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의 신학교육.......................신흥식

선교지는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다. 종교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러하다. 신학적으로 보수주의로부터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이 고르지 않고 수준도 각 가지다. 제자훈련으로부터 평신도 지도자 양성,목회자 단기훈련,각급 신학교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이 다양하다. 반면 공통점도 적지 않다. 대부분이 개발 도상에 있고 거의 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중에 뚜렷한 것은 기독교가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소수'종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마저도 복음적 신앙은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선교지의 신학교육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단순치 않다고 본다. 다만 본인은 기독교가 소수인 개발도상의 불교국에서 신학교육에 주력한 자로서 성경적 보수신학을 전제로 한 대학수준 이상의 정규 신학교 교육을 통한 선교증진을 염두에 두고 이 제안을 한다.선교지에서의 신학교육은 선교사역에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된다 하겠다. 한국교회의 성장이나 선교지 기존교회의 성장부진은 주로 성경적 신학교육의 정착 여부에 달렸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제 몇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져 선교지 신학교육의 역할과 효율성(The role and effectiveness of theological education in mission)에 역점을 두고 논의해 보고자 한다.

1.선교적 차원(Missiological Considerations)

1.1 첫째 신학교육은 전도자 증가(multipilication of evangelists)를 기할 수 있다. 신학교육에 헌신하는 선교사들에게는 직접 전도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주님의 선교 위임령을 살펴보면 한편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지도자 양성의 명령도 있다. 신학교육은 단시일에 열매를 볼 수 없는 사역이지만 3,4년후부터는 저들이 동족에게 들어가 자국어로 일평생 복음을 전하게 되니 얼마나 효과적이며 계속적이며 보람있는 사역이라 하겠는가! 본인은 약 15년 간 선교지 신학교육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간 배출된,태국에서는 상당수라고 할 수 있는 100여명의 전도자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복음의 불을 밝혀 어둠의 세력을 정복하고 있어 흐뭇함을 금할 수 없다.

1.2.둘째,신학교육은 현지인의 문화적 관련성(cultural relevancy) 때문에 외국 선교사들이 가능한 한 초기부터 힘써야 할 사역이다. 기독교는 서양인 또는 압제자의 종교라는 '외국성' 때문에 심각한 선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말씀으로 잘 무장된 현지인 사역자들이 자국어로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효과적인 선교전략이 될 것이다. 문화적, 언어적 거부감 없이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선교역사도 초기에 선교사들에게 큰 빚을 졌지만 획기적인 교회성장은 모두 한국인 목회자, 전도자,부흥사에 의하였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2. 교회적 차원(Ecclesiatical Functions)

2.1.신학교육은 교회성장(Church growth)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할 것이다. 교회성장의 성서적 권위자인 G.W.Peters 박사는 교회성장 요소를 3분야로 소개하였다. 하나님의 메세지,하나님의 종,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다. 생명의 메세지를 전하는 자가 주의 종이므로 그들을 배출하는 신학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바 없다. 하나님의 메세지와 하나님의 말씀은 좀 다르다. 전자는 주관적이요 상대적인데 비해 후자는 객관적이요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메세지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사람의 필요에 응하느냐 하는 것은 그것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에게 전적으로 달린 문제이므로 현지 교회 성장에 신학교육이 공헌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보수교단 교회의 급성장도 큰 원인이 신학교육의 정착에 있었다고 보겠다.

2.2.교회성장뿐만 아니라 교회단합(Church unith)에도 신학교육의 사명은 크다. 대부분의 경우 선교지 교회발전에 장애요소가 있다면 교역자 수준에서의 신조관념의 희박성이라 하겠다. 생명을 걸고 지킬 교리가 없다는 것이다. 생활조건이나 사역의 조건에 따라 쉽게 교단을 옮기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충실한 신학교육으로만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3. 교육적 차원(Pedagogical Problems)

3.1 신학교육에는 신학생들의 '주의 종'으로서의 인격형성(intgrity)문제가 가장 중요하겠다. 지식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이다. 필요함은 물론이지만 많은 경우에 교역자의 인격이 문제되어 복음사역에 장애 될 때가 있다. 성경에도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다. 교역자들의 선한 행실은 생수를 끌어들이는 도관이라 할 만큼 전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인격형성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신학교 기숙사에서 돈가 물건이 분실되고 시험에 부정이 있고 거짓말을 하고 신학생 간에 이성문제로 시간을 들여야 할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존경받는 부흥사 신학생 한 사람은 시험에 부정을 하고 마음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부흥회 인도차 떠나기 직전에 본인에게 찾아와 눈물 흘리며 회개한 적이 있다.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마는 '선교지에서'라는 면에서 참으로 대견스럽기만 하였다.

3.2.둘째.신학교재(readable texts)와 교육언어(educational media)문제이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같은 영어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교지가 현지어로 된 신학교재 부족에 당면하고 있다. 태국의 방콕신학원(Bangkok Institute of Theology)의 경우 도서관은 교과과정에 필요한 요구 부수(12,000권)을 비치해 놓고 있지만 대부분이 영어로서 많이 읽혀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신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현지어 신학교재 출판이 시급한 문제이다. 또 한편으로는 현지인 교수요원의 부족으로 선교사의 불충분한 언어, 또는 통역으로 교수하는데 따른 교육적 자질 문제이다. 가능한 한 단시일 내에 부족한 media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3.3.셋째, 실습훈련 문제(on the job training)다 많은 신학교육의 내용이 이론적이기 때문에 탁상공론에 끝나지 않나 하는 우려다 실습할 수 있는 교회도 제한되어 있을 뿐더러 훈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영적 성장과 교육 program을 갖춘 교회가 거의 없는데 큰 원인이 있다. 한국의 경우는 신학생들도 거의 주말에 교회에서 비중있게 봉사하고 있음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선교지에서는 실무교육의 기회가 결여되고 있음이 문제이다.

3.4 마지막으로 선교지 신학교육의 교과과정(curriculum)이 문제라 하겠다. 대개의 경우는 서구식 교과과정을 모방한 느낌인데 그중에 어떤 것은 선교지에 맞지 않으므로 선교사는 현지 사정에 맞추는 창의적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미국의 신학교육은 교회가 있는 풍토(church-land)이기 때문에 주로 교회성장학을 강조하고 교회개척(church planting)에 대한 정규과목은 드물다. 그러나 교회가 없는 지역(churchless-land)에서는 교회성장학 보다 교회개척학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교과과정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는 신학교육의 효율성을 높혀 주리라 믿는다.

4. 운영적 차원(Operational Aspects)

두 가지 고려하여야 할 분야는 신학교 설립에 경합(institutional dupli- cation)으로 빚어지는 문제들과 운영의 형태(operational differences)라 하겠다.

4.1.먼저, 신학교설립의 경합에 대하여 말하자. 신학노선이 다르다면 몰라도 신학노선이 같을 경우에 한 지역에 동일한 수준의 신학교를 두 곳 이상 설립한다는 것은 노력의 낭비는 물론 선교지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신입생수의 감소로 인한 모집경쟁의 문제는 물론 교수요원의 부족과 교육의 자질 감퇴로 학적인가(accreditation)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자연히 뒤따라 오게 마련이다. 제한된 자금과 선교인원으로는 사역의 중복이나 노력의 분산을 어떤 희생을 무릎쓰고라도 피하여야 할 것이다.

4.2.다음으로 운영의 형태에 대해서 언급하자.선교지 형편에 따라 어떤 경우는 무교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를 설립하여야 하는 단계에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여야 할 때가 있는가하면 어떤 경우에는 이미 교회가 있는 지역의 신학교에서 현지인들과 협력하여야 할 때가 있다. 그 밖에 다른 특수한 형태의 경우도 있겠으나 이상의 개척과 협력의 두가지 형태만 생각해 보자.

4.3 개척의 형태에서 신학교를 처음부터 세워서 운영할 경우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신학교육의 토착화(indigenization)라 하겠다. 교회개척에 있어서 토착화는 자치,자립,자전도의 3차 원리가 있어 이미 익숙해 있지만 신학교 토착화에 있어서는 그 방법론이 정립되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도 신학교가 자립한지는 얼마 되지 않아 늘 선교부의 지원으로 운영되어 왔던 것을 보면 신학교 토착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세워진 신학교에서 복음주의 신앙에 철저하면서도 영혼 구원에 불타는 신학자,현지에 세워진 교단에서 신앙과 인격의 모델이 될 만한 현지인 지도자가 빨리 나오면 나올 수록 토착화의 길은 빠를 것이다. 선교사들이 교장이 되고 교수를 맡는 것은 형광등의 start light역할에 불과하므로 현지인 교장과 교수에 의해서 동족을 교육,훈련하는 단계에 접어 들어야만이 선교는 주초를 반석 위에 세웠다고 할 것이다. 우리들의 선교지에서 제2의 '박형룡','박윤선'과 같은 신학교육자들이 나오도록 현지 선교사들은 물론 본국 교회에서도 교단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4.4. 협력의 형태에 있어서는 이미 세워진 신학교에서 현지인과의 협력의 자세가 문제이다. 대부분의 선교지에는 미약하나마 이미 교회나 신학교가 있으므로 신앙노선이 같을 경우 그 신학교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내것'이라는 소속감은 없을지 모르나 현대 선교의 제3세기 서두를 바라보는 단계에 있어서는 참으로 중요한 선교 전략이라 하겠다. 이런 경우에 선교사들은 현지 운영자들과 동역자(fellow worker)라는 입장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새로운 면을 제시해 줌이 크게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동역'이라 할 때 동료 선교사간에도 중요하지만 피선교지 지도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참으로 중요함을 행여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바울의 동역자들 중에는 함께 파송받은 자도 있었지만 그의 중요한 동역자들은 대개 현지에서 개발된 사역자들이었다(디모데,누가.디도,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현지인과의 동역에 큰 저해 요소는 우월감이다. 현지인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과소평가는 '바보스러운' 발상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실진대 현지 사역자들에게도 얼마든지 강하게 역사하셔서 효과적으로 신학교육을 하게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척토착화도 중요하지만 협력활성화 역시 중요하여 양면작전으로 어떻게든 선교 효율 높이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줄 믿는다.

5. 선교사적 자원(Missionary Reminders)

5.1. 먼저 그 자격(qualifications)을 생각하자. 신학교육을 책임 맡은 선교사는 학적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선교현지에서의 사역경험 또한 중요하다. 현지 선교일선에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현지인 생활 풍토들을 익힌다는 것은 학적자격에 못지않게 필요하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에 헌신할 선교사들은 교육사역 착수 전에 먼저 얼마 동안은 현지 일선사역에 깊이 참여토록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산 신학교육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지식 전달이 아닌 아므과 마음이 부딪히는 인격교육을 위해서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점이다. 선교사는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 언어, 문화,관습,교회풍습에 있어서 유치원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이 갭(gab)을 속히 축소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5.2 다음은 신학교육에 임하는 선교사의 태도와 각오(attitude/resolve)이다. 중요한 것은 겸손의 태도이다. 상사에서 해외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현지직원을 채용하여 다루듯이 하는 태도는 선교 사역에 큰 방해요소가 될 것이다. 현지인들과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또 현지인들이 무능하다 할지라도 멸시치 말며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인내로 관용하는 희생의 각오가 없이는 이 원대한 사역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동양권에서는 이상의 것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명서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

결론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신학교육은 어디까지나 현지 교회를 위한 것이다. 현지 교회들의 관심과 참여(support from the national church)가 없이는 실을 거두지 못한다. 물적 지원도 중요하고 헌신자들을 양육하여 신학생 후보의 모판이 되어주는 일이 또한 시급하다.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본국 교회로서는 가능한 한 범교단적으로 아니면 교단적으로라도 선교지마다 신학교 설립계획을 세워 적극지원(support from the home church)토록 하여야 하겠다. 선교는 선교사의 사역이기도 하나 근본적으로 교회의 사명이므로 교단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리라. 선교사들의 개인적 일처럼 현지 신학교 운영을 위해서 자리를 배우고 본국을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선교구조는 지양하여야 한다. 선교지마다 신학교육이 더욱더 활성화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