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기독교의 출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국 민족은 인습과 형식 빈곤의 멍에를 메고 언제까지 그대로 살 수는 없었다. 이 멍에는 진리만이 풀어 놓을 수 있었다. 기독교 진리인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주려고 목숨을 바친 전도자가 있는가 하면 국외로 나가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받아들인 겨레들도 있었다. 한국 민족이 복음을 접수한 시기는 다른 민족보다 뒤졌으나 그 마음가짐과 행동은 어느 민족보다 강하고 열망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형성과 부흥

    누가 우리 한국 민족에게 소망을 줄 것인가, 그는 오직 우는 자의 위로가 되고 약한 자의 강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다. 1907년 이래 한국교회의 대부흥은 교파와 계급을 초월하고 우리 민족이 죄에서 거듭난 참다운 부흥이었다. 선교사들은 겸손과 희생의 사람이 되었고, 교인들은 성수주일, 성경연구, 헌금과 봉사, 사랑의 생활로 돌진함과 동시에 큰 전도 운동을 일으켰고 교회 연합사업을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의 발전과 확대

    1919년 3.1독립 운동에 있어서 기독교가 그 중심 세력이 되었음은 세인 공지의 사실이다. 해외에서의 운동이나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의 거사와 행동이 모두 교회를 중심하여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박해와 탄압은 한국교회와 신도들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회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 민족을 위한 길잡이가 되었고 또 봉사자가 되었다. 이는 오히려 한국 민족을 교회로 접근시키는데 주효하였으며 민족 기독교로 발전하고 화ㄷ케 하는데 전화 위복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고난과 순교

    왜정 36년간 일제의 교회 박해는 강압과 회유 매수 등 가진 수단과 방법을 다했다. 신사참배 강요는 민족 전체에게 강요되었다. 그러나 교회만이 피를 흘려 항거하였다. 이로 인해 2백여처의 교회가 페문되었고 2천여명의 신도가 투옥되었고 50여명의 교역자가 순교하였다. 한국기독교는 민족을 위해 순교한 피 제사로 튼튼하고 흔들림 없는 민족교회로서의 대발전의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보장 받았다.


한국교회의 재건과 분열
    물거품 같이 사라진 일본의 세력, 아침 해빛처럼 찾아온 해방의 선물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러기에 해방 뒤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신앙의 위신만은 지켜야 한다고 급급한 나머지에 대립과 충돌을 조성하였고, 교회 분열의 혼란상은 극에 달하였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없다는 소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보다 더 높아졌다. 6.25동란의 시련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한국민족교회는 한국 민족을 위하여 책임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아야 한다.

민족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협력

    주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가 되어리'고 말씀하고 계신다. 온 민족이 염원하고 있는 조국의 통일과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도 한국교회의 하나는 필수적 과제이다. 한국교회 자체 안에서의 불화와 분열의 상태도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 어떻게 민족의 하나되는 작업에 성과를 올릴수가 있을 것인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뭉치게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은 반드시 국토의 통일과 우리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약속해 주실 것이다.

맺는 말

    바야흐로 한국민족 기독교의 역사도 100주년을 넘어섰다. 이 마당에서 지난 날을 돌이켜보고 거기에서 분석된 에너지를 발굴 함으로 장래를 향한 한국교회 건설의 비전으로 삼는다면, 새로운 한국 기독교의 역사 창조를 위하여 이에서 더 큰 보람이 없을 것이다.

한국기독교회사




Copyrightⓒ 1978-1998 김광수, K.C.M All rights reserved email comments to webmaster@kc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