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성장과 민족복음화(국내선교의 분석과 방향)


시작하는 말

우리 시대 동안에 남자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최근 한국의 사성 장군의 말에 의하면 몇년 전에는 장군이 될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었다고 한다.그러나 지금은 교회의 장로가 되면 장군이 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기독교가 보편화 되어 있고 거의 문화해 됐다는 증거이다.한국교회는 선교사상 별로 있어 보지 못한 성장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운데 이루뤄진 한국교회의 성장은 놀라운 현상인데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장점을 보강함으로써 지속적 성장을 통해서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한국이 되기를 바란다.

몇년 전 안식년을 받아 스코틀랜드에 있는 에딘바라 대학교의 선교연구 센타에서 연구교수로 갔던 적이 있었다. 소장이신 윌즈교수가 저에게,"당신은 미국에 오래 살고 계시는데 미국교회의 선교상황은 어디에 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셨다. 잠시 생각한 후 나는 이렇게 요약했다."미국의 선교는 오후 2시쯤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끄러면 한국교회의 선교는 몇시에 와 있습니까?""아침 7시에 와 있습니다. 이제 막 해가 떠올랐습니다. "14년간 아프리카 선교사의 경험을 가지신 노교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 유럽 교회의 선교는 밤 9시가 벌써 지났습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제 해가 뜨기 시작했다. 현재 해외에서 섬기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의 대부분은 70년대 이후 특히 80년대에 소명을 받고 나갔다. 이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세계선교의 사명은 지대하며 세계교회는 한국교회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선교시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선교의 본부인 국내외의 한국교회가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힘, 인적인 힘,교육의 힘,정치적인 힘,인격의 힘, 경제적 힘,협력의 힘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제조건이 있어야 2000년대를 향한 민족과 세계의 복음화를 완수할 수 있다.

I. 한국교회의 경이적 성장

세계선교는 파송교회들의 강력한 영적 뒷받침을 전제로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교회의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을 때 선교의 사역과 사회적 변혁을 동반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곤 했다.

한국교회는 수적인 성장에 있어서 아이보리 코우스트와 과테말라의 13% 다음으로 년 성장률이 12.5%로 세계 제2위를 기록하고 있다. 1991년도 문화부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에는 120개의 교단에 속한 거의 4만개의 교회에 신구교를 합해 천만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했다. 인구의 4분의 일이다. 특히 70-80년대의 성장은 가히 놀랄만한 일이요 하나님께서 한국 땅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주셨다. 그 영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우리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개교회가 둘로 분리된 상황에서도 대략 2년 정도가 지나면 교인의 수는 분리되기 이전의 수만큼 양쪽 다 성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때로는 신기함 마저 느끼곤 한다. 성장이 둔화되기는 했다하더라도 아직도 지속적으로 성장은 계속되고 있고 서양의 교회처럼 교인의 감소현상은 그리 많이 볼 수 없다. 이 현상은 국내외 교회의 공통된 현상이다.

1906년에 한국교인은 1516명이었다. 1930년에는 30만,1974년에는 300만, 1990년에는 1000만이 넘었다. 물론 수적 성장이 전부는 아니다. 내적 성장이 미쳐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80년대의 소그룹 성경공부와 제자화 운동을 통해 상당히 다져지고 있어 내적,외적으로 성장하는 한국교회가 이제 갈 곳은 하나 밖에 없다.한국교회의 힘을 모아 세계선교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장시켜 주신 한국교회의 특징을 분석해 봄으로써 성장의 요인이 된 장점은 계속 발달시켜 세계선교에 필요한 교회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역사적 요인

한국민족은 수난의 역사를 자랑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이 아세아 대륙의 한 귀통이에 위치하면서 대국들 사이에 끼어 수천년동안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며 그들을 의존하고 살아왔다. 금세기에도 일본의 억압 밑에 신음하면서도 복음이 들어온 이래 이제는 기도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신앙으로 어려운 인생을 살 수 있었고 교회는 민족의 독립운동에 중심지의 역활을 했다. 4300년의 역사 속에서 30년도 지속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민족으로 약소민족의 서러움을 뻐저리게 체험했다. 또 샤마니즘의 종교적 배경을 가진 우리 민족은 불교와 유교를 믿어 왔으나 불교는 타락하여 실망을 남겨주고 산속으로 들어갔고, 유교는 이조의 망국적 최후를 남기고 일본의 속국이 되는 마지막 못을 박았다. 그즈음 기독교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우리 민족은 중국,소련,일본,또는 어떤 대국도 초월하시는 우주의 주재이신 절대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힘에 의하여 짓밟혀 오던 민족은 모든 것을 가능케하실 수 있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게 되었고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체험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 6.25의 비극에 이어 가난을 극복하고 일어서는데 기독교의 신앙은 상당한 힘이 되어 한국 민족에게 꼭 필요한 신앙이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는 신앙이다. 우리 민족은 드디어 우리를 일으켜줄 신앙을 찾았다.

문화적 요인

"수난의 여왕"이라고까지 불려지는 한국민족은 태고로부터 샤마니즘의 신앙을 이어받아왔고 지난 1500년간을 불교와 유교가 왕성하여 우리 민족속에 깊은 종교성이 생겼다. 그러나 전통 종교가 실망을 남겨주고 밀려나던 바로 그때에 서양으로부터 새로운 종교가 이땅에 들어왔다. 우리 민족에게는 적절한 때였다. 하나님,기도,축복,선행,지옥,천당 등,심지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이란 개념마저도 생소하지 않아서 우리 민족이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남하한 북한 교인들

6.25 전쟁 중 기독교가 왕성하던 북쪽에서 살던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이 남쪽으로 넘어왔다. 평양의 주일 아침 성경과 찬송을 들고 교회로 향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북한의 어떤 도시는 70%가 기독교인인 곳도 있었다. 신학교가 평양에 있었고 민족의 지도자를 많이 길러낸 기독교 학교들이 북쪽 땅에 곳곳에 있었다. 이들이 해방 이후, 특히 전쟁도 중 대거 남하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는 무런 힘이 없었다. 부르짖는 회개와 간구의 눈물 뿐이었다. 6.25직후 남쪽에는 북에서 내려온 교회지도자들이 주도하는 교회와 신앙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수많은 교계 지도자들 대부분이 북한 출신이었고 그 영향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일제시대와 공산주의 하에서 순교적 신앙을 체득하고 남하한 기독교이들은 남한을 복음화 하는데 지대한 활력소가 되었다.

수많은 헌신자

한국 초대교회 당시부터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분들이 다수 헌신함으로써 한국교회는 많은 사역자를 얻게 되었다. 선교지 어디를 가도 한국만큼 많은 헌신자를 갖고 있다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 나라들이 남자 헌신자의 부족으로 교회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오늘 현재도 조그만한 땅에 46개의 신학교가 있고(개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8500명의 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헌신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인들과 심지어 일부 교인들 마저도 많은 목사들은 대학에 못들어간 사람들이 신학교에 갔다고 업수히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다. 사실상 그런 예가 없지는 않을 것이나 목회만은 할 일이 없어 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사역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소명감 때문에 신학교를 갔지 할 수 없어 간 것이 아니다.

현재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에 사는 한국인의 수는 전 미국인 인구의 0.3%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신학교 한국 학생의 수는 신학교 마다 5%내지 25%까지 차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 학생들의 수는 감소되고 있는가하면 한국계 학생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예를들면,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150명,프린스턴에 100명,달라스에 100명, 풀러에 150명, 위싱톤에 40명, 탈ㅂ에 40명, 골든 게이트에 150명,트리니티에 70명 등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얼마든지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명을 받아 신학교에 와 있는 한국계 젊은이들이다.

작년 어바나 '90대회 때에도 미국 전역에서 참석한 대학생들이 19000명이었는데 한국계 학생들마도 1400명에 달해 주최측에서 놀랐다.그중 400명이 선교사를 지망하며 헌신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중요시 여겨 삶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못가서 신학교에 가는 것만은 아니다. 설령 지넉으로 다소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해도 신앙운동은 학교점수로 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가 예루살렘 대학 출신들이 아니요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 많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헌신한 "어리석은 자들을 들어 세상의 지혜를 부끄럽게"하시며 복음의 능력을 이 땅에 보여주셨다. 그러면 이 많은 헌신자를 어디다 쓸 수 있나? 한국 교회에서 남은 헌신자는 전 세계의 선교지에 보내면 된다. 미복음화 지역만해도 12000이나 되는데 2000년까지 10000명의 선교사를 보내겠다고 하는 한국교회의 선교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열심 있는 기도

한국의 무속신앙과 불교신앙의 전통 속에서 의식화 되어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기도생활을 하는데 습관상 아무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실재와 능력,사랑과 보살핌을 현실적으로 체험한다. 길선주 목사를 통해 시작된 새벽기도는 모든 교회에 퍼져있고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기도, 통성기도 등 열심있는 한국교회의 기도생활은 수많은 시련을 겪어 온 한국교회의 영성에 많은 영향과 힘을 주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와같은 기도의 은혜를 받은 교회는 별로 없다. 기도의 열정은 한국 교회의 장점이요 교회성장을 일으킨 요인으로 교회의 영적인 힘의 근원이어서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축복이다.

열심 있는 성경공부

초기부터 한국교회는 성경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고 성경중심적 목회를 했다. 초창기는 오늘의 부흥회와 같은 모임들이 아니었고 주로 사경회를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셨고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집회를 가졌다.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셨고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기도의 열이 생겼다.

1960년대 초 어느 젊은 자유주의 계통의 선교사가 안식년 중 박사학위 공부를 하러 신앙 때문에 성장되었으나 현대신학을 몰라 문제가 많다고 비판적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 글을 읽고 대답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교회가 성경,찬송,기도밖에 몰라 크게 성장했다면 현대신학을 몰라도 좋으니 계속 성장하도록 가만두라고 한 적이 있다. 사실상 한국교회는 성경을 사랑했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을 상고하라 그 안에 생명이 있느니라"(요한5:39)고 하셨다. 할머니들이 다른 글은 못 읽어도 성경은 읽으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교회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더욱 더 열심히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열심있는 모임

한국교회처럼 자주 모이는 교회는 드물다.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는데 매일 새벽, 주일아침,저녁,수요예배,구역예배,소그룹 성경공부,금요기도회,부흥회,각 선교회,평신도 훈련,전도 훈련, 상담훈련 외에도 어찌도 모이는 것이 많은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열심히 모일 때 힘을 느끼고 상호 격려되고 성장이 도무된다. 그대신 모이는데만 의존하면 가정의 영적 성장과 개인의 홀로서기 능력이 부족할 때도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장점이어서 더욱더 모이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개인적 신앙의 유지와 성장을 통해 개별적 신앙의 힘이 나타나야 한다.

열심있는 전도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은 전도자의 역활을 감당해 왔고 또 하고 있다. 평양의 복음화를 1909년경 시도하며 "백만 구령운동"을 벌렸고, 해방직후의 "300만 구령운동",1970년대의 민족복음화 운동,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1974년 엑스폴로 '74,77복음화 대성회 등이 전도의 열을 고취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교파들마다 배가운동의 계획을 수립하고 교계적으로 전도에 힘을 기우렸다. 한국교계가 비젼있는 전도의 비젼을 세웠기 때문에 각 교회마다 배가 운동,총동원 주일, 춘성성 시화,인천 성시화운동,직장 복음화,군 복음화,병원 선교, 학원선교, 감옥선교,음악선교, 연예인,체육인,시장,교육자,미용인,실업인,택시기사 등등 온갖 종류의 전도활동의 세계복음화를 앞에 두고 민족의 복음화를 다시 한번 민족의 완전 복음화를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전도의 불을 함께 질러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모두 전도에 한번 더 힘을 모아야 한다.

열심있는 헌금

한국 기독교인들은 선한 일을 위해 헌금하는 것을 즐거워 한다. 한국인의 희생적인데가 있고 후한데가 있다. 한국교회만큼 헌금의 종류가 많은 교회도 없다. 십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선교회회비,온갖 종류의 선교헌금, 구제헌금, 건축헌금, 지정헌금 등이 그것이다. 때때로 헌금하는 동기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대도 있지만 여하튼 한국교회의 헌금열은 타교회와 비교해서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시골에서 교회를 건축하려고 사모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판 돈으로 헌금한 사실도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얘기이다. 집을 팔아 바친 예도 적지 않다. 열심있는 헌금은 교회 성장에 기여했다. 선교기관이나 선교사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는데 큰 역활을 했다. 6.25이후 가난 속에서 외국의 도움을 받고 살던 한국이 이제는 다른 나라를 위해서 한국교회의 헌금이 곳곳에서 많이 쓰여지고 있다. 이기적인 교회는 절대로 성장하지 않는다.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남을 위해 주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은총은 나타난다.

열심있는 성수 주일

한국교회의 신앙은 개혁주의적 신앙에 퓨리탄적 생활이 가미되었는데 그 결과로 성수주일의 철저한 습관이 처음부터 있었다. 오늘에 와서는 많이 해이해 지고 있지만 주일 문제 때문에 믿는 자식들은 안 믿는 부모에게서 매를 맞았고 쫓겨나기도 했고 북한의 경우 학교에서 퇴학을 맞았으며 군대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당한 일들이 과거에 많이 있었다. 토요일 밤 12시의 종소리에 두루마기 고름을 달다가 말고 고름 하나로 허리를 둘러 동이고 설교를 했다는 이야기며,주일에 입학 시험을 쳤기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는 예도 있었다. 주일 밤 12시 종이 친 다음에야 책을 펴 월요일 시험 공부를 하던 한국 교인들이었다. 이 성수 주일 습관은 철저한 신앙을 만들어 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이와 같은 열심은 전반적인 신앙적 열심을 일으켜 한국 교회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교회가 세속화 될수록 영력은 사라지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힘이 사라질 수 있다. 성수주일을 바리새적으로 해서는 안되나 철저한 쪽이 아닌 쪽보다 신앙생활에 훨씬 유리하다.

열심있는 교회개척

한국교회는 교회개척을 쉽게 한다. 방하나와 두서너명만 있으면 교회를 개척했다. 너무 쉽게 개척해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쉽게 개척했기 때문에 많은 교회가 생겼고 시작한 교회는 무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성장하기 마련이다. 무이하나 될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인의 절대수는 같으나 한 교인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다닐 뿐 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교회의 내적 문제 때문에 분열된 수 많은 교회들도 최소한 2년 정도만 지나면 양쪽 다 분열되기 전보다 절대수는 훨씬 많아지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물론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교회마다 열심을 내어 전도하기 때문에 성장하게 되고 전체적으로 교회는 성장발전한다. 쉽게 개척하는 전통은 이민교회에도 마찬가지요 이런 습관은 장차 세계선교에 도움이 될 것이고 현재 선교지에서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 선교에 도움이 되고 있다.

열심있는 평신도 목회

한국교회만큼 집사가 많은 교히는 세계에 없다. 어떤 교회는 교인의 절반 이상이 집사이다. 목사님께서 자기교회 집사를 만나 어느교회에 다니냐고 물었다는 얘기는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문제도 많지만 또 한편에서는 많은 평신도들이 교회 사역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구역 목회사역, 봉사사역, 전도사역, 성경공부와 심방사역,기도사역, 구제사역 등 한국교회의 특징 가운데 평신도들의 사역은 한국교회 성장에 중요한 역활을 해왔다. 평신도의 사역은 목회자의 사역만큼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여신도들의 사역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던 여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교회 성장에는 여성의 공헌을 중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여인들을 통하여 남편과 자녀들과 이웃을 구원해 이르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했다. 평신도의 사역을 더 강화되어야 한다.

교인의 자연 증가

기독교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그 자녀들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될 때 기독교인의 자연증가는 10년에 25%가 된다. 이것도 한국교회 성장에 뺄 수 없는 요소이다.

사회적 공헌

한국 기독교는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워 지도자 교육에 공헌한 것은 교회 성장의 넓은 울타리를 쳐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인격과 세계관을 통해 많은 지도자들이 배양되었고 채플의 영향력을 졸업한 후에까지도 지속적 영향을 주고 있다. 기독교 중고등학교의 경우 수처녕의 십대 학생들을 3년 내지 6년동안 복음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대도시 마다 세워진 기독교 학교는 사회적 영향과 함께 한국교회 성장에 직접 내지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학교는 더 철저히 신앙적 훈련을 해야한다. 불신자 학생들의 불평 때문에 타협하기 보다는 더 강하게 도전해야 한다. 신앙운동의 중심을 비신앙인에게 마추어 효과가 나타난 적은 거의 없다. 한국교회의 지속적 성장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모든 기독교 학교들이 더 철저하게 신앙운동을 벌려야 할 것이다. 총장,학장,교장들이 철저한 신앙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교장 선생님이 철저한 신앙인일때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엄청나다는 것을 현재에도 훌륭한 기독교 학교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학원 선교는 교회성장에 대단히 중요하다.

또 병원을 세워 공헌하였다.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 대구의 동신병원, 전주 예수병원,부산의 복음병원과 침례병원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병원이 커지고 경제력이 강해짐에 따라 기독교 병원이 또하나의 병원으로 질병을 치려하는 곳에 불과하고 영적 능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많은 부정적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선교병원의 본래적 목적을 재다짐하고 선교적 사명을 강화해야 한다. 원장과 원목은 설립 목적을 재확인하고 헌신된 사람을 선정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기구들을 복음화의 목적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사람이 병들었을 때 전도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그외에도 고아원 양로원,모자원 등과 같은 자선단체를 곳곳에 세워 운영자들이 많은 고생을 했지만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많은 공헌을 했다. 구제 사업을 기독교이들이 지속해 왔고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YMCA 나 YWCA 와 같은 기독교 청년단체들도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들어 문화적 공헌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많이 해왔고 오늘도 상당한 영향력있는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교회가 한국인의 음악성 개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매주 몇번씩 모여 찬송과 성가를 부르는 그룹은 기독교 뿐이다. 한국교회의 찬송소리는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들을 수 없는 힘있는 소리다. 우리 민족에게 음악성을 주신 것을 감사한다. 열정적 찬송은 교회에 열기를 준다. 더 열심있는 찬송운동이 지속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인권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이 인권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 소수이기는 했지만 앞장서서 국민의 인권을 책임지려고 노력한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또 해방 이후 국립방송과 함께 기독교 방송이 시작되었고 오늘의 극동방송과 함께 교회 성장에 공헌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정치적,경제적,윤리적 영향에 아직 미흡한 상태이나 앞으로 교회가 더 앞장서서 이 부면에 힘을 쓸 수 있어야 한다.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에 기독교가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기독교인이 얼마 안되던 당시 삼일운동 33인중 15명이 기독교인이란 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성장은 지속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를 성장시킨 좋은 영적인 축복들은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세계선교의 사명을 맡은 한국교회는 먼저 민족의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어 내실있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한국인의 파토스는 신앙적 열정으로 이어져 한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기반이 되었다. 열심있는 기도,열심있는 찬송, 열심있는 설교, 열심있는 전도, 희생적 헌금, 열심있는 성경공부, 열심있는 봉사 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축복하시고 계시다. 이 귀한 영적 유산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적 섭리가 계시기 때문이다.

II. 민족의 복음화 과제

남한의 천만 성도가 1000만이라해도 아직 3000만이 넘는 동포가 주님을 모르고 있을 뿐더러 북한의 경우에는 거의 완전히 황무지의 상태이다. 6300만 민족 중 1000만이 기독교인이라면 겨우 13%에 불과하다. 가야할 길이 멀고 2000년대의 세계선교를 앞에 놓고 온 교회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계획하고협력하고 기도하며 민족의 복음화를 이룩해야 한다.

남한의 복음화

가.무교회지역 복음화
어느 통계에 의하면 현재 무교회 지역이 최소한 800곳이 있다고 한다. 이런 지역도 4만교회가 힘을다하고 협력과 계획만 수립된다면 다음 10년동안에 복음을 갖고 들어 갈 수 있다. 50교회가 한 지역씩 맡는다면 쉽게 이루어 질수 있다.

나.미자립교회 문제
한국에 4만 교회 중 13000개 교회가 미자립 교회라 한다. 그런데 미자립 교회의 문제는 재정적인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평신도의 헌신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농촌의 이농현상이 증가함에 따라 함께 목회해 나갈 젊은이들의 부족과 목회자가 머물러 있지 않고 대도시로 나가는 현상이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목회자의 가정을 미자립 농촌지역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목회자가 없는 지역에는 평신도 사역자를 훈련해서 세우고 웨슬레 이후 한 목회자가 여러교회를 순회목회한 것처럼 앞으로도 순회를 해야할런지도 모른다. 현재 군목들이 여러교회를 순회목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무교회 도서지역 선교를 하고있는 기관에서 하고 있듯이 순회목회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특수 선교사역에 사명이 있는 이들이 나선다면 복음화 사역은 가능하다. 또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는 예배녹음 테이프나 브이티알 기재를 이용해서 도시 교회의 예배나 성경공부에 사용하거나 통신 훈련방법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자립교회를 유지하겠다는 사명감과 비젼과 조직과 기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특별한 은사와 사명을 가진자들이 이 가능성을 보고 민족의 복음화를 이룩하려고 한다면 2000년대에까지 이 땅을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농촌교회의 목회자들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자녀교육이다. 도시교회들이 이들을 위해 도시주변에 기숙사를 마련하여 농촌교회의 자녀들이 교육에 협력할 수도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의 부족만 제거한다면 그리고 교계가 협력한다면 자녀교육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의 복음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선교과제는 북한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지역이요 우리의 혈육들이다. 이 세대에 있어서 "세상 끝"은 북한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북한처럼 닫혀있는 나라는 없다. 해방 이후 46년 동안 우리 미족의 2100만명이 하나님의 사랑을 접할 기회가 없이 수많은 동포가 죽어갔다.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 2100만의 인구 중 기독교인이 만명이라고 북한은 말하고 있다. 액면 그대로 받아 드린다해도 0.05%도 안된다. 남한은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당장은 북한사회의 부자유와 통제 때문에 힘들지만 현재 알려진 대로는 북한에도 지하에 신자들이 곳곳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평양에 두교회가 있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성령의 역사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이 1960년대에 소련에서 일어났고 1970년대에는 중국에서, 1980년대에는 북한에서 생겨 우리를 격려하고 역사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이 1960년대에 소련에 격려하고 있고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선교는 현재 불가능하나 간접적인 북한과의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주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는 순간 북한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만반의 태세를 가져야 한다.

우선 조국의 통일을 위해 열심있는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을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제라는 새로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는 하나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대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첫째 문제는 이산가족 만남이다. 고령에 도달한 이산가족들은 앞으로 2-3년 내에 만나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양측 정부가 이점을 감안하고 속한 시일내에 적극적인 태도로 이산가족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민족의 한이 그들 머리 위에 있을 것이다.

둘째는 가능한한 북한의 동포들을 도와야 한다. 그러나 중요히 도와야 한다. 따뜻한 동포의 정을 통해 북한의 상황을 남한의 경제상태와 비슷하게 올려 놓아야 원만한 통일의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이동 병원 추진은 의사가 없는 시골에까지 가서 사랑의 손길을 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요 이동 치과 병원도 동시에 추구할만한 일이다.

셋째로 남과 북은 온갖 교류를 가져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민간교류의 앞장에 서서 가능한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민족의 단일설을 재확인해야 한다.

넷째로 평양의 교회를 돕는 길이 있을 때면 언제나 서슴치 않고 도와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 희망을 주고 격려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의 도시마다 교회를 세우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일단 문이 열리면 북한의 복음화는 잠시 동안에 가능하다.

현재로는 방송선교나 문서선교도 큰 효과는 없다.그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기회를 주실 것이다. 기도하며 준비항야 한다. 북한 선교에 대한 협의회를 구성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기도 중에 마련해야 한다. 북한을 합하면 우리 민족의 13%정도 밖에는 기독교인이 없다. 북한은 상당한 도전을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다.

III. 세계복음화의 과제

세계의 선교학자들은 2000년대가 되면 현재 서구 주도적인 선교와는 다르게 제3세계의 교회가 더 강하게 부각되리라고 믿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도 강렬한 교회 성장과 복음화가 일어나고 있고 남 아메리카에도 과거 언제 보다도 복음이 잘 퍼지고 있다. 양대륙 다 미래의 선교에 대한 꿈을 펴고 있다. 성령께서 두 대륙을 쓰시려고 하면 불가능할 것은 없다. 그러나 두 대륙의 취약점은 교회성장은 있으나 세계선교의 주도적인 역활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적,경제적,정치적 힘이 약하다. 과거에 선교의 요소와 함께 교육적, 경제적,정치적 뒷받침이 있었다. 에딘바라에서 만난 아프리카의 교회 지도자는 아프리카인들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데 서구교회는 재정적 뒷받침을 해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상적인 제안이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제안이다.

그렇다면 아세아 대륙의 교회를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가능성은 크다 지금도 교인수에 비해 선교사 바울은 불란서의 수준에 달해 있어 선교적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단 기독교인의 절대수가 너무 적다는 거이 약점이다. 중국은 현재 일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이 있으나 공산주의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중국의 삼자교회가 세계선교에 나서기에는 아직은 부적합하다. 인도네시아 교회도 상당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어 선교적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강한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시 남미와 아프리카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인도와 필리핀도 비슷하다. 결국 아세아에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차지할 책임이 뚜렷하다.

한국교회는 성장하고 있고 세계적인 비젼이 있다. 성경공부와 제자화 훈련으로 다져지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세계를 향한 선교적 공헌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에 떨어진 학생들은 미국에서 대학에 붙은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젊은이들이다. 한국인은 시련을 거쳐 연단된 민족이다. 한국인 특유의 매서운 추진력도 있다. 협력에는 약하나 개인적인 성취력이 있다. 이제 머지 않아 통일된 민족으로 남북이 복음화된 7000만 민족이 되면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비젼을 서로 확인하고 시대적 사명의식을 고취하여 협력의 새로운 장을 펴며 국내외의 한인교회들이 종합적 선교 계획을 수립하여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선교적 기회를 겸손하게 감당할 태세를 취하여야 한다. 이 사명을 위하여 한국교회를 더 성장 강화시켜야 하고 세계 선교를 위하여는 기필코 서로 협력하여 2000년대에는 한국이 [선교국가]로써의 사명을 충분히 감당하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주여, 여기 있사오니 우리를 보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