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고(Accho)


베니게의 항구로서 갈멜산 북 6km 지점 지중해에 접하였다.

(1) 여호수아가 아셀 지파에게 주었다(삿1:31).

(2) 사도시대에는 돌레마이라 하여 바울이 최후 예루살렘에 올라갈때 이곳에서1일간 유숙하였다 (행21:7).

악고 :예수의 최초의 <a href=제자들은 그물을 고치다가 부름을 받은 어부들은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의 악고의 항구에 있는 어부들이다."> BC 19 세기 이집트 문서에도 언급된 바 있는 이 도시는 해변의 항구도시로서 견고한 가나안 원주민의 도시였다. 여호수아가 점령 하지 못한 도시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삿 1:31), 본래 이 도시는 페니키아의 도시로서 두로(Tyre), 시돈 (Sidon)과 더불어 해상 활동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이 도시는 그의 후계자인 프톨레미에 의해 통치되면서 이 도시를 프톨레미 (돌레마이)라 부르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이곳에 화폐 주조소를 지어 약 600여년 동안 주조 활동이 계속 되었다.

남쪽에서 바라본 악고 성채의 모습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이 도시를 점령한 이후 BC 47년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시저가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헤롯 대왕은 이 곳을 보다 견고한 요새로 세워 나갔다. 신약에서도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도시에 들러 성도들과 교제한 기록이 있다 (행 21:7 ~ 8)

AD 636년 모슬렘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오면서 이 도시는 아랍의 매우 중요한 요새로 발전 되었다가 1104년 십자군의 볼드윈 장군에 의해 점령 되면서 십자군의 수도로서 성지 탈환의 꿈을 달성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새대의 악고는 유럽의 피사, 베니스, 제노아 등과 맞먹는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지중해를 발판으로 한 무역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때 만들어진 바다를 앞으로 한 십자군의 성채는 지금까지 가장 웅장한 십자군의 건축불로 남아있다. 그러나 1197년 아랍의 살라딘 장군에게 이 도시를 내준 이후 악고는 점차 쇠퇴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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