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Matthew)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마21:1-11)


마태복음 21장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시작되는 고난주간의 첫째 날과 둘째날, 그리고 셋째 날에 관한 내용이다. 즉 고난 주간의 첫째 날에 일어난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청결사건(1-17), 둘째 날에 일어난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18-22), 그리고 셋째 날에 일어난 예수의 권위에 대한 논쟁과 두 아들의 비유 및 포도원 농부의 비유(23-46)가 언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 장에서 우리는 예수와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 나귀를 타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그의 입성을 환영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겉옷을 길에 펴기도 하였고,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무리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종교를 대표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듯 예수는 훌륭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영광 받기보다는 낮고 천한 많은 무리들에게 영광을 받으셨던 것이다.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은'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쳐댔다.
이는 '지금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가 당신께 간구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이다. 예수는 만감이 교차되는 감람산 기슭 벱바게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먼저 예수는 자신의 전지성(全知性)으로 '주께 쓰임 받을 나귀'를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준비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다. 이처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메시야의 모습이었다. 나귀는 뭇짐승 가운데서 가장 초라한 짐승으로 겸손을 나타낸다. 즉, 예수는 위엄하게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온유함과 겸손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무리들의 기대에 어긋난 것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 어울리지 않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림설명 /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마22:1-11,막11:1,눅19:28-40,요12:12-19). 두치오의 1308-11년,패널로 크기는 101*53.7CM이며 시에나 대성당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면 바로 앞의 성벽과 문의 묘사는 설득력이 없으나 건물과 성벽의 선에 의해서 현실적인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풍부하고 서술적 인 세부 묘사에 의해서 화면에 다양한 기분을 주려고 하는 두치오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다. 종려나무가지를 따기위해 나무에 올라간 사람, 도로변에 옷을 깔고,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사람,유리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바라보는 사람 등 세부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서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을 무리들에게 보이심으로써 자신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임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셨다. 예수의 겉모습이 초라할지라도 그 사역의 성격상 승리와 영광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승리의 입성이라고 하고 또 영광의 입성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의미를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5절에서 예수님의 입성은 곧 승리의 입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아마 이 모습을 본 무리들은 예수의 화려한 왕위등극을 보지 못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는 한갖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의 자만심과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무리들이 메시야의 도래를 대망하였 다면 메시야가 오실 때 어떤 모습일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자신들이 처한 압제의 상황에서 막연하게 어떤 돌파구로서 메시야를 고대하였을 뿐 메시야 도래에 대한 깊은 생각과 준비가 없었다.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그에 따를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정작 메시야가 오셨을 때 깨닫지 못하고 2,000년 전의 유대인들처럼 메시야를 십자가에 매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또한 자기 이기적인 생각대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 욕심을 채울수 없을 것이다.

그림설명 / 예루살렘 입성 : 김기창 작. 1954년.수평구도를 잡아 위 3분의 1은 지붕과 누각으로, 아래 3 분의 2는 군중으로 잡아 나귀를 탄 예수에 군중들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양 속의 일원화라는 미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여인들의 복장은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남자들의 얼굴은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김기창은 갓쓴 예수를 한국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내외에 큰 반응을 일으켰다.
예수는 겸손의 왕이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분이셨기 때문에 겸손하게 주님께 순종하는 성도를 아름답게 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무리들이 예수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했다고 해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외형상의 그 초라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승리의 입성이었다. 대적 자들의 시기와 질투, 음해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성에 당당하게 입성하심으로 대적 자들에게 승리하셨다. 초라한 메시야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겸손과 온유의 왕으로 당당히 입성하였으니 그 또한 승리였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사역을 통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만유의 왕이 되셨으니 이 또한 승리가 아닌가?

6-11절에서는 예수님의 입성은 영광의 입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는 많은 무리의 환호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입성을 환영하는 무리들은 낮고 천한 소외계층이었다.
특히 무리들은 주님이 지니가시는 길에 자기 겉옷을 깔며(겸손과 헌신을 상징하는 행위) 길 옆의 나뭇가지를 꺾어 땅에 뿌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승리를 기뻐하는 행위) 환호하였다. 여기에서 종려나무가지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백성들의 환호와 영광은 장차 예수께서 고난 후에 받으실 영광을 예시한다. 비록 무리들은 예수가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세상 적인 기대 때문에 열광하였지만 예수는 백성들의 기대를 영적으로 이루셨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단지 3일만에 살아나셔서 사망과 세상을 이기시고 명실공히 왕으로 등극하셨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환호와 열광은 바로 예수의 영광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영광의 입성이다.


Gustave Dore삽화 /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쟈므 띠소(James Joseph Jacques Tissot) 예루살렘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