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시작

본 문 : 마태복음 1:1

마태는 갈릴리의 원주민이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로서 레위라고도 불리웠습니다. 유대인들은 흔히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세무 공무원이었으며, 고리 대금업자이기도 했습니다. 가버나움의 근처에서 다메섹과 아크레를 잇는 도로를 통하여 수송되는 상품들로부터 관세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또는 갈릴리 지역의 어업이나 공산품의 세금도 부과하는 임무였는데, 그것은 헤롯 안디바를 위하여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는 이 직책을 이용하여 많은 토색질을 하였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고리 대금업을 하여 재물을 늘렸을 것입니다.
당시의 형편에 비해서 매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은 다른 사도들보다도 포기해야 할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유물론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지혜를 아셨습니다. "레위여 나를 따르라"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마태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복음서에서 마태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가 구약의 예언자들이 약속한 메시야 임을 믿었습니다. 그 증명을 위해 그의 정력과 의지를 다 기우린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옛 동료들인 세리들과 그의 집에서 만찬석에 앉았음을 누가는 말합니다(눅 5:29). 옛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동료였던 세리들을 주님께 소개하는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들로 여겨주신 주님께 대한 감시의 표시였는지는 모릅니다. 주님 승천 이후, 마태는 유대인들 속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며, 죽을 때까지 채식주의자로 겸비의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권세있는 세리로서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돈만 알고 살던 그가 채식주의의 소박한 생활을 했다는 것은 얼마나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알려주는 좋은 예입니다. 후대의 전승에 의하면 불에 타 죽었거나 칼에 맞아 순교 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는 사도로서 커다란 감사의 빛이 항상 그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정확한 말씀의 예수를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에게 있어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강조하고,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복음이 이해 되도록 애썼습니다. 또한 예수를 직접 목격한 복음의 첫 세대가 점차 사라져 가는 때에, 주님의 행적을 분명하게 남기기 위하여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주후 60년 경에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는 예수가 구원의 왕이신 메시야이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복음서를 강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대로라면 복음서의 강해가 모두 마쳐지기 전에 기쁜 소식의 주인이신 주님이 재림 하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복음서의 강해가 끝나기 전에 주님이 오시기를 기도하면서 이 강해를 시작합니다. 신약성경의 앞에 있는 네권의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이 어떤 복음서보다도 종말에 대한 묵시적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1992년 10월이면 주님의 공중 재림이 있고, 십사만 사천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떠드는 풍조 속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을 강해하므로서 주님 재림의 진상과 종말에 있을 거짓 선생들의 허구성을 여실하게 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 재림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올바른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신약성경을 여는 첫번 책의 복음서로서 마태복음을 말씀 드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글로서 기록되어 있지만 읽는 이에게 영감으로 지금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과거가 없습니다. 미래 또한 없습니다. 언제나 현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는 것은 항상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기록된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크게 두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인 구약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로 말씀 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감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둘째 부분인 신약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예수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신약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 그리고 계시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 안에 계시는 동안 아들은 사복음서 안에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을 통하여 그 영으로 말씀하시기를 계속하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통하여 그 영으로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이 생명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신 인격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구약에서 그리스도는 오실 분으로 묘사되셨습니다. 오시리라고 예언 되셨던 그 분이 신약 안에서 오셨습니다. 어거스틴은 신약은 구약 안에 포함되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표현된다고 했는데 매우 적절한 말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한 성경입니다. 그 안에서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생명을 얻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약성경의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하십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약의 첫 페이지 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거기에는 발음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한복음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은 생명에 대한 많은 말을하기 때문에 흥미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을 읽습니다. 누가복음은 구원에 대한 많은 경우가 있어서 '구원자의 책'이라고 불리웁니다. 마가복음은 짧고 간단합니다. 현대인들처럼 간단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든 성경이 마가복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를 다 읽어 본 후에 마태복음을 읽어 보지만, 마태복음은 역시 어렵고 너무 비밀스럽습니다. 1장만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13장에 있는 비유들과 24장, 25장에 있는 예언들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5,6,7장에 있는 산상수훈은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실천 가능하지 못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은 좋아하지만 마태복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꼭 그렇다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성경을 편집했다면 사복음서의 순서를 성경의 순서와 같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요한복음부터 시작해서 누가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순으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신성한 관념과는 정반대되는 인간의 관념들입니다.
신성한 관념은 마태복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마가, 누가, 요한복음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셔야만 했을까요. 어떤 책이든지 시작하는 말과 마치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책뿐만 아니라 매사가 다 그렇습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표현해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마태복음의 그 첫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셔야 합니다. 신약의 첫 구절은 그리스도의 족보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마태복음을 대할 때 족보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1장 1절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첫 부분을 건너 뛰어서 18절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발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 1장의 1절부터 17절까지 다 읽어야 합니다. 아니 꼭 읽고 지나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구약 전체에 대한 하나의 개요입니다. 구약을 모르고서는 신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족보의 의미를 알려면 전 구약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족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 보십시다.

둘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입니다(마1:1).
사복음서 모두가 주님의 족보를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족보를 갖고 있습니다. 마태는 실존 예수가 왕가의 합당한 후손이며, 왕좌의 합법적인 계승자임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는 그의 근원과 혈통을 말하는 족보가 필요할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를 하나의 합당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제시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족보가 필요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노예로서, 노예로 팔린 사람으로서 제시됩니다. 노예에게는 족보가 필요없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족보가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시작이 없고 혈통도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 하십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만약 요한이 족보에 대하여 논했다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의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위대하거나 혹은 덕스러워서 얼마나 많은 자서전을 썼든지간에 족보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두 족보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는 위대한 왕으로서의 족보요, 또 하나는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족보입니다. 그리고 이 족보들은 결국 하나가 됩니다. 한 근원에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하신 말씀으로서 시작됩니다. 드디어 우리는 주님의 족보에 왔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과연 예수는 누구이십니까? 우리는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천연덕스러운 관념에 마태복음은 쐐기를 박습니다. 왜냐하면 이 족보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대신 이 족보는 예수를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십니다. 이것이 예수의 혈통이십니다. 예수의 혈통은 신성한 존재와 매우 많은 사람들, 즉 모든 사람들과의 연합을 가지는 놀라운 신비를 보여 주십니다. 1장 1절에서 17절까지 나열된 인명들만 보더라도 대단합니다. 이들은 모두 왕위 계승의 혈통들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먼저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가진 메시야라는 주장으로서 그의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예수라는 칭호는 21절에 설명되어 있기에 뒤로 미룹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서 히브리어의 "메시야" 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등의 말과 상통하는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이 말은 어떤 특별한 직무를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된 자들에게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왕, 제사장, 선지자들입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마 28:19) 만왕의 왕, 오직 그만이 인간의 모든 죄를 속죄해 주실 수 있는(행 4:12) 대제사장, 그리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이끄시는 대선지자로서의 삼중직을 가지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 약속된 종말론적 통치를 소개시킬 자를 가리키는 고유한 말로도 사용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은 메시야 대망 사상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망하는 메시야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서로 다른 두 "메시야 상"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는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이라는 개념이 결국 한분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그 자신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16장 16절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을 적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선지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야 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이 믿음의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의 몸된 교회를 어떻게 세우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수는 그를 물고 늘어지는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헤롯 성전을 가리키면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하셨습니다. 헤롯 성전은 헤롯대왕이 유대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40년 동안 중축하여 황금으로 꾸민 세계에 자랑할만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런 성전을 사흘만에 짓겠다고 하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예수가 죽으로 가겠다고 하자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 22:33)"하고 장담 하였으나 유다의 배신으로 주님이 잡혀서 불법의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될 때에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예수가 만민의 죄를 대신 질머지고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무덤에 묻힌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세상에 40일을 계시다가 승천 하셨습니다.
승천하신 후에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능력으로 임하시고 사도들이 그 충만을 입었을 때 베드로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인 오순절 집회에서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그리고 돌로 만든 성전이 아니라 그 몸안에 주님이 거하실 교회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마태복음에서는 18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하게 평상적인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마태복음의 서언이라고 할 1장에서만도 3번이나 사용됩니다.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마태의 신앙적 입장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메시야적 칭호로서 뿐만 아니라 단순한 이름으로 사용하는데도 익숙해 있습니다. 마태는 그의 신앙에 따라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언에 따른 메시야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고백하려고 한것입니다. 오늘날도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제자들은 주님의 삼중직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에게 있어서 "다윗의 자손"은 의미있는 칭호입니다. 다윗은 예수의 족보상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습니다. 마태복음 전체에서도 여러번 언급되어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영원히 져버리지 아니하시며(시 89:29), 다윗의 자손중 하나를 택하여 그의 나라를 계승하게 하고, 나아가서 그의 계승한 왕위에 의하여 다윗의 나라와 그 왕위가 영원토록 견고히 보존되게 할 것이라는 언약(삼하 7:12-16)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두메 출신의 헤롯왕가는 약속하신 메시야로서 아기 예수가 태어 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를 제거하기 위하여 두살 이하의 영아를 학살하는 잔인성을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는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마태는 이 약속을 상기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유대 백성들과 맺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맨 처음에 아브라함과 맺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약속을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 예수는 다윗에게 주어진 나라에 대한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이방의 모든 세계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는 지금도 거룩한 영의 나라인 교회를 건축하고 계십니다. 모든 이방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새생명을 얻으며 영생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신앙을 가지려면, 성경은 그 기록이 끝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활자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영감에 의하여 성경을 듣는 이에게 말씀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를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그 분부대로 실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리 마태의 성품이 변화하여 초식주의자의 담백한 삶을 산 것같이 우리의 신앙도 마태의 신앙을 본받아 주님께 합당한 신앙으로 지어져 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991. 11. 24 -설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