓고도 한참을 불안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도 그 집을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심하게 책망하고 때렸지만 아버지입니다. 이 딸은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화가 나셔서 딸을 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이 아무 잘못도 안 하셨는데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아담보다 더한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보다 더한 고충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는지 아십니까? 온 천하를 얻은 것 보다 더 기뻐하십니다(마16:26)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고통,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순간 그 모든 고통은 제일 값진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마지막이 다 되어 갈 때에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스데반과 같은,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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