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선교전략


오늘의 산업사회는 큰 진통을 겪고 있다. 진통과 함께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산업사회에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보수,진보로 분리되어 선교적 역할이 크게 대립하고 있고 산업사회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산업선교의 필요성과 의의를 살펴보고 지금까지의 산업선교의 흐름과 그 입장을 비판적으로 반성하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의 시대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현장선교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산업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논의가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I. 산업 선교의 의의

1. 산업사회의 문제에 접근
산업혁명 이후 산업인구의 급팽창으로 서구교회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을 오늘의 한국교회가 겪고 있다. 자연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달과 도시화,산업화,기계화,전자화 등으로 겉잡을 수 없는 변화와 문제들,즉 윤리 규범의 혼란,인구집중,주택난,교육난,환경오염,빈부격차,소외감,범죄율 증가 등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산업사회,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중대한 도전이다.

산업선교가 이런 질문에 응답하면서 산업사회의 문제에 접근해 온 것은 커다란 의의가 있다. 초기에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인 근로자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고 복음을 전하다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한 그들의 아픔을 알고 도우려는 사랑으로 야간학교, 의료봉사등으로 접근했고, 60년대말부터는 노동사회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하여 노동운동지도자의 교육,노동조합의 조직과 육성,노사간의 문제등을 선교활동의 중요 내용으로 삼게 되었다. 이런 변화과정은 다음 항목에서 보충 설명하겠다.

산업사회의 문제에 이렇게 접근해 오는 과정에 수많은 논쟁과 문제가 야기되었다. 점차 보수적1)인 교단의 지원은 소극적이 되었고, 자연히 산업선교는 진보적인 교단 목회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보수적인 진영에서도 사회적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고 산업현장으로의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다음의 도표가 양 진영의 관심과 차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사 회 봉 사                       사 회 활 동
@ 인간의 필요를 경감함         @ 인간의 필요의 인을 제기함
@ 자선 활동                    @ 정치적 경제적 활동
@ 개인과 가족들에게 봉사하려고 @ 사회 구조를 시키려고 노력함
  노력함
@ 자비의 행위                  @ 정의의 추구
위의 두 가지 종류의 사회적 사역 가운데 첫번째 것은 보편적으로 기독교적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전도의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복음전도와 함께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회활동,즉 개인을 넘어 구조를 수인의 재활을 넘어 감옥제도의 개혁을,공장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경제제도, 정치제도를 개선하는 것을,그리고 필요할 때는 변역하는 것을 교회의 사회적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두려워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근래에 와서 보수적인 진영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회 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3)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정의 실천시민운동연합이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의 사회활동에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참여하거나 동조하고 있다.

산업선교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논하기 앞서 산업현장에 대한 기독교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2. 현장화의 측면에서

주님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형체를 입고 성육신하신 사건을 통하여 복음의 전달과 구원의 실현을 위한 현장화4)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업선교도 선교의 현장화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와 필요성을 지니고 있다. 산업근로자들의 생활 패턴,의식,일상적인 업무,독특한 문제들과 바램들에 맞춘 선교 프로그램이 선교실무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II. 산업선교의 흐름과 반성

산업선교의 필요성은 신학적 경향(보수,진보)과 관계업이 공감하지만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교회가 가진 원인과 함께 우리나라의 특수한 조건이 안고 있는 이유도 있다. 논란의 이유 몇가지를 들어본다. 첫째, 성서이해의 논란이 있는데,성서의 현장이 오늘과 같은 산업사회가 아니었기에 성서의 말씀을 오늘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해석학적인 문제에서 이론이 분분하다. 둘째, 교회가 선교적 차원에서 급속한 산업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교회가 그들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들에 대한 관심과 선교는 소수자의 일이 되고 말았다. 세째로 우리가 전수한 서구신학이 산업선교와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응을 하는데 결점이 있다. 산업사회의 문제와 적합한 목회나 전도의 이해와 프로그램이 충분하지 못했기에 산업선교가 계속 논란거리가 된다. 네째로 산업선교에서 주로 비판의 대상으로 몰리는 기업주 등과 경영자들 가운데는 교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이해가 맞물리는 양편 사이에서 적절한 선교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극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안보적 차원에서 산업선교를 대하는 시각 때문이다.5)

이런 어려움과 논란 속에서 산업선교는 소수 진보적 목회자들과 선교실무자들을 통해 발전되어 왔고 보수진영에서는 소극적이 되어 왔다. 지금까지의 산업선교의 흐름과 그 경향을 반성적 시각에서 되돌아 본다.

1. 보수측 산업선교

보수측 산업선교는 산업전도의 이름으로 복음전도와 사회봉사의 한계안에서 이루어져 왔다. 산업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회활동에 주력하는 이들에 대한 우려와 경계로 더 소극적이 되었고 사회봉사의 측면도 전혀 활발하지 않았다. 이같은 흐름에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문제와 관련한 이데올로기적 기본틀이 있다.

즉,자유기업의 경제체제가 "성경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제리 폴웰처럼 자유기업체제는 잠언에 명백하게 언급되어 있고, 사업에 있어서의 경쟁은 성경적이며, 야망과 성공적인 사업관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계획의 일부라는 잘못된 주장들이 나올 정도로 자유기업의 경제체제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히 그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과 반대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으로까지 해석되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반성이 필요하다. 자유기업체제(자유자본주의)의 사상적 기초가 된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진보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사회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며,선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보수적 인본주의의 관점을 드러냈다. 또한 인간의 죄와 타락에 대해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자유기업 체제와 "최소한의 정부"가 사람들의 타락한 본성 대문에 오용되고 남용될 것을 보지 못한다.7) 이같은 잘못된 사상을 교회가 지지하거나 적어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 선교실무자들은 이같은 사상적 기초를 갖고는 소극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산업현장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죄에 대해 눈감아 버리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산업선교의 활력을 잃게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 그랜드 래피드즈 보고서와 로잔언약,검소한 생활방식을 위한 복음주의 서약,로잔마닐라 선언 등에서 새로운 변화를 본다. 몇 부분을 발췌한다.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람은 착취를 당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하여 온 것과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된다고 잘못 생각해 온 것을 회개한다...구원의 내용은 모든 종류의 소외와 억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포함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그것을 고발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8) "우리는 환경의 파괴,낭비,매점을 거부한다. 우리는 이러한 악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는 가난한 자들의 비참함을 한탄한다. ...우리는 착취당하며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할 것을 결단한다."9) "교회는 하나님과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불의에 저항해야 하며 그들과 함께 고난 당해야 한다."10) "우리는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개인적인 것이든 구조적인 것이든 모든 불의와 억압을 고발하고 이러한 예언자적 증거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을 고백한다."11) 이와 같은 선언,고백들은 산업선교에도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 확실하다.산업사회의 제문제에 대해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했기에 현장의 노동 근로자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교회가 이제 관심과 참여로 그들과 하나되고 복음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

2. 진보측 산업선교

초기(1958-1967)는 산업사회에서 교세확장의 관점에서 전도를 강조했고 내용면에 있어서도 개인구원에 역점을 두었고 방법면에서도 산업인을 위한 예배,성경연구,평신도 훈련프로그램 등 보수,진보의 구분이 없었다. 가난한 산업근로자들은 구원하고자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선교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간기(1968-1972),후기(1973이후)에 오면서 개인 구원의 강조가 변하여 사회구원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12)

다음의 도표가 그 변화를 보여준다.

                       <선교개념의 변화와 그 내용>13)

            종래교회의 전도적 입장    현대교회의 선교적 입장
선교내용   복음화(개인영혼의구원) 인간화(개인존엄과 공의로운 사회운영)
대 상      개인에 강조를 둔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전체를 대상함
선교의목표 개인의 성화와 구원     인간의 존엄과 사회정의
           (죄에서의 해방과 하나
            님의 자녀됨)
선교의 주체 교회가 선교의 주체이며 선교대상 자체가 주체이며 그들의
            대상은 타율적으로      자율적 의지가 중요(대상의 요구가
            응하면 된다(교회의     곧 선교과제)
            복음전파)
선교방법    교회적 방법(예배,교육, 다양하고 세속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
            봉사)                  있음.
이와같은 선교적 입장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기에 받아들이기 어렵다.진보측 선교적 입장의 문제들을 다음과 같다.
1) 구원과 해방의 주장에서 정치적 자유에 대한 강조가 지나치게 두드러진다. 인간의 영적 죄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처하는 일에 충분하고 적절한 면이 보이지 않는다. 자연히 정치적인 해방을 위주로 하는 '오늘의 구원'에 치우쳐 일방성에 빠지는 위험이 있다.14)
2) 현장에서의 실천에 대한 강조는 좋은 것이지만 그런 태도가 전통적인 신학과 성서와 신조와의 적절한 상관성을 잃을 때, 현장에 근거한 해석학이 성서를 아전 인수격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다.15)
실제로 도시산업선교는 회개를 의식화로 대체하고 성령이 임재하는 자리를 조직으로 대체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을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주장하는 의식화로 대체하고, 오순절 다락방 모임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을 조직된 질서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했다.16)
3) 선교 방법론의 중요한 한 특징으로 사회과학의 활발한 활용을 실천하고 있는데,역시 신학이 사회과학의 포로가 될 가능성의 위험성이 있다. 진보측의 도시산업선교는 앞으로 성직자,사회과학도,노동운동지도자 등이 한 팀이 되어 Team Ministry를 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17)
4) 인간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이다.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막스의 사상은 한편 인간에 대한 계몽주의적 신뢰를 두고 있다. 18) 진보측의 산업선교는 "인간의 선"을 믿는 이데올로기를 지원하고 있다.

III. 산업선교 전략

이제 산업현장에서 보수측과 진보측은 만나게 된다. 로잔언약 이후 보수측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접근은 많은 선교헌신자들을 산업현장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진보측에서도 반성과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1975년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을 결합하는 선교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요청되었고,양측의 모임 모두 양쪽의 긴장이 계속되기를 의도하지 않았고 수많은 보수측의 복음주의자들이 이 양 대회에 참석했고 희망을 발견했다.19)
이제 산업현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나간 선교과정을 반성하면서 산업사회의 선교에 보다 바르게, 효율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같이 시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들어 보겠다. 단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모델일뿐이고 선교 방법론에는 다음 두가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대상과 문제에 따라 그 방법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오늘의 현실에서 산업선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동 센타를 중심한 선교 프로그램>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활동이 아니라 노동센타를 중심해서 근로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상대로 해서 여러가지 봉사하는 선교방법이다. 물론 센타의 위치는 공단지역 내여야 할 것이다. 센타 내에서 진행될 수 있는사역들은 다음과 같다.
1) 탁아소(놀이방) - 맞벌이 또는 자녀양육이 곤란한 결손,영세가정의 자녀들을 돌보며 교육하는 일,단순 탁아 보모 보다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들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공부방 - 공단 근로자 가정의 학령아동들을 돌보며 교육하는 일,전반적으로 공단지역 아동들의 학습은 뒤떨어진다. 그들을 학년별로 중학과정까지 학습 뿐만 아니라 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문제들을 치유하고 예방할 수 있다.
3) 주민도서실 - 주로 1-2칸 가옥에 거주하는 근로자 가정에는 독서 및 교양을 위한 공간이 없다. 함께 도서실을 공유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다.
4) 야간학교 및 주민교실 - 야학은 산업선교의 초기부터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검정고시 야학이 생활야학,노동야학으로 변화했다. 진보측은 검정고시 야학의 무용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검정고시 야학과 생활야학을 혼합한 형태가 바람직하다. 또한 한글,한문 강좌 등과 지역에 필요한 다양한 교실을 열어 주민들과 접촉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상담실 -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와 함께 산업현장과 지역에는 신앙상담에서 법률,노동 상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담이 필요하다.
6) 직장신우회와의 연결 및 훈련 - 어느 곳에나 나타나는 장애와 소외의 문제가 산업지역에는 덜 할리가 없다. 노동근로자의 문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 내에서도 소외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돌볼 필요가 있다.
8)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공장,직장 내에서의 선교활동이 아니라 공단 지역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공단지역에 이런 센타를 세우는 것은 한 교회의 힘으로 어려울 것이다. 기초 및 운영에 여러 교회 특히 지역교회가 참요하도록 유도하고 지역내 자원봉사자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노동센타는 반드시 한 건물에 모든 프로그램을 유치할 필요는 없다. 지역의 여건에 따라 필요한 요소 오소에 작은 시설들을 마련하고 (지역교회내에도 좋다)연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모든 사역들은 단순히 사회보람 만이 아니라 복음전도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사회활동의 영역도 수렴하고 조정하는 기능까지 할 필요가 있다.

IV. 닫는 글

산업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산업현장 선교실무자들의 경험과 근로자들과 산업현장의 소리와 함께 신학적인 조명과 인식이 필요하다. 선교적 입장을 정리하게 어려운 오늘에도 산업사회는 변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무쪼록 보수측과 진보측이 만나고 대화하고 산업선교의 신학적 입장이 속히 정리되기를 기대한다. 그간에도 한국교회의 관심이 산업현장에로 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