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선교(외항선교분야)


I. 선원선교의 역사적 배경

선원을 향한 전도활동의 효시는 예수께서 갈릴리 어부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시는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사도행전에서 여러번 언급한바 사도바울도 '배를 타고(행13:4,13, 16:11, 17:14, 18:18 20:13 21:1,2,6,7, 27:2)"지중해 연안도시들을 다니며 복음전파와 교회설립의 사역을 수행하였고 그의 사역 말기에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파선 위기의 선상에서 소망의 멧세지를 전했던 기록(행27:21-26)등을 볼 때에 바울도 충분히 선원선교의 개척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Dr.Roald Kverndal의 학위 논문"Seamen's Mission:Their Origin and Early Growth"에 나타난 자료에 보면 1553년에 영국의 Merchants Adventurer 선박회사의 총재인 Sebastian Cabot 씨가 처음으로 선장들에게 영국의 법으로 제정된 공식 예배가 선상에서 매일 목사에 의해 인도되어져야 한다고 지시하였으며, 그후에도 선원들에 대한 영적책임을 중요시하는 선장들은 선상에서 신앙적인 모임을 가졌었고 항만에 정박해 있을땐 종종 육상의 기독교인들을 초청하여 선상예배를 드리곤 했었다고 한다.

해상교통 수단 밖에는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할 길이 없을 그 당시엔 선교사들도 선박을 이용하여 선교지로 떠났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선원들은 종종 그들의 선교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인내하고 수고한 사역의 결과로 원주민 개종자를 얻게되면 소위 기독교 국가에서 오는 선원들의 부도덕한 행동에 의해서 선교결과에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선교사들에겐 이 선원들을 전도해야 하는 것이 또하나의 크나큰 도전이기도 했던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국내 선교부(Home Mission는 항만도시의 슬럼가에서 희생되는 선원들을 발견하면서 선원선교의 자극을 받았고,1779년 해군을 위한 성서보급사역이 시작되면서 1800년대에 들어와 선원선교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1818년 런던에서 헌당된 "방주"라고 불리웠던 "물에 뜬 교회(Floating Chapel 1822년에 인도 캘커타에서 설립된 "Bethel 협회" 1858년 영국국교회에 의해서 창설된 "Mission to Seamen"에 이어 1840년대엔 감리교회도 자체교단 선원선교를 설립하였고, 미국대륙에서도 각 교파별로 서로 경쟁하듯이 선원을 위한 선교회가 창설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도 항구마다 Seamen's Mission을 설립하여 복음전파와 선원들의 영적관리를 해왔다.

II. 한국외항선교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결실

우리나라 선원선교역사는 그다지 길지 못하지만 그 설립 의미와 활동은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다고 본다. 1973년 인천항이 현대적 갑문 시설이 완성되면서 국제항으로써 교역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며,당시 통계에 의하면 인천항을 찾는 외항선과 선원들의 수는 28개국에서 약 21.000명이나 드나들게 되었다. 선원들은 일반적으로 오랜 항해 끝에 지쳐있고, 가족과 고국을 떠나 고독함으로 방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찾는 곳이 유흥가와 환락의 장소이다. 한국이 유흥의 나라, 부도덕한 나라로 세계에 알려진다는 것은 크나큰 수치요,기독교회가 이들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자세로 있는다면 한국교회의 존재의 의미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직무유기의 죄가 되는지라 뜻있는 교계지도자들이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김의민 장로(예배역장군)의 주선으로 시온감리교회 김 용련 목사와 김 학수 장로 등이 기도하는 중에 가칭 외항선 선교회설립 준비위원회를 갖기로 하고 그해 1월 초에 인천에 내려와 당시 성산감리교회 담임인 최준옥 목사와 인천제일교회 원로목사인 이기혁 목사, 인천송도장로교회 이낙주 목사,당시 인천 기독교연합회 회장 김광식 목사들과 협의하여 인천지역목사들로 창립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974년 7월 4일,인천성산감리교회에서 경인지역 목사,장로, 평신도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고 이사장에 이기혁목사,회장에 최준옥 목사,총무엔 김의민 장로, 협동총무엔 최기만 선교사를 임명하여 정식으로 외항선교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항만에 기항하는 국내의 선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기독교정신으로 봉사와 친교활동을 하며, 민간외교사절로써 국위를 선양하는 것을 선교회의 목적으로 삼아 선교활동하는 중, 선교를 통한 교회일치에 뜻을 둔 한국교계의 지도자들과 교회들이 대거 동참하면서 외항선교사역은 국내외로 확산되어 갔다. 1976년 11월에 부산에,1981년 군상에 또는 동해,여수,여천에 국내 지부가 개설되었으며 해외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싱가폴, 자카르타,그리스의 아덴,터키의 이스탄불, 요코하마,북미주에 그 지부를 개설하고 선원들을 향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1991년 9월 현재까지 외항선교회의 선교팀이 방문전도한 외국선박의 수는 13,868척이며,접촉한 선원수는 총 299,464명,그리고 결신한 선원은 23,356명이다. 결신한 선원들은 동 선교회의 7단계 선상성경공부교재와 양육서신에 의해서 제자화 되고 있으며, 양육프로그램은 서계 각 항구에서 사역하고 있는 복음주의 선원선교회와 서신 및 양육 네트윅(New-work)을 통해서 추적관리가 되고 있다. 특히 미국 타코마 선원선교기관에서는 세계 각처의 사역팀들로부터 최근 접촉한 선원들의 신앙,인적사항에 과난 정보를 입수하여 컴퓨터 처리후에 다시 선박의 다음 행선지의 사역자들에게 양육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기독교인 선원이 승선해 있는 선박명과 선원의 이름과 그의 신앙상태,그리고 선상에서의 기도회나 성경공부모임의 여부등을 기록하여 통제사무실로 보내면 그곳에서 이를 분류하여 정기적으로 배의 이동상항에 따른 선원들의 이동사항을 알려주는 것이다. 외항선교사역을 "물위에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고,마치 안강망 그물을 치듯이 전 세계적으로 치밀하게 연락망이 조직되어 있어 구원받은 영혼들이 유실되지 않도록 기독교인들이 선상에서의 영성 훈련을 지속하며 '물위의 교회' 성장하도록 그 양육관리에 각 항구의 선교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II. 해외선교전략적인 면에서 본 외항선교사역

사도행전의 선교활동 진행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항구에서 부터 내륙으로" 옮겨가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세계 기독교 선교역사도 항구 중심의 선교사역에 뒤이어 내지선교회(Inland Mission)들이 생겨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시대의 교통 수단에 의한 자연적인 현상이겠지만,항구는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써 항구도시는 여러 종류의 국적,인종,직업 등에서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는 복합적인 문화(Multi-Culture)를 형성한다.상업이 발달하면서 이해타산적인 사회로 성격화되고,안정된 농경사회와는 달리 역동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사회구조를 만든다.또한 변화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성(Receptivith)이 상대적으로 크다.도덕적으로는 타락과 환락의 요소들이 많아서 범죄도 많이 발생하는 곳이며, 미신과 우상숭배가 발달된 곳이 항구이기에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영적인 필요도가 큰 지역이다. 항구는 영적전투도 치열한 반면,교회의 부흥도 크게 경험되는 곳이므로 선교활동이 역동적(Dynamic)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 1988년 올림픽 이후로 국제적인 위상이 고조되고 교역이 활발해져서 국내의 국제항구는 물동량이 급증하게 되었으며 공산권국가들의 선박들도 빈번히 왕래하게 되었다. 최근에 소련,중국,유고슬라비아의 선원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북방선교의 전략적 위치로써의 중요성을 느끼며 사역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열도 80년대 후반부터 무척 뜨거워졌고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위치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 경험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우리나라 교회들이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선교기관의 경험에 의존해야만 했었다. 무한한 인적,물적,영적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있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경험의 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외항선교사역은 처음부터 해외선교를 하고자 하는 뜻있는 교회나 개인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사역의 장이였으며 한국교회의 선교 발전을 위한 한국교회의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인천,부산,군산,동해,여수 등의 각 지부 사역을 지역교회들에게 항상 열어 놓고 교역자들,신학생,대학 청년부원들,교단연합기관,교회 각 기관들이 선교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면 언제나 외항선교 사역팀들과 함께 전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협력을 해오고 있다. 또한 좀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자원봉사자들(Volunteers)로 헌신하여 영어회화 및 전도 훈련을 통해 훈련 받으면서 사역을 지속해왔으며 그들중의 대다수가 선교사로 훈련되어 해외 선교현장으로 파송되어 갔는데, 외항선교사역을 통해서 현재까지 파송된 해외 선교사들의 총 수는 240명에 이르고 있다.

국내 외항선교의 사역지는 회교,힌두교,불교,공산권 등의 이교도들에게 직접전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곳이며, 동시에 교회의 선교사후보생들이 실질적인 언어,문확적응,전도등의 훈련을 받아 해외선교의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선교훈련장이기도 하다. 해외선교사훈련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1987년에 설치한 한국외항선교회 부설기관인 "타문화권선교사훈련원"에서는 좀 더 전문적인 훈련을 시키기 위해 커리큐럼을 만들고, 선교사 출신의 스탭진으로써 1년에 3학기 훈련을 실시하여 해외지부와 여타 사역지로 파송하고 있다.

특히 1989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는 유럽,중앙아시아,인도,필리핀 등지의 하계,동계 단기선교프로그램은 외항선교 해외지부설립에 대한 기초탐사,선교사후배생들의 헌신 재확인,타문화권 전도 및 적응훈련등의 다양한 목적을 갖고 3년째 진행되고 있는데, 이로인한 결실로서는 다수의 결신자들과 성경배포,양질의 선교사 발굴,선교현지의 선교기관 및 교회와의 사역우호관계 증진등의 유익을 얻고 있다. 특히 필리핀 외항선교회와는 1차 방문의 결과로 서로 사역교류가 이루어져 전도문서와 양육관리도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외항선교회는 1974년 로잔대회와 1989년 마닐라 제2차 로잔대회가 견지하고 있는 복음주의 선교노선에 입각하여 순수한 복음전파와 사회적 관심을 조화한 전인구원사역(Holistic Ministry)을 선교의 정신으로 삼고, 1981년부터 World Concern,Africa Inland Mission,Indian Evangelical Mission, People International 등의 복음주의적 국제 선교기관과 협력하여 의사,간호사,사회사업가등의 전문인 선교사들을 제3세계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파송하여 인술을 통한 복음전파 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우간다의 김 정윤,박숙경 선교사,수단의 신영숙 선교사,케냐의 김옥실선교사,방글라데시의 박수일 선교사 가족등을 병원사역, 간호원양성, 사회사업,고아원 운영 등을 통해 현재인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면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내륙선교의 실례가 되고 있다. 항구에서 시작된 외항선교는 이제 항구로 부터 내륙까지 심지어는 몽골,소련,동구권의 여러지역으로 그 선교사역의 범위를 확장시켜가고 있다.

IV. 넘어야 할 장애물들

한국의 경제 사정이 날로 향상되고 있는 것과는 반비례적으로 선원들의 노동조건,임금등이 타 직종에 비해 우월하지 못하게 되어짐으로써 한국선원들이 외항선을 타는 일은 현저하게 감소되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고급선원(선장,일항사 등)을 제회하고는 대우개선이 되지 않는 한,외항선에 승선하는 한국선원들의 수는 계속 감소될 것 같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선원들에 대한 관심도 다소 격감될 것 같고, 외항선 선원이라는 한정된 분야의 사람들에게 선교한다는 것에 대해서 지역교회들이 중요성을 부여할 것이겠는가 하는 것이 일종의 우려이기도 하다. 또한 항구에서 떨어진 내륙의 도시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겐 감각적으로 와 닿지 않는 사역이라 동참의 기회가 적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한가지의 어려운 점은 항만 출입과 승선허가를 들하는 일에서 타국에 비해 일반적으로 통제가 심하여 지금까지는 매일 선박회사, 항만청,세관등을 거쳐 허가를 얻어서 출입해 왔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갑자기 밤이나 아침 일찍이라도 배를 방문하고 선원들의 영적관리를 해 주어야 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때 전화 통화로만 안타깝게 상황을 맞이해야 할 경우가 있다. 상시출입에 대한 허가를 내고자 하여도 선교기관에 대한 상시출입발급 허가조항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까지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아무런 사고와 사건없이 선교사역을 수행해 왔다는 것이 외항선교의 또 하나의 간증이 되고 있으나 항만출입과 상시승선에 대한 행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사역이 될 것 같다.

한가지 더 아쉬운 것이 있다면, 외국의 항구엔 입항하는 선원들이 교향집처럼 찾아드는 선원선교센타가 별개 건물로 되어 있어, 시설을 잘 갖춘 선교센터는 호텔방 같은 숙박시설,식당,휴게실,게임룸,수영장,예배실 등을 갖춘 자체 건물이 있는가 하면 적어도 예배실,휴게실,상담실,국제전화,일상용품 매점등의 간편한 시설은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시설을 갖춘 선교센타가 없다. 선교회 사무실로 지역교회 건물의 일부분을 사용허가를 받아 사용하거나 개인회사건물의 작은 방하나,때로는 선교총문의 아파트방까지도 선교회 사무실로 사용하며 사역을 할 정도여서 선교회 사무실을 방문한 외국선원들에게 만족할 만한 시설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수준과 교회규모에 걸맞는 선원센타가 적어도 국내의 국제항에는 하나씩 건립되어져서 복음의 역수출센타와 민간외교의 현장으로써 손색없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선원의 수는 줄고 있다해도 반면에 동남아,동구권,소련,중국 등지에서는 선원들의 증가하고 있는데 저들을 향한 선교의 장으로써와 선교사훈련의 장으로써 외항선교는 충분히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무한한 사역지와 일군의 필요성

International Christian Maritime Association(국제기독교선원선교협회)의 주소록에 명시된 세계 각처에서 선원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항구의 수는 900개로써 인천,부산,군산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외항선교회는 Korea Intermational Seamen's Mission 이란 이름으로 1986년 ICMA에 정식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어 900여개 어느 항구에 가던지 현지 선원선교기관과 협력하여 사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넓게 열려 있는 것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선원전도를 하는 사역형태이던지,또는 항구를 기점으로 내륙선교팀을 구성하여 현지인을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하는 사역형태를 갖던지 무한한 선교의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전세계 2/3의 면적이 바다로 덮여 있고, 바다에 접해 있는 모든 도시는 외항선교의 사역기점이 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각 교단이나 각 선교기관들이 공히 느끼는 사실이지만 많은 일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넘치고 있으며, 헌금 액수가 놀랍도록 증가하며,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기도회가 많고 열정도 대단한데,일군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 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마태9:37-38)고 하신 그 명령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고독하고, 상처입고,늘 위기의식을 경험하면서 육체적으로도 고된 생활을 살아가고 있는 선원들,이들이 주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야말고 목자없는 양같이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어찌 선원들 뿐이랴.피곤하고 심신에 병들어 외롭게 버려진 영혼들이 이 땅과 전 세계에 흩어진 나락처럼 널려있는데 주님의 찾으시는 추숫군은 어디에 있는데,폭풍과 파도에 시달리다가 소원의 항구(Desired Harbor)를 찾아드는 돛대부러진 배같이 되어버린 인생들에게(5ㅣ편 107:24-30)구원과 위로의 복음을 전해주는 사역을 주님오실 때까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주께서 보내주실 추숫군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