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성경적 근거


I.구약에서의 선교의 기초

선교 신학의 성경적 근거를 흔히들 신약에서만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약의 주인공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때 우리는 쉽게 구약에서도 선교의 근거를 찾게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독생자를 보낸 뒤에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엡1:4) 사랑하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이스라엘을 통한 온 세계의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 Diaspora의 역사도 하나님의 선교 역사이다. 바울의 아덴 설교(행17)는 천지 창조의 하나님이 역사의 하나님이요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이 바로 구원과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이렇게 알지 못하신 신"을 섬기는 헬라인에게 신구약의 하나님을 알려줌으로써 바울은 선교의 접촉점을 찾기를 시도하였다.

1. 원시복음

"Mother Promise"로 알려진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신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고난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Johannes Blauw가 지적한대로 "모든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는 창세기의 1장에서의 11장"에 있으며 그중에서 원시복음으로 알려진 창3:15절이야 말로 열쇠중의 열쇠이다. 이 약속 안에 역사의 신학이 있고 선교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2. 아브라함과 약속(창12:)

원시복음의 실마리는 아브라함과 약속에서 풀어지기 시작한다. 모든 인류를 위한 구속적 축복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 확연하게 계시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12:3)하신 약속은 원시 복음의 연속으로 나타난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하리라는 약속에 의해 인간을 심판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구원 약속이 아브라함과 계약에서 더 구체적으로 계시된다. 창세기 4장에서 11장까지의 기록에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멀어져가는 타락상이 묘사되고 있다. 이런 인간타락의 배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시며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 약속의 내용은 첫째로 땅의 약속이었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고 하셨다. 둘째로 큰 민족의 약속이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12:2)번성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솔로몬 때에 "수효가 많아서 셀수 없는 큰 백성"(왕상3:8)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큰 백성은 약속한 가나안 땅에 살 이스라엘 백성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장차 이스라엘을 통해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겨질 영적 이스라엘을 총괄하여 예언하신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장차 받을 축복의 본질에 대하여 그 영적 성격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과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받을 자"(갈3:6)가 된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축복은 영적구원의 축복을 의미한다.
이 축복이 만민에게 적용되기 위하여 선교적 과제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이러한 선교적 암시가 창12장에 내포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3. 출애굽 사건

출애굽 사건이 비교적 의미를 부여한 점은 두가지에 인식할 수 있다.
첫째는 출애굽으로 말미암아 한 민족이 탄생하여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실상을 애굽에서부터 가나안 땅에 이르는 어간에 산재한 모든 민족에게 보여준 일이다.

둘째는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를 소개한 사실이다. 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계시되었으며 그 계시 속에서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이 밝히 나타나게 되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한 민족을 이룩하시고 그들에게 계시를 주심은 하나님의 이름과 뜻이 온 땅에 퍼지고 선포되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알게한다.

4. 디아스포라

이스라엘 민족의 이방국가에로의 이동은 처음에는 상업적인 목적에서보다 전쟁에 의한 포로로서 이끌려간 일이 더 많았다.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를 그 대표적인 Diaspora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Diaspora현상에서 선교적 의미는 크게 두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먼 외국에서 성전제사 대신 회당을 사용하여 예배한 사실이다. 회당을 사용한 유대인들이 제사형식의 예배에서 말씀중심의 예배로 회중 예배의 형식이 바꾸어짐에 따라 복음의 말씀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이 크게 증대 되었다. 종교적 혁명으로써의 회당 예배는 결국 신약시대를 준비한 셈이다. 둘째는 회당의 사용을 통하여 유대인 선교의 접촉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바울의 경우 회당은 유대인 전도의 최적지가 되곤 하였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바울의 선교전략은 회당 사용의 기득권을 최대한도 활용하여 유대인들에게로 복음을 전한 후 거기에서 믿기로 결심한 개심 그룹을 핵으로 교회를 시작한 일이다. 실로 회당전도야말로 바울선교의 요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II. 신약에서의 선교의 기초

1. 왕국과 선교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나라"였다. 부활하신 후에도예수님의 메시지의 주제는 "하나님나라"였다(행1:3) 전도자 빌립도 "하나님 나라"(행8:12)를 설파하였다. 바울도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하여 선교하였다(행28:31)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심령에 관한 복음이기 때문에 심령의 변화를 항상 전제하여 전파되었다. 심령변화의 복음 곧 회개의 복음이었다. 이 회개의 관문을 통과할 때만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이 천국복음의 진수이다. 신약의 천국개념은 동시에 역사의 종말개념과 함께 연결되어 선교적 사명과 함께 강조되었다. 주의 재림에서 완성되는 천국의 궁극적 실현은 회개로 시작되는 천국의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어야 하는 선행 조건이 따른다(마24:14). 유대인들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이런 왕국의 영적의미를 깨닫지 못한데서 기인하였다. 제자들도 그들의 임무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가시적 왕국을 회복하실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였다(행1:6)제자들도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이스라엘 중심적으로만 해석하고 왕국의 영적개념과 선교적 사명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이들의 이러한 확인을 시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시기적 관심과 수동적인 왕국도래의 기대자세에서 벗어나 권능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 선교할 것을 지적하셨다.

2. 예수님과 이방인

우리는 복음의 기록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방인 선교를 중요시하지 않는 듯한 인상이 풍기는 구절들을 대한다. 제자들에게 전도하려 보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마10:5)고 하신 말씀이다.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하셨고 가나안 여인에게 자신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미15:24)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은 얼핏 우리들을 당혹케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Johannes H.Bavinck는 그 당시에는 아직 복음 전파가 전세계적 차원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을 알리시는 것 뿐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방선교에 대하여 단순히 시기상조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메시아 대망 사상으로 무장된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먼저 집중적으로 전한 후에 이방인 선교의 차례를 택하라는 선교전략적 차원의 표현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때가 이르지 못했다기 보다는 유대인 전도의 긴급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것뿐이다. "구원은 유대인에게 속했다"(요4:22)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도 예수님이 유대지파를 통하여 오신 예언 성취의 메시아 임을 증거하신 것 뿐이요 사마리아인들에게 구원이 없다는 선교부정적 언급으로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 전도하신 사실이 예수님의 본의를 행동으로 증명하여 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백부장을 만났을 때 구약의 예언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리라"(마8:11). 베다니의 마리아의 신앙을 높이 평가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되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26:13)고 칭찬하셨다.또 "이 천국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마24:14)라고 말씀하셨다.

3. 선교대령(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이 선교대령은 신약 속에서 발견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교의 명령이다. 이 명령은 네가지의 동사를 분사형으로 되어있는 보조동사이다. 가는 일(전도운동)과 세례주는 일(교회설립)과 가르치는 일(교회교육)을 거쳐 철저하게 제자를 삼아 그들로 다시 전도하는 일군으로 삼으라는 사실이다. 곧 제자화운동을 통한 선교 운동을 의미한다.

4. 사도행전과 선교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선교 기록이다. 사도행전의 교훈은 비록 사도들의 선교행전이긴 하지만 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행전이기도 하다. 선교의 주역은 사도들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며 강조되어 있다. 비록 선교운동의 효시로 알려진 안디옥 교회 선교도 바나바와 바울이 주역이 아니요 성령이 그들을 따로 세워 파송한 사실을 누가는 밝히고 있다. 바울이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에 선교보고를 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가운데서 하신 일"(행21:19)곧 선교주역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였다. 안디옥교회에서 제기한 문제로 예루살렘 총회가 회의를 할 때도 성령께서 총회를 주관하시고 결의케 하신 사실을 "성경과 우리는"(행15:28)이라는 표현으로 밝히고 있다. 곧 예루살렘 총회도 성령의 인도로 진행된 사실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방선교의 그릇으로 택하신(행9:15)사실이나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도(행10) 성령의 독력적사건이시다. 하나님은 바울 선교의 코스도 결정하셨다(행6:6-7).유럽선교의 시작을 환상으로 지시하셨다(행16:9-10). 바울선교의 주도권은 바울자신보다 그를 도구로 쓰시는 성령이심을 사도행전은 거듭 강조한다(행18:9-10).

III. 결론

선교는 구원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런 선교관에 비추어 볼때 지금까지의 선교운동에 두가지면에 충분한 주의와 관심이 집중되지 못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선교의 주역성에 대한 인식문제이다. 선교의 당위성과 방법론은 선교학의 관심 대상이 되어 왔으나 선교의 주역인 그리스도의 주권성이 충분히 강조되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교대령에서 네가지의 동사는 분석하고 그 의미는 강조하긴 하면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권세와 그의 주권에 대한 순종으로써의 선교의 의미가 도외시된 점이다. 지금까지의 이점이 보다 더 강조되었던들 선교의 결과로 파생되는 교파의 날립현상이나 선교사들의 피선교지에서의 부조리가 극소화되었을 것이다. 개신교회의 교회관은 지나치게 로마 카톨릭의 교회관에 반대하는 것에 너무 집착한 감이 있다. 기독교 개혁자들이 강조한 교회의 3대 표식인 말씀,성례,권징은 선교가 배제되는 수동적인 교회관이다. C.W.Williams가 지적한 대로 오늘날의 개신교는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인 수동적이고 고정적인 교회관에서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면서도 선교를 강조하는 교회로 변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