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선교현황과 우리의 선교전략..............서만수

1.인도네시아 개관

1) 위치

적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연이어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정확한 북위 6,08도에서 남위 11.15도와 동경 94.45도에서 서경 141.05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의 길이는 5천 킬로미터에 달하고 남북의 넓이는 2천 킬로미터에 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은 영국의 언어학자 J.로간에 의하여 "INDO NESOS (인도의 도서들)"라고 붙여진데 기인한다. 지금도 현지인들 사이에는 "누산따라"라는 명칭을 즐겨 쓰는데 "도서군"즉 순다열도를 지칭하는 인도네시아의 애칭이다. 인도네시아는 동서로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고리와 같은 위치에 있고 남북으로 호주대륙과 아시아대륙을 이어주고 있다. 자바,스마트라,칼리만탄(보르네오섬의 인도네시아 부분),슬라웨시,이라안자야(서부 뉴기니아) 등 세계에서 큰 섬들이 전부 또는 일부가 인도네시아에 포함되어 있다. 순다열도를 이루고 있는 섬중 약 7%의 섬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영토는 경제전관수역을 포함하여 1백 90만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육지로 되어 있다. 이는 한반도 전체의 8.6배에 달하는 넓이이며 미국 본토와 그 크기가 맞먹는다. 이 중에 216개의 활화산과 221개의 강,그리고 18개의 큰 호수가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통계국(BPC,1993)에 의하면 행정구역은 27개의 도와 243개의 군,60개의 시,3,836개의 면,65,554개의 촌락으로 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활동 중인 화산이 있는데 이들 중 대부분(80%) 태평양대의 영향을 받고 15%정도는 지중해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 활화산 중에 60여개는 잠정적인 위험상태에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화산대가 만나는 곳이므로 4도 이상의 지진이 연간 3백 내지 4백 회나 일어나고 있다.

2) 기후

인도네시아의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이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6월부터 9월까지는 호주로부터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건기가 되고,12월부터 3월까지는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오는 바람이 태평양의 습기를 몰아오므로 우기가 된다. 이 계절의 변화는 반년을 주기로 대개 4-5월경과 10-12월경에 바뀐다. 그러나 중버 말루꾸 지역과 같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

연평균 기온은 열대의 높은 온도가 계속되고 있으나 지역의 위치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해안 지역을 비롯한 낮은 지역은 평균 기온이 28도시이고 낮의 최고 온도는 35-36도시 정도까지 올라가며 보통은 33도시로서 한국의 한여름과 비슷한 더위다. 그러나 해발 2,000M이상의 높은 지역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추운 곳도 있다. 역시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습도는 최저 62%에서 최고 90%까지 올라간다. 그러므로 우기에는 실내에 있는 가구들이 젖어 있는 상태이고 벗어 놓은 구두는 물론 카메라의 렌즈에까지 곰팡이가 피는 정도이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길고 넓게 흩어져 있는 나라이므로 강우량도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우기에는 열대 특유의 스콜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나가고,그것이 집중적으로 계속될 때는 경사가 완만하고 해수면과의 차이가 크지 않으므로 침수되는 지역이 많이 생긴다. 건기에는 2-3일에 한 번씩은 비가 오는 편이지만 작은 풀 종류는 마르고 큰 나무들만 푸르름을 유지하게 된다. 1992년에 강우량이 가장 많았던 곳은 칼리만탄 섬의 반자르마신 지역으로 12월 한 달 동안에 723밀리나 되었다.

3) 인구

1990년 인도네시아의 총 인구는 179,400,000명인데 이는 1980년에 비하여 1,98%가 증가한 것이다.이는 중공,인도,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인 것을 보여준다. 1971년부터 1980년 사이의 인구 증가 비율은 2,3%였으며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2.2%였고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1.9%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가족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의 자녀는 셋째까지만 혜택을 받고 앞으로 서민주택 분양등, 사회복지 시설의 특혜도 가족계획에 참여한 사람만이 받도록 되어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주화 중에서 5루피아 주화에는 가족 계획의 표제와 그림이 들어 있어 이곳을 다녀가는 관광객이나 주화 수집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평균 인구 밀도가 지역에 따라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전국토의 6.9%에 불과한 자바 섬에는 5개의 道가 있으며 전체 인구의 60.2%인 1억7백5십만 명이 살고 있고,자카르타의 경우에는 그 밀도가 12,495명이나 된다. 인도네시아 전체의 인구밀도는 93명이고,자바의 인구밀도는 814명이며 이리안자야(서부 뉴기니아)에는 인구밀도가 7명에 불과하다. 정부에서는 이민계획을 실시하여 자바섬에 편중되어 있는 인구밀도를 다른 섬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현재 본 선교부가 집중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리안자야의 인구는 현재 1백 65만 명에 불과하다. 자바 섬으로부터 이민을 시켜 5백만 명에 이르게 될 예정이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이 완성되면 새로 이주된 사람들이 원주민의 3배의 육박하게 되며 인구 밀도는 7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전도에 열심이 있는 현지 교회들이나 선교단체들이 이 정부의 이민계획에 세심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집중적 기독교 분포도를 변경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이리안자야의 경우 현재 원주민의 85% 이상이 기독교인들인데 자바 섬으로부터 이주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교도들이다. 회교 측에서는 막대한 재정을 기우려 이리안자야의 중요한 지역마다 회교센타를 설립하고 전문교육기관을 개설하고 있다. 이리안자야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쏘롱"에는 일반 교육기관으로 고등학교밖에 없었는데 여기에 회교 측에서 전문학교를 세우므로 유지 및 공무원들이 등록을 하게 되었고, 이들은 부득불 회교식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주일예배 참석이 어렵게 되고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 교인들이며 그중에 상당수가 교회의 제직자들이다.

본 선교부가 지방정부와 유지들의 협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요사업계획 중에 하나가 교육기관 설립이다. 지도자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설립의 첫단계로서 이리안자야에 가장 가깝고 지금까지 긴밀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말루꾸섬에 "기독교 대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말루꾸 개혁교단과 산하 신학교를 발판으로 하여 "인도네시아 기독 대학교"(INDONESIAN CHRIS- TIAN UNIVERSITY IN MOLUCAS 'UKIM')을 창립하여 1985년 9월 23일 개교하였다. 본 선교부 대표를 포함한 12명의 창립 이사회는 말루꾸교단 총회장이며 신학교 교장인 "라자와네" 박사를 총장으로 임명하였고 3명의 대학장과 1명의 연구실장도 아울러 임명하였다. 현재 상경대학,사회정치대학,공과대학,신학대학에 등록한 학생은 1천 7백여명이고 40명의 전임교수와 52명의 강사진이 가르치고 있으며, 매달 6천(미화)달러의 경상비가 지출되고 있다. 예산 이외의 도서구입비가 요청되고 있으며 실험관 건축비(2만 5천불)도 우선적으로 해결되여야 할 문제다.

모든 상황을 선하게 섭리하시며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기독교 지역의 회교화를 독촉하는 인도네시아 이민정책에도 나타나 선교사역에 좋은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한마디로 이민정책은 복음이 파종되도록 완고한 심령들을 개간하여 주고 있다.

3백 50여 년 동안 화란의 지배를 받으면서 섬과 섬 사이는 물론이고 같은 섬 안에서도 여행증명이 있어야 다른 고장으로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간섭을 싫어하는 오지인들은 한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움직이지도 않고 섞여 살아본 적도 없는 이 사람들은 좋든지 싫든지 자기네의 생활방식과 내려오는 전통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 복음을 파종한다는 것은 주님의 씨 뿌리는 비유중에 돌짝 밭에 뿌리는 것과 같아서 그중에 한두 사람이 회교나 전통적 토속신앙으로부터 기독교로 개종한다 하더라도 주위의 압력과 눈총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물론 예외적인 형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 선교부 산하 개척지 중에서 중부 자바의 롬빠촌락 교회는 총장이 개종하면서 촌락민 모두에게 개종을 권하여 많은 사람들일 일시에 기독교 신자들이 되었다. 이 촌장은 다른 촌장들을 전도하여 이웃 촌락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출생지 및 주거지별 통계

현재주거지  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  슬라웨시  기타      계
출생지                                                        (%)
수마트라   32,743,295 1,069,166   48,022   27,275    31,209 33,918,967
               (89,8)     (1.0)    (0.5)     (0.2)     (0.2)    (18.9)
자    바  3,523,631 105,851,935 842,181  315,318   372,061 110,905.126
              (9.6)      (98.4)   (9.3)     (2.5)      (2.7)    (61.9)
칼리만탄     23,521     197,946 7,957,760 18,021      8,106 8,205,354
              (0.1)        (0.2)    (2.1)  (95.7)        (1.4)  (4.6)
슬라웨시     92,443     177,598 189,950 11,972,724  189,727 12,622,442
              (0.3)        (0.2)    (2.1)  (95.7)       (1.4)    (7.0)
기 타 섬     59,798     163,426  47,785  168,015 13,033,261 13,472,285
              (0.2)        (0.2)   (0.5)    (1.3)   (95.5)       (7.5)
해    외     19,713       51,903   6,513   6,623      4,121    88.873
               (0.1)        (0.0)   (0.1)    (0.1)     (0,0)     (0.1)
기    타      9,330       13,546   3,554   2,430       5,876   34,736
               (0.0)        (0.0)   (0.0)    (0.0)      (0.0)    (0,0)
총    계  36,471,731 107,525,520 9,095,765 12,510,406 12,510,406
              (20,3)    (60,6)      (5.1)     (7.0)      (7.6)   (100)
          계 179,247,,783 (100)
이민촌락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기성촌락에서도 첫째 전도의 대상은 다른지역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이다. 자의에 의한 이주는 극히 드물고 군인,경찰,또는 공무원으로 전근이나 전속으로 인하여 이사온 경우이다. 그중에 기성 신자가 있든지,상당한 지위의 인사가 개종을 하는 경우도 전도의 다음 단게는 훨씬 수월하여지고, 가속화된다. 근본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이민정책은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두 가지 형편을 제공하여 준다. 기독교 지역에 다량의 회교도가 전입한 경우 기독교 세력이 위축되는 경우와 마음과 생활에 변동이 없던 이들에게 복음의 새 바람을 쏘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 양면성을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여 그 어느 종교의 전략이나 열심에 못지않게 선용해야 한다. "모든 일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다음과같은 인구 이동의 통계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4) 언어및 종족

인도네시아 영토가 수많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못지않게 문화적인 배경이나 전통이 서로 다른 3백여 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도 학자에 따라서는 2백개의 종족으로 분류하는 사람(Raymond Kennedy)도 있고 3밸 60개의 종족 이름을 제시하는 사람(M.A. Jaspan)도 있다. 종족을 분류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관혼상제의 동일 여부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동일 여부이다. 인도네시아의 중요 종족계열로는 "아시아의 아프리카"라고 하는 이리안자야의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를 가진 네그리트족을 비롯하여 몽고계,말레이계,동남부 섬에 있는 폴리네시안계와 근세에 나타나는 혼혈계가 있다. 중요 종족으로는 수마트라섬의 북부와 아체족,바탁족,서부 미낭까바우족,남부 람뽕족 등이며 서부 자바의 순다족, 자바 일대의 자바족,마두라 섬의 마두라족과 발리섬의 발리족, 남부 칼라만탄의 반자르족, 중부의 다약족, 슬라웨시 북부의 미나하사족,중부의 토라지족, 남부의 부기스족,암본섬의 암본족 등이다. 이외에도 아랍인 및 인도인과 화란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도 수만 명에 달하고 있다.

중부 자바의 솔로강 유역에서는 기원전 50만년으로 추산되는 자바원인(직립원인,Pithecanthrope)화석이 1982년에 발견되었으며 계속하여 구석기문화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지질학적 고찰에 의하면 자바원인이 활동할 때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70m나 낮았기 때문에 말레이 반도를 비롯하여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등이 연결되어 반도를 이루고 있었다고 추측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로서 수마트라의 잠비아 지역에만 살고 있는 코끼리의 화석들이 중부 자바의 쏠로강 유역에서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잡다한 인도네시아의 종족은 북방 대륙으로부터 유입된 종족과 남방계의 종족들로 대변할 수 있다. 동일한 족속은 특수한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며 문화의 고유한 단위를 이루게 된다. 혈연관계를 중요시하는 이들은 대외적인 활동은 물론이고 사회생활 및 종교활동에 있어서도 동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말로서 본 선교부 산하 개척지는 69개 처인데 어떠한 교파나 교단의 교회도 없는 촌락에 현지 교역자를 훈련시켜 파송하고 있다. 사역자의 일반적인 요건은 정규 성경학교 또는 신학교육을 받은 자일 것과 인정할 만한 교단의 교역자 자격(목사 또는 전도사)를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척하고자 하는 촌락의 부족에 속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사람은 부족의 결속의식에서 소외됨으로 오래 일할 수 없고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관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은 도시 근교에 있는 몇개의 개척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네의 부족어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순회집회 시에는 인도네시아의 공용어(Bahasa Indonesia)로 설교하고 사역자가 이를 현지 부족어로 통역한다.

1994년부터 중학교까지 교육제도상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으나 시설과 학교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사실상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종족 중의 하나는 화교이다. 약 4만 명으로 추산되는 화교의 숫자는 크게 나누어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과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나눈다. 현지에서 출생한 사람들은 현지어를 잘 구사하고 있으나 본토 출신자들 중에서는 전혀 현지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또또"라 하여 현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 화교들 중에는 대도시에서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많고 상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2. 인도네시아의 종교

1)종족 및 그 종교

인도네시아의 국가적인 명제는 "다양성, 통일화"이다. 이를 고대산스크리트어로 "BHINNEKA TUNGGALIKA"라는 인도네시아의 국장인 독수리의 양발 사이에 새겨 넣고 있다. 인도네시나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정부에서는 종교성이 있어 모든 종교 및 그 활동을 관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종교별 분포도는 지역과 종족에 따라 명확한 구분을 보여주고 있다. 북부 수마트라의 아체지역을 비롯하여 서부 수마트라의 미낭까바우,서부 자바의 순다지역,남부 칼라만탄의 반자르마신지역,마두라섬,셀레베스섬의 남부 마카사지역 등은 강력한 회교지역이다. 힌두교와 불교는 중부 자바와 발리섬에 퍼져 있고 화교들 중에 불교신자들이 많은 편이다. 기독교 지역은 북부 수마트라의 바탁지역과 북부 슬라웨시의 미네하사지역 그리고 이리안자야 북부지역과 인도네시아의 동남부에 흩어져 있는 암본, 숨바와섬 등이다. 외부의 세계와 접촉을 싫어하는 오지 부족들은 아직도 토속신앙을 고수하고 있는데, 주로 기독교 선교사들이 조심성 있게 접촉하고 있다. 낮에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망을 보며 살고 저녁에는 나뭇가지로 간단히 만든 움막에서 지내는 오지족과 하루종일 햇볕에 뜨거워진 모래에 몸을 묻고 사는 해안종족도 있다. 이리안자야의 마로께지역에 있는 마린족은 그 수가 5만명에 이르고 있으나 질병에 의한 희생이 심하여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부인의 내방이나 조우를 자기들 영토의 침입으로 생각하는 오지인들은 독침이나(나무 파이프에 독을 묻힌 살을 넣고 입으로 불어서 발사한다)독화살을 날려 처치하든지,아니면 자신들이 더 깊은곳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우리는 이들을 잘 알고 있는 이웃 부족이나 그 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하여 식기,칼,농기구 등을 전해주고, 또 그들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에 놓아 두어 언제나 그들로 가져가게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네들만 통하는 부족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우연이든,의도적이든 이 사람들과 만났을 때, 적의가 없다는 것을 해명하기가 대단히 곤란하다. 이들은 주로 문신과 열매의 씨앗들로 몸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떤 부족은 해안에서 나는 달팽이 껍질을 좋아하고,어떤 부족은 주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순화 때마다 이런 것들을 준비해 가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펀처살라"라는 "국가 5대 원리"가 있는데 그중에 첫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국민은 누구나 종교를 갖도록 되어 있다. 개인 신상을 밝히는 모든 서류에는 종교란이 있어 꼭 기록하게 되어 있으며 종교란이 무종교 상태로 비어 있으면 공산당과 유관한 무신론자로 의심한다.

2) 힌두교

인도네시아의 토속종교는 "꺼바틴안"이라는 물활론적 사상에 속하는 정령숭배이다. 이는 종교로서 인정하기보다 전통문화서 계승하기 위하여 국회의 결의를 거쳐 문교성이 보호를 받고 있다.인도네시아의 첫번 외래 종료는 힌두교이다. 힌두교의 인도네시아 전래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의 선원(상인)들이 서부 자바와 킬리만탄 동부 해안에 빈번히 접근하면서 문물을 교욕하였고 당시의 말과 함께 산스크리스트 문자도 전해주었다.특히 그들 중에 현지인들과 결혼하는 일이 있게 되면서부터 부라만 승려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을 통하여 힌두교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힌두교는 당시 사람들에게 아무런 저항감 없이 파급되었다. 힌두교는 사성계급을 둔 귀족주의적인 종교인데다가 당시 외래의 문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지배계급이었던 고로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졌고 이후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제5세기 초에는 힌두교를 바탕으로 한 "빠자자란 왕국"이 서부자바에 세워졌고 동부 칼리만탄에도 "꾸타이슬탄 왕국"이 세워졌다. 힌두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와 언어와 정신문화 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지금은 강력한 타 종교에 밀려나 자바로부터 발리 섬으로 옮겼고 거기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1990년 말까지 힌두교세는 전체 인구의 1%로 되어 있다.

3) 불교

힌두교에 의어 전래된 종교는 불교다. 불교는 힌두교의 터전에 영합하여 급속도로 민중들 사이에 파급되었다. 6세기경에 세워진 남부 수마트라의 ""수리워자야 왕국"은 불교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고 수마트라의 대부분과 자바와 칼라만탄의 서부, 그리고 말레이반도 일부에까지 미쳤다. 인도네시아에 불교를 기초로 한 왕국이 두번째로 중부 자바에 세워졌다. 서기 732년경 산자야 왕이 즉위하면서 공용어를 산스크리트어로 정했고 관리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고백하게 했다. 이러한 종교적인 열심과 정치적인 세력이 경주되어 중부 자바의 "꺼두"평원에 "보르부드르(BOROBUDUR)"사원을 축성하게 되었다. 서기 826년에 준공된 이 사원은 엄밀히 말하면 힌두교와 불교와 자바의 토속신앙이 혼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모조빠힛"왕조(13-16세기 초)를 정점으로 하여 불교의 세력은 점점 쇠하여 토속신앙에 흡수되었다. 현재의 교세는 인구의 0.9%에 불과하여 미미한 존재가 되어 있다.

4) 회교

인도네시아에 있어서 회교가 다른 종교에 비하여 급진적으로 민중에게 파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힌두교와 불교가 인도의 사성계급주의 때문에 지도층에 있는 한정된 사람들에 의하여 옹호되었고 그나마 세력이 이미 쇠퇴하여 가던 까닭이다. 그러나 새로 전해지고 있는 회교는 알라신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주장 때문에 일반 대중의 환영을 받게된 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의 선도적인 영입에 의하여 파급된 회교는 정치적인 기반을 구축하여 15세기 후반에는 북부 자바의 "데막"에 회교를 기초로 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당시 "모조빠힛"왕조는 이미 사양길에 있었고 힌두교의 나머지 세력은 신흥 회교세력에 밀려 발리섬으로 그 근거지를 옮기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에 있어서 회교 세력이 국민적 단합의 통일성을 보이게 된 것은 외세(서구)의 침입에 대한 방어 때문이었다. 서기 1497년 포르투갈 선박이 인도네시아의 해안을 침범한 것을 계기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 온건한 인도에 청원하기보다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회교 세력을 통하여 아라비아에 청원의 손길을 뻗치게 된 것이다. 이에 메카에서 유학하던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돌아옴으로 인도네시아는 보다 확고한 회교세력의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외세에 대한 항쟁의 세력을 규합하는데 핵심이 되었다. 이후로 계속되는 식민정권에 대한 항쟁에도 회교군으로 결집된 사람들이 앞장서서 싸웠다. 인도네시아에 있어서 회교는 자기네의 고유한 종교로 착각할 정도로 이질감을 전연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5) 기독교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역사는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수가 있다.

(1) 포르투갈 지배시기(1520-1615)
포루투갈이 1511년 말라카를 공격한 이래 다음 해인 1512년에는 말루꾸섬에 상륙하였고 동남부 여러 섬에 요새를 구축하였으며 화란에 의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했던 1663년까지 특산물인 후추,박하 등의 향료를 수집해 갔다. 포르투갈 선교사역은 1530년대 초기부터 말루꾸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522년 떼르나떼(Ternate)섬에서 첫번 미사가 집례되었고,1534년 할마헤라(Halmahera)섬에서는 군중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1546년 제수잇파의 프랜시스 익자비어(Francis Xavier)가 말루꾸섬을 방문하였을 때 이미 많은 교회들이 세워져 있었다.

(2) 화란의 동인도회사 시기(1615-1815)
1602년 화란이 인도네시아 점령의 기선을 잡고 동인도회사(VERENIGDE OOS- TINDISCHE COMPAGNIE)를 설립하고 1605년에는 말루꾸섬에서 포르투갈이 세운 교회들도 점령당국의 관리아래 들어감으로 화란 개혁교회로 교체되었다. 화란 행정당국은 동인도회사의 직원들을 위하여 말루꾸, 떼르나떼, 비타비아 마카사,빠당,메나도,스마랑 등에 목사를 파송했다. 당시의 교회는 실상 동인도회사의 직원들을 중심한 회사 교회라고 할 수 있으며,포르투갈 치하에서 생긴 카톨릭교회등 외부 사람들을 위한 전도활동은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1735년,최초로 인도네시아어 성경을 출판한 것은 인도네시아 기독교 역사상 괄목할 만한 일중에 하나이다.

나폴레옹 전쟁 후 화란은 영국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지배권을 인정받으므로 자바의 고유한 왕국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식민정치를 본격화하였다. 지금까지 교회의 활동은 동인도회사의 주관 아래 있었으나 이후로는 식민 정부의 직접적인 지실르 받게 되었다. 즉,화란왕정은 1815년과 1835년 등 두 번에 걸쳐 법령을 발표하여, 인도네시아 교회와 화란교회를 완전히 분리하였다. 인도네시아 교회는 식민정부에 전적으로 일임되어 총독으로 하여금 성직자를 임명하며 교회 예산의 집행과 운영의 총책임을 맡게 하였다. 특히 1835년에 발표된 법령에 의거하여 서양인 목사 43명과 조사 31명을 임명하였며, 9명의 성경교사와 350명의 전도사를 현지인으로 임명하여 인도네시아 교회사상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3) 선교사들의 활동 히기(1815-1930)
이 시기에는 화란,독일,스위스,미국 등으로부터 선교사들이 들어와 30개 지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당시에 활동했떤 대표적인 선교단체들은 다음과 같다.

(a) 라인강 선교협회(라인강 선교협회(RHEINISCHE MISSIONSGE SELSCHAFT)이들은 1828년 바멘(Barmen)시에서 설립되어 1836년부터 동남부 칼라만탄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1859년 다약족의 반란사건으로 인하여 4명의 선교사와 3명의 부인,그리고 2명의 자녀가 희생당하므로 새 사역지를 물색, 북부 수마트라의 아체지역 (1861년)과 니아스섬(1865년)으로 옮겨 선교사역의 큰 성과를 거두었다.

(b) 바젤 선교부(Basler Mission)
처음에는 스위인과 독일인으로 구성되었으나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스위스 선교사들만 남게 되었다. 바젤 선교부는 아프리카와 인디아와 중국 등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으며, 1925년부터는 칼라만탄의 다약족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c) 화란 개혁교회 선교부(Nebderlandse Gereformeerde Zendingsvereni-ging)
1861년 화란 개혁교회의 보수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으며 중부 자바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화란 개혁교회로부터 1834년에 분립한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는 1889년부터 인도네시아의 동남부에 있는 슘바(Sumba)섬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1913년에는 슬라웨시섬의 란테파오(Lantepao)지역에 사역을 시작했다. 1928년부터는 동 섬의 토라자 마마사(Toraja Mamasa) 지역에까지 사역을 확장했다.

(d) 씨.엠,에이(C.M.A)는 1929년에 들어와 발리,마카사,동부 칼라만탄 등지에서 활동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로 남침례교회가 들어와 중부 자바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였고,뒤이어 오엠,에프(O.M.F)가 들어와 중국 내지선교사역을 계승했다.

(4) 자립교회 시기(1930-)
하나님의 뜻으로 복음의 씨앗이 인도네시아에 파종되고 또한 그의 섭리를 따라 자라나게 됨을 볼 수 있다. 1940년 독일이 화란을 점령하게 되자 인도네시아 교회는 지도력과 재정력을 일시에 잃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일본군이 진주하게 되자 인도네시아 교회는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점령군 당국은 주민의 절대 다수가 신봉하는 회교는 옹호하면서도 유럽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는 경원하였다. 교직자들이 참살 또는 투옥되었고 교회의 기물들이 강점,파괴되었으며 수많은 구실들로 교회의 사역을 방해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가 재난을 당하여 연약해지고 흔들리는 불의 시험 중에서도 용이기와 인내를 보여주었다. 전쟁의 환란과 핍박 중에 자립정신을 얻었던 것이다.이미 조직되어 있던 교단들은 임직원을 인도네시아 사람들로 세웠고, 외국 교회와의 유대는 계쏙하되 현지 교회의 필요와 초청에 의하여 오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지역마다 기구적인 체제를 갖추고 교단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즉 숨바교회(1946년),띠모르교회,상이르-뽀소교회(1947년),할라헤라교회(1949),불랑동온도교회(1950년)등이다. 따라서 교역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자카르타에 대학 수준급의 신학교가 (1954년)세워진 것을 효시로 하여 교단의 필요와 지역적인 형편에 따라 뻐마땅시안따르,족자카르타, 반데르마신,말랑,암본,또모호혼 등에 설립되었다. 1851년에는 화란 침례교회가 들어왔고 1989년에는 화란 루터교와 구세권이 들어왔다. 이미 75개 처에 화교교회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1905년에는 미국으로부터 감리교회가 들어와 서부자바,서부 칼라만탄,남부 수마트라 등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5) 한국선교사들
(a) 한국선교회 1.YAYASAN PELAYNAN HALLELUYAN(선교법인)
2.YAYASAN PENDIDIKAN SANDOL NUSANTARA(교육법인)

1970년 9월 28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55회(총회장 김창인목사)에서 서만수 선교사를 인도네시아로 파송하게된 것은 당시 R.E.S(REFORMED ECCUMENICAL SYNOD)의 같은 회원으로 있던 본 총회와 화란의 기독개혁 교회가 동경대회에서 협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총회신학교 교수였던 김의환 박사와 간하배 박사(Harvie M.Conn)가 연구위원으로 적극 추진했다. 당시 주한국 인도네시아 대사인 베니므로다니 장군의 특별한 협조로 최초의 한국선교사로서 입국 수속을 하게 되어 1971년9월9일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정확한 파송지역은 인도네시아의 슬라웨시섬 중부 고산지대 토라자 마마사(Toraja Manasa)지역이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로써 한국교회도 남방 오지선교의 장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본 선교회는 상기 두 개의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사역및 교육사역을 벌이고 있다.

(b)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
강원준,김대근,김영주,김의정,김익배,김창기,김철웅,김충환,김형익,김화수,박성오,박종형,백광현,백성영,서만수,서광종,서성민,석진웅,신방현,어성호,오영호,이규대,이금주,이필환,이헌철,임종혁,정영명,조시철,최광수,최수일,최원금,하호성,한승인,한옥희,한치완,홍영화 등 50여 세대이며 싱가폴을 출입하며 바탐섬(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있고 서부 자바섬등에서 어학을 교습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있다.

3. 종교적인 상황

1) 종교 법령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활동이 제약받게 된 것은 1978년 8월 1일 종교성 장관이 발표한 법령 제70호가 발표되면서부터이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단합을 위하여 각 종교 단체는 판차실라(PANC-ASILA,국가 5대 원리)의 정신에 입각하여 상호 존중한다.

둘째:종교를 선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사항은 부당하다.

(1) 이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종교를 선전하는 일

(2) 종교선전을 목적으로 의류나 금품이나 의약품을 제공하는 일

(3) 종교적인 책자나 인쇄물을 기성 종교인의 가정이나,직장이나,개인에게 돌리는 일.

(4) 종교를 선전할 목적으로 다른 종교인의 가정을 방문하는 일 계속하여 1978년 8월 15일에 발표된 법령 제77호의 글자는 다음과 같다.

1) 외국인으로부터 반입되는 모든 원조는 금품과 인력을 막론하고 종교성에 보고해야 하며 종교 성장관의 추천 또는 동의를 얻은 후에야 활용할 수 있다.

2) 종교관계에 종사하고자 하는 모든 외국인은 종교성 장관 또는 지정하는 관계관의 허락을 받아 임시로 활동할 수 있다.

(3) 모든 종교관계 기관 및 기구는 현재의 외국인을 대체하도록 정한 기간 안에 교육 및 훈련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4) 상기 교육 및 훈련계획은 본 법령이 확정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실시하여 2년 이내에 마쳐야 한다.

이와 같은 법령이 계속 발표됨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이론이 있었다. 특히 국내 기독교계에서는 위헌이라고 주장하여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이로 인하여 법령이 철회되거나 수정되기는 커녕 1979년 2월 1일에는 종교성 장관과 내무성 장관이 공동 명의로 법령을 재차 발표함으로 상기의 2개의 법령(제70호와 제77호)이 합법성임을 강화하였다. 이후로 자유로운 전도지 살포와 축호 전도가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선교사의 입국허가와 비자 연장이 이전에는 종교성의 추천으로 이민국에서 곧장 처리되었으나 새 법령이 발표된 이후로는 중앙정보부의 결정으로 종교성을 거쳐 이민국에서 연장하고 있다.

2) 상황의 이해

문화사적인 입장에서 본 인도네시아 정부의 종교활동에 대한 일련의 조치는 정치,경제,문화,등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자 하는 자국 자결주의 사조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당시만 하여도 인도네시아에는 1965년 9월 공산당 반란사건에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 이를 미국정부가 인권탄압이라 하여 외교적인 압력을 가해왔고 그후 3천 명이나 석방되었다. 그러나 1977년 총선거를 전후하여 일부 종교의 과격분자들이 해외로부터 무기를 밀반입하는 등,노골적인 반정부 활동의 기미가 농후하여짐으로,인권탄압이라는 신조어의 화살을 막기위한 합법적인 수단으로 상기의 종교법령이 발표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발표된 이후에 불편해진 것은 기독교측의 전도 활동이었다.

독립전쟁 당시부터 회교의 지도자들이 지휘하는 회교군이 있었는데 독립후 인도네시아 국군(TNI)이 창설되면서 국군으로 편입되었으나 일부는 지하로 잠적하고 말았다. 이들이 연결이 되어 "회교국 인도네시아"를 모터로 사회의 불화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1984년 9월 14일에 있었던 자카르타 딴중 푸리옥 지역의 회교사원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정부 소요사건을 필두로 중국계 은행 2개를 비롯 3개처에 폭파사건이 발생했다. 에카리아 식당과 사리나 백화점이 방화되었으며, 해병대 탄약창 폭파사건이 있었다. 이렇듯 중요건물 폭파위험이 있어 한동안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동부자바의 빠수루안지역의 7개 교회가 방화되었고,수라바야 지역에서는 8개 교회가 불탔다. 말랑신학교와 성당에는 폭탄이 투척되었고 세계적인 문화재 보로부드르사원의 일부가 폭파되었고,중부 자바의 옛 왕도 "쏠로"왕국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1985년 7월 10일에는 빠사로 바루시장 안에 있는 메트로 백화점이 불탔고, 동 20일에는 인도네시아 중앙방송국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여 6백명이 있는 8층 건물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이고 말았다. 당시 국가 전복음모 협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9명의 피고인 중에는 전 아시안 사무총장,전 자카르타 시장 및 고위 정상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중립노선을 지지하고 있으나, 1965년 9월 30일 공산당의 반란사건을 계기로 철저한 반공노선을 걷고 있다. 미정보국에서 발행된 문헌에 의하면 해외에는 아직도 250여명의 인도네시아 공산당에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소련을 비롯하여 동독, 불가리아 등 3개국과 여러 나라에 산재하여 있다고 한다. 최근 정치적 관용의 기회를 틈타 비밀리에 입국한다면 또 다른 불안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없지 않다.

4. 결론

인도네시아는 회교국은 아니지만 회교도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87.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1971년도의 통계보다 0.4%가 감소되었음을 보여준다. 1971년 기독교도의 수는 카톨릭을 포함하여 7.4%였으나 1980년대에는 8.8%로서 10년 동안에 회교도가 0,4%감소된 데 비하여 기독교측은 1.4%가 증가하였다. 특히, 이 기간 중에는 종교법이 수차에 걸쳐 발효되어 기독교 선교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지금까지 발효된 종교법령이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없던 이전에 비하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나, 인도네시아와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선교사들은 새로운 지혜와 출입의 방법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다. 선교지는 점점 어려워 가고 선교사의 출입구는 좁아만 가고 있다. 선교사가 살 만한 자리를 골라가기는 철새가 아닐진대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있을까?다음 순간에 쫓겨나도 이 시간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만이 오늘에 필요한 선교사이다. 거창하게 파송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것을 기대하는 선교사 후보는 없어야겠다. 약속한 한 기간도 넘기지 못하고 선교지를 드나들다가 제3국으로 아주 떠버릴 선교사는 애초부터 선교사 되기를 사양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되새기며 새로운 각오로 지상명령인 세계복음화를 완수하자.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가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행11:26-27)." 오라! 우리 함께 가자.
"바윗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2: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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