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주목사
1. 신약성서란?
2.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3. 한글성서번역
4. 복음서란 무엇인가?
5. 세 복음서 간의 차이점들
6.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7. 유다전쟁이란 무엇인가?

1. 신약 성서란 ?

27권의 책들로 신약성서는 구성되어 있다. 각 책들의 형태, 저자, 기록되어진 상황,목적이 각기 다르다. 또한 기록된 시기도 다르다(바울 시대-복음서 시대-일반서신시대와 요한계시록시대). 이같은 차이로 인해서 신앙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약간 다르게 나타나는 점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각 책들의 저자가 모두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에서의 생활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같은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증거하고 있다 2)똑같이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3)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행동의 일부이다라는 점에서 통일성을 갖는다.

가.형태에 따라

1)복음서-예수의 행적과 교훈에 대한 전승들을 수집하여 그것들을 기초로 예수를 전하려고 했던 신앙적 목적을 가진 설교문(케리그마)이다.
2)사도행전-초대교회의 발전 과정을 서술한 역사책이나 누가복음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신앙 증거의 기록이다.
3)21개 서신들-새로 형성된 초대기독교회 안에 생겨난 여러가지 신앙적, 윤리적 문제들에 직면하여 저자들이 수신자들에게 신앙적 권고를 하기 위해 발송한 편지들이다.
4)요한계시록-묵시 문학에 속하는 책이다.

 * 1. 복음서들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요한복음/
   2. 서신들
     1)바울서신-데살로니가전서/ 와 후서/ , 고린도전서/ 와 후서/
                로마서/ , 갈라디아서/ , 에베소서/ ,빌립보서/ ,
                골로새서/ , 빌레몬서/
     2)일반서신-히브리서/ , 야고보서/ , 베드로전서/ 와 후서,
                요한 1서/ , 요한 1서/ , 요한 2서/ ,요한 3서/ ,
                유다서/
     3)목회서신-디모데전서/ 와 후서/ , 디도서/

   3.묵시문학-요한 계시록
나.목적에 따라서

요한복음 -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전파하여 그를 믿고 참생명에 이르게 하기 위해 기록된 선교적 목적이 있는 책
마태복음 - 이미 믿는자들을 상대로 그들을 신앙으로 훈련시켜 온전히 성장하도록 권면하고 교육하도록 기록됨
갈라디아, 유다서-ㅇ나 교설이나 박해로부터 믿는자들을 지켜 올바른 신앙가운데서 흔들림없이 견고히 바로 살게 하기 위해서 기록된 변증적, 논쟁적 목적의 책이다.


2.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예수님이나 그의 가까운 제자들은 "성서"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성서가 나타나기 이전의 문서 기록이 없던 시기를 "암흑시대"라고 하거나 "구전시대"라고 부른다. 문서가 기록되기 시작한 몇가지 이유는 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최초의 제자들도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2)로마에 의한 교회의 박해가 문서의 필요성을 재촉했기에-안전, 3)초대기독교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도 그들이 회당의 예배 형식에 따라 봉독하던 구약성서 이외에 독자적인 기독교 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바울의 서신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이후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전승들이 복음서란 이름의 책으로 문서화되었다. 복음서들 가운데 제일 먼저 기록된 것은 마가복음이다. 마가는 주후 70년경 예루살렘이 멸망할 즈음에 이방 세계를 향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널리 증거하기 위해 펜을 붙잡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려고 시도했다. 이후에 마태와누가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상대로 예수 그리스도의생애와 교훈을 설교하며 교육하기 위해 복음서들을 기록했다. 그 기록 목적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고, 그 믿음 가운데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당시 수많은 책들이 기록되었고 그 가운데 27권의 책이 선택되어 정경(正經)으로 인정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책 중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같은 정경으로 인정하는데 기준이 되었던 것은 1)사도성, 즉 사도에 의해 쓰어졌는가? 아니면 그 책의 저자가 자기의 책을 사도들의 책과 동일한 수준에 올려놓을 수 있을만큼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가? 2)책의 내용, 정경의 지위에 오를 만큼 영적인 성격과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3)보편성 즉 그 책은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모든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4)영감 즉 그 책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인가?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397년)와 그 직전의 힙포 레기우스 종교회의(393년)에서 지금의 신약 성서 27권이 기독교의 경전으로 공식 채택되었다. 성경의 기록과 정경화 작업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왔지만, 우리는 이 성경 형성의 과정 전체가 큰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3. 한글 성서 번역

1. 로스역-존 로스(J. Ross)목사가 서상윤에게 한글을 배워 1887년에 중국어 성서에서 한글로 번역함
2. 이수정역-동경대에서 한글을 가르치던 이수정이 기독교인이 되어 조지 녹스 목사와 함께 1884-85년에 마가복음을 번역했고, 이를 아펜셀러선교사가 국내에 가지고 들어왔다.
3. 구 역-1887년에 선교사들이 앞의 개인역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한국어 성서위원회를 조직하여 1887년부터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하여 1900년에 신약성서를 그리고 1910년에는 구약성서를 완성하였다. 이 공인역을 구역이라 한다.
4.개역한글성경전서-개정위원회에서 개역에 착수하여 1937년 출판되었다. 긴스버그가 편집한 히브리성서가 자료가 되었다. 오늘까지 공인역이 되어왔다
5.성경전서 개역한글판-최종적으로 개역 및 편집체재 수정을 완료한 때는 1956년이다. 오늘날까지 이 성경이 사용되고 있다.
6.새번역 신약성서-1967년 네슬(Nestle)판 희랍어 신약성서를 사용해서 번역했다. 고어체가 현대 한국어로 바뀌었다. 첫번째로 나온 가로쓰기 성서이다7.공동번역성서(외경포함)-1977년 신약성서 개정판에 구약성서와 외경이 완역 합본되었고, 정확한 표기법, 전한글, 가로쓰기, 고유명사의 발음이 원어에 가깝게 번역한 특징을 지닌 번역본이다.


4. 복음서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말은 헬라어 에방겔리온의 번역으로 좋은 소식이란 뜻이다. 초대교회는 헬라적 환경 속에 있었고, 당시에 복음이라는 용어는 전투에서 승리를 공포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이 "기쁜 소식"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으로 전해졌다. 그후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활동과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포함한 내용을 기쁜소식으로 전해주었다. 그후 주후 165년에 사망한 초대교회 지도자 저스틴(Justin)이 신약복음서 저자들의 저술을 "복음서"라고 처음으로 불렀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문헌이 약 50개가량 있었으나 그중 네개만 택하여 경전으로 삼았다. 복음서들 가운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일반적으로 "공관(共觀)복음서"라고 부른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같이"(共) "보고"(觀) 기록했다 라는 의미에서이다. 공관복음서는 비슷한 점을 많이 갖고 있고 동시에 차이점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다루기 전에 먼저 복음서 이해를 갖고자 한다. 복음서는 결코역사적 목적을 갖고 역사적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정확히 기록하여 보도해 주려고 했던 역사기록이 아니다. 복음서는 초대 교회의 신앙가들, 곧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기록한 일종의 설교요, 신앙고백이며, 전도문서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21:25을 읽자.-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나 말씀의 일부를 기록한 것이다. 이야기를 선택한 자는 복음서 저자이며, 선택내용의 차이와 기록된 순서의 다름이 발생 요한복음 20:31을  읽자-복음서 기록목적은 1)예수를 믿게하기 위함 2)생명을 얻게함 즉 신앙적 목적과 목회적 목적이다.

복음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첫째로, 예수의 역사정 상황의 단계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실제적 사건들이 있었던 시기이다. 두번째로, 예수의 본래 말씀들과 실제 사건들이 사도들과 다른 전도자들에 의해 입으로 설교되던 구전시대이다세째로, 복음서 저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전승자료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신학적 관심을 표시하던 시기이다.이 세 역사적 단계를 거치면서 복음서 저자들은 설교 목적이나 신학적 관심의 차이 때문에 서도 다른 내용의 복음서 즉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설교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객관적인 역사가나 전기 작가의 자격이 아니라 복음서 자자로서 말한다. 이들은 오직 성서를 읽는 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딕게 하기 위한, 그래서 참다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펜을 잡은 전도자들이었다.

5. 세 복음서간의 차이점들

1) 사건의 순서와 배열이 다르다.
-성전을 깨끗게 하신 사건 (마태,마가,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 동안 일어났던 일로 기록하고 있으나-마 21:12-13/막 11:15-19/눅 19:45-46,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 제일 처음에 기록하고 있다-요 2:13-17)
- 예수앞에 나와서 "주의 오른편에, 왼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누가했는가?
마태20:20-28()/
마가 10:35-40()
2) 동일한 사건 기록에 있어서의 어휘나 표현의 차이점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 부활에 대한 기록의 차이
3) 어떤 복음서에는 기록되었으나 다른 복음서에는 빠져있는 이야기도 많다.
마가복음에는 산상설교나 예수의 족보와 탄생에 대한 이야기

	+--------+	+-----------+
+-----+	+----+마가복음++	++  Q 자 료	+-+	+-----+
|	|	|	+--------+|	|+-----------+	|	|	|
|  M	|	|	+-----+	+--+------+	+--+	|  L	|
|	|+-+-----+-+	+-----+	+--+----+--+	|	|
+-+---+|마태복음	|	| 누가복음	|	+--+--+
	+--+	+-+-------+	+-----+----+	+-----+
	+---+	+---------+
마가복음이 공관복음서들 중 가장 오래된 최초의 복음서이며 마태와 누가 복음서의 자료로 이용되었다. 복음서 문헌을 위한 자료로 Q자료가 사용되었다. 마가복음에는 없으나 마태와 누가 복음에 똑같이 소개되고 있는 자료이다. 이것은 주로 예수님의 말씀을 수집해 놓은 어록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Q자료를 결합하고 또 거기에 각자 자기의 특수 자료를 부가하여 기록했다.

6.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영지주의는 아주 위험한 이단으로 주후 2세기에 홍수와 같이 교회에 밀려들어왔다. 3세기 초에는 로마제국의 모든 지적인 교회가 현격하게 영지주의에 오염되었다.

-용어설명
영어로 Gnosticism 으로 표기한다. 이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 )에서 유래했다. 그노시스는 선택받은 자에게만 계시되는 신적 비의(秘義)의 지식을 가리키며 때로는 지식 위에 형성된 종교체계를 말하기도 한다. 이를 영지주의라고 한다.

-구원을 얻는 길
이들은 구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비법" 즉 특별한 지식-신비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지식은 특별히 "영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이들만이 최고 신의 빛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두번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혼적"인 사람들로서 신앙 이상의 것은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선지자나 기타 선한히브리인들이 여기에 속하나 이들은 영지를가진 사람들이 들어가 사는 세계에는 가지 못하고 그보다 못한 세계에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세번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물질적"사람들로서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이들은 사단과 자신의 욕망에서 살기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종국은 완전한 멸망이다.

여기서 특징은 어떤 특정 계급만이 권세를 누리고 인류의 대다수가 구원을 받을 수없어 파멸에 이른다는 이러한 주장이 영지주의의 가장 나쁜 면의 하나이다.

-성서에 나타난 영지주의
성서에서 요한 일서 2장 22절, 4장 2,3절에서 그 잘못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요한일서에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것을 부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지주의의 기독교에 대한 해악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저하시키려 했으며, 기독교를 자기들 나름대로의 곡해한 구약성서해석에 뜯어 맞추고 심지어 이방 종교의 가르침에까지 관련시키려 했다. 오피트 종파는 아담과 하와에게 "지식"을 가져다 준 뱀을 숭배하는 영지주의의 한 분파인데 이들은 하나님은 악하고, 뱀은 선하다고 가르쳤고, 바로왕과 아합을 성자로 추켜 세우고, 모세와 엘리야는 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지주의의 근거
헬라,애굽,페르샤,인도의 신화와 그 나라들의 철학과 신지학(神知學)에서 대부분 끌어왔다. 영지주의의 중심사상은 많은 것은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있었다. 비로소 그들의 체계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기독교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노스틱파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운동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은 2세기의 기독교 저작들에서 볼수있다. 이 노스틱파 집단들은 기독교 이단의 왜곡으로 기술하고 있다.

-영지주의의 특징
1) 물질이란 영원토록 온전히 악하다고 가르쳤다.
2) 세상을 창조한 분 곧 유대인의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가 아니고, 소위 "데미우르고스"라고 부르는 매우 열등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그리스도와 천상적 그리스도를 구분하였다. 천상적 그리스도가 인간 예수 안에서 활동했고, 결코 성육신 한것이 아니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하늘로 되돌아가 버렸고, 십자가에서 죽은 이는 단지 한 인간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3) 창조된 세계가 소피아 즉 "지혜"의 타락의 결과라고 가르치는 자도 있었다.
4)반세상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최고자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동질성 인식에 의하여 구원을 생각한다.
5)윤리로서의 일반 행위 원칙은 이 세상을 원수시하는 데서 형성한다. 이 세상을 저주하고, 멀리하고, 괴로운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금욕적이거나 방탕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모든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 창조를 악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나 신성(神性)의 광채들 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어떤 "영적인"개인들의 몸 안에 주입되었다. 이 "영적인"자들은 자신의 천적(天的) 기원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구속자를 보내 주셨다. 그 구속자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비밀한 지식의 형태로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영적인 자들은 죽음에서 그들의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여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영역을 안전하게 통과함으로써 하나님과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이 오로지 개인의 "영적인" 본질에 대한 지식에의존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극도로 방탕한 행동에 빠졌다. 그들은 그들이 외부의 진흙에 의해 더러워질 수 없는 "진주들"이라고 주장했다. - <영지주의>, 교회사 핸드북, p.98


7. 유다전쟁이란 무엇인가?

주후 44년부터 64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로마군인들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살상당하는 등의 탄압이 심해지자 주후 66년 유다의 과격파 열심당이 마사다 요새를 점령함으로써 유다 전쟁이 발단되엇다.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했고 예루살렘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예루살렘의 로마군이 항복하고 말았다. 로마황제는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명하였고, 66년에 예루살렘을 고립시키고 마케루스,헤로디움, 마사다 3요새를 제외한 유다 전토를 진압했다. 로마정변으로 더이상 공격을 진행시키지 못하다가 70년봄에 로마군이 재공격을 시작했다. 예루살렘을 포위공격을 계속하여 결국 8월 29일 성전도 함락되고, 열심당원을 중심으로 헤롯 궁전에서 최후의저항을 했으나 9월 26일 전시가는 로마 군의 손에 함락되었다. 헤롯이 세운 3탑과 로마군단의 진지를 방위하는 서측 성벽(통곡의 벽)을 제하고는 전 시가를 파괴하여 초토화되었다. 이 포위공격으로 인한 전사자는 110만, 포로 9만 7천에 해당하는 처참한 전쟁이었다. 72년에 마케루스와 헤로디움이 점령되었고, 주후 73년에 마사다가 점령되었다. 마사다는 포위당하자 항복직전에 960명의 남녀노소가 타살 형식의 자살을 했다. 이로써 1차 유다 전쟁은 종결되었고 이후에 유대인은 실질적으로 조국을 상실하여 전세계를 향하여 흩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하였다.

제 2차 유다 전쟁은 성전 멸망과 함께 직무가 폐지된 대제사장의 대신으로 랍비라는 율법 교사가 민중의 지도자가 되었다. 130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인의 열렬한민족주의적 사상을 탄압하고자 반유대교의 법령을 반포하여 안식일과 할례의 의식준수를 금지했다. 이것이 전쟁(132-135)의 도화선이 되었다. 반란 최초에는 로마군의 거점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3년간 다시 조국 예루살렘을 수도 겸 종교적 중심지로 하는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로마군에 의해 함락 되었고(135),남아있는 성벽과 건물을 파괴당하고 예루살렘은 엘리아 카피톨리나라는 로마도시로 불리웠다. 이 이교 도시는 콘티탄티누스 대제가 기원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그리스도 교를 공인할 때까지 200년간 존속되었다. 137년 이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고 이후에 디아스포라 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