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므레(Mamre)

=> 헤브론 참고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헤브론이나 또는 그 근처인 것은 틀림없다.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영접한 곳이기도 하며 소돔고모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한 장소이기도 하다.

(1) 아브라함이 마므리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살았던 곳(창13:18, 14:13, 18:1).

(2) 이곳은 헤브론과 같은 곳이라 생각된다(창23:19, 35:27)

상수리 나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베들레헴을 지나 35킬로미터쯤 가면 전형적인 아랍인 도시 헤브론이 있다.
헤브론은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이 이스라엘 왕권을 쟁취할 때 발판으로 삼았던 도읍이기도 하다. 베냐민 부족 출신인 사올 왕이 갈리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부족 출신인 다윗브엘세바 근처 시글락에서 유다 부족 거주지인 헤브론으로 급히 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그는 유다 부족의 임금으로 추대된다.(삼하 2:1-4) 다윗은 무려 7년반 가까이 헤브론에서 단지 유다 부족의 임금으로 행세하는 동안 온갖 계략과 술책을 써서 결국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다.(삼하 5:1-3)

헤브론을 떠나 북쪽 예루살렘 방향으로 4킬로미터 달리다 보면 아랍인들이 '라맛 열 칼릴(친구의 고지)'이라 부르는 페허가 나온다.
그곳이 마므레 성지이다. 아브라함마므레 참나무 아래 천막을 치고 제단을 설치했다고 한다.(창 13:18)

또한 여기서 신비스런 길손 세분을 잘 대접한 덕분으로 아브라함사라가 1년 안에 이사악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은곳이다.(창세 18, 1-15) 길손들이 소둠을 멸하려는 계획을 알려 주자 아브라함이 소둠을 구하려고 흥정을 벌인 곳이기도 한다(창 18:16-33). 헤로데 대왕의 헤브론 족장 묘소에 한 것처럼 마므레에도 돌담을 쳤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130년 하드리아누스 로마 황제가 팔레스티나를 방문하여 마므레에 시장을 건설케 하였다.
그후 황제는 제2차 유다 독립전쟁(132-135년)을 진압하고 나서 바로 마므레 시장에서 무수한 유다인들을 노예상등에게 헐값으로 팔아 넘겼다. 시장 돌담의 규모는 길이 약 65미터, 너비 약 49미터,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장모 에우트로피아가 건설한 자그마한 성당 잔해가 남아있다.

헤브론아브라함 사원
헤브론의 아브라함 사원 제관계 문헌인 창세기 23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헤브론에서 숨을 거두자 에브론이란 사람에게서 막벨라 동굴을 구입해서 거기에 사라를 묻었다.

또다른 제관계 문헌에 의하면 여기에는 사라뿐 아니라. 아브라함사라, 이사악과 리브가, 야곱레아, 이렇게 족장 부부가 묻혀있다고 한다.(창 25:7-10, 35:27-29, 49:29-32, 50:12-13)

그러므로 헤브론막벨라 동굴은 유다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다음가는 성지이다. 헤로데 대왕(기원전 37-4년 재위)은 이스라엘 3대 조상 묘소 둘레에다 엄청난 돌담을 치고 묘소 위의 공간에는 널찍한 돌들을 깔았다. 헤로데의 돌담과 돌바닥은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헤로데의 무수한 건축물 가운데서 가장 잘 보존된 이 웅대한 족장 영묘(아브라함 사원)야말로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헤로데가 친장방형 돌담의 규모는 길이 59미터, 너비 34미터, 높이 18-20미터, 두께 2.65미터, 그리고 담을 쌓을 때 사용한 돌등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7.50미터, 높이 1.40미터. 아브라함 사원 돌담에서 횡선 아래 큰 부분은 헤로데가 쌓은 것이고, 횡선 위의 작은 부분은 기원후 13세기에 바이바르스 회교 술탄이 한층 올려 쌓은 것이다. 동.서양쪽 귀퉁이의 회교 종탑(미나렛) 두 개는 후대에 덧붙인 것이다.

회교도들 역시 아브라함을 무척 존경하는 까닭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사원, 그리고 예루살렘의 오마르 사원 다음으로 헤브론의 이스라엘 족장 영묘를 일컬어 "하람 엘 칼릴"이라 하는데 "친구의 성지"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을 하느님의 친구로 보고 붙인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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