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
베다니 미전도종족
월드뉴스
세계기도정보
종합게시판
KCM  지회

필리핀(Philippines)

 

Links




     제목 : 참고자료 / 1. 필리핀의 선교상황
   자료원 : 강신찬 기성해외선교부
   국가명 : 필리핀
   발행일 : 94년 08월 18일

참고자료 1. 필리핀 선교상황 이해를 위하여

1. 필리핀 개관

필리핀은 남한의 3배 크기인 300,000k㎡의 땅에 무인도를 포함하여 7,250개의 섬으로 이룩된 섬나라이다. 전국이 14개의 지역(Region), 73개의 도(province), 60개의 City, 1,532개의 군크기의 Municipality, 5만개의 동 크기의 barangay로 나뉘고 이는 모두 지방자치에 의해 움직여 진다. 전국을 크게 구분하면 북부 루손, 중부 비사야스, 남부 민다나오 세 큰 섬으로 나눌 수 있다. 매년 2.5%의 인구증가를 보여 91년 10월 현재 62,465,646명이 살고 있다. Malayo-Indonesian Filipino가 95%, 부족민 2.5%, 중국인 1%, 기타 1%로 되어 있다.

10세기부터 중국상인들과 접하면서 화약사용법, 도자기 만드는 법, 야금술, 금광술 드을 배웠다. 인도 자바 문화와도 접하여 필리핀 용 어중에 산스크리트의 영향을 입은 말들이 있고 미신사상 등이 나타 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라비안 문화에서 무어인 양식과 기술을 배워 화기를 사용하는가 하면 아랍말이 섞여 있기도 하다. 서기 1200년에 이미 인도에 있었던 이슬람 세력이 아랍인 선생 막둠이 1380년에 남 부 필리핀에 정착함으로 전해졌다. 이후 1450년 아부 바아크라는 사 람이 술루섬에 제착하면서 이슬람은 크게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고 스페인과 미국이 지배하는 과정속에서도 결코 변하기 않는 강직성을 지금껏 보이고 있다. 1521년 3월 16일 마젤란이 시부섬을 발견한 후 40년 후에 1565년 식민통치를 위한 기구가 생기고부터 스페인의 통 치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피의 댓가와 노력이 있었고 홍콩에 주둔하던 미해국이 1898년 5월 1일에 마닐라 만에 상륙하게 되고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이 미국과의 싸움에서 패함으로 스페인 의 377년간의 통치는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미국의 지배가 계 속되었으며 일본의 지배를 잠깐 받긴 했으나 이는 1956년 7월 4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으로 독립하게 되고 자주정부를 세우게 될 때 까지 계속되었다. 스페인은 가톨릭 신앙을, 미국은 교육을 통한 서구 문명을 전해주었지만 오랜 동안 지배받던 민족은 독립후 지금까지도 미국과 일본의 영향하에 있으며 자주권을 행사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공식언어는 필리피노(타갈록)와 영어이고 전체사 용되는 언어가 164개이다. 국민 1인당 GNP는 670불 정도이며 농업과 공업이 혼합된 경제구조를 갖고 있고 오일쇼크, 수출부진, 보편화된 부패, 정치적 혼란, 그리고 천재에 의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상 존한다. 근래 미군부대의 철수와 선거열기 등으로 경제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 미국, 일본 등의 식민통치 영향으로 동서양이 교체되는 복 합문화형태를 띄고 있으며 천주교가 국교로 되어 있으나, 종교의 자 유가 보장되어 있다. 천주교 신자가 63.6%이나 다수가 전통무속종교 와 혼합되어 있으며 미신적인 신자들이다. 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10%정도이며 그중 5.2%가 열심히 있는 신자이다.

2. 필리핀 교회현황

Philippine Crusade Inc. 에 의하면 1991년 8월 현재 전국에 22,1888개의 교회가 있으며 전체 인구에 비하면 한 교회가 2,815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실제 교회참석 인원은 평균 58명으로 나타났다. 이 들은 개신교인의 비율을 5.2%로 집계하여 선교의 가능성을 증명해 주었다. 또한 이들이 벌리고 있는 K.A.W.N. 2000 운동은 2000년 까 지 전국 5만개의 동네에 적어도 한 교회를 세우자는 것인데 앞으로 도 23,752개의 교회가 더 필요한 상태이다.

1899년 최초의 개신교 미국 선교사가 들어온 후 지급까지 필리핀 은 어느 나라보다 예배하며 활동하기에 자유롭다. 2,000여명의 선교 사들이 방방곡곡에서 일하고 있으며 300며 개의 교단이 등록되어 있 고 드 결과 이미 굴직한 교회들이 여럿 생겨났다. 도표에서 보듯이 그러한 급성장은 80-90년 사이에 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70년까지만 해도 4,300여 교회이던 것이 80년에 13,600 교회 로 90년에 27,000교회로 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성장한 교회들 도 주로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들로 집계되고 있다.

필리핀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는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이다. 자국내로 혹은 외국으로 선교사로 이미 선교사를 내보내고 있다. D.A.W.N. 2000의 통계로는 Africa 3, Austria, 1, Bolivia 1, Canada 2, Kenmark, England 1, Hongkong 6, Indonesia 7, Ireland 1, Japan 5, Korea 1, Malysia 4, Micronesia 2, Newguinea 5, New Zealand 2, Pakistan 1, Palau 1, Parayguay 2, Philippines 500, Saipan 3, Saudi Arabia 1, Singapor4 2, Swaziland 4, Taiwan 4, Thailand 5, UA Emirates 3, USA10, Zambia 2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1988-1990 Filipino Missionary Directory).

164개의 언어족 중에 134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고, 31개는 신 약만 50개가 쪽복음만 번역되 상태이다. 교육에도 열심이어서 1974년 통계로 신학교 74개이던 것이 91년통계로 210개의 교회 혹은 기관이 신학교 혹은 교육기관으로 등록되었다. 신학교육도 주로 서양의 시상 을 번역하여 가르치는 단계에 있으며 많은 학교들이 지역여건을 고 려하여 신학연장교육(TEE)을 많이 실시하고 있다. 문서전도기관도 63군데나 등록되어 있고 이들이 도서를 펴내고 전도지를 개발하며 교육자료, 성경공부안, 기타 신앙지를 만들고 있다. 기독교방송과 텔 레비젼 방송국이 있어 방송을 통한 전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1. 카톨릭 선교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주후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에 원주민들 가운데 대다수가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이 된 섬은 필리핀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운시상태에 있었으며 종교적으로 고등 신앙(higher faiths)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단지 이슬람교만이 아 시아 대륙에서 종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슬람이 세워진 곳에서 기독교는 많은 진척을 보이지 않 았다. 필리핀에서 회교가 기독교보다 앞섰다.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보르네오로부터 모슬램 상인들이 먼저 화서 그들의 신앙을 가 르치고 있었다. 이슬람이 1세기 또는 2세기를 앞질렀기 때분에 필리 핀 섬들이 기독교화되기보다 이슬람화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페인 선교사들이 때에 맞게 도착했다. 물론 남쪽에 많은 모슬렘 교도들이 있었다. 스페인 정복이 시작된 몇년 후인 1573년에 큰 북쪽 섬인 루손섬의 운주민들 중 얼마는 (특히 해안쪽) 모슬렘교도였다. 남쪽에 흩어진 모슬렘교도들이 부분적으로 민다나오의 통치자와 교 전이 있은 후 부분적으로 이슬람의 전도가 금지되었고, 이슬람교도 들의 집이 파괴되었으며 기독교의 가르침만이 허락되었다. 북쪽에서 는 기독교가 이슬람이 발판을 만드는데 방해가 되었다.

필리핀이 기독교화되었던 요인은 구미와의 접촉 때문이었다. 뚜렷 한 영향을 준 나라는 영향을 준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18세 기까지 유럽국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공격적이며 포르투칼과 네덜란 드보다 어 힘이 강한 나라였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필리핀은 거 의가 스페인의 소유가 되었다. 스페인의 선교사가 동남아시아에서 다 른 지역보다 필리핀에서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서구인들의 주요 목 적은 상업이 었고 기독교 신앙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에서 상업보다 선교가 더 꾸렷했고 정치적 정복보다 기독교 전파가 앞섰다. 필리핀은 아시아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선교사들 은 더 맣은 기독교인들을 얻었으며 선교사들이 동인도와 인도 차이 나, 중국, 대만, 일본 등으로 갔다. 실제로 필리핀은 스페인의 정치적 종교적 정복을 위한 전략지로 생각되었다.

마젤란(Ferdinand Magellan, 포루투칼 탐험가)은 챨스 5세 활제의 명령으로 지구의 정반대로 항해하여 유럽인들 일행과 함께 1521년 필리핀 막탄선(Mactan)에 도착하였으며 약 한달 후인 5월에 라푸라 루라는 추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1529년에 포르투칼인의 경계선 확장을 필리핀에 두었으나 스페인 사람들이 섬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1542년에 빌라로보스 (Villalo-bos)의 원정이 실패했으나 1565년에 레가스피(Lopez de Legaspi)의 영도 아래 섬들의 정복이 시작되었다. 필리핀을 정복한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스페인의 정복의 확장이었다. 스페인 사람 들이 필리핀 회심자들을 얻은 것은 놀라울 만한 것이었다. 마젤란과 빌라로보스에 의한 필리핀 회심자들이 생겨나긴 했으나 정치적 정복 처럼 영구적인 기독교를 심은 것은 레가스피에 의해서였다. 레가스피 의 지시에 의하면, 모든 탐험가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행동해야 하 며, 주님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을 공경해야 하며, 원주민들을 잘 대 우해야 하며, 종을 사고 파는 일에 종사하지 말아야 했다.

레가스피와 함께 5명의 어거스틴 수도승들이 왔으나 그 중에 3명 만이 필리핀 섬에 남았다. 어거스틴 교단에 이어서 1577년에 프란시 스교단이 도착했으며, 1578년에 도미니크 교단이 교황의 명령으로 마 닐라에 주교구 성당을 세우기 위해 들어왔으며, 이러서 제수잇 교단 이 들어왔다. 이들은 점유한 후 1세기 동안 종교적 열정과 군사적 정 복의 결합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필리핀 회심자들을 얻는 데 성공 케 했다. 기독교는 필리핀 사회에 많은 일을 했으며 오늘날 필리핀 사람들의 72%가 아시아에서 단지 명목상 그리스도인 국가로 만든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스페인의 필립 2세에 의해 식민정책의 주요목적으로 신앙을 전파 하게 하여 교회, 병원, 학교들을 세웠으며 원주민 성직자들을 훈련시 켰다. 처음 필리핀 감독 조르게 바르린(Jorge Barlin)이 생겨난 후로 1905년까지 주교감독이 생기지 않았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로 부터 북쪽으로 퍼질 때 가톨릭이 이슬람의 전진을 막는 역할을 했다.

비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수년 동안 산속으로 쫓겨난 일백만 정도 의 부족들과 이방인들이 있다. 또한 민다나오(Mindanao) 남쪽섬에 주로 모여 사는 모로스(Moros)라 불리는 2백만의 모슬렘교도들이 있 다. 마닐라에 30만의 중국인들이 있으며 주요 도시들 가운데 주로 종 교적으로 불교인, 문화적으로 유교인들이 있다. 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가 아글리파안 교 회(Aglipayan Church)교회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 지도자 그레고리 오 아글리피아(Gregorio Aglipay)가 로마에 반대하여 독립 국가적인 가톨릭 교회를 설립했는데 1902년에 형성되었다. 수년간 필리핀 독립 교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자유진영과 보수진영 사이의 불화로 인해 교회에서의 분열을 가져왔다. 1948년 이래로 필리핀 독립 교회 의 세 감독들이 미국인 대주교의 손에 성별식을 받았을 때 두 교파 가 협력하여 일했다. 케손시에 있는 성 안드루 신학교(St.Andrew's Theological Seminary)가 지금 연합기구이며 두 교파 간치 성직자들 을 훈련시키고 있다. 1961년 이후로 그들 사이에 친밀한 교섭이 있었 다. 필리핀 독립 교회는 150만 이상의 회원들을 가지고 있으며, 수십 개의 교구안에 약 40명의 감독들을 가지고 있다.

2. 개신교 선교

미국으로부터 개신교 선교협회들이 쇄도하여 들어왔다. 그 첫번째 가 미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였다. 장로교 개 척선교사는 1899년 4월에 도착한 제임스 로저스 박사(Dr. James B.Rodgers)였다. 두마케티시에 있는 유명한 실리만 대학교(Silliman University in Cumaguete city)는 1901년에 장로교인에 의해 창설되 었다. 처음부터 장로교회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조장했다. 1907년에 그들은 마닐라에 연합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를 세우 기 위해 감리교인들과 손을 잡았다. 1992년에 그들은 연합복음주의교 회(United Evangelical Church)를 형성하기 위해 회중교인들과 연합 형제회들과 통합했다. 1947년에 교회와 선교가 통합했으며 그 후 선 교사들은 형제의 일꾼들로서 교회에서 봉사했다. 1948년 이후는 장로 교인들의 일이 필리핀 연합교회를(United Church of Chirst in the Philippines)를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왔다. 지난 10년 동안 우호적인 일꾼들의 수가 감소했다. 대략 1/3이 교회일에 머물렀고 나머지는 의 료와 교육과 행정 일에 머물렀다.

필리핀에 들어간 두번째 선교회는 감리교 성공회(Methodist Episcopal Church)였다. 감독 제임스 써번(Bishop James M. Thoburn)은 1899년에 마닐라를 방문하여 필리핀 섬들에서 사역을 의 논했다. 처음 선교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초기의 회심자인 니콜라스 자모라 목사가 일을 수행한다. 처음 선교사들은 1900년 2월에 마닐라에 도착 한 WFMS에 소속한 5명의 여자들이었다. 한 달 후 토마스 마틴 목사가 도착했고 이어서 후에 감독이 된 호머 스텐츠(Dr.Homer C.Stuntz)박사가 일을 수행했다. 여성들을 위한 첫 성경학교가 위니 프 레드스폴딩 양(Miss Winifred Spaulding)에 의해 열렸다. 첫선교 회의는 1905년에 조직되었고 1908년에 정기회의를 가졌다. 감리교 성 공회는 세 번(1905, 1909, 1933년)이나 갈라졌다. 첫 필리핀 감독이 1944년에 임명되었다. 오늘날 감리교회는 5개 연회로 조직되었고 모 든 주요 직위들은 필리핀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선교사들은 협 력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1952년까지 필리핀 연합교회의 문제로 감리교회의 사역이 북루손섬에 한정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교회와 선교 일이 민다나오까지 확대되었다.

미국 침례교(American Baptists)는 1900년에 현지에 도착하여 파나 니(Panay)와 네그로스(Negros)섬들에 노력을 집중했다. 에릭 룬트박 사(Dr.Eric Lund), 스위스 침례교 선교사는 미국 침례교 외국인선교 사협회의 처음 대표자였다. 그와 그의 동료 브라우리오 마니칸 (Braulio Manican)은 1912년 파나이어와 비사얀어 성경번역을 마쳤 다. 첫 선교 병원이 안드루 홀 박사(Dr. Andrew Hall)에 의해일루일 루(Iloilo)에서 열렸다. 1905년 미스 안나 쟌슨(Miss Anna Johnson)은 침례교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웠다. 필리핀 침례교회 협의회는 1935년 에 형성되었는데 세례 교인 3만을 가진 교회로 300여 교회가 있다. 다음은 1901년에 생긴 그리스도의 제자교회(The Disciples of Christ)가 있다. 그들은 마닐라를 피하여 북 루손으로 갔으며 라오악 (Laoag)에 본부를 세웠다. 1901년과 1954년 사이에 이 선교회의 70명 의 선교사들이 이 섬에서 사역했다. 1943년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 음주의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연합형제회(United Brethren)와 통합했 다. 이들은 후에 필리핀 연합교회가 1948년에 조직될 때 가장 큰 연 합회원이 된 교회이기도 하다.

1902년에 외국선교를 위한 미국인 이사회는 일치에 의해 민다나오 남쪽섬으로 할당되었다. 그 당시 50%가 명목상 가톨릭교도였고 30% 가 모슬렘교도였으며 나머지는 이방인이었다.

개척 선교사인 블랙 목사 부부(Rev.and Mrs.R.F.Black)는 다바오 (Davao)에 위치했다. 회중교회는 연합복음주의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1929년에 장로교회와 연합형제교회와 통합했다. 1948년에 새로 형성 된 필리핀 연합교회의 일부가 되었다.

미국성공회(Protestant Episcopal Mission)는 1902년에 일을 시작했 다. 이들은 항상 마닐라에 있는 영미 사회에 중요한 사역을 계속해 왔다. 또한 루손 산간지역의 이고롯쪽(Igorots)과 남쪽 민다나오의 원 주민들을 중심으로 선교를 펼쳤다. 성 안드루 신학교와 트리니티 대 학이 필리핀 독립교회와 지금 손을 잡고 일하고 있다. 필리핀 성공회 는 거의 6만명에 이르는 세례교인들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선교연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은 1902년에 민 다나오 남부섬에서 일했으며 여러 달 후에 선교사가 콜레라로 죽자 일을 보류하기도 했다. 수년 후인 1908년에 일을 시작하여 2커플을 얻었고 1941년에는 30명의 사역자를 얻었고 1947년에는 필리핀 기독 교선교연맹이 독립하게 되었다. 1969년에는 558명의 회원들을 얻었 다. 세례교인은 2만을 확보했다. 여러 수준에서 기독교인 훈련을 하 는 4개의 성경학교를 운영했으며 평신도 지도자들을 훈련시켰다. 2백 만장 이상의 복문서를 정기적으로 찍어내는 연합출판사를 만들었다. 또한 라디오 방송도 민다나오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사역중 하 나이다. 1958년에 시작된 좋은 소식시간(Good News Time)은 22주간 방송으로 확대되었고 그 중에 4개의 상업방송과 하나의 교회와 관계 된 방송을 가지고 있다.

제칠일 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는 1910년에 필리핀에서 선교를 시작하였고 여러 곳에 강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174개의 국 민학교, 20개의 고등학교, 2개 대학과 6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다. 교 회 개척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125,000명의 회 원을 모았고 1,165개 정도의 교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는 미국에서 회심하여 미 국 성경학교에서 훈련받았던 필리핀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1930년에 필 리핀에 돌아와 하나님의 성회 교회를 세웠다. 오늘날 이들 중 몇몇은 훌륭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하나님의 성회는 복음 전도와 교회개척에 열심이다. 오늘까지 각 지역에 6개의 성경학교를 세웠고 1964년에 극동신학교(Far East School of Theology)를 마닐 라에 세웠다. 성경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연장교육을 시키려는 목 적이었다. 현재 425교회에 5만의 세례교인을 확보했으며 700명의 자 국인 사역자들과 45명의 선교사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연합그리스도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 UCCP)는 1948년에 연합교회를 형성하기 위해 세 개의 교파가 통합 을 했다. 이 교파들은 연합복음주의교회(장로교회와 회중교회 : United Evangelical Church)복음주의교회(연합형제교회와 그리스도의 제자교회 : Evangelical Church), 필리핀 감리교회(독립교회 : Philippine Methodist Church)였다. 다섯 개의 미국인 교파들이 연합 교회와 협력했다(그리스도의 제자교회, 연합장로교회, 연합감리교회, 개혁교회, 연합그리스도교회). 이들 교회에서 연합교회에 70여명의 선 교 사역자들을 할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선교부는 교육, 의료, 행 정사역에도 해마다 협력을 해왔다. 해마다 4-5%의 성장률을 가지고 도 엽합교회는 1,400명의 모든 전도자들에게 신학교 훈련사역을 후원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400명만이 목사로 임명되었다. 연합그리스도 교회는 160.000명의 세례교인을 가진 분명히 필리핀에서 가장 큰 개 신교회가 되었다. 연합교회는 성경학교, 학원, 중소 대학, 간호학교, 두 신학교와 실리만 대학 등 20개 이상의 학교를 세웠다.

선교현장에서 그렇게 내놓고 자랑할 만한 기독교 대학이 별로 없 다. 1907년에 장로교인에 의해 세워진 두마케티시(Dumaguete)에 있 는 실리만 대학(Silliman University)교는 필리핀에서 내놓을 만한 대 학이다. 207명의 교수진과 3,500명의 등록학생들을 가지고 있다. 실리 만 대학은 현재 연합그리스도교회와 관계를 갖고 있는 에큐메니칼에 속한 대학교이다. 필리핀중앙대학(Centeral Philippine University)은 미국 침례교회와 관계가 있는데 1905년에 일루일루(Iloilo)에서 시작 되었다. 1953년에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받은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으 로 10개의 중소 대학교로 구성되었으며 한 개의 신학교를 가지고 있 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선교 단체들이 일어났다. 이 선교단체들은 미개한 부족들에게 더 많은 선교를 집중하고 있는 선교단체들이다. 남침례교선교회는 1948년에 마닐라에 있는 전중국선교사들로 말미암 아 시작되었다. 빠르게 성장하여 북쪽에 루손섬과 남쪽에 민다나오섬 과 중앙에 시부섬에 현재 1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이미 145 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그중 130개의 교회가 자립하고 있다. 세례교인 이 13,000명에 이르고 있다.

해외선교사협의회(Over Missionary Fellowship)는 1952년에 민도 로섬(Mindoro)에서 선교를 시작했으며 그 당시까지 거주하는 개신교 선교사가 하나도 었었다. 오늘날 선교사의 정반이 부족들이 사는 산 간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 중에 약 30,000명에 이르는 망얀 (Mangyan)지역에 사는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6개의 주요 부족들에 게 선교를 하고 있다. 문서선교를 통하여 필리핀 교회들에게 큰 공헌 을 하고 있는 선교 단체이다.

위클리프 성경번역(Wycliffe Bible Translators)선교회는 피트만 박 사(Dr. Richard Pittman)의 인솔로 22명의 성경번역자들이 1953년에 필리핀에서 도착함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에는 150명의 선교사들이 42부족들 가운데서 일했다. 성경의 부분들이 23개의 언어로 번역 되 었다. 이방인 부족들도 관심을 가졌으며 모슬렘족에게까지 사역이 확 대되었다. 번역자들은 직접전도를 하지 않았으나 현재 36부족 가운데 신앙인들이 생겼다.

또한 필리핀의 원시 부족들 가운데 일하고 있는 새부족선교회( New Tribes Mission)는 현재 6부족에 5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3. 오늘의 민속신앙

1521년 마젤란이 와서 로마 가톨릭을 전파하지 전 필리핀에 존재 했던 종교는 전령숭배신앙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필 리핀의 역사는 거의 알 길이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 그들의 종교는 영적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1521년 마젤란이 시부에 도착한 일주일 후 시부의 왕과 여왕과 그 백성 전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은 필리핀 사람의 전통과 민속을 로마 가톨릭과 대치되지 않는다고 믿어 그대로 받아들였다. 스페인 신부들은 세례를 베풀 때 일부일처의 결혼과 과거의 죄로부터 회개, 세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신앙을 조건으로 했으며, 이 외에도 아베마리아, 십계명, 주기도문 등의 제도를 덧붙였다. 교회는 로마 가톨릭 종교를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곳이 되었고 반면에 가정은 엥 정령숭배의 종 료를 가르치는 곳이 되었다. 정령신앙은 실제적인 매일의 생활 즉 농사, 사냥 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은 궁극적 관심 즉 신에 더욱 관 심을 가지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식민지화는 성공했으나 로마가 톨릭 신부들은 현재의 종교가 실제의 로마 가톨릭이 아닌 혼합된 종 교 즉 민속 가톨릭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민속 가톨릭은 로마 가톨릭 의 모습을 가진 정령신앙일 뿐이다. 민속종교는 같은 사람 안에 일치하지 않는 두 개의 종교를 가진 종교이다. 로마 가톨릭 은 궁극적 관심을 다루고 정령신앙은 매일의 생활의 관심을 다루고 있어 이 둘은 서로 다른 삶의 영역을 가진 생 각과 행동이 분리된 결과를 가져왔다. 가톨릭은 구원을 위해 세계를 가프쳤고 필리핀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세례를 받는 명목상의 신자가 되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중심에 정령신앙이 남아 있다.

그러나 관심의 분야에 있어 차이점이 있으나 로마 가톨릭과 정령 신앙이 겹치는 분야가 잇다-예배와 축복을 위해 종교적인 우상이나 물건들을 사용, 성수 사용과 성인들에게 기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에 정령신앙의 부적과 같은 능력을 부여, 종려주일에 축복이 부여된 십자가 형상으로 만든 종려 잎사귀들이 집 문위에 놓여질 때 악령들 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푸니와 버 스, 택시 등에 그들의 여행을 지켜준다는 신앙을 가진 동정녀 마리아 나 싼토 니뇨(Santo Nino)의 형상의 제단을 가지고 있다. 시부의 뀌 아포의 검은 나사렛사람(The Black Nazarene of Quiapo)과 싼토니뇨 (Santo Nino)는 병든 자를 고치고 악한 영들에게서 지킬 수 있는 능 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종교적 상들이다. 싼토 니뇨의 집인 시부시 에서 싼토 니뇨의 호의와 관심을 얻기 위해 늙은 여인들이 피트 쎄 뇨(Pit Senor)라는 춤을 춘다. 이 여인들은 고객들이 사준 초들을 가 지고 교회 앞에서 춤을 춘다. 이 초들은 싼토 니뇨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1월에 전국에서 모인 수천명 의 사람들이 시부의 싼토 니뇨를 기념하여 춤을 춘다. 겹치는 또 한 가지는 연옥설로서 사람의 영혼이 죽은 후에 계속해 서 나타난다는 정령신앙과 일치한다. 그 예로 위령의 날(All Soul's Day)에 죽은 자의 무덤에 음식을 놓아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무 덤에서 죽은 조상들과 함께 하루종일 또는 온 밤을 지내기도 한다.


Ⅰ. 필리핀 선교의 어제

1. 개론

필리핀은 대소 7,000여개에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로서 이름이 붙은 섬만해도 2,700여개를 헤아린다. 국토의 면적은 남한의 3배 크 기의 국가이다. 북부의 루손섬이 가장 크고 남부의 민다나오섬이 그 다음으로 크다. 필리핀은 전체적으로 화산구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화산만 해도 50개가 넘는다. 또한 동서 지각의 접점이 단층을 이루는 불안정한 지반 때문에 해마다 크고 작은 지진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다. 1990년 7월에 박이오에서 일어난 진도 8.3의 지진은 1,000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1991년 6월의 피나투보 화산 폭발은 600여명이 화 산 불덩어리에 타죽고 그 후에 400여명의 많은 어린이가 굶어 죽었 다. 그리고 그해 11월 4일에 있었던 홍수로 7,000여명의 사람들이 죽 는 큰 수해가 있었다.

필리핀에는 원주민 네그리토족의 문화와 스페인 식민통치 시대의 유럽문화가 혼합되어서 독특한 필리핀 문화를 꽃피우고 있 다.(Malayo-Polynesian). 또한 현대의 최첨단 문화와 석기시대의 원 시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필리핀 의 관광시즌은 12월-5월이 적기로 평균 27℃로 기온차가 작고 여름 옷 차림으로 와야하며 선그라스와 수영복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비 행기 삼은 400달러가 조금 더든다. 시차는 한국보다 한 시간이 늦으 며, 축제일은 설날(1/1), 성고난주간(3-4월), 근로의 날(5/1), 용사의 날(5/6), 독립기념일(6/12), 모든 성자의 날(11/1), 국민영웅의 날 (11/20), 성탄(12/25), 리잘 기념일(12/30)이 있고 이 밖에 지방마다 종교적인 축제일이 많다. 화폐단위는 페소(Peso)이며, 한화로 1페소는 약 30원으로 계산하면 된다. 팁은 P10-20이면 적당하다. 광광지로는 필리핀 전통과 역사를 볼 수 있는 나용필리피노, 카톨릭문화를 볼 수 있는 성어거스틴교회, 스페인 당시으 산티에고 요새, 리잘공원 그리 고 우리나라의 청와대 같은 말라카낭궁의 신발 3,000켤레와 옷들, 팍 상한 폭포는 배가 꺼꾸로 올라가는 스릴도 있고 경치도 볼 만한 곳 이다.

현재 인구는 66,659,000명이며(세계 16위), 기후는 열대성 기후이며, 건기와 우기로 나뉘며 연간 30여회의 태풍이 발생하고 지나간다. 부 족은 100여 종족이며, 87개의 언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영어는 하나 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중국인들이 60만명 정도 있는데 이들이 경 제의 80%을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에 있는 중국인에게 선교하는 길 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시길 바란다. 그들과 함께 중국 본토 를 선교하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은 600달러이며, 주 로 1차 생산품을 수출하고, 2차 생산품을 수입하는 전형적인 빈국의 형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으 90%가 그리스도인인데 이중 80%는 가 톨릭교도이며, 10%는 개신교이다. 민다나오와 슬루섬은 대부분 이슬 람교인이며 이들은 무장하여 독립투쟁을 벌리고 있다.

2. 필리핀의 약사

필리핀은 마젤란의 세계일주 동안에 발견되어 사마르도에 상륙한 것을 계기로 필리핀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젤란이 시 부에 상륙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시작하였다. 필리핀이라는 국명은 마젤란 당시의 스페인 국왕이었던 필립 2세를 기념하기 위하 여 붙여졌다. 필리핀의 역사는 전 스페인 시대, 스페인 식민지 시대, 미국식민지 시대 그리고 현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1) 전 스페인 통치 시대(Pre-Spanish Period)
스페인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전의 필리핀은 섬나라의 지역 적인 특성 때문에 선사시대에 해당한다. 거의 어업과 사냥에 의한 생활이 이루어졌다. 농경은 루죵섬에서 벼종사가 지어졌고, 그 외 의 지역들은 거의 산족들로 씨족사회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부족 사회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2) 스페인 식민지 시대(The Spanish Period)
1521년 3월 16일에 마젤란 함대에 의하여 발견된 필리핀 섬은 1521년 3월 31일에 마젤란이 시부섬에 상륙하면서 필리핀의 근대 사는 시작된다. 1565년 스페인은 마젤란 함대를 통하여 시부에 수 도를 설정하고 1571년에 루존섬을 발견하게 되어 스레인의 통치를 받다가 1898년 미군에 의해 독립을 이룰 때까지 스페인은 333년간 을 필리핀을 통치한다. 19세기 말부터 필리핀의 대스페인 저항운동 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1897년 아귀날로 장군의 독립선언은 대표적 이다. 1898년 미, 스페인의 전쟁시 아귀날도 장군은 미국의 협조를 얻어서 홍콩으로부터 필리핀에 상륙하여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하 였으나 동년 12월 미 스페인의 강화조약으로 스페인은 2,000만불을 대가로 받고 필리핀을 미국에 할양하였으며 이로부터 미국의 통치 가 시작되었다.

3) 미국 식민지 시대(The Period of U.S. Influence)
미국은 필리핀의 궁극적인 독립을 목표로 하고, 점진적인 자치활 동을 허용하였으며, 1916년 양원제를 확립, 참정의 문화를 개방하 고, 1934년 11월 15일 퀴죤 대통령, 오스메나 부통령의 연방정부가 성립됨에 따라 미국의 통치는 총독제로부터 고등변무관제로 바뀌 었다. 미국은 필리핀의 겨어제를 크게 활성화시켰고 특히 수출입 분야에서 필리핀은 서서히 구거제적인 두각을 나타내였다. 최근 20 년 전까지만 해도 필리핀의 경제는 국제사회에서 손꼽히는 부를 축적했었다. 특히 근대사에 막사이사이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필리 핀을 크게 발전시킨 대통령이었다. 미국은 그들의 통치 기간에도 필리핀의 자치를 인정하여 필리핀은 미국령이면서도 독자적인 정 부의 형태를 이루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공격으로 점령되었 으며 1946년까지 일본은 필리핀을 지배하였다.

4) 근대와 현대
제2차 세계대전중 1943년 10월 호세 피 라우엘을 수반으로 하는 괴뢰정부가 들어섰으나 종전과 함께 소멸되고 1946년 7월 4일 미 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을 하였다. 독립후 초대 로하스정권 (1946.7-50.1)과 2대 퀴리노 정권(1950-54.1)은 미국으로부터 원조 에 힘입어 2차 대전의 전화회복에 힘썼으며, 미국과의 관계도 공고 히 하였다. 53년 3대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영도하에 정치근대화에 큰 성과를 보였으며, 54년 9월에 SEATO에 가입하였다. 57년 3월 비행기 충돌로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급서함으로 가시아가 4대 대 통령에 취임하였다. 61년 12월에 출범한 마카파칼 5대 대통령은 여 야의 백중으로 의안처리가 지연되고 겨어제발전이 크게 저해됨으 로 많은 어려움이 대내외적으로 있었다. 1965년 12월 6대 마르코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66년 2월 말레지아와 북교하였고 동년 6월에 월남 파병을 하였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근 20여년을 장기통치하였 다. 그는 근세사의 법률과 민주화의 대업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높 이 평가를 받으면서도, 개인 장기집권으로 오는 부정부패 부조리로 인하여 필리핀에 악영향을 끼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CPP 및 NPA - 필리핀 공산당(CPP : 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 및 그 산하 군사조직체인 신인민군(New People's Army)은 69년 초에 결성되었다. NPA는 10,000명 정도이며, 루존 섬 중부 및 북부지방 사말섬, 시부섬, 레이테섬, 일로일로섬 및 민 다나오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들어 움직이기 시작 하는 필리핀의 공산주의 운동은 필리핀을 외세로부터 완전독립시 키겠다는 그들의 주장에 따라 상당수의 지식인과 국민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쿠테타는 필리핀을 더욱 약하게 만들고 있다.

3. 필리핀 성결교회의 역사

기독교한성결교회는 1986년에 전부터 필리핀에 유학차 와서 있다 가 선교사로 일하고 있던 김상원 목사를 교단 선교사로 영입하여 파 송함으로 그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3 시간 가량 떨어진 우르다네타 지역의 독립교회 15개를 모아 Phil-Kor Evangelical Church Inc.를 만들었으나 후에 얼마되지 않아 부족한 후원을 이유로 모두 흩어지고 그 단체도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마닐라 동쪽 외곽에 쿠팡교회를 개척하였 는데 청주서문교회의 후원으로 89년에 건축을 완료했다. 1988년 11월에는 김광수, 송평구 두 선교사 가족이 다시 파송되어 마닐라에 정착하면서 단체의 이름을 Philippine Evangelical Holi-ness Church로 개칭했으며 1991년 1월에 필리핀 정부의 정식인 가를 얻게 되었다. 이 나라의 법에 따라 이사진이 구성되었는데 그 중에는 은행장인 비올리쿠르즈 자매와 농부의 아내이면서 신학생을 40여명이나 후원하는 마티스어거스틴 자매 그리고 대학교수인 사무 엘 나티비다드 형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 동안 이 단체의 이름으로 쿠바오 교회, 람발란 교회, 루팡팔이코 교회, 파식 교회 등을 개척했 다. 이들 중에 람발란 교회는 91년 12월에 교회 건축을 완료했으며 92년 2월에 헌당식을 하였다. 현재 선교부내에 함께 일하는 현지인 전도사가 5명, 교인이 모두 450명이 있으며 케스트룸과 루팡팡아코 교회의 무료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다. 1991년 10월에는 이창용 선교사 가족이 중부 시부섬에 파송되었고 평신도 의료선교 단체인 필립선교회와 협력하여 일하게 되었다. 그리 고 같은 해 12월에는 양한갑 선교사 가족이 북쪽 산간지역 선교를 위하여 파송되어 사역을 준비하는 중에 있다. 그는 앞으로 Mou-ntain Christian Center를 운영하며 제자훈련, 도서관 운영, 농 장 운영, 음악교육, 교회개척 등의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4. 가톨릭과 개신교의 선교

1) 가톨릭
1521년 3월 16일 마젤란 함대에 의하여 필리핀은 발견되었다. 다 섯 척의 배에는 270명의 선원이 있었다. 그리고 마젤란 함대의 선 원들은 1521년 3월31일에 첫미사를 시부에서 드렸다. 그후 어거스 킨 구룹의 신부들이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 후 프란시스 그룹은 1578년 6월 24일에 마닐라에 도착하였고, 1581년 9월 17일에 제수 잇교단이 들어왔으며, 그 후 1587년 6월 21일에 도미니칸들이 들어 와서 필리핀은 유일하게 동양에서 가톨릭국가가 되었다. 가톨릭 단 체로는 AMRSP(Association of Major Religious Superiors of the Philli-ppines)가 있는데 2,500명의 신부와 7,000명의 수녀로 구성되 어 있다. 82년 1월 교황 바오로 2세가 필리핀을 방문하였으며, 82 년 후반기부터 제임스 신 추기경을 중심으로 정부의 부정부패, 근 대의 권력남용, 인권침해 등을 들어 공격함으로 정부와 관계가 원 만치 못하다.

2) 개신교
1989년 2월 15일 미국전함이 하바나 항구에 들어오고, 1898년 5 월 1일에 마닐라만에서 스에인과의 싸움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 스페인의 필리핀에 대한 333년간의 식민지통치 시대는 끝나게 되 었다. 1899년 4월 21일에개신교 장로교단 선교사 제임스 비. 로저 스가 필리핀에 선교를 시작하였고, 감리교는 1900년에 그리고 북침 례교단도 같은 해에 선교를 시작하였다. 지금의 개신교는 각처에서 급성장을 하고 있으며, 필리핀의 개신교 신자는 150만명 정도로 추 산된다. 자장 큰 교파는 장로교이며 회중교회, 연합형제회, 그리스 도 제자회, 감리교 등이 있다.

3) 이글레시아 교회
필리핀에서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녹색 지붕의 큰 교회당이 큰 도시마다 있음을 볼 수 있다.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이 단체는 예 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본부에서 작성된 설교가 각곳으로 배부되 어 동시에 같은 내용의 메세지가 전달되고 있다. 필리핀에는 약 50 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거의 저소득층이다. 직장과 연결되어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철저한 11조를 바친다. 이 단체 는 1914년 펠릭스 마날로(Felix Manalo)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 는 삼위일체론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은 철저히 성경적이고 마닐로 자신에게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교는 대단 히 민족적이며, 반가톨릭적이고, 회원들을 거의 군사적으로 통제하 고 있다. 또다른 이교집단은 그리스도의 성교회 십자군(The crusaders of the Divine Church) 으로 지난 15년간 10만명의 개정 자를 얻었다. 필리핀에서 가장 큰 교회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이름의 교회인데(Jesus is Lord), 100,000명이 모이고, 두번째 큰 교회는 <생명의 빵>(Bread of Life)이라는 교회로서 50.000명이 모이며 60 개의 지교회를 세웠으며, 이 교회는 극장에서 예배를 드린다. 세번 째 큰 교회는 <세계를 위한 말씀> 교회로서(Word for World) 신 자는 30,000명이 모인다. 이직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부족의 언어 가 94개 있으며 65만명 정도의 중국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Ⅱ. 오늘의 활동상황

1. <남발란> 교회

언어 훈련을 하면서 만난 사무엘 나티비다드는 김광수 목사에게 필리핀 언어인 따갈록을 가프쳐 주었다. 수업 도중 소개한 복음을 그 는 자신의 주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였고, 계속 교제와 양육을 통하여 그는 신앙이 자랐으며, 고난주간에 십자가에 실제로 못박히고 달려있는 행사가 필리핀에서는 유명한데 사무엘의 인도로 가족과 함 께 보러 갔다. 그곳에 갔을 때, 자기 집이 가깝다고 하면서 잠시 들 리자고 하여 그의 집에 갔더니 그의 부모가 환영을 하여 주었다. 그 의 어머니는 이렇게 요청하였다. "선교사님! 저의 소원은 제가 죽기 전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 전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였었지요. 그리고 저희가 땅 을 하나님께 헌납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가 땅을 팔아먹어서 교인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작년 4월부터 매주 금요일에 가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1990년 6월 22일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그때 22명이 모였는데 이제는 170명이 모이고 있다. 신광성결교회의(김창배 목사) 1,500만원의 헌금과, 문화촌성결교회 의(정옥현 목사) 1,000만원의 헌금 그리고 천호동성결교회의(안창건목 사) 500만원과 남서울 중앙교회의 500만원의 헌금이 모아져서 3,500 만원을 갖고 55평 정도의 크기의 교회당을 건축중에 있는데 약 80% 가 건축이 되었다. 1992년 2월 둘째 주에 헌당예배를 드릴 것이다. 그들은 건축비의 30%를 담당할 것이다.

2. <파야다스> 교회

파야다스 교회는 마닐라에 있는 퀴죤시의 전용 쓰레기 하차장으로 그곳에서 사역을 준비하고 있던 장로교 여자 선교사가 말라리아에 걸려서 본국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의 충고에 의하여 떠나게 되 었다. 그 선교사는 부탁하길 "하나님과 현지인들에게 선교원을 세우 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김 목사님이 제대신 약속을 지켜 주세요" 그 래서 같이 그곳에 가보니 그곳은 우리나라의 난지도와 같은 쓰레기 하차장에서 폐품을 줏어서 먹고 살고 있었다. 갈 때마다 마음에 연민 의 정이 일어났고 기도 중에 이곳에 교회를개척하기로 결정했다. 오 전에는 쿠바오 교회에서 예배 인도를 하여야 했기 때문에 오후에 와 서 전도된 몇명의 신자와 같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개척예배일 :1990년 7월 29일). 신자 중의 한 명이 부탁하기를 "목사님! 이곳의 아이들이 하루에 한끼나 두끼 정도의 식사를 하는데 어려우시드라도 어린이를 위한 급식소를 열어 주세요." "우리 기도하여 봅시다." 김선 교사의 대답은 예 대신 단순한 응답이었다. 그때 기도하면서 갈등을 하였다. 김선교사는 두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다. 한 가지는 "선교사로 왔지 사회사업가로 온 것이 아니잖아"와 실제로 급식소를 운영하려 면 자금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이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모습의 성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생각이 났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여 자신은 굶으시면서 자식에게 먹여주시던 모습, 그리고 그때의 소원은 밥좀 실컨 먹어 보 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코쟁이 선교사들이 유치원을 통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던 일, 죠시 뮬러가 고아원을 할 때 하나님이 공급하시던 강증문을 읽었을 때 감동받았던 일들이 결국 급식소를 열게 하였다.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시라 면 필요한 장비 살 돈과 쌀 살 돈을 주세요"라고 기도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바로 응답을 주셨다. 이천성결교회의 이유덕 전도사가 그 해 전도왕으로 상을 받아서 해외여행을 하시게 되었는데 친분이 있 기 때문에 그에게로 오셨다. 이 전도사님은 오실 때 장비를 사고도 남을 헌금을 하여 주셔서 무료 어린이 급식소를 열였다. 50여명으로 시작한 급식소는 이제 300여명이 급식을 받고 있으며 이중 100여명 이 예배에 참석한다. 이 모든 경비는 우리 주님이 친히 귀한 신앙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공급하신다.

3. <쿠바오> 교회

쿠바오 주택가에 사무실겸 손님 접대용으로 쓰일 방과 예배드릴 수 있는 홀이 있는 주택을 얻게 되었다. 그 홀에서 김광수 선교사 가 족과 필리핀인 형제들이 성경공부와 기도회로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에 의하여 1990년 7월 6일에 교회가 개 척되어 잘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장년이 70여명으로 주일학교 어린 이가 100여명으로 늘었다. 이곳에서 제자훈련을 토요일 두 팀 주일에 두 팀을 시키고 있는데, 기간은 6개월이다. 그 후에는 이들이 한명을 제자를 삼아 제자훈련을 시킬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그중의 한명이 독립 가톨릭 교회의 신부의 아들인데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신학교에 들어갔고 신부인 아버지가 그의 학비를 대주고 계시다. 한 자매는 직장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태국에 가서 대학원 코스를 마칠 수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제자훈련 도중 깨달은 주님의 크신 사랑 에 감격하여 신학대학에 가기로 하였다. 이 교회는 전도, 새신장아육 (격주로 새신자 양육 서신을 보내고 있음)그리고 제자훈련을 통하여 성장시키고 있다. 성경읽기 운동과 금요철야기도회를(10:00-4:00) 통 하여 이들의 신앙은 매우 뜨겁다.

4. <쿠팡서문> 성결교회

쿠팡성결교회는 김상원 목사가 개척한 교회로서 서문성결교회(여진 헌 목사)의 지원을 받아 건물이 지어졌고, 잎금 사역하고 있는 바고 전도사가 성실히 일하고 있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 교회는 송 평구 선교사의 치리를 받고 있으며 성찬식과 세례식을 인도 하였다. 이 교회는 지붕과 바닥을 조금 수리할 필요가 있으며, 교인 모두가 하나가 되어 전도하는 일에 힘쓰고 있어서 어찌나 감사한지 주님께 영광만 돌린다.

5. <파식> 성결교회

송평구 목사가 개척한 파식성결교회(1990년 8월 26일)는 중산층의 사람들로 전도하기가 매우 어려운 대상들이지만 꾸준히 전도하여 잘 성장하고 있다. 교회 뒤에 있는 시티랜드 주거지는 380여 세대가 살 고있는 황금어장 아파트 단지이고 교회 앞에는 울트라 실내체육관이 있어서 파식 교회 신자들은 노방전도를 가끔 한다. 이 교회는 사모의 김치선교로 이웃이 사귀어지면 개인전도하는 방법으로 하나 둘 모아 진 신자들이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서 집집마다 매일 집어 넣 는다. 유명한 농구선수가 주님을 영접하고 생활이 변화되고 교회 봉 사도 많이 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농구부를 만들어 어린이 사역을 그는 돕고 있다. 학생들을 위하여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독교 비데오 필림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곳의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제자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하나님 모든 영광은 주님만이 받으소서.

6. 게스트 하우스

게스트 하우스를 열게 되었다. 선교여행 오시는 목사님들과 집사님 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귀하신 분들이요 선교의 동역자들이시기 때문 에 게스트 하우스를 열었다. 호텔에 계시면 경비가 많이 나가고 김치 와 고추장이 없기 때문에 불편을 느끼시기 때문이다. 이곳은 감사헌 금으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Ⅲ. 내일의 선교계획

1. 파야다스 선교원

파야다스 교회를 통해 많은 어린이가 급식을 받고있다. 그러나 무 언가 빠진 것이 있다. 그래서 어린이선교원을 열 계획이다. 글을 읽 는 법을 가르치고, 글을 쓰도록 하며, 셈을 가르치며, 예의범절과 성 경을 가르침으로 휼륭한 사회인이 되도록 돕는다. 독지가가 나오면 정부 보고는 땅을 제공하라고 하고 국민학교 건물을 짓고 싶다. 이곳 의 7,000명의 어린이가 국민학교가 없으나까 그냥 놀고 있다. 그 옆 에 유치원과 급식소와 교회를 하면 사회사업을 통한 빛과 소금의 역 할을 함으로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도 그 동안 선교사들에게 받아먹기만 하던 사랑의 빛을 갚는 길이 될 것이다.

2. 람발란 기도원

지금 있는 교회 옆의 부지를 좀더 사서 필리핀 성결교단의 기도원 으로 열고자 한다. 필리핀에 주님으 계절이 오려면 기도운동이 뒤따 라야 한다.

3. 지교회 개척

쿠바오 교회는 상업 중심가의 지역에 있으며, 지금의 장소는 매우 비좁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아레나타 실내 체육관을 빌려서 예배 를 드리고자 한다. 선교사를 한 명 둘로스나 아가페 선교선에 파송하 며, 퀴아포에 지교회를 세우고자 한다.

4. 신학교 세우는 일

앞으로 필리핀 선교를 위하여 서울신대와 같이 이곳에 필리핀 신 학교를 세우길 원하고 있다. 필리핀은 중국계 문화와 스페인의 가톨 릭 문화와 서양의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다양한 문화와 영어를 공용 어로 쓰기 때문에 선교사 후보자 훈련시키는 데도 적합하다고 생각 된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이 이 나라에 꼭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카톨릭을 믿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불교신자와 같은 감 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모시지 않고 있으 며, 중생의 체험과 구원의 확신이 없다. 90%가 기독교인이라는데 왜 죄악이 관영하며 범죄가 많은지 이곳이야말로 성결의 삶이 너무나 절실이 필요하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신유의 은사요 병들었을 때 주 님의 은혜로 병이 낫는 것도 신유의 은사이다. 가난하니까 병원에 못 가는 사람다띵이 많은 것을 볼 때 주님께 신유으 은사를 달라고 기 도한다. 이곳에서 너무나 많은 주님의 재림의 증표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 만날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볼 때에 이곳이야 말로 재림의 교리가 꼭 필요한 것이며 큰 영향력이 있다고 믿는다. 자치 자립 자전의 네비우스 선교원리가 한국교회 성장으 한 부분이 된 것 처럼 이곳에서도 적용하여 필리핀인에 의한 자치, 필리핀인의 헌금에 의한 자립 그리고 필리핀성도들에 의한 전도가 이루어지도록 전도와 새신자 양육 그리고 제자훈련에 의한 현지 지도자 만드는 일에 최선 을 다 할 것이다. 신하교를 세우는 데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지금은 협력선교의 시 대이니까 O.M.S.와 협력하여 그들이 산 땅에 건축을 경제적으로 같 이 하는 법과 우리가 땅을 사고 신학교를 열었을 때 O.M.S.의 선교 사를 영입하여 같이 일하는 방법이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5. 현지인 서울신대 대학원 보냄

우리 이사중의 하나이며 대학교와 야간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 치는 사무엘 나티비다드가 우리교단의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교리 적으로 배우며, 한국교회의 전도운동, 기도운동 그리고 새마을운동을 배워서 필리핀에 영적인 각성운동과 필리핀에 잘 사는 운동을 일으 키는 신앙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6. 교회개척 계획

송평구 목사는 민도로섬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하여 이미 오래 전 부터 기도해 오고 있으며, 이창용 목사는 스페인 식민지 당시의 수도 였던 시부에 교회를 세울 것이며, 양한갑 목사는 루죤섬의 북부산악 지역에 부족선교와 아울러 교회를 개척할 것이다. 쿠나오 신자를 5-7 명을 떼어서 퀴아포에 지교회를 세울 것이다.

7. 어떻게 선교에 동참하나?

필리핀은 추수기에 있는 나라이다. 한국은 10명에게 전도하면 3명 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일본은 100명에게 전도하면 1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필리핀은 10명에게 전도하면 7명이 주 예수님을 그들의 구 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가 세계에 어디 또 있나? 집중적으로 기도하여 주십시오! 집중적으로 물질로 헌금하여 주십시오! 한국 돈 100원이면 굶주린 어린이 한 명에게 무료급식을 한끼 할 수 있으며, 10만원이면 전도사 한 명을 전임 사역자로 후원할 수 있으며, 3천만원이면 교회부지를 장만하고 건축을 할 수 있다. 자녀들을 단기 선교사로(일주일)나 장기 선교사로 내보내 선교에 동참토록 합시다.


1. 성    명 : 이 요섭(Leo-Sup  Lee)
2. 교회직분 : 목사
3. 현지체류기간 :  03=2년
4. 선교사일 경우 파송단체 : 기독교 대한 감리회
5. 연 락 처 : Tel=001-63-912-391-0574
7. 주    소 :  P.O.Box. 53.  San Fernando. La Union.  Philippines
8. E-Mail   : iskra@bgo.cyberspace.com.ph

1. 국가명(지역,부족명) : Philippines(북부 루손지역) 2. 주요언어(방언) : Ilocano(90%), Pangasinan(1%), Pampanga(0.3%) 3. 인 구 : 약 9만명 4. 면 적 : 약 10,000헥타르

5. 종교분포 및 상황 : 이곳 San Fernando는 로마 카톨릭이 약 95%를 차지하고 있으며, 필리핀의 대표적인 이단인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트교(IGLESIA NI KRISTO)가 그다음으로 약 3%를, 그리고 무속종교가 명맥을 유지하고있는 가운데, 개신교가 분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6. 현재의 선교적 상황 : 저희 가정이 현재 유일하게 현지에 거주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워낙 상냥하고 친절한 민족이라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은 없지만, 수백년 동안의 카톨릭 영향으로 이들이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더욱이 문선명의 "국제 결혼"사건은 이곳에서" 문선명 = 인신매매"라는 등식을 낳았으며, 나아가 "한국인=문(Mun - ism)"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등식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타 : 필리핀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곳 역시 두 유형, 즉 건기와 우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기는 5월 경부터 시작하여 10월 중순까지 계속되는데, 28일 동안 비가 내리는 8월엔 1,403mm의 강수량을 보이고, 25일동안 비가 내리는 9월엔 1,611mm의 강수량을 보이는데, 연평균 377,5mm의 강수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균 기온은 27.8도이고, 습도는 평균 85.7%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기의 경우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듯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고, 우뢰와 같은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데, 특히 금년의 경우 -세계의 곳곳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엘리뇨의 영향으로 가뭄와 이상기온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필리핀 전체적으로는 그이름이 '복수(plural)'로 되어있는 바에서도 알수 있듯이, 화산과 지진과 태풍이 이곳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전기는 110v와 220v가 공히 다 쓰이고 있으며, visa의 경우는 1년 비자가 가능합니다만, 좀 비싼 편이며 -가격은 저마다 다르다 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민국에서 직접 매 4개월 마다 연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민다니오등 남부의 몇 지역을 제외하곤 말라리아등의 질별의 위험이 없지만, 콜레라와 뎅구열은 이곳에서 주의해야할 질병이 되고 있습니다.

의료시설은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건강하던 저 역시 이곳에서 이루헤아릴 수 없이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특히 시골에 있는사람들의 경우 마닐라나 대도시로 병원을 다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병원을 가면, 언제나 약을 지어주는데, 의사마다 진단과 처방이 달라, 한 질병을 가지고도 수가지의 약을 받기가 다반사입니다. 가급적 건강한 선교, 건강한 체질이 요구된다 할 수 있습니다.

식생활의 경우, 많은 한국 단기선교팀이나, 방문팀들이 한국 음식을 과도하게 가지고 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곳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식수와 같은 몇가지만을 주의하면, 그리 큰 위험은 없습니다. 장기 선교사들의 경우, 지역마다 준비해 와야 할것이 다릅니다. 어느 지역으로 올 것이냐하는 것은 준비물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봅니다. 이상 대략적으로 기술하였습니다만,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다시 이곳 상황에 대해 좀더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아름답고 신비스런 가상공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저희 선교사들이 이방세계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변함없는 기도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KCM Home | 세계선교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