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벨라(Machpelah)


뜻:두겹의 땅, 두 동굴
헤브론 북쪽, 마므레(Mamre) 동쪽 현재의 하란 엘 칼릴(Haran el-Khalil)

(1) 아브라함이 자기와 가족들의 무덤을 삼으려고 족속 헤브론에게 산 땅 (창23:17-18).

(2)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이 다 여기에 매장 되었다(창49:31).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의 매입(창 23장)

1. 나그네로 산 아브라함: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창 23:4)

족장들의 전통적인 묘지의 유적지인 <A href=헤브론은 유대산지의 해발 3000피트 이상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 막벨라 굴 묘지 위에 세워진 건물의 연대는 비잔틴과 십자군전쟁 시대를 거쳐 헤롯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라는 일백 이십 칠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의 셈에 의하면 살만큼 살다가 간 나이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과 특별히 가깝게 사는 사람들은 상식을 뛰어 넘을 정도로 장수의 복을 누린다. 사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수의 복을 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라의 죽음 앞에서 아브라함은 심히 슬퍼하며 애통해 한다. 아마도 평생을 바라다가 얻는 아들 이삭이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간 사라의 인생살이가 아브라함의 슬픔을 더하게 하였을는지도 모른다. 이삭이 그의 나이 마흔에 혼인하였으니(창 25:20) 사라이삭의 혼인 삼년 전에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반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자신을 추스리고 사라의 시체 앞에서 일어난다. 그는 사라를 묻을 땅을 찾는다. 그는 자신이 정착하고 있는 땅의 원주민인 족속에게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설명한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로 우거하는 자입니다". 한 평의 땅도 없는 나그네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남의 땅에 살되, 합법적으로 사는 사람, 합법적으로 살기는 하되 자기 땅을 한 평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평생을 나그네로 산 아브라함!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것을 이른바 나그네의 신학(theologia viatorum)이라 부른다. 기독교인은 땅에 매이지 않고, 이 땅에서 성공하는 데 지나치게 마음을 두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신앙인이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믿음을 따라 본향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음박질하는 순례자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2. 나그네로 살면서도 인정받는 아브라함: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창 23:6)

아브라함은 족속에게 자신의 희망사항을 겸손하게 밝힌다. 그는 나그네 신세로 땅이 없기 때문에, 아내 사라를 장사지낼 매장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족속은 정중한 경의를 표하면서 아브라함의 말에 대답하였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호칭은 존경의 호칭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한 평의 토지도 소유할 수 없는 남의 땅에 빌붙어 사는 처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사회에서 귀한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한 인간의 외적 형편보다는 그 사람의 생활태도가 그 사람의 값을 결정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나그네이지만 그는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어른으로 높임을 받았다.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사실(현실)보다는 이에 대한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3. 매장허락과 매매거부: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창 23:6)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그는 나그네라는 신분 때문에 자기의 죽은 자를 매장하는 것도 그 곳의 땅 주인인 원주민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또한 땅을 소유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4절에서 두 가지 요구사항을 허락해 달라고 원주민들에게 부탁한다: 첫째,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며, 둘째,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게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이러한 부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대답이 주어진다: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6절). 원주민이 사용하고 있는 어느 누구의 무덤이든지 한 곳을 택하여 무덤으로 쓰라는 이러한 대답은 첫 번째 부탁인 "사라의 매장을 허락한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은 8절에서 이 점을 확실하게 해두려고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다: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그러나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아브라함의 두 번째 부탁은 거절된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품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매우 예외적인 호의를 베풀면서도 결국은 그에게 토지에 대한 권리만큼은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죽은 자의 매장은 허락해 줄 수 있으나, 매장지를 위하여 토지를 소유하려는 토지매매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창 12:1-3). 그러나 그가 현재 발붙이고 서 있는 땅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이 아닌가(창 12:7).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살고 있었지만 아직 그 땅을 소유하지는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땅 약속의 실현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약속을 의심하지도 않았고, 묵묵히 성취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이러한 자세가 참 신앙인의 모습이리라.

4. 아브라함의 끈질긴 매매요구: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창 23:9)

땅의 소유권을 확보하고자 했던 아브라함의 꿈은 무산되었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이방인이며 빌붙어사는 나그네인 주제에 매장하는 것을 허락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굴복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정식으로 매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충분한 값)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의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8-9절). 값은 드릴 만큼 다 드릴 터이니 제발 굴을 팔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죽은 아내의 매장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손들에게 대대로 상속할 수 있는 땅의 확보가 보다 큰 관심사였다. 사람들의 호의로 그들의 땅에 사라를 장사한다 하더라도 그곳을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사라 외에 아브라함(25:9), 이삭(35:29), 리브가와 레아(49:31), 그리고 야곱(50:13)도 여기에 안장되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 후손들의 삶을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다시금 드러난다. 그는 인생의 반쪽인 아내의 죽음이라는 하늘이 내려앉는 개인적인 절망 속에서도 후손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한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이라는 위기를 땅을 소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여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위기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리게 하는 것이다. 위기 앞에서 절망하는 자에게 위기는 말 그대로 걸림돌이며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된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위기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

5. 최초의 부동산 매매: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창 23:15)

아브라함의 절박한 요구를 알아차린 막벨라 굴의 주인인 에브론은 구입 희망자에 대하여 절대우위에 서서 흥정을 주도한다. 아브라함이 원래 의도했던 것은 막벨라 굴 하나에 대한 구입이었다. 그러나 에브론은 다음과 같이 운을 뗀다: "내가 그 밭은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11절). 막벨라 굴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그 굴을 둘러싸고 있는 밭도 함께 구입해야 한다는 매매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 에브론의 말이 '굴과 밭'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동양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흥정을 위한 상투적인 표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15절에서 은 사백 세겔이라는 비교적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 이 말은 매매를 위한 흥정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에도 상인들은 '팔다'라는 노골적인 말을 회피한다. 이런 말은 고귀한 손님에게 모욕적인 언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드리겠다', '선사하겠다'라고 말하면서, 넓은 도량을 보임으로 손님을 더욱 붙잡아 놓는다. 이런 점잖은 말씨로 보아서, 아브라함은 값이 대단히 비쌀 것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굴과 밭'을 묶어서 함께 팔겠다는 에브론의 조건 제시에 아브라함은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동의한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13절). 이제 흥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바로 가격 결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땅 가진 자가 부르는 것이 가격인 이다. 에브론은 "은 사백 세겔짜리 땅이 저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하며 가격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하며 상당한 액수를 제시했다.

당시의 가치개념이 오늘날과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 액수를 현재의 화폐단위로 환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는 그 토지의 크기를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액수는 이후 성경에 나오는 부동산 매매가격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돈이었음을 알게 된다. 예레미야가 밭을 살 때 지불했던 돈은 불과 은 17세겔에 지나지 않았고(렘 32:9),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입할 때 은 50세겔을 지불하였다(삼하 24:24). 또한 오므리왕이 사마리아 전체를 건설하기 위해 샀던 지역도 다 합해서 은 6,000세겔(은 두 달란트) 뿐이었다(왕상 16:24).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전혀 흥정을 하지 않고 달라는 금액을 모두 지불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16절).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부동산 매매는 아브라함 편에서 본다면 손해가 막심한 부당한 거래였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세상살이였다. 이 세상에 살면서 눈꼽 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며,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을 어렵게 만드는 일을 한다면, 그는 참 신앙인의 반열에 서지 못하리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 땅에 살면서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내하며 오히려 이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 막벨라 굴의 매입이 갖는 의미

1) 하나님의 주신 약속이 당대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브라함은 소유하고 있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 삶을 바쳤다. 하나님은 그에게 선물로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약속의 성취가 가장 간절한 시점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성취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그네의 처지로 상당한 가격을 치르면서 약속의 땅 가운데 한 조각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자기 당대에 보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약속을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 때에는 그 성취를 경험하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시면 너의 때에는 경험할 수 있으리라"(참조. 창 50:24) 하며.

2)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부분적인 성취로도 볼 수 있다: 막벨라 굴을 매입한 일이 하나님의 땅에 대한 약속(17:8)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도 해석된다. 약속 때문에 모든 것을 저버렸던 아브라함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약속된 땅의 아주 작은 부분(무덤의 토지)이 그의 소유가 되었다. 그것도 합법적인 소유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마을 법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23:18), 충분한 가격을 치르므로 '법적 소유권'을 공인받은 것이다. 비록 아브라함이 샀던 막벨라 땅은 약속된 가나안 땅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첫걸음이며, 믿음의 조상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자기 땅에 묻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장차 그 약속이 완전히 실현될 것을 믿고 일찍이 그의 후손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한 지점을 정하고 거기에 그의 깃대를 꼽은 것이다.

(차희준 한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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