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몬(Amon)


랍바 : <A href=랍바는 옛 암몬족속의 도시로 오늘날의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과 동일시되고 있다. 다윗랍바를 정복하고 암몬족속을 지배하였었다."> 모압 지역의 경계는 서쪽은 사해, 동쪽은 사막지대, 남쪽은 세렛 강, 북쪽은 아르논 강이나, 성경은 종종 모압 북쪽의 여리고 맞은편 평지를 일컬어 '모압 평지' 라고 부른다. (민:21:12-14, 20, 22:1, 수13:32) 산지는 주로 해발 900 미터 이상 되는데, 이러한 고산 지대는 겨울철에 풍부한 습기로 인해 포도와 농사에도 적절할 뿐만 아니라, 좋은 목초 지를 형성하여 목축에도 적합한 곳이다. 이러한 모압 땅의 환경으로 인해 모압메사는 양을 치는 자로, 모압의 조공은 해마다 새끼양 털 10만과 수양의 털 10만을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바쳤다(왕하3:4).

1) 요단의 동편 모압의 북편인데 그 수부는 랍바이다(삼하11:1, 겔25:5, 암1: 41).

2) 주민은 롯의 자손(창19:38).

3) 주민의 성격이 잔인무도하여 싸움을 좋아하고 원수의 눈을 빼는 일과 잉 태한 여인의 배를 가르는 일을 한다(삼상11:2,암1:13).

4) 유대인들은 두가지 사건으로 이 족속을 미워한다.
* 이스라엘 백성의 통과할 도로를 빌려주지 않았다.
*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다(신23:4).

5) 솔로몬왕의 처 가운데 르호보암의 어머니 나아마암몬 여인이었다 (왕상 14:21).

6) 이 족속은 일곱신을 숭상한다(왕상11:5).

로마 원형 극장:다운타운(중심가)으로 부터 5분 거리의 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로마극장은 암만이 로마 도시의 하나인 필라델피아로 기능했을 당시의 유산들 중에 파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의 하나이다. 암만은 현대의 하시미트 요르단 왕국 (Hashemite Kingdom of Jordan)의 수도로서 행정부와 왕궁(까스르 라가단 : Qasr Raghadan)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고대 근동의 주요한 고대도시의 하나이다.

구약시대 '암몬의 랍바 성읍(신 3:11)' 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물이 풍족한 지역이었으며, 지금부터 약 9천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다. '랍바' 란 단어는 '주요 도시' 또는 '수도' 란 의미를 지닌다.

이곳 랍바가 역사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3세기 암몬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였다. 랍바를 중심으로 했던 암몬 왕국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었다. 두 나라는 적대적 경쟁 관계여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암몬 왕국은 주전 8세기 말, 앗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당한 후 4백년 이상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시타델(Citadel) / 암몬 성터 : 해발 850m의 고지에 매우 견고하게 건설된 암몬 성은 현재 아랍어로 '자발 엘 깔라아' 로 불리운다. 주변 사방의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성채는 로만 비잔틴 시대의 것이 남아 있으나 아래 성채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성경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암몬' 은 의 후손(창 19:38)들로서 '나의 백성의 아들(벤 암미)'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족속들의 가나안 진입과 관련하여 암몬 자손의 땅을 지나 여러 중요 도시들을 점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민 21:24-35, 신 2:19-37) 이 시기에 암몬은 이미 강한 나라로 성장해 있었으며 그 경계는 견고하였다. (민 21 :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암몬 자손의 땅 절반 곧 랍바 앞의 아로엘까지를 자손에게 분배하였다. (수 13:24-28) 암몬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었으며, 따라서 종종 전쟁이 벌어졌다. 여호수아에서 사울 왕까지 이르는 사사시대 동안(1,200 - 1.025 B.C.) 암몬 족속들은 모압에글론왕과 동맹을 맺고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여리고를 18년 동안, 에훗에 의해 퇴각될 때까지 점령하기도 하였다. (삿 3:12-30)

사사 입다의 시기(삿 10:6-12:6)에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 사울왕 때(기원전 1,025년경)에 암몬나하스요단강 서편지역 '야베스 길르앗'까지 침입해 들어왔다. (삼상 11) 다윗의 암몬 정벌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삼하 10:1-14) 솔로몬(c. 970-945 B.C.)은 그의 후비와 빈장들 중에 암몬 여인을 취했고, 그들의 영향으로 암몬 사람의 가증한 몰렉을 쫓고, 예루살렘 근처 실로암에 신전을 지었으며, (왕상 11:1, 6, 7) 그 여인들 중의 한 사람, 즉 르호보암 왕의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로 암몬 사람이었다. (왕상 14:21) 여호사밧 왕(876-849 B.C.) 때, 모압에돔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대하 20장) 웃시야왕(785-740 B.C.) 때에는 유다에 조공을 바쳤으며, (대하 26:8) 요담왕 때는 암몬을 다시금 정벌하여 통치를 강화하였다. (대하 27:5)

알렉산더 이후 랍바 암만은 기원전 259년에 프톨레미 왕조에 의해 통치되면서 '필라델피아' 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게 되는데, 이는 프톨레미 2세의 이름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 283 -246 b.c.)' 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제논 파피루스에서는 이 도시를 '비르타(Birta)' , 즉 '성곽 거주지' 라 불렀다. 기원전 218년 안티오쿠스 3세는 이 성을 포위하고 수로를 차단하여 정복하였으나, 기원전 1세기부터 점차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한 나바테안 때문에 오랫동안 지배하지 못하였다. 하스모니안 왕조의 알렉산더 야나이가 여러 차례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가 이 성을 점령하고 데카폴리스의 하나로 지정되면서 필라델피아는 로마 시대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시가 되었으며, '비아 노바 트라야나(Via Nova Traiana)' 의 중심지로서 홍해다메섹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다.

기원 후 4세기초에서 7세기초에 이르는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 전파와 함께 교회들이 건설되면서 필라델피아는 주교가 있는 요단강 동편 지역 교회의 중심도시가 되었으며, 니케아 공의회(주후 325)와 칼케돈 공의회(주후 451)에 대표를 보내기도 하였다.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세워진 성 엘리야 교회와 성 조지 교회는 6세기에 가장 잘 알려진 교회였다.

635년 아랍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움마야드 시대(661-750)를 거쳐 압바시드(750-969), 파티미드(969- 1071), 십자군(1099-1268), 마멜룩(1263-1516), 오토만(1516-1918) 시대를 지나 영국 위임 통치 기간동안 자치 정부를 인정받은 요르단 왕국이 독립한 이후 요르단의 수도로 선택되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요르단 최대의 도시로서, 이스라엘의 점령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연결하는 정치, 경제적 전략지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지금은 인구 160만 명이 넘는 도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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