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Matthew)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마21:18-22)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예수님 당시의 청중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이다. 농부의 삶과, 어부 그리고 목자의 삶을 많이 다루셨는데 당시의 청중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연을 접하며 살았다. 예수님도 그런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자연을 보시면서 비유를 말씀신 것이다.

방탕한 유대교들에 실물 교훈/형식적인 신앙의 실체 일깨우심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란 책을 쓴 버트란드 러셀은 영국이 낳은 유명한 철학자요 저술가였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예수님이 말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그 행위를 자기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비이성적 그리고 비윤리적 처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연 러셀만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 또한 이 본문을 대할 때 예수님은 왜 사람도 아닌 나무를 저주하여 뿌리까지 말라죽도록 하셨을까.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자. 예수님은 유월절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셨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시장하신 지라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 곁에 가시어 열매를 구했으나 그 나무는 잎만 무성 했지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은 그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시고 그 길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다시 성전 밖으로 나오셨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몰인정하게도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무화과 나무 자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한 주님의 심판을 통해 외식과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당시 유대교도들을 비유해서 책망하신 것이다.
무화과나무에 대해 저주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가의 저주받은 무화과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두고두고 기억시키기 위한 실물교훈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이 경고를 무시하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 위에 처형하지 않았던가. 그 죄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 처형한 대가는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보상받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기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나무 그것은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신앙의 실재가 없는 오늘의 우리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어 신앙의 실재인 그 열매를 요구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Ahiqar 史話(기원전 5세기의 것으로 확인됨)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아들아, 너는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다. 이제 주인은 그 나무를 베어 버려야 하게 되었다. 그 때 그 나무가 주인에게 말했다. 나를 옮겨 심어 주세요. 그 때에도 내가 열매를 맺니 못하거든 나를 베어버리세요. 그러나 그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했거늘 어찌 다른 장소에 옮겨진다고 열매를 맺겠는가?"예수님은 이러한 民話를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 민화에서는 무화과나무의 간청이 거부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자가 곧 문 앞에 가까이 온 것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Ficus carica)

사진설명 / 무화과나무 ;흔히 길가나 집주변에 있는 성서시대의 주요한 과일인 무화과 (Ficus Carica).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의 포도원 근처나 길가와 집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성경에는 무화과나무(Ficus carica)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예수님은 여러 비유와 예화들에 무화과 나무를 사용하셨다. 이 나무의 잎사귀는 매우 일찍 돋아 나므로 봄을 알리는 전령이라 할 수가 있다. 열매는 가을에 지는 넓은 잎사귀들 사이에서 여름 동안에 익는다. 무화나 나무는 이 무화과 위에 애굽 무화과(Ficus Sycomorus)가 있다.

예수님 시대의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 전역에 유실수로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Bethphage(무화과 나무들의 집)이 위치한 예루살렘 근처는 더욱 그러했다.
무화과 나무는 히브리어로 "테에나"이며 헬라어로는 "수콘", 덜 익은 무화과를 "팍가"라는 말로 아2:13절에 사용되었다. 무화과 나무는 구약에서"테에나"로 23번, 신약에서 "수케"로 16번 언급되었습니다. 무화과 학명은 피쿠스 카리카(Ficus carica)입니다. 무화과 나무 열매는 즙이 많고 열매를 자르지 않으면 꽃을 볼 수 없도록 생겼다. 무화과는 둥근 종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배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무화과 나무는 계절에 따라 일정하게 두 차례 열매를 맺는데 5,6월에 익는 일반적인 겨울 무화과가 있고 8,9월에 익는 여름 무화과가 있다. 매년 4월쯤 입이 나타나며 열매의 싹은 2월쯤 볼 수 있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1년에 9-10개월 이상 열매를 딸 수 있다는데 어린 무화과 나무는 겨울에 얼어죽어 첫 번째 열매는 딸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무화과 나무가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화과 나무는 더운 지방에서 무상한 커다란 잎사귀와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준다. 우물 옆에 심겨진 무화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올리부나 잡목, 그리고 감람 나무와는 달리 무화과 나무는 겨울이 다가오면 잎을 떨어진다. 그리고 다른 여러 낙엽송들이 봄철에 일찍이 생명의 신호를 보여주기 시작할 때도 무화과나무는 그 앙상한 가지를 여름이 오기 직전까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는 눈이 나고 봉우리가 터져 며칠만에 부드러운 잎이 나옵니다. 자연은 살인적인 밤의 추위는 지나가고 여름철이 왔다고 전해진다.

예수님은 4월 첫 주 동안에 싹이 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가르치셨는데 바로 그 때가 무화과 나무에서 생명의 첫 신호를 보여주는 시기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24:32) 이 말씀은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