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Index Previous chapter, Next chapter, Previous Book, Next Book, KJV

열두 제자를 내보내시다(마 10:5-15; 막 6:7-13)

(눅 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눅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눅 9: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눅 9: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눅 9: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눅 9: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헤롯이 듣고 심히 당황하다(마 14:1-12; 막 6:14-29)

(눅 9: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눅 9: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마16:14
(눅 9: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눅23:8

오천 명을 먹이시다(마 14:13-21; 막 6:30-44; 요 6:1-14)

(눅 9: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마14:13
(눅 9: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눅 9: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눅 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민11:22
(눅 9: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눅 9: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눅 9: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눅 9: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베드로의 고백, 죽음과 부활 예고(마 16:13-28; 막 8:27-9:1)

(눅 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16:13, 막8:27
(눅 9:19) 대답하여 이르되 1)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요6:69, 1요5:5
(눅 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눅 9: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마16:20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 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눅 9: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16:28, 막9:1, 행2:1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다(마 17:1-8; 막 9:2-8)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눅 9: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눅 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마26:40
(눅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마17:4
(눅 9: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눅 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눅 9: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마17:9

귀신 들린 아이를 낫게 하시다(마 17:14-18; 막 9:14-27)

(눅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눅 9: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눅 9: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눅 9: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눅 9: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눅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마 17:22-23; 막 9:30-32)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눅 9: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눅 9: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막9:32

누가 크냐(마 18:1-5; 막 9:33-37)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눅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눅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너희를 위하는 사람(막 9:38-40)

(눅 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눅 9: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사마리아의 마을에서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다 막9:38, 고전12:3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막16:19
(눅 9: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눅 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눅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2) 어떤 고대 사본에는, 55절 끝에 다음 말이 있음.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눅 9: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나를 따르라(마 8:19-22)

(눅 9: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마8:19
(눅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눅 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눅 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눅 9: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왕상19:20

1. 헬, 또는 침례

9:1-9 열두 제자 파송
마10:5-15, 막6:7-13 비교하라
1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기 전에 능력과 권세 duvnamin kai; ejxousivan(두나민 카이 에쿠시안) "힘, 능력"(눅4:14, 36, 눅5:17, 눅6:19, 눅8:46)과 권세를 주셨다. 지금까지 예수께서 하시던 사역을 이제 제자들에게 부여함으로 2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셨다. 마태와 마가는 같은 ejxousivan(에쿠시안) 단어를 사용했는데 한글개역성경은 같은 사건에 마가는 "권세", 마태는 "권능"이라고 번역하여 혼란을 초래했다.
사도의 권세는 1세기에만 존재했던 일시적인 직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의 목사나, 선교사의 직무가 어느 정도는 포함될 수 있겠지만 정확하게 사도일 수는 없다. 사도가 되려면 첫째는 주님의 직접 소명(요15:16), 주님에게서 복음을 직접 배운 자(갈1:11, 12 갈2:6, 7), 부활하신 주님을 육안으로 본 자(고전15:8), 주님과 같은 권능을 받은 자(눅6:14-16)이다.
5절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유대인들은 이방인 지역을 다녀올 때는 이스라엘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오랜 습관이 있었다. 이런 유대인의 습관으로 보아 진정한 이방인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는 말씀이다.
7-9절 열 두 제자가 마을과 도시를 지날 때 그들의 사역은 많은 주의를 집중시켰고 분봉왕으로서 갈릴리 지역에 책임이 있는 헤롯도 그들의 사역에 들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부활을 믿지 않았던 헤롯은 그가 예전에 죽인 세례요한이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가 다시 살아난 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엘리야 또는 다른 선지자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누가가 전하는 것은 황궁안에서나 여러 곳에서 예수 제자들의 사역에 사람들의 관심이 두루 퍼져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9:10-17 오병 이어의 축복
마14:13-21, 막6:30-44, 요61:1-14 비교하라
이 사건은 공관복음 뿐만 아니라 4복음서에 기록된 유일한 예수의 기적사건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이 사건은 복음서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마태는 세례요한의 순교 소식을 듣고 벳세다로 물러가셨다가 이적을 나타낸 것으로, 마가와 누가는 제자들이 전도사역에서 돌아와서 전도사역을 보고할 때 나타났고, 요한은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에 이 사건을 기록했다. 이 사건의 요약을 종합하면 당시에 얼마나 많은 파문을 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주석가들은 이 사건은 주님의 사역이 절정에 이른 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고 있다.
10절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라고 전하여 마가와 동일하게 그 시기를 말한다. 이 때 주께서는 세례요한의 순교 소식을 들으셨고 12제자의 전도보고를 들으시고 그들을 쉬게 해야 할 처지이셨고, 바로 그 때가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였는데 주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로 갈릴리 호수 건너 동편 벳새다로 가셨다는 것이다.
11절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이들은 걸어서, 뛰어서 달려갔을 것이다. 막가는 이들은 본 예수께서 "목자 없는 양 같다"(막6:31)고 하시며 불쌍히 어기시고 하나님 나라를 말했을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5병 2어의 기적의 사랑의 손길을 일으키신다.
14절 남자가 한 오천명 됨이러라 이곳에 나타난 a[ndre"(안드레스)라는 단어는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성인 남자만을 계수 할 때 사용한다. 정확히 그 외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더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많은 사람들이 여자와 어린아이들이라는 것 역시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오십명씩 앉히라 떡을 고기를 나누어주기에 편리하도록 한 것이다.
15절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제자들과 군중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지시에 모두 순종했다. 음식이 어디서 올 것이며 왜 이렇게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있었을 것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16절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는 공관복음에서 모두 일치하는 단어를 제공한다.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은 특별한 행동이 아닌 일반적인 유대인의 관습에 해당하는 '음식 축복기도'였다.축사하시고 eujlovghsen(율로게오)는 "축복하다, 감사하다"로 하나님의 이적적 능력을 요구하신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일반적인 식사기도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주어 ejdivdou(에디두)는 미완료 동사로 예수로부터 계속해서 떡이 제자들에게 이동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었던 떡은 빵이 아니라 납작한 떡으로 그것을 공급하는데 제자들이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17절 배부르기까지 다 나누어주었지만 남은 거두어 낭비가 없도록 하였다.

9:18-27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언
마16:13-28, 막6:45-8:26 비교하라
누가는 이 사건을 마가에 비해 상당히 간략하게 전달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이 사건이 가이사랴 빌립보 근교에서 있었다고 기록한다. 이곳은 헬몬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방 땅으로 예수께서는 많은 군중과 헤롯의 관할에서 벗어나 계셨다. 예수께서는 조용히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산만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누가는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katamovna"(카타모나스)라는 "유일한 장소를 분리하여 혼자"기도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이 제자들에게 분명히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했다. 철없어 보이고 방금 전 5천명을 먹인 사건들 때문에 신이나 있고 들떠있는 제자들에게 고난을 이야기 해 준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래서인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씀을 꺼내신다.
18절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이것은 이미 예수께서 알고 있는 것이며 궁금해서 물어보았다기 보다는 제자들과 대화하기 위한 수 순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바가 없느냐"는 말이다. 베드로는 종종 대변인처럼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그가 자의로 한 것이 아니라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마16:17).
이들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메시야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이 말을 깨닫지 못했다.
22절 이 한 절은 엄청난 예수의 수난을 예고하는 첫 번째 기사이다.
많은 고난을 받고 예수께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사명이다(사53:4, 11).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종교지도자들의 대표들, 세 그룹이 언급되었다. 이들에게 버림을 당하였다. 대제사장은 하나이지만 복수로 사용된 것은 대제사장가문의 모든 구성원을 말한다. 버린바 되어 ajpodokimavzw(아포도키마조)는 "거부하다, 쓸모없다고 선언한다"의 뜻으로 공무원 지망생을 심사 후 자격 없다고 하는 말이다.
죽임을 당하고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가 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이야기 하셨다.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그리고 죽음에서 분명히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23절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이 십자가형으로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고 그러기에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말하신다.
24절 구원코자는 "구원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목숨을 잃으면 '잃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 실재로 '잃어버린 자'이다

9:28-36 변화산에서의 예수
마17:1-8, 막9:2-8 비교하라
29절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이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을 받았을 때의 일을 기억하게 한다(출34:29-35). 이 때 예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하고 대화하고 계셨다.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모세엘리야의 몸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몸을 장사지내게 하셨고(신34:5-6), 엘리야는 이 땅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왕하2:11-12, 15-18).
34절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 있게 나타난다(출16:10, 출19:9, 출24:15-18, 출40:34-35). 미래에 다시 오실 인자와 관련되기도 하며(단7:13), 성도들이 하늘로 들려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계11:12).
36절 오직 movno"(모노스)은 "홀로, 유일하게"의 뜻으로 결국은 모세, 엘리야도 예수 앞에서는 그를 보조할 뿐이다.

9:37-43 귀신들린 아이를 고침
마17:14-18, 막9:14-27 비교하라
39절 귀신이 저를 잡아라고 기록함으로 이 아이의 병이 귀신으로 말미암은 것을 말하였다. 마태는 이 아이의 병이 간질병(마17:15)이라고 전하고, 마가는 벙어리 귀신(막9:17)이 들렸다고 전한다.
40절 제자들은 정확하게 12제자들 중의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 외에 나머지 제자들을 모두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열 두 제자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이미 전도여행 중에(눅9:1-6) 귀신들을 쫓아낸 체험들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제자들은 영적 생활에 어떤 침체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마가복음 9:29에서는 기도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41절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는 누구를 향해 외쳤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병을 고쳐 달라고 나온 아버지는 아닌 듯 하다. 그는 완전한 믿음은 아니었지만(막9:24) 믿음으로 그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주석가들은 이 사람이 좋지 못한 태도, 즉 예수의 제자들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태도로 찾아온 것으로 본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믿음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요, 둘 째는 그의 아버지의 믿음이 부족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는 말씀을 축소했으나 마가에 의하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막9:23-24)라는 질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43절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예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여기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란 것은 예수께서 평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이 일이 당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을 알 고 있었다. 언제나 예수 자신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9:44-43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
44절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는 주의 깊게 들으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전에 변화산에서 세 제자에게만 고난을 예언했다면 이곳에는 모든 제자가 함께 한 자리가 될 것이다. 이곳에서 다시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9:46-50 천국에서 큰 자
46절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는 말싸움이 가버나움에 이르는 노중에서(막9:33) 일어났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방금 전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했는데 제자들은 다 이해하지 못했을 지라도 그에 대한 일에 관심을 가져야 했는데 누가 크냐는 싸움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얼마나 다른 생각의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49절 잠시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서 쩔쩔매었는데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는 충격이다. 자신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벌써 주의 이름을 사용해서 귀신을 쫓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특권처럼 생각한 그의 권능을 사용하는 이 사람을 나무랐던 것이다. 50절 그러나 예수님은 주의이름으로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다만 주의할 것은 주의 이름으로 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9:51-56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는 중 배척을 받으심
이 부분은 마태복음에서는 일 부분만(마18:15) 발견되고 마가복음은 후의 사역에 대해서 약간 발견되지만 누가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상세히 기록한다(눅9:51, 53, 눅13:22, 33, 눅7:11, 눅18:31, 눅19:11, 28). 암시적으로도 여러 차례 시사한다(눅9:57, 눅10:1, 38, 눅14:25). 문제는 여행 노정에 있는데 눅9:51이하에는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지름길로 가시는 반면, 눅19:1에는 베뢰아를 경유해서 돌아가는 길에 여리고로 지나가시는 것을 보게된다. 눅10:38에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동네 베다니(요11:1)에 계시는가 하면 눅17:11에는 사마리아갈릴리 사이에 계신다.
이런 여정에 대해서 고데트(Godet)라는 학자는 하나의 연결된 노정으로 생각한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매우 여유 있는 여정이라고 본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복음서 가운데 사건별로 좀더 세밀하게 다루어진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정황을 살펴야 한다.
51절 승천하실(ajnalhvyew")은 ajnavlhyi"(아날렙시스) "집어 올림"으로 문장으로 [그가 승천할 날]의 뜻으로 이 단어는 신약전체에서 여기만 나오며 동사형으로 사도행전 1:2에 나온다. 누가는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질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완성을 위해 가고있음을 말한다.
52절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역사 깊은 반목(反目)이 있었다(왕하17:24-41, 요4:9). 이 지역으로 가자면 순례객들은 충돌이 있어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 지역을 지나가시려고 한 것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53절 이런 중요한 일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님의 행렬을 사마리아인들이 막고 나섰다. 54절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이 ...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격렬하게 흥분되어 있었다. 이들의 표현 속에는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왕하1:10, 12) 이곳에서 하나님의 또 한번의 기적을 일으키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벌써 예수께서 자신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마10:16)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그들의 행동을 예수께서는 꾸짖으셨다.

9:57-62 또 다는 사람들을 부르심
마8:19-22 비교하라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돌아 다른 곳으로 가실 때에 누가는 길 가실 때에라고 적었다. 이 때 여러 사람들이 예수를 따를 것을 표명했음을 말해준다. 이곳에서는 세 사람이 나오는데 첫 번째 사람(57-58절)은 예수님을 따를 자신의 각오를 표명했다. 이 사람의 말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깊이 생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말속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호화스런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암시가 깔려있다.
두 번째 사람(59-60절)은 첫 번째 사람과 달리 예수님에 의해서 좇도록 불림을 받았다. 그야 말로 따라가기만 하면 제자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이런 예수의 부르심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12제자라는 숫자의 제자를 부르실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59절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는 요청을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더 급한 일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잇는 것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장래는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대인뿐이겠는가? 장래의 의무는 율법연구, 성전예배, 유월절제사, 할례시행보다 더 높은 우월성을 가졌으며, 따라서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으시고 60절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세 번째 사람(61-62절)은 자신이 헌신하겠다고 나섰다. 아마 같은 장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방금 전 사람으로 보아 아마 예수께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나 하면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하였으니 말이다. 장례도 허락하지 않은 예수께서 가족작별을 허락하실 리가 없었다. 이 장면은 엘리사엘리야를 좇기 전에 가족과 마지막 입맞춤을 하게 해 달라고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왕상19:20). 그러나 지금은 엘리야를 따라가는 정도의 중요성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훨씬 중요한 임무를 띠고 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62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심으로 거절하셨다. 농경문화의 교훈을 적절히 사용하신다. 쟁기를 잡은 자가 뒤를 돌아보면 고랑은 바르게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는 아니다. 합당치 eu[qetov"(유테토스)는 "잘 놓인, 적합한"의 뜻으로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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