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본 문 : 마태복음 2:1-9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열국의 패권을 잡고 헤롯이 예루살렘에서 분봉왕으로 있을 때에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 박사들은 누구이며 그 별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전해진 설화에 보면 그 박사들의 이름은 캐스파, 밀초어, 팔다사였습니다. 페르시아인이며, 마니교도들의 선생들입니다. 그들은 천문학을 연구하는 점성술사들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페르시아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좌우편에 거생하였고, 태양신을 경배하며 일월성신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별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하며 설교했습니다. 그 종교의 우두머리들은 천문학사들이었으며, 그들의 교당은 천문대를 겸유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향할 때에, 동방에 유명한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발람입니다.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케 한 것은 성경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발람은 브올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저가 지금 없으나 내가 보고 저가 가깝지 아니하나 내가 바라보도다 한 별이 장차 야곱의 집에서 나옴이여 한 홀이 장차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리로다(민 24:17)" 주전 1,700년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동방 각처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동방의 문학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통하여 옛날 동방의 선지 발람의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곧 하늘에서 거명성(巨明星)이 뜰 때에 유대에서 세계적인 대왕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수(星數)는 인수(人數)에 상관한다는 사상으로 별의 운명은 사람의 운명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하늘에 큰 별이 뜬다는 것입니다. 그 후 동방의 박사들은 새로 뜨는 큰 별을 먼저 찾으려고 각처에서 하늘을 관찰하며 별의 길을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바벨론의 보시파에 있는 칠성전관상대(七星殿觀象臺)에는 그 별을 연구하는 세 박사가 있었습니다. 새로 태어날 왕에게 드릴 예물, 즉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고 그들의 친구인 페르시아의 엑바타나 도시에 있는 앗타반에게도 서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황제의 피서궁(避署宮) 북편 오른테스 산에 성단을 쌓고 배화(拜火)하던 진실한 도사였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하였다가 히브리 족속이 사는 서편 하늘 쌍어성좌(雙魚星座)에서 큰 새 별이 뜰 때에는 즉시 7성전으로 와서 세 박사들과 함께 새로 나신 대왕에게 경배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과연 왕의 왕되신 구주께서 강생하실 그 때에 저 천공으로부터 명랑한 새 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 별을 본 박사들은 기쁘고도 마음이 조급해져 앗타반을 기다릴 새도 없이 즉시로 약대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엑바타나 오른테스의 천문대에 있던 앗타반도 새 별이 뜨는 것을 보고 곧 예물로 드릴 보석 셋을 가슴에 품고서 준마중 가장 빠른 루바스다를 몰아 7성전으로 갔습니다. 이미 세 박사들은 저들끼리 떠난 뒤였으나 앗타반도 약대를 몰아 아라비아 사막을 건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 뜬 별은 무엇이었을까요. 행성이나 혜성이라 하며, 또는 새 별이니 임시별이라고도 하며, 초자연적인 빛을 비추는 별이라고도 합니다. 그중에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요 뛰어난 천문학자인 케플러의 말에 의하면, "구주께서 탄생하실 때에 쌍어성좌에서 목성과 토성과 화성의 3대행성이 일직선상에 회합 되었기에 일시에 강열한 빛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1572년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11월 11일 저녁 덴마크의 천문학자 브라에가 국립 천문대에서 관찰할 때의 일입니다. 홀연히 선후성좌(仙後星座) 갭바 성(星) 가까이에 한 새 별이 나타나 그 밝기가 대낮에도 능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각처에서는 신도들이 이 별은 재림의 징조라 하여 한 때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으나 1574년 3월에는 그 빛이 점점 사그라져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보다도 이런 설화나 과학적 기록으로 근거를 대면 사실을 더 수긍하고 믿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구주되시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그 진실성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실을 알리며 믿음을 주고 그 말씀대로 순종케 하는 것은 오직 성경 뿐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믿음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본문에서 예수님의 탄생하시던 당시의 모습을 더 자세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독특했습니다. 자연계에는 이상이 있었고, 해산을 앞둔 임산부가 장거리 여행을 해야하는 사연과, 겨우 구한 말구유간을 의지삼아 분만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공부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부적절한 특이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을 곧이 곧대로 믿기를 거부하며, 전연 신빙자료가 될 수 없는 설화나 이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면서 자신들의 허망한 마음에 만족을 채웁니다. 입으로만 주의 성탄을 말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탄의 의미와 그 귀중한 뜻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귀한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한 목적을 보십시다.
사복음서를 보면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유년기나 나이 드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리스도가 노예로서 계시됩니다. 어떤 사람도 노예 따위의 유년기에 대하여 주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두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유년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로의 관점은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는 그리스도가 합당한 사람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예수의 인성을 증거하는데 주력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지만 사람됨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율법대로 할례를 받았고,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첫째 날이 아닌 여덟째 날에 예수라 이름하였습니다.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 갔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남자이면 일년에 삼 차 절기에 참석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를 충실하게 따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신체적으로 자라셨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들은 예수님이 전형적인 사람이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가 하나님 백성들의 왕이심을 보여 줍니다. 누가는 이런 요점들을 포함하지 않지만 마태는 누가가 지내친 점들을 섬세하게 기록합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가 모든 백성의 왕이심을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흑백 문자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이 보여 주려는 요점들, 즉 생명되는 어떤 것들을 찾아 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장은 구약의 모든 세대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성 안에 이끌리셨으며 땅 위에 나타나셨습니다. 2장은 그 주님을 발견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는 인성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스도를 발견하느냐 하는데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2장 역시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장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알아 보십시다.
예수님은 탄생하여 네 명의 군주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땅 위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조무라기 왕들과의 조우입니다. 그 첫번이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연도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역을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악명이 높은 아켈라오를 피하기 위해, 애굽에서 피난살이를 하다가 돌아 온 예수님의 부모는 유다의 베들레헴에 머물기를 포기하고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로 갔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역시 헤롯의 작은 아들 안티파스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탄생하시면서부터 헤롯과 아켈라오및 안티파스등 헤롯일가의 세 군주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지 않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군주가 있습니다. 바로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유다는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든지 황제의 막강한 세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초대 황제 아구스도입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이 태어 나시던 시대는 이른바 [로마의 평화]의 기초를 놓기 시작한 초대 황제 아구스도의 전성기가 서로 중복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구스도 자신이 고안한 황제를 머리로 하는 원수정치(元首政治) 구조를 통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그리스도의 강림과 때를 같이하여 수립된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그 평화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전파에 이바지하였고, 그 평화와 함께 도로의 건설, 상업의 성장이 병행되었습니다. 아구스도가 이룩한 내적 평화의 지속과 외적 질서의 유지로 인하여 모든 지중해 연안들이 이처럼 하나의 통치아래 놓였던 때와 번영과 평화를 누리던 때가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한다면, 아구스도의 치하에서도 [세계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평화에 대하여 실제로 행복을 느껴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로마가 번영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에 비하여 로마의 내부와 속주들에게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신음소리들이 더 높아만 갔습니다. 이토록 참된 [평화의 왕]의 오심과 세상적 [평화 메이커]들이 연출해 내는 위장된 평화와의 묘한 대조를 이루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의 평화 아래서 공포정치의 극을 이루었던 헤롯의 때에 주님은 오셨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에돔 사람으로서 에서의 후예입니다. 안티파테스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헤롯왕조의 시조로 불리우는 안티파테스는 유대의 마지막 왕조인 마카비우스(하스몬) 왕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단순히 이두매 족속으로서 유다 왕조를 무너뜨렸다고 하면 논란할 이유가 없겠지만, 안티파테스가 혈통으로는 이두매족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그의 국적은 엄연한 유대인이라는데 있습니다. 이두매는 마카비 왕조의 정복정책에 의하여 유대에 합병되었던 것입니다. 안티파테스는 마카비 왕조에 중신으로 기용되어 있으면서 권력싸움을 이용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추대하는데 성공합니다. 헤롯은 주전 55년부터 주후 93년경까지 팔레스티나와 그 인접국가를 통치한 왕조의 이름으로서 헤롯대왕은 헤롯왕가의 창시자입니다. 25세 때에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갈릴리의 지사를 거쳐 주전 40년에 로마황제 아구스도에 의하여 유대왕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이두매, 사마리아, 갈릴리 지방을 쳐서 주전 3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 왕으로서 군림하였습니다. 성격이 강인하고 또 현명한 재질을 가졌으나 매우 잔인한 행위도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공공사업을 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에 착수하였습니다. 무려 10명의 아내와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 자식들의 권력싸움 또한 볼만 했습니다. 그는 악질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껴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살해한 장본인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들에 대하여 초점을 맞춰 보십시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방에서 오는 박사들에게 안내하기 위한 빛나는 별을 주셨습니다. 이 별은 거룩한 땅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몇몇의 이방인들에게만 나타났습니다. 그 별빛은 이방의 박사들을 감동 시켰습니다. 그들은 유대에 왕이 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왕을 경배하기 위하여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여 유대 땅으로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대조를 찾아 보아야 합니다. 지상의 왕들이 평화를 구축하려고 애쓸 때에 참된 평화의 왕이 오심과 같은 것들입니다. 유대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안에는 우리의 생명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찼습니다. 반면에 이방의 그 박사들은 산 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과 별,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가지고 싶습니까? 물론 둘 다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손에는 성경을 가지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축복, 하나님은 이 놀라우신 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 되는 축복입니다. 성경에 관한 한 우리는 유대인이고, 별에 관한 한 우리는 이방의 박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것들이 축복이 되는지 말씀의 깊은 뜻들을 더 살펴보셔야 합니다. 박사들은 별을 보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동방의 박사들 역시 누구인지 모릅니다. 물론 그 박사들에 대하여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호기심의 충족을 위하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되면 추측이거나 거짓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우리도 침묵해야 합니다. 구구한 해석을 필요로 할 때 벌써 우리의 신앙은 성경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가르침들을 따르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이 별과 박사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뜻을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유대를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이상을 체험했지만 곧 어려움에 처해졌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판단에 의한 착오였습니다. 그들은 이상을 보았고 그것이 유대인의 왕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달았지만 그 왕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유대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들의 결정은 별빛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에 올바른 노선으로부터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은 틀렸습니다. 그곳은 수도였고 성전이 있는 곳이었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실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박사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아기 예수는 하마트면 죽을뻔한 것입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물었습니다.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습니다. 새로운 왕의 탄생에 대하여 헤롯왕은 불안에 떨었고, 백성들은 헤롯왕에게 동조했습니다. 그것은 헤롯의 폐위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헤롯을 보다 더 잔인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전에도 과대망상증이라는 병 때문에 이미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살해한 적이 있습니다. 왕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모든 대제사장이라고 한 것은 대제사장을 지낸 여러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영구직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직 제도를 제 마음대로 바꾸어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임명하고 또는 해임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율법 선생들을 말합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태어나실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은밀히 불러서 별의 나타난 때를 묻고 아기를 찾거든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헤롯이 이미 사내 아이들을 죽일 무서운 음모를 마음 속에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서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가 과연 태어 나셨는지 보기 위하여 박사들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간 사람은 없습니다. 그토록 메시야의 강림을 열망하던 유대인들의 태도로 보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스스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은 위했지만 메시야의 사신 인격은 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매우 영적인체 합니다. 그러나 성경만을 주시할 뿐 사신 그리스도를 관심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도 곧 옮아 올 수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라는 사실입니다. 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왔을 때에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별은 박사들을 그리스도가 계신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베들레헴성 뿐만 아니라 아기 예수가 계신 곳으로 정확하게 인도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리스도께 대한 산 이상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만을 만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동방의 박사들이 그리스도를 뵈옵고 경배하듯이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뵈옵고 영원히 경배하는 자리에 나아가게될 것입니다. - 1991. 12. 29 설 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