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Thyatira)

=> 계시록의 일곱교회 : 에베소 / 서머나 / 버가모 / 두아디라 / 사데 / 빌라델비아 / 라오디게아
뜻:회생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지점

(1) 소아시아 루디아 도에 있는 성읍으로 빌립보의 여신도 루디아의 고향이다(행16:14).

(2)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의 하나(계1:11, 2:18).

(3) 음행,간음,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여 심하게 책망하였다(계2:20-24).

이즈미르(스미르나) 북동쪽으로 105km 악세르 호수 남쪽에 있는 교회터에는 석축 기둥과 담장만 남아 있다.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대 주께서 그 마을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한지라 (사도행전 16장 11절- 14절)

버가모와 사데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B.C. 7세기 경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ppia)"라 불렀다. B.C. 3세기경 SELEUCUS 1세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시켰으며, 한 때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 하에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

비잔틴 제국 시에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가 위치하여 크게 번성하였으며 1425년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두아디라의 역사적 중요성은 군사적인 것과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이다. 두아디라는 지형상 훌 륭한 요새라고는 할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길고 넓은 골짜기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케 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길드/Guild)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 16:11-15 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빌립보에서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를 만났다고 되어 있다. 루디아는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현재 두아디라는 과거의 어떤 유적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도시의 한 귀퉁이에 아마도 아폴로 신전으로 보이는 신전 하나와 회랑이 있는 길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비잔틴 교회 기둥들만이 부서진 상태로 그냥 방치 되어 있다.

동방으로 통하는 대로상의 상업 중심지. 오늘날의 소도읍 아키사르. 옛 시대의 잔재는 남이있는 것이 없다. 질그릇에 대한 언급은 그 도시의 산업중 하나를 반영시켜 주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산업은 염료(자주빛) 업이었다. 자주장사로서 빌립보에서 바울을 만났던(행16:14) 루디아는 두아디라 출신이었고 또 집에 돌아가서 그 곳에 교회 세우는 일을 도왔을 것이다. 그 교회의 또한 여자는 교인들을 그들의 믿음에서 떠나 부도덕에 빠지게 하였고 그 악한 영향으로 인하여 요한의 편지에서 구약의 인물과 짝을 이루는 제2의 이세벨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변함없는 신앙생활
(요한계시록 2:18-29)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 위대로 갚아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집, 가구,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만큼은 바꿔지면 안될 요소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풍향계처럼 바람따라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정황이 변하여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이 변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주님께서 두아디라(버가모서머나교회 중간에 있는 초대교회 중의 하나) 교회를 칭찬하시고, 책망하시고, 권면하신 말씀을 통해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결단 할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칭찬 받은 행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칭찬 받은 내용은 다섯 가지인데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입니다. 그 내용들을 자시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업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 때문에 하는 일을 말합니다. 계2:2에 '네 행위와 수고를 알고' 라는 말씀은 주님 때문에 힘쓰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일이요 칭찬 받는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교인들과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인생 가운데서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남자집사가 급환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예배위원으로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치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실에서 예배를 드린 후 그 집사는 '목사님, 퇴원하면 잘하겠습니다. 이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집사님, 무얼 잘 하시겠다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목사님 안내위원, 헌금위원으로 봉사하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작아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주님의 일이라면 기쁨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주님은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사랑은 말(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행동과 실천이 있을 때 가치가 있으며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것을 사랑의 최고경지라고 합니다. 요일3:18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라고 기록합니다.

③ 믿음 사업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 분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행해야 생명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④ 섬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직분을 가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섬기는 일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지를 발견하고 섬기는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⑤ 끈기있게 인내하는 일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행했던 주의 사업 가운데 인내를 가지고 계속적인 섬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점점 성숙되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보고 무엇을 칭찬하실 것인가,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주의 일에 동참하는 인내가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책망을 살펴봅시다.

20절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내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은 北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의 부인입니다. 그녀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지중해 해양 국가인 시돈왕국 출신이었습니다. 이세벨아합과 신하와 온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가르칩니다. 정략적으로 정책적으로 우상을 섬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우상숭배뿐 아니라 그것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죽이려고 합니다. 그 죄의 모양은 이세벨이라는 이름 속에도 나타납니다. 이 여자는 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왕권을 이용해서 백성의 재산을 약탈합니다. 그래서 남편 아합의 왕조는 이 여자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햇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세벨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문화, 사상을 대적해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본문은 이세벨을 용납할 때 세 가지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침상에 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인 질병을 통해서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원수에 의해 창밖에 던져져 처참한 심판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여자입니다(왕하9:33). ②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고통, 재난, 슬픔입니다. ③ 사망으로 그의 자녀들을 죽인다는 엄청난 심판입니다.

이세벨의 문화 즉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는 이 세 가지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는 생명과 기쁨과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권면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25절에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에게 있는 것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선물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유지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먼저, 예수를 바라볼 때 변함없는 은혜와 진리와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우리는 변하기 쉬운 인간입니다. 히 12:2절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사탄의 유혹, 사망권세를 다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은 것은 예수님과 합일(合一)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신앙생활로 고백하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충남제일감리교회/조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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