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본 문 : 마태복음 1:16-25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이 날 지나치게 떠들고 야단 법석을 부리는 축하로 주인공을 오히려 욕되게합니다. 성탄절의 [성]자도 가당찮는 술집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하고 그 아래에서 취한 자들의 추태가 연출됩니다. 댄스 홀에서는 밤을 새우며 정욕의 불 붙은 육체들이 맞붙어 돌아갑니다. 곳곳마다 성탄절은 술과 춤과 도박으로 밤을 밝히는 향락의 밤이 되어서 소위 크리스마스 베이비를 대량으로 산출해 내는 넨센스가 자행됩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님의 성탄을 거룩하게 축하하는 의미보다도 카드를 보내고 선물을 교환하는 것쯤으로 압니다. 젊은이들의 즐거움을 돋우는 각종 프로그램으로 변질되고 예수의 이름을 빌어 향락하고 즐기는 시간들로 삼습니다. 메시야가 세상에 오셨다는 뜻은 까마득한 전설 속에 파묻혀 버리고 얼마의 돈을 바치고 잘 준비된 음악등으로 예배하는 것이 성탄절 경배의 모습입니다. 성탄의 소식은 주님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의 소식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의 모습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누가 하늘의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달을 보라]고 하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보고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성탄절의 풍조가 이와 같지 않는가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탄생편에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출생은 전적으로 비밀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며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첫째,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16절)
우리는 3차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살펴 보았습니다. 주님의 족보의 마지막 기록은 앞서 기록한 모든 사람들에게 언급한 것처럼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는 요셉이 아닌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항용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이를 잉태하여 분만한 것은 어머니인데도 어머니가 낳았다 하지 않고 아버지가 낳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핏줄의 계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경우도 마땅히 요셉의 아들로 나셨어야 합니다. 정작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사실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자의 씨이고,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 예언 되셨습니다(창 3:15, 사 7:14). 그래서 그리스도는 요셉에게서 태어 나실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셉은 남자입니다. 다윗의 왕통을 물려 받을 수 없는 여고냐의 자손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요셉에게서 태어 나셨다면 다윗의 왕위에서 제외되셔야 합니다. 마리아는 처녀였고 다윗의 자손인 그리스도가 태어 나시기에 합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와 요셉의 정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게 하셨으며,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 그리스도의 계보의 두 계열을 하나로 결합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결혼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으며 그것이 그리스도와 관계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윗까지의 계보는 한 노선이고, 다윗부터 예수까지는 두 노선입니다. 이 두 노선은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마리아에 의하여 태어나신 예수께 대한 예언들을 참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씨에 관한 예언. 처녀가 아이를 낳으리라는 예언. 아브라함이 모든 민족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씨를 갖게 된다는 예언(창 22:18).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예언과 동일한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예언(창 26:4, 28:14). 유다에게 하신 왕의 지파가 되시리라는 예언(창 49:10). 다윗에게 하신 예언(삼하 7:12-13). 이런 모든 예언들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들의 연결이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을 보면서, 요셉과 마리아와의 결혼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에 의하여 계획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결혼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도 말씀 하시기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하셨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관된, 즉, 구원받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계획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결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축복이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나 행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영적 관계로서 결혼뿐만 아니라 육체의 부부관계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바울은 "혼인을 귀히 여기라(히 13;4)"고 했습니다.

둘째,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알아 보십시다(18-20절).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탄생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자상하게 언급합니다. 우리는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그 동정녀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이 없지않습니다. 물방아의 힘을 알기 위하여 물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는 짓을 한다면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상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앙이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니까 동정녀 숭배사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동정녀를 높이려다 보니 자연히 그 물줄기를 더듬어 올라가 성모 마리아의 청정회태(淸淨懷胎.Immaculate Conception) 라는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청정회태란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라는 여인이 남편 없이 마리아를 깨끗하게 잉태하였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사상은 나아가서 청정회태 뿐만 아니라 죽지 아니 하고 승천했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천주교는 이렇게 마리아승천 교리까지 만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이해하기 위하여 청정회태나 마리아의 승천사상에까지 올라가지 아니해도 좋습니다.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의 청정회태나 승천사상을 부인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써서도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를 이해하고자 하여 단성생식(單性生殖.The Parthenogenesis)이라는 생리학적, 의학적 술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 단성생식이라는 현상이 생리학상. 발생학상 있을 수 있는 현상이므로 예수의 처녀 탄생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과학적인 사실로 동정녀 탄생을 일반화시켜 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해 방법은 성경이 전하려는 메시지와는 전연 맞지 않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그 존재의 특이성을 말하려는 것이지 일반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을 믿는 신자가 아니라 과학도가 되려는 태도입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신 방법입니다. 또한 처녀 탄생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동정녀 탄생을 더 신격화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일반화시켜서도 안됩니다. 동정녀 탄생은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이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필수적으로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첨삭없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셋째, 주의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18-25절).
마태복음보다는 누가복음에 마리아의 회태 사실이 소상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출생은 마리아의 순종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계보에 나오는 네 여인들과는 다릅니다. 그는 순결했고 독특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하여 그리스도를 낳았습니다. 이것은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리아에게는 정혼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장래의 새가정에 대하여 오색 영롱한 청사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꿈 때문에 그녀는 더욱 행복했을 것이고, 정혼한 남자 역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젊은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는 위임을 받아 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그녀였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여 만일 나에게 이것 외에 다른 것을 하라시면 그것은 꼭 하겠습니다. 그러나 남자를 알지도 못한 나에게 아이를 잉태하라니요. 이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윤리 도덕적이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당시의 풍속이 정혼한 여자가 불륜의 관계로 임신한 사실이 발각되면 동구 밖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는 때라면 그 억울함을 스스로 맞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후에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 1:38)" 간단해 보이지만 그 대가는 지극히 큰 것입니다. 마리아의 온 존재를 다 지불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며, 값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사실에 대하여 요셉의 반응은 은밀히 마리아를 끊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지극히 어려운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이끌려 돌무덤을 쌓게 되고 말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천사들은 이해 하겠지만 사람들은 이해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더욱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큰 안목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의 출생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마리아의 순종이 그리스도의 잉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예수의 잉태는 성령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마리아 안에 잉태 되셨습니다. 성령이 없이는 마리아의 순종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던지 간에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순종의 의미도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순종을 너무 높이 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의 순종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들 안으로 들어와 무언가를 성취하실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이야기는 이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주권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순종과 동역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마리아의 회태사실 보다도 요셉의 순종을 기록한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파혼할 것을 주장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마태는 그가 이것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출생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거칠거나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화를 내고 결단해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성급하거나 무엇이든지 쉬이 행동으로 ㅇ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그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이 사건은 모양이 다를 뿐이지 우리에게도 일어 날 일들입니다. 우리 자신을 요셉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메시지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동역자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관계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순종하셔야 합니다. 또한 순종하는 일에도 협력이 요구됩니다. 같은 목표를 두고 주의 자손들이 협력하면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넷째,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이십니다(21절).
예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주와 만물이 조성되기도 전에 예정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아셨습니다. 그 인간의 죄악을 사하시며 구원하시기 위해 영원 전부터 인간 구원의 계획을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성자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영원한 진리요, 천지와 만물을 조성하신 능력이요,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랑의 빛이십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는데, 그가 예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이 땅은 죄악으로 가득찼고 모든 인생은 다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습니다(롬 3:10). 그 죄의 대가는 죽음과 영원한 멸망입니다. 예수는 이런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는 또한 교회를 세워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죄 사함 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회중입니다. 주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몸을 이루고 하나 하나가 세포가 되어 확장 함으로서 온 세계에 가득차게 되어 세상을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하는 전진기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이 교회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예수는 사망의 권세에서 인생을 해방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과 똑 같은 혈육을 입은 그 몸을 십자가에 제물로 희생하셔서 모든 인생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죽으심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히 2:14-15)" 주신 것입니다.

다섯째,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23절).
역사상 예수의 탄생처럼 커다란 사건은 없습니다. 따라서 거기엔 그만큼 중대한 뜻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신 메시야로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기름 부음을 받고 세상에 오신 [유대인의 왕](마 2:2)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왕](마 27:42)으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셨습니다. 주님은 [만세의 왕](딤전 1;17)으로, [모든 왕의 왕이요 모든 주의 주]로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입니다. 예수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위하여 대신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죄를 짐승의 피로 대신하는 것은 잠시 뿐입니다. 죄없는 생명의 피를 흘려야만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저주의 고통, 그 죄악의 짐을 지고 희생 하심으로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예언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 예언자로 항상 함께 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불ㄲ 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십니다. 공평과 정의로 통치 하시면서 항상 천국 법을 선포하십니다. 장차의 심판을 에언하시고 그 심판을 주관하십니다. 이 분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로서 저 베들레헴의 초라한 말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탄생하신 날을 성탄절이라고 합니다. 성탄절을 주님 탄생의 날로서 축하하고 일년중 가장 기쁘고 귀한 날로 여깁니다. 성경에는 주님 탄생의 날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전이나 문헌, 또는 규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시대의 사람들은 성탄절을 지켰다는 기록도 없고 그 날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태어난 날이 있고 죽는 날이 있습니다. 생일과 제삿날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님께는 그것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생일이 그의 존재 또는 실재(實在)가 시작되는 시간적 기점이라면 주님은 더군다나 생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이신 것이 그의 탄생의 시간이요, 그의 존재의 시작되는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영원 전에 하늘에 계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존재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깊고 참된 의미는 그의 생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십니까. 이런 깊으신 은혜의 진리를 모르고 주님이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탄생하신 날도 아닌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사람들이나 그 날을 인간의 기쁨과 향락의 날로 삼는 것은 모두 죄악 중에 죄를 더하는 무서운 악행이 될뿐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참된 뜻을 깨닫고 주님과 항상 임마누엘하면서 영원한 주님을 섬기고 사는 인간의 참 행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1. 12. 22 -설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