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 비평학적 연구

성경연구 목차로 가기

신약 학계는 학계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 온 연구생들을 지금도 계속해서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글이 쏟아져 나오고그 방법과 도구가 어리둥절하리 만치 다양하게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가장 심각한 분야는 공관복음 연구이다. 본 논문은 대중적이면서도 자주 오 해되는 6개의 최근 방법론을 개관하고,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새로운 글을 표본으로 제시하려고 한다. 6개 방법론은 발생과 혹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전개해나가고자 한다.

1. 자료비평

1964년경에 이르러 스티픈 닐(Stephen Neill)은 공관복음 문제는 신약학의 몇 안되는 이미 종결된 논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었다. 두 자료설은 실제로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고 있었 기 때문이다. 이것은마태와 누가가 그들의 원자료로 마가와 Q에 각각 독립적으로 의존하고있다는 이론이다.
스트리터 (B.H.Streeter)는 마태와 누가에 들어있는독특한 내용에 대한 가설적인 자료로 M과 L를 더하여 보다 야심적인 네자료설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파머(William Far-mer)가 그리스바하의 가설(Griesbach hypothesis,19세기 후반에 그 용감한 주창자의 이름을 따라 이렇게 명명함)을 회생시키려고 시도하여기존의 비평적 합의에 중대한도전을 가했다. 그리스바하의 가설에서는 마태가 최초의 복음서 기록자이고 누가는 마태에게 직접적으로 의존하고있으며, 마가는 이 둘을 요약 혹은 융합하였다고 본다.
1970년대 후반까지 파머의 주장은 최소의 지지 밖에 얻지 못했지만 그후로는, 전세계학계로 볼때는 여전히 소수의 소리에 불과했지만, 지지자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서너개의 국제 학술 회의가 최근에 부활된 그리스바하 가설에 대한 관심을 가열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혔다. 독자들이 마가를 기준으로 단편을 구분하고 누가와 마태 유비로 그 좌우편에 짜 마추는 복음서 개요만항상 본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이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두 자료설반대 자들의 주장 때문에 전통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순서와는 다르게 마태, 마가, 누가의 순서로 복음서의 유비를 조정한 새복음 개요들(New Synopses)이 관심을 촉진시켰다.

일단 종결되었다고여겨지던 분야에 관심이 고조되고 연구가 재개됨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자극을 받았다. 그 결과 일세기 전에 유행하던 개념들이 다시 나타나게되었다.
여기에는 원복음들(proto-gospels),포괄적인 원시원복음(an overarching, primitive Ur-gospel),후에 히랍어로 번역된 아람어 복음서에 관한 이론 그리고 복음서의 더큰 독립성을 주장하는 이론이 포함된다.
이들은 대부분 주창자들의 제자들 외에는 지자들을 별로 얻지 못했지만 하나의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공관복음 문제는, 그 자료의 복합성과1세기 종교 혹은 역시적 기록 생성 과정에 관계된 요인들의 복합성으로 인해 그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그 결과 많은 부분에서 회복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럼에도 다음 3가지 주요 질문에 대한대답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스트리터(Streeter)의 고전이론은 긍정적으로 대답하였다. 마태와 누가가 마가를 사용하였는가?마태와 누가가 독립 자료인 Q를 사용했는가?M 과 L은 개연성이 있는 가설인 가? 마가 우선성과 Q 가설에 대한 찬반 양쪽 주장은 아써 벧린저니(Athur Bellinzoni)가 편집한 고전 논문 선집에 잘 나왔다.

최근 연구들은 점차로 마태의 마가 사용은 누가와 마가 사용처럼 쉽게 입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바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기 보다, 훨씬 오래된 어거스틴의 견해의 회복 혹은 수정을 시사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어거스틴의 견해에 있어서 공관복음의 순서는 현재 성령의 순서와 일치한다.
따라서 그리스바하 지지자들이 점수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보다 폭넓게 인정받는 견해는, 순서를 바탕으로 한 주장(마태와누가가 동시에 동일한 방법으로 혹은 마가와 다른 곳은 아주 드불다)이 공관복음 상호 관계에 대한 다른 몇 가지 모형과 일치할 수 있다는 쪽이다. 그러나 마가를 최종으로 보는 견해는 아직도 소위 Q 자료라고 부르는 모든 내용을 마가가 누략시 킨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이쪽에서는 마가가 포함시킬 자료를 위해서 마태와 누가를 번갈아 사용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여러차례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낸 신학 및 문체 상의 특징이 너무 일반적이며 두 자료설에의해 입증될 수 있는 편집 비평적 경향성 보다 분명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증거로 제시한 융합절차-해당구절 내의 큰 부분을 생략해 버리면서 세세한 부분을 확대하는 방식-가 기 존의 알려져 있는 전통적인 고대의 문서 축약 과정들과 정반대된다.
마가의 문체와 문법의 조약성 그리고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역사적,신학적 진술 내용이 마가의 우선성 보다는 그가 복음 전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는 주장들은 설득력이 있다. 만약 마가 이전에 마태와 누가가 없었다면 이 주장이 그럴듯 할 것이다. 그러 나 문학적 상호관계를 가정한다면, 그대로 두면 논리 정연할 자료를 이런 서투런 문체로 바꿀 사람은억하심정을 가진 사람 뿐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관복음의 주요부분에 대한 주경적, 혹은 신학적 연구가운데 마태 혹은 누가의 우선성을 채택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체 이론의 흠을 꼬집는 것일 실제에 적용하기 쉽다는 점을 기억하자. 개별구절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마가의 우선성이 일반적으로 적합 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것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누가보다는 마태의 원시적인 특징을 지적한다. 복음서들의 여러 발전 단계에 걸치 마태, 마가 두 전통의 교차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고대교부들의 증거, 특히 파피아스의 증거의 명백한(prima facie)신빙성에대한 몇가지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마태,혹은 심지어 마가복음까지 2단계 저술 과정을 암시할 수도 있다. 만약 마가 우선성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 융합 보다 교차 영향설이 더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다.
Q에 대한 증거는 언제나 마가 우선성에 대한 증거 보다 불명료하다. 편리하게도 최근의 많은 문헌들을 비그(H.Bigg)는 간결하게, 나이린크(FNeirynck)는 자세하게 요약해 놓았다. Q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마태의 누가 사용보다는 누가의 마태 사용쪽으로 기운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누가 보다는 마태의 원시성을 변호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들에 대한 마태의 논리 정연하고 자세한 기록을 (마5-7,10,23-25장)누가가 잘바버린 이 유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이 작업에 가장 많은 정력을 기울인 사람은 마이클 가울더(Michael Goulder)이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연이어 나오는 자신의 책에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때 자신의 앞선 이론을 계속 부정하였고 그의 주장은 대부분 아주 빈약한 증거 위에 근거하고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반면 전통적인개념을 사용해서 Q 의 일관성 있는 신학, 문체상의 특징을 확인하고,이 자료 형성의 '삶의 자리 (Sitze im Leben)'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타당성 있게 제시하는 부문에는 괄목 할 만한 진보가 있었다. 이제 어쩔수 없이 Q 를 복합적인 교정본, 복합적인 자료, 아니면 구전과 기록전통의 집산 등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면에서 Q는 여전히 다른 학설들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공관복음 문제가다시 거론되기 이전에도 M과 L은 스트리터의 가설구조 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마치 마태와 누가가 그 모든 정보를 기록자료(전적으로 각각 세가지 자료)에서만 취한 것처럼 M과 L 이논리정연하고 통일성 있는 자료였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분명 비상식적인 행위다. 그러나 지금도 특별히 누가 자료에만 있는 독특한 언어와 특별한 마태 자류의 성경 외적 유비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이 두복음서 기자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내용에 대해서, 기록 자료이든 구전이든 간에, 원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스티븐 화리스(Strphen Farris)는 세분된 언어학적 기준을 적용하여눅1-2장 대부분 다른 부분의 누가 글에서 독특한 헬라어와는 다른(셈어원본에서 나온) '번역 헬라어'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누가가 중간 단락 대부분(눅9:51-18:14)을 의존하고 있는 비유 자료 가운데 하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미 설명했다.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리차드 보캠(Richard Bauckham)의 글이다.

그는 이그나티우스와 다른 성경 밖의 저자들이 마태의 특별 자료 배후에있는 전통들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속사도 교부들은 구전 형태로 된 비 마가 전통들을 알고 있었다.그러므로 마태와 누가가 알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수 없다. 공관복음 밖의 다른 기독교 문서들은 독립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가진 공관복음 자료들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많이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 자료가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수정된 형태의 스트리터 입장이 가장 타당성이 크지만, 공관복음자료 비평에는 분명히 연구할 분야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성경연구 목차로 가기


2. 양식 비평

상당히 늦었지만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유명한 책인[공관복음 전승사(The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를 대체할 것이 적어도 표제의 형태로는 클라우스 버거 (Klaus Berger)의[신약 양식 비평(Formgeschichte des Neuen Testaments)] 에서 드디어나 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버거는 공관복음 뿐 아니라 신약 자료 전체를 양식에 따라 분류하려고 시도하였고, 종교사적 '유비'는 물론신화와 전설 같은 편견을 일으킬 수 있는 명칭을 피하고 엄 격하게 성경본문과 당시 다른 헬라 문학에 공통된 수사적 특징들이 나타났다.

또한 그의 분류 체계는 훨씬 더 세분화되었고 의도적, 직증적, 법률적 본문의 3개 주요 수사 학적 범주를 명확히 하고 세분하기 위해 후기 불트만 학파의 연구를 활용하였다. 이 글에게서 논의할 다른 견해들을 지지하기 위해 많은 비평학자들이 양식 비평을 포기한 이때, 버거는 각 단락의 양식에 대한 신중한 분석을 통해 얻는 해석상의 유익이 많이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현명하게도 버거는 각 양식 혹은 구절의 전승사를 추적하지 않음으로 초기에 그렇게 많은 양식 비평가들이 빠졌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이 두작업이 연관은 있 지만 서로 구분되며 예수 - 자료의전수 과정 배후에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가진 전통이 있었다고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흔쾌히 인정한다.

그가 인정하는 진정서에 관한 유일한 기준은 '역사적 결과의 개연성 (Wirkungsteschichtlichen Plausibilitat)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 후속 역사를 이해 가능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그렇게 많은 양식 비평 비평가들을 움직인 것은 이 역사성의 문제, 진정성의 가지는 약점으로 인하요 복음 전승의 신뢰성을 변호하는 논증이 끊임없이 계속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 약점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양식 비평을 완전히 버리거나 아니면 전통의 구전 기간의 존재 사실 자체를 부정하였다. 리젠펠트(Riesenfeld)와 게라르츠슨(Gergardsson) 의 '보호된 전통(g-uardedtradition)'가설은 지금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설은예수께서 자신의 가르침과 행위에 관한 기사들을 많이 기억하게 하시려고 그의 제자들에게 랍비들의 방식으로 가르치셨고 이것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의 특별히 지정된 전수 자들에게로 조심스럽게 전해진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랍비들의 유비는 이것이 주후 70년 이 후의예증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시대착오적인 과오를 범하고 있고 또 예수님의 유독성과 현재도 공관복음 병행구들 사이에 남아 있는 차이들을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상당히 감소되었다.

최근 들어 두 방향의 연구가 이 교착 상태를 해결해 주었다.한편으로는 세개의 독일 박사 학위 논문이 주후 70년 이전 유대와 기독교 구전의 특성을 조사하여 리젠펠트-게라르츠슨의 표본 이 시대착오적 과오를범한 것도, 예수의 유독성을 인정하는데 실패한 것도, 예수의 유독성을 인정하는데 실패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해 내었다.
뭘러(P.GMiller)는 현대의 언어-행위 이론의 관점에서 고대 구전을 고찰하였고 짐머만 (A.F.Zimmermann)은 초대 교회에 있어서 디다스칼로서(didaska-los)혹은 선생의 역할을 연구하였다. 라이너 리스너(Rainer Riesner)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형태의 고대 교육에있어서 암기의 역할을 조사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셋은 모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 많은 자료를 암기하도록 가르치셨다는 점에 동의하고있다.
더욱이 이 세 논문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논문은 리스너의 논문이다. 그는 1세기 모든 유대 소년들에게 요구되었던 기초 교육의 암기 교육의 성격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그 리고 예수님에 관한가르침이 매우 조심스럽게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큰 다른 중요한 이유 다섯가지를 추가하였다.

(1) 예수님은 권위를 가지고 여호와의 말씀을선포하던 구약 선지자들의 관행을 따랐다. 이 권위는 촉구하였다.

(2)1세기의 다양한 기대 가운데 하나의 일관된 특징은 메시야가 지혜의 교사일 것이라는 내용 이었으므로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야로 드러내셨고(어떤 경우에는 암시적인 방법도 사용하셨지 만)이 사실로 인해 말씀을 보전하려는 그의 추종자들의 생각이 더욱 강화되었다.

(3) 복음서들은 예수님을 바로 이와 같은 지혜의 교사로 묘사하며 그의 말씀90%이상이,비유와 히브리 시에서 발견되는 것과 매우 유사한 언어 형태를 사용하는, 암송하기 쉬운 형태로 되어 있다.

(4) 복음서들에는 열두제자에게 특별한 교훈들을 '익히고',심지어 그의 지상 사역이 끝나기 이전에도 그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관한 암시가 많이 있으며 구체 적인 예증도 몇개 있다.

(5) 당시 유대 및그리이스-로마 세계의 거의 모든 선생들은 자신들의 가르침과 생활 방식을 영원히 전하기 위해 주변에 제자들을 모았다. 예수님이 다른 면에 있어서는 그들과 유사하셨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자 이전 시대의 다양한 문화 속의 구전 관한 연구들이 고대 세계에 있어서 암송의 의미는 오늘날의 의미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와서도 열 손가락 남짓한 성경학자들만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지만, 로드(A.B.Lord)의 선구자적인 연구는 문맹의 유고슬라비아 민속 명인들에 관해서 기술하였다.

이들은 10만 단어이상의 긴 서사적 기사를 '암기'하고 있었다. 그 줄거리와 인물들, 모든 주요 사건들과 세부 내용 대부분은 그들이 그 이야기를 되풀이, 혹은 노래할 때마다 언제나 동일하였다.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 노래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명인이 중요한 부분에서 실수하면 수정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정확한 단어 사용에 있어서는 매연주마다 10% 내지 40%까지 다를 수 있었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나는 변이와 비교할 만하다. 로드는 단 어 사용과 어순, 자료의 포함과 삭제에 있어서 이 융통성의 모형이 공관복음 병행구들 사이의 많은변형들을 설명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워너 켈버 (Werner Kellber)는 로드가 지적한 구전의 유동성과 기록전통의 불변성 사이의 부조화에 주목하고 따라서 현재 상태로서의 복음서들에는, 이들이 명백히 기록된 원전에서 나왔 기 때문에 '수동적전수'의 모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반대함으로 로드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러나 켈버는 기록된 기사가 나온 후에도 구전이 계속해서권위를 유지하는 일이 자주 있다는 사실을 놓쳐버렸다.

로드는 특별히'구전 본문을 정착시키는 데 있어서 기록의 사용 그 자체가 구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기울였다. 구전과 기록의사용 그 자체가 구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기울였다. 구전과 기록 전통을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변형들은 모두 배척할 때이다.

그러나 이처럼 복음서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2세기 중반 이전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전통을 전해준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기에 주어진 사회 상황에서 주어진 청중들에게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을 선택함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는 켈버의 주장은 공관복 음 병행구들 사이에 나타난 몇가지 차이들을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연구 목차로 가기


3. 편집 비평

최근 몇년 동안 가장 많이 번창한 편집 비평은 양식 비평과 전통전수에 관한 연구가 끝나는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양식비평은 복음서 병행구들의 차이 대부분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다.
현재의 편집 비평가들은 자신들의 방식이 더이상 유아기 상태에 있는 것도, 사양길에접어든 것도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살펴본 다른 분야의비평가들에 비해 자신들의 방식에 대한 자증적인 글은 별로 쓰지 않고복음서 본문에 대한 단순한 분석에 열중한다.

그러나 정의와 방법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이 더욱 명확하게 규명될 필요가 있다. 몇몇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주로 북미에 있음) 편집 비평을 반대하였다. 이것은 편집 비평이 필연적으 로 복음서들의 철저한역사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오해는 부분적으로 놀만 페린(Norman Perrin)과 같은 사람들이 쓴 소개문이 널리 알려져있기 때 문에 일어난다.

페린은 이 신학 조류와 정반대되는 입장을 반영하는 극단적으로 회의적인 견해를 아주 자세하게 피력하였던 것이다. 리차드 사울른(Richard Soulen)핸드북의 정의는 더욱폭넓은 견해를 나타낸다. 즉 편집 비평은 '손에 들려 있는 기록 및 혹은 구전 전통들을 다듬고 조직하는 과정에 사용된 성경 기자의 편집 및합성 기교와 해석들을 분석함으로 그 기자의 신학적 관점을 밝혀내려고한다.(눅1:1-4을 보라)' 교회는, 비록 현재의 전문 용어의 기치 아래혹은 그처럼 비평적인 태도를 가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교회 역사 내내 이문제들을 연구해 왔다.

예를 들어 칼슨(D.A.Carson), 레인(W.L.L-ane), 마샬(I.H.Marshall)이 쓴 복음주의의 주요 공관복음 주석이 세복음서들의 특징들이 가지는 중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정도는 다르 지만 모두 편집 비평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들의 역사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도 편집 비평가들이 복음서들의 일정 부분의 역사성에대하여 쓸데없이 회의적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자주 있다. 이 회의주의는편집 비평 그 자체의 본질에 속하거나 확실한 근거가 있지도 않지만 일반화 되어버린 일연의 전제들을 제거해 버리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유해한 전제들은 모두 양식 비평에 속하는 문제들처럼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가단히 열거해 볼 필요가 있겠다.

(1) 어떤 사람들은 성경기자의 글에 포함된 모든 내용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기 보다 그가 자료들을 어떻게 편집했는지 연구해 보기만 하면 그기자의 관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 면 전자의 견해는 피츠마이어(J.A.Fitznyer)의 철저한 누가복음 주석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반면에 이와 대조적인 견해는 탈버트(C.H.Talbert)의 개괄적인 누가복음 주석에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2) 많은 주석자드은 유사성을 가진 모든구절들을 예수님 생애의 한 말씀 혹은 한 사건의 변이로 취급한다. 이것은 성경 기자가 자신의 자료들 자유롭게 다시 기록하였을 가능성에 대하여 철저하게 부정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며 실제로는 병행구가 아니라외견상 병행구처럼 보이는 구절이 있을 가능성을 무시하게 된다.

(3) 복음서 기자들이 복음서를 보냈던 공동체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작업은 많은 비평가들이 인정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주관적인 작업이다.청중들의 절박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성경 기자가 그 자료를 자기 복음서에 포함시킨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4) 많은 편집 비평 연구들은불필요하게도 더욱 급진적인 양식 비평에 관한 회의적인 가정에 바탕을두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긍정적인 결과들을 무시한다. 현재 쉽게접할 수 있는 가장 자세한 마가 주석 두가지인 페쉬(R.Pesch)와 그닐카(J.Gnika)주석은, 자료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고료 해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도 그 자료를 마가 이전 전통으로 분류하는 흐름의 한 예를 보여준다. 그러나 전통적인 자료가 역사성을 가진다는 결론이 즉시 내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개연성은 커졌다.

(5) 어떤 사람들은 편집 비평이, 복음서 자료가 권위있게 되기 위해서반드시 진정성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구절을 역사성이 없는 것으로 분류하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 이지 않는다. 이 견해는 소위 정경 비평으로 알려져 있는 편집 비평 분파에서 우세하다.

그러나 여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일부 복음주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접근법은 의도는 좋지만 기독교 신앙을 변조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입증할 수도 없는 것으로 만들고 만다. 만약 최초의 신자들이 이 입장을 취했더라면 그들이 묵시적 복음서 부분을 정경에서 제외 시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6) 병행구들의 문법 및 구문상의 사소한 차이에 심오한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이 차이들은 저자들의 글쓰는 취향을 반영하는 것 뿐일 수 있다. 이것은 예를 들 어 칼스턴(C.E.Carlston)과 드루리(J.Drury)의 비유에 관한책처럼, 자료의 기반이 취약한 전문 분야 연구에 더 문제가 된다.

(7)용어 분석, 즉 한 복음서 기자의 특징적인 단어와 생소한 단어를 비교하는 연구는 한결같이, 편집된 것이라고 자신있게 규정할 수 있는 자료나 아니면 전통을 언어학과 통계적인 근거만 가지고 과대 평가하고있다.

(8) 마지막으로 편집 비평은 놀랍게도 많은 반대에도 정의에 있어서는 언제나'편집적'혹은 신학적' 이란 말은 '비역사적' 이란 말과 동일하게 본다. 이미 살펴본 대로 복음서 기자들은 자신 들의 주요 기록자료들 외에도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접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이같이 8가지의 오류가 있음에도 편집 비평은 지금도 가치있는 도구이다. 편집 비평을 남용하는 오류는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편집 비평이빠지기 쉬운 오류들을 제거하면 우리는 이 방법을 통해서 복음서 기자들의 강조점의 차이들을 더욱 쉽게 이해하는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 때로는 보다 전통적인 방법들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조화 문제의 매듭을 깨긋이 푸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연구 목차로 가기


4. 사회과학적인 방법들

많은 성경 비평가들은 앞에서 논의한 여러가지 역사문학적 비평의한계들로 말미암아 만족하지 못하고 사회과학에서 빌어온 방법들을 익히게 되었다. 따라서 공관복음들은 대부분의 성경과 마찬가지고 근대적인경제학, 심리학,인류학의 이론들의 격자를 통하여 해석되었다. 가장 풍성한 분야는 기독교 발흥에 대한 사회학적인 연구이다.

이 범위는 예수운동의 역사적 시초에 대한 아주 전통적인 연구에서부터 아주 급진적인입장에 까지 해당된다. 전자는 근대 서구 기독교의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비교해서 그 시대의 사회적 특징을 조명하려고 했고, 후자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거처없이 방황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들로 묘사하였다.

이 모든 연구들은 갖가지 복음서 본문들의 배경과 의미에 있어서 대개 그대로 지나쳤던 부분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방법들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있고 이 전제는 성경 자료들을 환원주의적(reductional)으로분석하게 만든다. 이 전제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 한가지는 대부분의 근대사회과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인 반초자연주의이다.

그러나 중요한 예외들도 있다 예를 들어 하워드 키(Howard C.Kee)와 저드 티쎈(Gerd Theissen)은 모두 예수님의 기적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라고 하는 역사성에 관한 질문을 회피하였다. 이것은 이 공관복음의 기사들이 최초의 청중과 그 복음을 믿게된 공동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라고 하는 기능에 관한 질문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연 구결과 어떤 경우에는 기적 이야기의 역사성을 변호하기가 더욱 영이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이와 같은 질문이 부적절한 것처럼 되거나 어떤 곳에서는역사 기술이 복음서 기자들의 본래 의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야무우치 (E.M.Yamauchi)는, 성경 학자들이 이제 근대 사회과학에서의 발전들을 배우고 있는 반면 많은 사회학자들은 역사성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필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신약학자들이 지금 막수용 하고 있는 더욱 급진적인 이론들에 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는사실을 지적한다.
성경연구 목차로 가기


5. 미드리쉬 비평

복음서들이 미드라쉬의 성질을 띠고 있는가? 최근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이 질무에 대한 대답은 대개 미드라쉬에 대한 개인의정의에 달려있다. '해석'이란 의미의 히브리어에서 나온 미드라쉬는아주 기본적으로는 문학 장르로서 미드라쉬와 해석방법으로서 미드라쉬로구분된다. 장르로서 미드라쉬는 히브리 성경의 주석 형태를 지칭한다.

이것은 (1) 탈굼(2) 요세푸스의 [유대교대사(Jewish Antiauities)] 나거짓 필로(pseudo-philo)의 [성경고대사(Biblical Antiquities)]와 같은 더욱 상세하게 '다시 쓴 성경',그리고 (3) 랍비 시대에 시작된 고대유대 주석의 세가지 주요 범주로 나누어진다. 성경해석방법으로서 미드라쉬는대게 랍 비들에 의해 전수되어 온 고대 해석학적 법칙들 가운데하나 이상을 갖고 있다.

미드라쉬적 해석 방법이 복음서에 나타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여기에는 'yelammediru rabberu(우리 선생이여 우리를 가르치소서)' 라고부르는서문 혹은 훈계와 같이 별로 친숙하기 않은 양식들과, 작은 것을 근거로 더욱 큰 것을 논증하는 (예를 들면,마7:11)galwa-homer와 같 이 잘 알여져있는 기교가 포함된다. 전자에는 하나의 질문과 두개 이상의 직접 간접의 성경 인용,표어나 비유를 사용하는 주석 앞에서 인용한인용문에 결론적인 간접적인 성구 인용 하나가 포 함되는 대화체이다.

이 형태의 해석은,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들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에(눅 10:25-37)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해 줄 수 있다. 구약에대한 신악의 주석이 불합리하게 보이는 곳을 미드라쉬를 사용해서 설명하려고 할 경우 논쟁은 더욱 뜨거워진다. 이것에 대한 복음서의 대 표적인 예를 호세아서가 11장1절,'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는 말씀을 인용한 마태복음 2:15절이다.

마태는 분명히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해 내용을 예수님이 헤롯에게서 도피하는 사건에대한 예언으로 바꾸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현대 주석가들은 이 해석방법의 약점을 알고 있지만, 보다 덜 보수적인 학자들도 복음주의자들이 미드라쉬 방식의 언어유희를 적용하여 구약의 '아들 '이란 말의 의미를 멋대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구절속에 끼워 넣었다고 주장한다.

더욱 철저한 보수적인 학자들도 유사한 해석을 취하는 경우가 더러있지만 여기에 더해서 신약 성경 기자들은 영감되었기 때문에, 다른 해석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방법들이 그들에게는 사용 가능하였다고 믿는다. 후자의 견해는, 앞서 말한 정경비평의 입장과 매우 흡사하지만, 이론적 으로은 아무리 이상하다 하더라도 영감된 성경 기자가 한 해석이라면 모든 성경해석을 정당화 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신약에 따른 생소한 구약 사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그러나 완전히 믿고 사용하기 전에 먼저 점검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다른 형태의다른 본문(비맛소라 히브리 사본, LXX, 탈굼)을 사용한다. 특히 맛소라본문이 가장 신빙성있는 본문이 아닐 수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을때에 그렇다.
또 성경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특정하게 변형된 형태의본문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에는 1세기 당시 널리 사용되던 후기 형태의본문을 사용하며, 모형론적 주해(아마도 마2:15을 설명하기에는 가장적절할 것이다)를 사용했고, '성취(pleroo)'란 단어를 현대영어에서 더욱넓은 의미로 사용 하였다. 그리고 더 넓은 문맥에서 구약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를 살피지 않고 그 깊은 의미 (Sensus plenior)를 택하기까지 하였다.

최근 미드라쉬 비평의 또 다른 문제점은 복음서들의 주요 단락전체 혹은 한 복음서 전체가 장르에 있어서 미드라쉬의 성질을 지니는가아닌가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가를 그 중 심 단락의 윤곽에있어서 신명기에 나오는 유비의 순서를 따랐거나 아니면 그 앞부분에서열왕기와 역대기의 순서를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로버트 건드리(Robert Gundry)는 마태가 마가와 Q에 근거한 하나의 미드라쉬이며 그 기자는 역사성이 없는 자료를 가지고 이 두 원전을 허구처럼 꾸몄고 독자들은 그 자료의 독특한 성질로 말미암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것은 훨씬 더 대담한 제안이었다.

여기에서 적어도 두가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복음서들 가운데이런 부분을 미드라쉬로 간주하면 미드라쉬라는 단어의 의미가 고대 유대인들의 허용 가능 범위 보다 너무 넓어진다. 엄밀하게 말해서 문학장르로서 미드라쉬는 특별한 구약 본문에 대한 명백한 의역, 설명이나 해석 애 국한되며, 소수의 주석자들만이 인정하는 애매한 유비는 해당되지않는다.

미드라쉬라는 용어가 복음서 기자의 수중에 놓여 있는허구적사건들(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생애 부분들)을 지칭하는 현대의 용법은 전형적인 유대 어법과 반대된다. 유대 어법에 따르면 미드 라쉬적 글들은대개 현재의 일들은 손대지 않은채 그대로 두고 (최소한 이것이 조사하기에 더 쉽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약의 기사와 예언들에 대한 해석을현재 사건에 더욱 잘 어울리도록 변 화시켰다.

둘째, 전문 용어에 관계없이이 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분명히 설득력있는 논리를 폈다고말할 수 없으며 또 몇가지 철저한 비판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경우에 따라 미드라쉬 비평은 복음서의 개별적인 구절들의 구약 배경을찾아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건드리식의 가설까지도 적어도주석자들에게 흔히 놓치기 쉬운 한 원리를 깨우쳐주는 일익을 감당하였다. 이 원리는 겉으로 보기에 본문이 역사적인 기사라고 해서 이것이 그저자가 역사성이 있는 장르만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이 사실은 본문과 그 시대의 다른 문학에 병 행구가 될만한 다양한 구절들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연구 목차로 가기


6. 기타 문학 비평들

더욱 전통적인 역사-비평 방법들에서 얻은 질문과 대답에 만족을느끼지 못한 다른 학자들은 순수한 문학-비평의 문제와 수단을 소개혹은 경우에 따라 그것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였다. 북 미의 많은 대학에서는 학자들의 관심이 사료로서의 복음서에서 문학 이야기로서의 복음서로 바뀌어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변화는 1960년-70년대 에 구조주의에 관심이 집중되면서시작 되었다.

이 움직임은 크게 역사적 배경과 상황,혹은 저작 의도문제는 별개로 하고 오로지 본문에만 집착하는 형식주의자들의 입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문학으로서의 성경'운동이 성겨의표면 구조' 분석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의역할과 줄거리,분위기,주제. 동기를 파악하는 작업으로 간단히 말해서오래 전부터 장단편 소설과 같은 허구적 문학에 적용되어온 표준 비평이다.

이런 종류의 복음서에 적용된 '기사 비평'의 주요 연구서들은이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대개 역사성을 지적하거나 반대하는 필수적인전제들이 없다. 예를 들어 킹스버리(J.D.Kingsbury)는 유 대 지도자들과 군중들의 천편 일률적이며 '단조로운'성품과 대비하여 마태에 나타나있는 예수 님과 제자들의 완숙하고 '원만한' 성품을 구별하였다.
이것은 이 복음서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갈등의 역할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리랜드 라이컨(Leland Ryken)은 문학으로서의 성경에 관해서 광범위하게 글을 쓴 몇 안되는 복음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의 글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예를들어 비유를 해석하는 사람들이라면 전통적인 비유와 풍유의 차이에 대한 그의 반대를 아무도 무시할 수 없다.

형식주의 문학 분석의 전문 분야 가운데 하나는 수사적 비평이다. 이분야에서는 조지 케네디 (George Kinnedy)를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케네디의 가장 최근에 발표된 책에는 산상보훈 분석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고대 심미 수사학의 법칙을 그대로 따른논리 구조를 알았다. 케네디는 자신의 견해가 합의된 비평적 견해와반대되는 줄 알면서도 고대 수사 학자들의 관행에 비추어, 이 잘 다음어저 일관성이있는 구조는 본래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강화를 축약시킨형태(아마도 한번 이상 변형되었을 것임)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누가 복음의 광야에서의 설교도 마찬 가지로 설명).

따라서 마태의 본문은 예수님이 한곳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아니라여러 개의 강황에서 모아 기억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동일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사역 중 일정 기간에 말 씀하셨던것으로 기억되는 내용에 대한 비교적 충실한 기록일 수도 있다.
구조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대개 일정한 본문의 '심층 구조'를 연구하는 보다 비의적인 (esoteric)형태의 작업을 가리키는데 쓰인다. 심층구조는 모든 기사의 뿌리를 형성한다는 주장의 더욱 근본적인 특징들예를 들어 이야기 안에서 주요 인물들과 객체들 사이의 여거가지 기능과 동기, 상호작용,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문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목과 그 반목의 해결 유형들이다.

얼마전만 해도 이런 유형의 구조주의에 입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문학 분석에 있어서 유일하게 실효성 있는 도구라고 외쳤고 변증철학과결정주의, 무신론과 본질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방법론적인 논의가 많이 일어났고 많은표본 본문들(괄목 할만한 것은 대부분이 예수님의 비유임)이 많이 연구되었지만, 만일 다른 수단이나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구체적인 해석의 통찰력을 얻을 수 없다.

그 결과 구조주의의 인기가 쇠퇴하였다. 지금도 구조주의가 성행하는 곳이 있지만거기에서도 구조주의는 대개 많은 방법 가운데 조금 나은 한가지 방법에 불과하며, 지금도 구조의가 유용한 수단인지 확인해 보려는 기대를 가지고 그 눈길을 복음서에서 바울 서신으로 돌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하면서 구조주의의 기교외 지금은 거의 사라진 '신비평' 운동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을 결합시키려했던 산드라 퍼피치(Sandra Perpich)의 노력을 보고 유익을 얻을수있을 것이다. 문체는 둔하지만 그의 노력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학 비평들과 보조를 함께 하는 대부분의 복음서 학자들은 소위 말하는 후기 구조주의 운동(poststructuralist movemen-ts)을 선호하기 때문에 구조주의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년간후기 구조주의 복음서 연구라는 급류가 몰아쳤고 지금도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후기 구조주의는 지금까지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던 방법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러나 대개 이 방법들에는 적어도 한가지의 공통된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본문의 의미가 있는 곳은 저 자의 의도나(전통적인 역사 문학 비평에서처럼) 자율적인 본문 연구에(형식주의와 구조주의에서처럼) 있지않고 독자의 마음, 혹은 더 일반적으로는 본문과 독자의 상호 작용의 결과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전위적이며 심해한 유형의 후기 구조주의는 스스로 '심층구조'라 부르고 궁극적으로 모든 언어가 어떻게 자기 파괴, 자기 모순적인지 보여주기 위해 '동일 본문에서 상충되는 의미가 나타나며, 이 상충되는 의미들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과정을 인정한다. 이 운동의관념적인 조상 은 니이체의 허무주의와 당시 가장 다산적인 이 운동의대변인인 프랑스 철학자 작크 데라다 (Jaques Derrida)이다. 크로산(J.D.Crossan)은 복음서에 적용된 심비주의의 한 예를 보여준다.

그는 비록 복음서들이 하나님에 관한 비유에서 예수님 가르침의 절정을 보여주긴 하지만, 더 나아가 복음서들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비유'-하나님 자신의 통신(God's Own self-communication)이라는 믿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들이 주장하는관점은 본문에 의해 허물어진다. 크로산은 다시 탕자의 비유에서 세계해석에 대한 알레고리를 하나 찾아냈다.

아버지는 실제를 상징하고,큰 아들은 사실주의 해석, 그리고 탕자는 사실주의 노력을 포기한 사람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비유 마지막에서 두 아들의 역할 전도는'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잃어버 리고, 잃버렸던 사람이 찾는다'는 사실을입증해 준다.독자- 반응 비평의 입장은 덜 비의적이며 보편적이며,독서의 여러 단계에 있어서 독자들이 느끼는 본문의 의미를 찾으려고한다. 따라서 본문 전체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독자가 읽는 본문의 분량과 그 본문 이야기들의 연결 성질에 따라 독자들이 느끼는 의미가어떻게 변하는지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로버트 포울러(Robert Fo-wler)는 마가가 4,000명을 먹이신 사건(막8:1-10)을 모델 로 5,000명을 먹이신 이야기(막6:30:44)을 지어내어, 예수님이 어떻게 그 무리를 먹일 수 있었는지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아이러니를 강조하기위해 이 두 이야기를 자신의 복음서에 그와 같은 순서로 배치하였다고 주장하였다.(막8:4)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는 마가복음의 비밀 동기를 독자- 반응의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훨씬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마가복음 4:11-12절을 액면 그대로 비유의 진짜 의미를 숨기는 것이 저자의 본래 의도라고 보고, 독자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만든 것, 또 커모드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의[율 리씨즈](Ulysses)만큼이나 복음서 당시 세계와 무관한 유비 문학가들과의 일종의 '자유 연상 (freeassociation)'과정을 통해서 완성된 전체 복음서의 의미에 대한 패러다임을 유추해서 만들었다.

물론 철저한 후기 구조주의는 유아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서우리는 우리 자신의 글의 객 관적인 의미를 단언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데라다에게는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부정할 수는없다. 데라다에게는 이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에게서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글을 쓰지는않았다.그러나 독자 지향 성이 약한 해석자들은 대부분 조만간 이런모순을 드러낸다 가장 유익하기는 의도적인 해석과 감정적인 오류들을 동시에 피하고 저자가 본문에 남겨 두어서 저자의 의도나 목적을보여주며 또 그 본문의 청중이나 독자들의 유형을 나타내 주는 단서에 특별한 주의 기울이면서 더욱 종합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한 본문안에서 의미의 자취를 찾는 길이다.

안토니 씨셀턴(Anthony Thise-lton)은 한걸음 더 나아가 독자 반응식의 안목을 '언어-행위이론'으로알려진 철학학파와 결합시켯다. 따라서 본문의 과거 의미 대 현재의미, 혹은 의미 대 의 의에 관해서 말하는 대신 한 구문의 변하지않는 진리의 호소를 이것이 그 표현을 통해서 발생 혹은 완성시키는가변적인 행위와 구별하려고 한다.그러므로 독자는 본문의 의미를창조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차원의 의미가 포함되느냐에 달려 있다. 최초로 후기 구조주 의를 주장한 많은 복음서비평가들은 비유의 다원적인 성질로 말미암아 대부분 이 방법을 비유에 먼저 적용하였는데, 이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