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Matthew) 변화산의 사건(마9:2-32)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팔레스타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헤르몬 산으로 가셨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형되시더니 모세와 엘리야 와 함께 찬란한 모습으로 계시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있었는데 구름 속으로부터 주의 음성이 들려왔고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 지 않았다.

사진설명 / 헤르몬산 :(마17:3,5.6). 안티레바논산맥의 남단에 있는 최고봉으로 연중 눈이 덮여 있다.
성경학자 헨드릭스는 이 변화산의 사건을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기 위함이며 그 리스도에게는 고난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 은 체험을 통해 점점 굳게 다져지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여 치료받은 다음에는 누구보다 더 큰 치료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비한 경험은 신앙의 본질적 의미를 떠나 아편과 같이 그러한 신비에 빠져들려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불신을 만들어 내는 결과가 주어질 것입니다. 분명히 이번 변화산의 사건 은 제자들에게 예수가 누구인가를 확신케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두려움에서 눈떴을 때 오직 예수 한 분만 남아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의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들 앞에 오직 예수만 보인 것은 인류 구원을 이루신 오직 예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 그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인류의 목자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사실이다.
(3) 인류는 오직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변모는 본래의 모습이 보여진 것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고 사도 요한이 자신들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며 고백했다. 태초부터 영화로우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잠시 초라한 모습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신 것이다.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빌 2:6-7)고 하였습 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신 다음에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모습을 미리 보여 주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그 영광의 주님을 보는 순간 세상의 어떤 좋은 것도 쓰레기 같고 더럽게 느껴졌을 것이 다. 주님의 본래의 모습인 영과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정신없이 거기에 도취 해 버렸다. 다른 아무 소원이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주님 곁이 싫고 세상 것이 좋은 사 람은 영광의 주님을 보지 못하고 영광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베드로가 만난 주님, 요한 이 만난 주님.바울이 만난 주님을 우리도 성경 속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동등하게 대우한 것은 큰 실수이다. 거기에 초막 셋이 있어서 하나는 예수님, 하나는 모세, 하나는 엘리야를 분양하여 모시겠다고 하는 것은 아직 유대교 적인 발상이다. 자기들의 조상을 아버지라고 해서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 자기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특히 모세나 엘리야같이 뛰어난 선조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겠지만, 예수님의 비할 데 없이 높으신 그 신분에 대해서 실감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자이 시고 모세나 엘리야는 피조물인 것이다. 세례요한에 대해서 예수님은 여자가 난 자중에 가장 큰 자 라고 평을 하신 분이다. 그러나 그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나는 그분의 신들 메를 풀기 도 감당치 못할 자 라고 했고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겠다고 했다. 모세나 엘리야도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 앞에 무릎 굻고 엎드려 경배 드려야 할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아직 그 큰 차이 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말대로 초막 셋을 지어서 거기서 산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초막에 가두려는 것이고, 또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셨으니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셨으니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자기를 잃어 버렸다. 변화된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자기 모습이 보인다면 멀리멀리 도망쳐 버릴 것이고, 이사야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만군의 하나님을 뵈었음이로다 (사 6:5)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뵙고 나는 망했다 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 거룩한 영광의 빛에 자기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그 더럽고 추한 자기가 그 광채 앞에 서 데 베드로는 자기 모습에는 전혀 관계치 않고 자기의 간 곳이 없습니다. 다만 주님만 보인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