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지역선교.........................윤태영

서론

구 소련에 속한 중앙아시아가 열린지 만 사년이 지났다. 개방이전까지 중앙아시아에 대한 접근이 가능지역으로는 터어키 등 몇나라 되지 않았다. 구소련이 개방될 때에 독립국가연합 중 5개 중앙아시아 국가와 아제르 등 이슬람 성향의 독립국가에 대한 선교적인 접근과 이해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럼, 중앙아시아는 어떠한 문화,종교,정치,이념을 가지고 독립국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신중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는 단순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들면,세계대전 이후 열강의 이해와 도움으로 독립을 얻은 것도 아니고 이념의 갈등이나, 민족적인 분규로 나뉘어져 생긴 독립국가도 아니다 또한 중앙아시아에 대한 어떤 이해가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에 적용되는 것도 아닌,그야말로 특수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전제로 본 발제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설명하면서 해당지역에 대한 선교전략 의견을 내고자 한다.

본론

1. 중앙아시아 개념

이번 전략회의에서 다루는 중앙아시아의 개념은 구소련의 우즈벡스탄,카작스탄,기르기르즈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직스탄,다섯개의 공화국이라고 본다. 그 외에 아르메니아나 아제르바이잔,터어키 등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리라 본다. 중앙아시아(다섯나라)는 국가간에 서로 지리적으로 연접해 있고 아직도 자국의 비자가 요구된다. 이들 나라끼리 연결되어 있는 국경선의 개념이 러시아와 가깝게 위치한 지리적 조건보다 중요치 않다. 소련 종주국으로서의 역할을 마감되었다. 해도 중앙아시아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이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각 공화국들의 생산공장 카르텔(단일생상체제)의 본부는 모스크바에 있으며 여전히 재정적인 결재를 한다. 이와 함께 각 공화국 내의 생산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원료나 재료 또한 모스크바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경제고리 안에 독립된 각각의 나라가 한 블럭 안에 여전히 묶여 있는 것이다. 그러는 반면 각 나라의 통치권은 나름대로 분리되어 독립된 편이다. 권력의 속성상 남의 나라의 간섭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정치적,통치권적 독립을 더 추구하지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제3세계 국가들이 외세의 영향력하에 놓여 있는 것하고는 다른 형편이다. 그러나 이 사실도 그렇게 놀랄 만한 것은 못된다. 왜냐하면 과거 소비에트 연방국가 때부터 각 공화국의 자치정치가 권면되어 왔기 때문이다. 소연방의 정치적인 통제 아래서 "각 공화국의 인민에 의한 통치"를 70년간 해왔었다. 그래서 독립된 이후에도 독립 민족세력이 아닌 과거 집권세력인 공산당 엘리트 내지는 관료들이 그 경험과 기반 위에서 새공화국의 이름하에(모두가 공화국 형태로) 독립국가로 새단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민족적인, 혹은 그의 세력에 의해 강력하게 반발을 받게 된 경우가 타직스탄이다. 이로 인하여 인근국가들의 공화국 서기장 출신 대통령들은 외부세력을 더 경계하면서 강력한 자기 통치기반을 구축해 왔다. 지금도 이런 정치적인 상황이 중앙아시아에서 진해되고 있다.

이런 정치적인 배경 못지 않게 이곳을 이해하는데 문화,종교적 배경 또한 매우 중요하다. 지중해가 이슬람에 의해 정복된 즈음에 중앙아시아에 이슬람이 들어왔다. 그후 1219년부터 시작된 징기스칸의 원정은 호레즘칸(현재의 사마르캄)과 부하라칸들을 점령한다.징기스칸은 죽으나 사마르칸트에 도읍을 전한 티무르에 의해 손자 울르백은 군주로서보다는 천문학자로 더 유명하다. 이슬람의 실용학문이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징기스칸 전에 토착되어 온 이슬람과 계속하여 확장되는 이슬람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종교가 이슬람으로 자리잡아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튀르크 민족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인접 이란계와 비슷한 민족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제정러시아의 침공과 그후 공산당에 의한 통치에서,종교는 소수 현지 민족의 문화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중앙 아시아에서는 이슬람에 대해 종교적인 헌신보다는 "나는 우즈벡인이다"라는 말은 "나는 무슬림이다"라는 말과 같다. 즉 "우즈벡인이기 때문에 무슬림이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선교적인 접근이 용이한 부분도 없지 않으나 시간이 되면 결국 이슬람과 충돌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2.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과 특수하게 다른 점

위에서 말한 지역적 배경, 역사적인 상처, 정치적인 통치배경,그리고 이슬람이라는 문화와 종교의 바탕 등 공통적인 이해가 있다. 그러면서도 특수하게 다른 점이 무엇인가?

(1) 언어가 다르다.
튀르크 계통의 언어이지만 각 나라마다 다른 언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어 있다. 러시어가 통용되지만 자기의 민족언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우즈벡스탄 경우에는 공문서 작성에 우즈벡어만을 사용한다.

(2) 이슬람에 대한 수용입장에서 다르다.
타직스탄은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구 관료들이 충돌한 예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민족분규를 보면서 인접국가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독립국가의 문제를 보았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과거 70년 공산체계의 실존과 민족적인 자립을 인근 국가들이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도 보았다. 공통적인 입장에서는 근본주의 이슬람이 현정국에 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국가의 통치력이나 지방까지 미치지 못하는 행정력으로 인하여 수도를 제외한 지방에서의 이슬람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3) 중앙아시아를 이슬람 국가들로 보는 것도 타당하지만 정부의 조직이나 저들의 이해,사상,문제해결 방식,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종교기관이나 단체 외국상사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공산당 지배하에 행정 그대로라는 것이다. 과거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이며 통제력이 완화된 감은 있으나 그 기본반응은 4년 전 공산당의 마인드 그대로이다. 거기에다가 민족적인 자긍심까지 덤으로 해서 기묘한 태도들을 보이는게 예사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산주의는 허물어졌어도 그 추종자들이 오늘도 각 나라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형편이기에 공산체계의 습성을 이해해두는게 사역하는데 도움을 준다.

(4) 각 공화국마다 경제적 이윤 추구가 다르다.
우즈벡과 같은 나라는 풍부한 자원과 인력으로 경제적인 도약을 도모하고 카작스탄 경우에는 구 소련의 남은 유산과 러시아 밀접한 지리적인 여건을 십분 활용한 경제블럭을 지향하고 기르기스탄은 얼마간의 가스와 지하자원이 있으나 철저한 홀로서기에는 자신이 없음으로 두 나라와 연합을 늘 지지하는 편이고, 타직이나 투르키스탄과 같은 나라는 다른나라처럼 독립국가로서의 약진보다는 정치적 안정이 더 시급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다른 경제적 이윤추구는 외국인을 보는 시각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선교사역이 경제적인 활동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외국인을 보는 시건에 따라 선교사역의 접근과 그 전략이 달라진다고 본다. 현대의 선교적인 접근과 전략에서는 그 나라의 경제적 지향점을 미리 파악해서 참고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3. 중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선교사역과 그 평가

원칙적으로 현재 사역 중인 사역자가 현지의 사역을 평가하기엔 부담이 된다. 물론 반성과 시행착오 가운데 향상된 사역과 성공적인 사역들을 나눌 수는 있다고 본다. 본인이 언급하고자 하는 평가의 의미는 우선 노출된 문제점들을 미리 들춰내고 그 사역이 바른 궤도에서 성공적이 되기를 바람에서이다.

(1) 교회개척사역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교회를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개방된 후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교회의 수효는 헤아일 수 없으리만치 많다. 이 교회개척사역은 주로 두 그룹에서 주도하고 있는 편이다. 하나는 외국에서 들어온 한인선교사들에 의해 교회가 개척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지인들에 의한,즉 러시아 침례교나 오순절교회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들이다. 한인선교사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도 한인중심의 교회와 여러 민족이 함께하는 교회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엔 한인들의 참여는 거의 없다. 현지인에 의해 개최되는 교회도 러시아교회와 지방민족(예,우즈벡 교회,카자흐교회)교회로 나눌 수 있다.

우즈벡의 경우에는 한인교회들이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등록도 되었고 교회의 조직도 갖춰 간다. 이 교회개척 분야에서 가장 큰 관건은 선교사가 언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현지인에게 교회의 지도력을 인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한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의 공통점은 인계하기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인선교사들의 다수가 정착자적인 선교사역을 지향하고 있는 점이고 이로 인해 현지인에게 인계할 부담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소유개념과 개척교회의 성공지향적인 사역, 타문화를 수용하기엔 너무 갑갑한 노파심, 혹은 편견이 우리 안에 있자 않나 하는 반성도 해본다. 교회가 개척될 때 우즈벡교회,즉 현지교회가 세워지는 비전과 현지교회의 부흥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한인선교사가 가져야 되지 않을 까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외에도 전문인들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도 있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 여러 나라에서 온 평신도 사역자들인데 공통적인 것은 현지인 중심의 교회개척을 노력한다는 점이다.대학에서도 구호사역을 통해서도 가능한 한 현지인을 얻으려고 한다.한인교회에서 담당할 수 없는(등록교회에서는 법적으로 현지인을 전도하지 못하게 금한다)현지인을 다른 영역에서 담당할 수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런 구성원에서의 차이는 있어도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실제로 협력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있다.

(2) 비정부단체의 설립과 구호사역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 중인 CAFE,Vision Internation.PCA는 유럽 선교부에 세운 단체들이고 한국인 사역자에 의해 InterCoop에서 세운 IACD(아시아개발협력기구)의 지부가 있다. 그 외 등록은 받지 않았으나 한국기아대책기구의 우즈벡스탄 지부가 있어 구호사역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러한 구호단계 혹은 개발을 돕는 단체들은 현지인들에 접촉하는 데 좋은 매개체이며,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중앙아사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사역의 방편이다.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기아나 빈곤이 없다고 말하지면 우리가 보기에는 구조적이고 절대적인 가난과 의료시설의 후진성,약품의 품귀들로 인하여 적절한 구호사역이 필요하다.

(3) 지도자 양성
현지 침례교에 의해 신학교가 운영되는데 미남침례교회에서 돕고 그 학생들은 러시아교회와 한인교회 젊은이들이다.지금까지 3년여 동안 공부를 해왔고 졸업생들도 배출되었다. 그러나 교단의 차이가 아닌 과거 다른 신앙노선을 지켜 온 신앙적 배경으로 인하여 현지 신학교와 돕는 선교사와 학생을 보내는 교회와의 갈등이 표출되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우즈벡 현지인들은 신학교육을 무시할 만큼 성령님의 지도와 감동을 앞세우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한인선교사들에 의해 거론된 신학교는 설립신중론에 의해 현재까지 기도 중에 있다. 오늘에 와서는 연합신학교의 설립에 관해 은혜 중에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신학교육기관 설립은 신학교 설립을 위한 전임사역자와 전임교수진이 해야 한다고 사료된다. 현지 사역자들이 이 일에 주도적으로 개입될 경우 분열과 졸속한 교육을 할 수 밖에 없고 개교회 교파주의적인 사역으로 될 소지가 많다고 본다.

4. 중앙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사역과 그 가능성

(1) 교회개척을 돕는 사역
교회개척사역이 아니라 교회 개척을 돕는 사역이 전략적으로 있어야 한다. 수준높은 영적지도자가 훈련되는 데 우리의 바람이지만,현실적으로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교회개척이 적어도 현지인에 주도적으로 될 수 있다면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는 자립으로 쉽게 설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회개척할 수 있는 지도자를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갖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세계선교협의회에서 교수와 교재와 자료를 준비하고 현지교회에서는 일꾼들을 보내어 단기 혹은 1년 정도 훈련하여 각 교회의 교회개척 계획에 맞춰, 혹은 지역협의회 협의에 의해 교회를 개척해 나가는 방안이다. 물론 교육장소는 중앙아시아 현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발전되면 중앙아시아 연합신학교 혹은 각 나라별 신학교가 설립될 수 있는 비전을 갖게 된다. 신학교의 필요는 현지에서나 현지 사역 중인 선교사가 신학교를 세우는 것보다 신학교육의 전문가와 교수진, 행정요원들이 현지로 파송되어 신학교 사역에만 헌신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현지 사역자가 도울 수 있고 어느 부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나,그들은 전담으로 신학교설립 목적으로 파송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지도자 양성에 한계가 있고,분파를 조성하게 되는 염려가 있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 아직까지 한인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신학교가 없다는 것이 그 가능성이다.

(2) 민족 사이를 넘어서는 전략
광범위한 표현인 것 같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기만 하면 민족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한인 중심의 사역이건 러시아어권 사역이건, 현지인 사역이건 그것을 돕는 사역이건 간에 그 땅이 구원받고 그 땅 거민이 교회를 세워가는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사역에 대해 서로 인정하면서 그 궁극적인 비전을 함께 나누고 공유할 협력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신학교 설립으로 인해 폭넓게 교단과 단체를 수용할 수 있고 구후사역들을 통해 믿음의 형제르리 돌아보는 것과 믿음의 동지가 사회에 대해 함께 긍휼을 베푸는 협력이라던가,외국선교단체와의 협력관계를 갖는 일 등이다. 이런 선교전략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은 선교사의 자기포기 없이는 어려울 것인데 ,선교사의 자기포기야말로 이 전략의 기초라고 본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5. 중앙아시아 사역을 위한 사역자

선교사는 선교지로 떠날 때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언어를 배우고 현지를 알고, 삶의 개척단계를 지나면 현지에 정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바로는 현지에 잘 정착하는 선교사가 훌륭한 선교사였다. 현지 문화에 잘 적응하고 현지인과 깊숙한 관계를 형성하는 선교사,그래서 자신의 가르침과 교회생활, 주님께 향한 헌신이 다른 사람에게 배움이 되도록 모범을 보여야만 했다.이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기 않으면 안되었다. 그 문화충격과 갈등, 질병으로 인한 고생,동역자 간의 오해,현지인과의 문제들, 이를 극복하고 현지에 정착하는 선교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선교사가 현지에 정착하게 됐을 때 또 포기할 것이 있다. 자기의 정착을 위해 선교지를 합리화시키는 것과 선교지의 신앙적 표현을 자기가 보인 모범으로 강요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자신의 성취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세운 개척지를 포기하고 현지인을 개발시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섰던 그 자리에 서도록 권위와 재산과 존경을 포기하는 개발자적인 선교사를 제의해 보고 싶다.

우제벡에서 4년을 살았다. 그들을 배우고 존중하고 삶을 열고 교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시간으로 드리고 싶었고 또 그렇게 노력도 했다. 어느 정도 정착도 했다. 법의 테두리에서 편리함도 누릴 줄 알고 한국을 선망하는 현지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무리없이 정착해 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정착하노라고 정의를 내려도 저들과 같이 될 수 없고 생활양식이나 신앙적 표현이(예배,삶의 현장들)정찰될 수 없고 판단이 서는 것이다.

현지인 성도들에게 나를 보고 배우라고 할 만큼 저들의 삶의 기준과 동일시되지도 않았고,저들 인식에 좀 다른 사람으로 인정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들과 같이 되기 위해서 검소하고 불편하기도 해보았다.그러나 아무리 내가 검소하고 불편에 처해도 자기들보다 낫다는데..러시아언어로 설교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러시아언어를 사용하지만 자기들끼리의 감정전달만큼 되지 못하는 것 같은 반응들을 볼 때(이런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고),자아 중심적인 정착의지를 포기하고 현지인을 세우고 개발하는 개발자적인 지도자가 되어보리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의식의 전환이며 현지인을 보는 편견과 한국적인 신앙표현방식을 포기하고 저들의 실수와 미숙함을 용납하리라는 마음의 준비이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으로 서가는 제자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싶은 기대감이다.

이런 개발자적인 사역자끼리는 선교사간에 불화가 덜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나 중심이 아니라 현지인에게 그 공동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6.아시아에서의 한국교회의 역할

선교지 중앙아시아는 불과 4년 전에 열렸다. 아직까지는 다른 공산권 선교지처럼 졸속적인 선교착오가 심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좋은 선교전략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이곳에 열심을 덜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하게 사역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하는 자신감도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님의 부르심은 크고 비젼이 있다. 이슬람 세계를 향한 기지로써 중국선교의 길목으로써,북한선교의 전략기지로써(중앙아시아 한인들이 남한의 한인보다 북한의 동포들을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중앙아시아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주님은 한국 교회를 부르신다고 믿는다.어떠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1) 중앙아시아를 중앙아시아적인 이해로 접근하며,이곳을 위해 기도를 바란다. 한인중심이라든지 이슬람을 위한 가교 정도가 아닌 중앙아시아의 필요에 민감한 기도를 바란다.

(2) 많은 교회가 지금까지 선교지에 조직교회를 세우는 것에 선교의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선교사들도 이에 부응하여 교회개척에 보람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만 머물지 말고 교회를 위한 사역,개척을 위한 사역에 힘을 모아주기를 바란다. 목사 선교사가 아니어도 가르치는 일과 돕는 사역을 할 수 있다. 파송 보낼 때 전권위임대사와 같은 선교사가 아니라, 필요한 사역에 필요한 선교사를 보내는 욕심 없는 후원을 기대한다(선교사 자녀학교가 미국선교단체에 의해 세워졌는데 한국어린이를 받다 보니 한국아이들이 다수가 되어버렸다. 영어할 수 있는 한국인 교사들을 원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교회에서 교사를 보낼 때가 되었다.)

(3)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진출한 근로자들을 믿음으로 돌보아주는 일이 있다. 얼마전 한국에서 발생한 외국근로자 인권문제에 대해 소식을 들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나 보낸 국가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우즈벡스탄에서 혹은 카작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진출한 근로자들이 그와 같은 일을 만났다면 그 경위야 어떻든 한국의 이미지는 물론 한국인 사역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직접 나타나리라 상상해 보았다.

일부 기업인들의 비인간적인 처사나 근로자 당사자들의 문제를 따질 수 없고 선교사 입장에서 제의한다면 외국근로자들을 섬기는 선교단체들이 서로 협의체를 구성하여 외국근로자에 대한 정부 통계를 근거로 하여 공장지역별 혹은 직능별,국가별로 나누어 돌보아주며 선교적인 접근을 기도한다면 이 또한 값진 사역일 것이다.현지인이 한국에 가서 보고 받은 소감을 말할 때 그 결과는 -200%이든지 아니면 +200%이상이다.

결론

중앙아시아에서의 선교적 전략은 중앙아시아를 바로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중앙아시아 다섯 나라는 공통적인 점도 있으나 각기 다른 형편에 있으므로 각 국가별로 적용을 다르게 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사역 가운데 중지되어야 할 일들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교회 개척에서 너무 개교회 중심적인 노력과 선교사 중심적인 것을 지양하고 현지인으로 하여금 사람을 얻어 더불어 교회를 세워 나가도록 돕는 교회개척을 돕고,개발하는 사역이 세워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연합단체나 협의회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 지도자 훈련과정 내지는 신학교를 세우는 전략도 세울 필요가 있다.

이에 부응하여 현지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은 개척자-정착자를 뛰어넘어 개발자로 세워주고 물러나는 섬기는 선교사,바울과 같은 선교자상을 지향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모교회가 기도와 후원을 통해 헌신자를 일으키고 세워서 주님이 바라는 선교사를 보내야 하며 개교회 명예를 세우는 사역이 아니더라도 돕는 사역자,협동할 수 있는 선교사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이와 함께 현지에서 한국에 입국한 근로자를 위한 선한 이웃으로서의 역할도 나누어지는 것이 한국교회의 몫이 되었다. 주님께서 중앙아시아를 향한 중대하고 세밀한 계획을 당신의 종들을 통해 이뤄가실 것을 믿으면서 지역별 전략을 발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