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못 (Pool of Bethesda)

=> 벧세다 참고
뜻: 은혜 혹은 친절의 집
양문 가까이 있던 샘솟는 못으로 알려졌는데 행각 다섯이 있어 여러가지 병 자들이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는데 예수임이 38년된 병자를 여기서 고쳐주셨 다(요38:2).

* 1888년에 찾은 4세기에 지었던 성 마리아 프로바디카회당 폐허에 있는 못을 가리켜 베데스다라 한다.
지금도 예수가 기적 행하진 퇴색된 벽화를 볼 수 있다.
이샘은 길이 9미터의 바위를 파서 만든 큰 웅덩이 인데 동서 16.7m 넓이 3.8m로서 못에 이르게 되었다.
대개 이것을 베데스다 못으로 생각한다.

성 안나 교회 구내에 있는 베데스다 못의 지역은 1871 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은 원래의 그 모습을 잘 볼 수가 있다. 예루살렘의 동쪽 성문 중의 하나인 스테반 문 (일명 사자문)에서 성 내부 쪽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이 연못은 예수님 당시에는 성의 북쪽벽 밖 가까운 곳이었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 (Sheep Gate, 느 3:1, 요 5:2) 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연못은 본래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진 길이 100 ~110m, 너비 62 ~ 80m, 그리고 깊이 7 ~ 8m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 이곳은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해서 환자들이 늘 집합되는 장소였고, 예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장소로서 성스러운 성지로 지켜져 오는 곳이다 (요 5:2 ~9), 히브리어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House of Mercy)이라는 뜻이다.

또 오리겐 (AD 231년)은 두 개의 쌍둥이 연못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연못 가장자리에 4개, 중앙에 한 개의 기둥"을 말하고 있어 사도 요한이 전하고 있는 '다섯 행각'에 관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셨던 곳인 베데스다 못이 그 다섯 개의 행각과 함께  현재의 <A href=예루살렘 지면 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연못은 수백년 동안에 흙으로 덮여져 있던 곳이 1888년에 들어서 발굴되었다. 이 연못은 그 길이가 105m, 폭이 60m, 그 깊이가 7.5m가 되는 직사각형 모양에 네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서, 그 측면은 다섯 개의 회랑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로써 요한복음의 '다섯 개의 행각'(요 5:2)이라는 말이 입증되는 셈이다. 이 연못 중의 하나가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양을 깨끗이 씻겨서 들여가던 곳이다.

비잔틴에 의해서 건립되고, 614년에 페르샤에게 파괴된 5세기의 바실리카가 거대하게 남아있고, 십자군 시대의 교회당이 비잔틴 교회 위에 건립되어 있다. 이 교회당의 정면 모습과 정문은 오늘날도 연못의 모습 위에서 방문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십자군의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이 살던 곳으로 AD 1140년에 발드윈 1세(Baldwin I)의 부인에 의해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 안나 교회' (St Anne's Church)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교회는 마리아의 탄생지가 되는 귀중한 토굴 위에 건립되었다. 1187년 십자군의 패배 후에 살라딘 왕은 이슬람의 신학교로 이 장소를 사용했다.

1865년의 크리미아 전쟁의 결과로 압둘 마지브 술탄은 나폴레옹 3세에게 이 장소를 양도했고, 이 교회는 수리되어 백계 신부 (White Fathers)들에게 넘겨졌다.

베네스다와 아스클레페이온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중에서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요 5:2-18). 그 이유는 이곳에서 가끔 물이 동하는 신비스런 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베데스다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왜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중병 환자들이 모여있었는가? 이곳은 예루살렘의 환자 요양소 내지는 병원이었는가?
1860년대 예루살렘의 성 안나 교회를 차지한 프랑스의 백의의 선교사회 신부들은 근처의 유적들을 부분적으로 발굴하고는 고대 기록들을 근거로 이 곳이 양문 옆에 위치했다는 요한복음서의 베데스다로 여겼다. 가까이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제사용 도살에 필요한 물이 많이 필요하고 여러 개의 저수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1957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서 길이 52m, 폭 40m 규모의 북쪽 저수지와 길이 57m, 폭 48m 규모의 남쪽 저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52년 쿰란의 제 3동굴에서 발견된 구리판에 기록된 한 두루마리 문서도 예루살렘의 양의 못이 두 개의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해 준다.

두 개의 저수지와 다섯 행각
베데스다에는 다섯 개의 행각, 즉 스토아가 있었다(요 5:2). 스토아는 그리스 건축에서 기둥으로 이루어진 회랑을 의미하며 도시 한가운데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터인 아고라에 위치한 건물을 의미했다. 이 안에서 철학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견해들을 교환했다고 해서 스토아 학파가 유래됐다. 베데스다의 두 개의 저수지는 다섯 개의 회랑과도 그 구조면에서 일맥 상통한다. 두 개의 저수지 사이에는 폭 6m의 분리벽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의 모양은 한자로 날일자 형태를 띄고 있었다. 따라서 두 개의 저수지 가장자리에 회랑이 있었다면 사이의 분리벽까지 합해 모두 다섯 개의 회랑이 있는 셈이다.

천사가 물을 움직일때
두 저수지 사이의 분리벽 아래쪽에서 물이 흐를수 있도록 한 통로가 발견됐다. 높은 곳에 위치한 북쪽 저수지로부터 물이 남쪽 저수지로 흐르게 고안된 것이다. 신약학자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이 장치를 가끔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북쪽 저수지에 일정한 양의 물이 찰때마다 병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남쪽의 목욕장으로 흘려 보냈다는 것이다. 왜 베데스다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는가? 발굴을 통해 베데스다의 유적은 서기전 200년경 최초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1세기에는 저수지와는 별도로 깨끗한 물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 급수대도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저수 시설은 단순히 성전 제사를 위한 도살에 필요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로마 시대 도시들에 널리 퍼져 있었던 종합병원 아스클레페이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데스다가 원래 히브리어로 베잇트 하스다, 즉 ‘자비의 전당’이라는 뜻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또한 서기 2세기 폼페이아 루킬리아라 불리는 한 로마 여인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그 대가로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이 이곳서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 밝혀졌다.

아스클레페이온(Asclepeion)
서기전 700년경부터 그리스 본토에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의학의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했고 서기전 6세기에는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클리닉이 세워졌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목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스클레페이온의 한 가운데는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와 저수장이 있었다. 피부병의 경우 진흙 맛사지를 받게 했고 태양볕 아래 맨발로 걷는 것도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였다. 음식요법으로서 포도주나 기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금식을 하기도 했다. 증상에 따라 필요한 약재가 동원됐고 간단한 수술이 시행되기도 했다. 한밤중에는 신전의 제사장이 하인들을 거느리며 환자들의 병상을 방문하여 상태를 확인하고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아스클레페이온에서 가장 중시하는 치료법은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연극과 음악감상을 통해 환자들의 안정을 유도하려는 심리치료가 일반적으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규모가 큰 경우에는 본격적인 운동을 위한 스타디움과 김나지움도 있었다.

페르가몬(버가모)의 아스클레페이온
페르가몬의 아스클레페이온은 지중해 섬지역인 로도스의 것과 함께 그리스-로마 시대의 가장 유명한 클리닉 시설로 손꼽힌다. 도시로부터 병원까지는 820m 길이의 대로인 비아 텍타(Via Tecta)로 연결돼 있으며 이곳에 들어서면 회랑으로 둘러싸인 전체 면적이 14,000평방미터에 달하는 네모진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구조물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인 서기 130년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마당 한가운데는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가 있고 동쪽면에는 도서관, 프로필론, 신전, 그리고 지하 원형 치료소가 있으며 북서쪽에는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있다. 페르가몬 출신의 유명한 의사로서 서기 2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갈렌(Galen)을 들 수 있는데 해부학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페르가몬의 원형경기장 소속 검투사들의 전문치료사로 경력을 쌓았고 나중에 로마로 가서 황제들의 전문의로 활동했다.

서기 5세기 중엽 베데스다를 방문했던 한 순례자는 이곳의 기념교회를 ‘불구자의 교회’로 명명했다. 또한 서기 6세기부터는 이곳이 마리아의 생가라는 전승이 생겨났고 다섯 개의 행각 중 하나에 이를 기념하는 교회가 건설됐다. 서기 1100년경 십자군들은 이곳에 마리아의 모친을 기념하는 성 안나 교회를 세웠고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십자군 시대의 건물로 손꼽힌다.
예수는 안식일에 베데스다의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에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율법위반을 문제삼기 시작했다(요 5:16). 오늘날의 유대인들에게는 파쿠악흐 네페쉬라 불리는 율법의 예외 조항이 있다. 가장 엄격한 안식일 율법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생명이 좌우된다면 예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진 것을 구해내는 것 등이 피쿠악흐 네페쉬에 속한다(마 12:11). 양 한 마리의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구덩이는 물웅덩이를 뜻하기 때문에 양이 빠져 죽을 경우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일보 2001.2.28 / 김성교수 협성대·성서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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