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제1장 근대 이전의 기독교와의 접촉
제2장 한국에 있어 카톨릭
제3장 수난 당하는 카톨릭
제4장 한국의 protestant church
제5장 한국 기독교인의 발생과 집회
제6장 한국 프로 테스탄트의 형성과 부흥
제7장 일제 치하에서의 교회
제8장 한국 교회의 수난사
제9장 한국 교회 재건과 분열

한국기독교회사(요약) 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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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 성서 : 이수정이 일본에서 한문 성서에 이두토를 달아 펴낸 <신약 성서 마가전>(1884)이다. 이수정은 이외에도 마태.누가.요한복음 및 사도행 전을 같은 식으로 펴냈으며 한글성서로 <신약마가전 복음서언희>를 냈다




최초의 견미사절단 : 1882년 한미수호조약의 체결로 비로소 기독교선교의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1883년 민영익(앞줄 중앙)을 단장으로 한 견미사절 단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미감리회의 가우쳐와 만나게 되어 한국선교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고종의 선교윤허 : 미국 감리회 선교부의 지시를 받은 일본 주재 감리교 선 교사 매클레이가 1884년 6월에 내한하여 고종을 알현하고 교육 및 의료 선 교 윤허를 받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1934년 감리교 선교 50주년 기념으로 배재학당에서 공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




광혜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최초로 내한(1884년 9월) 한 알렌이 고종 의 윤허를 얻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오늘의 세브란스병원 전신이 되었다.
(1)백홍준과 서상륜의 수세와 전도활동.
우장으로 백홍준, 이응찬, 이성하, 김진기 4명이 따라감.
로쓰목사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고 목사님은 이들에게 보수와 문물을 줌.
처음에는 4명이 잘 안받아 들였다.
왜냐면 그때 서학은 국법으로 사학이라 하여 핍박했기 때문이다.

로쓰목사는 1874년에 한영회화라는 책을 만들었고 1875년에는 예수 성교 문답 을 만들고 1879년에는 한국지 그 역사, 생활, 습관이라는 책을 씀.
만난지 3년째 1876년에 이들 4청년이 수세를 받음(우장에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세례자

이들이 세례 받은후 로쓰와 4청년은 한국 성서 번역에 착수해서 1882년 봄에 요한, 누가복음을 번역 1883년에는 마태, 마가복음을 번역했다.

이때 의주청년 서상륜이 찾아옴. 서상륜은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친척을 따라 홍삼 장사하러 중국을 따라오가다 콜레라에 걸렸는데 맥킨타이어가 그를 살게해 줌.
그래서 이후에 성경번역을 로쓰와 4명과 함께 귀한 역할을 함.

그때 공관복음서를 번역 출판 했는데 국내에 배포하기 힘든 상태였다.
서상륜이 이것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배포함.
이때 3000권 찍어낸 것을 로쓰역이라 한다.

이것이 관과에 알려져 위험해 지자 서경조(서상륜삼춘)과 둘이서 황해도 송천 으로 위험을 옮김. 여기서 송천 솔래 교회 를 개척함(1884년- 조선 최초의 개신 교회) 1884년 또 다시 성경을 만들었는데 로쓰목사가 쪽복음 6천부를 제물포 (인천)로 보냄
-최초의 밀수품이라 칭하기도...

조선은 당시 독일사람인 멜렌 도르프라는 사람을 현재 관세청장 이라는 자리를 줘서 이사람으로 하여금 관세 업무를 맡게함.(조선은 너무 외교를 못했기 때문)
이때 멜렌 도르프가 서상륜을 불렀다.(왜냐하면 제물포에 성경 6천권이 와있어 서) 로쓰는 백홍준과 이성하에게 편지써서 멜렌 도르프에게 잘봐 달라고 부탁.

폐지/노끈 성경 (성경을 안 들키기 위해 폐지처럼 하기 위해 제본 안하고 나 두고, 제본안하고 노끈처럼 꽈서 나둔것)

참고 : 김재준 박사 아버지는유학 자였다. 성경을 분배하는 상인이 하루는 그집 에 머물렀 는데 마땅히 줄것은 없고해서 성경을 한권 놓고 갔다. 김재준 박사가 중학교때 Y. M. C. A뒤에 승동교회에 갔다가 설교에서 성경을 읽어야 위대한 사람이 되고 영어 공부 한사람치고 킹제임스 버 젼을 안읽으면 안된다고 해서 그말에 집에 돌아가 그 책을 꺼내 읽고 훌 륭한 목사님 됨.
저고리 성경 : 당시 저고리에 솜을 넣는데 아예 성경을 넣고 꼬매서 가져옴.

1884년 솔레 교회가 세워 졌는데 그 마을이 58호 밖에 안되었는데 서경조, 서 경륜 형제가 열심히 전도해서 몇 달안에 50호가 교회에 나왔다. (서경조는 나중에 세문안 교회의 목사됨)
1년후에는(1885) 교인들이 자력으로 8칸짜리(8평) 교회 지음.

(2) 일본을 통한 전도
이수정의 개종과 성서 번역
이수정은 한국에서 임오군란(군인들의 월급안에 모래석은 사건)후 일본에 사절 단으로 파견 되는데 박영효, 이수정이 사절단으로 일본으로 가게 됨. 이수정은 현판 이라는 자리에 있었는데 가서 안돌아 오게됨. 일본 동경 대학의 조선과 교수로 눌러 앉음.

쓰다 목사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 집에 가서 마태복음 산상설교 벽화보고 감명 받고 영접함. 쓰다는 이수정을 야스까와 목사에게 소개한다. 1883년 4월에 마침내 야스까와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음.

일본 성서 공회 루미스 목사가 이 소식에 기뻐함.
이수정을 만나 도움을 받아 성서 번역을 시작해서 1883년 - 4복음서와 행전 번역이 나왔고 1885년 마가복음이 출간 되었다.(이수정판)
일본의 감리교, 장로교 선교사들이 본국에다가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부탁. 1885년 4월에 그래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오게 되는데 (그들은 제물포 도착당시 이수정판 성경을 갖고 있었다) 오기전에 일본에서 조선 성경을 보고 기뻐했다.
참조 : 우리나라가 장로교는 미국, 세계보다 더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