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장. 재판 받으시는 예수

1. 이중재판

[겟세마네]와 [갈보리]사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이중적 재판을 받으셔야 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를 재판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은 심문이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고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그것은 법적 살인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앞에 계셨다. 이것은 교회 재판이었다. 그 다음 그는 로마 법정에 보내어졌다. 이것은 세속 재판이었다.예수님에 대한 혐의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산헤드린 공회]만으로서도 [빌리도]에게 그 사건을 전혀 의뢰하지 않고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광대한 로마 제국의 다른 모든 속령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다에서도 로마 제국은 피정복민에게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치권 허용원리] 현명한 적용은 전 로마제국의 평화 유지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와 같이 사형 선고가 관계되는 사건에 있어서는 최종적 결정권을 로마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사건은 유대인 법정을 거친 후 로마 법정 앞에서 재심리를 받아야 했는데 이 법정은 이미 선고된 판결에 동의하여 피고인에게 처형 선고를 내리거나 아니면 그 판결을 반복하여 죄수를 놓아 줄 권리를 가졌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일어났던 일을 잘 설명해 준다.

2. [안나스]앞에 서신 예수

[겟세마네]에서 예수를 체포했던 성전 군관들은 먼저 그를 [안나스]에게로 데리고 갔다(요18:13).그러나 이러한 절차는 엄격하게 말해서 전혀 비공식적이며 독단적인 것이었다. [안나스]는 그 때 공직을 맡고 있찌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영향력과 위세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그의 의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이십년 전에는 그 자신이 대제사장이었으며 지금도 예의상 그런 칭호로 불리웠다. 그리고 그의 아들 중 다섯 이상이 그를 계승하여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탄핵하였던 성전 안에서의 장사매매를 개인적 이익을 위해 개설했던 자도 아마 [안나스]였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체포하게 했던 음모의 배후에 있었던 악한 일을 꾸미는 천재였다. 예수님께서 끌려가신 때가 자정이 지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은 깨어 있었으며,또한 이 사건을 지체없이 밀고 나가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비공식적인 예비 심문이 있은 다음 그는 예수님을 [가야바]에기로 보냈다.

3. [가야바]앞에 서신 예수

[안나스]의 사위였던 [가야바]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이었다. 이 사람은 유대 민족의 공인된 정신적 보호자였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최고 대변자이며 대표였다. 그에게는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특권이 위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한 자는 바로 이 사람이었다. 역사는 최상의 종교적 기회와 환경이 인간의 구원을 보증하지 못하며 그 자체로는 인간의 영혼을 고상하게 하지 못한다는 진리에 대해 이 보다 더 놀라운 에증을 제공하지 못한다.[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은 그의 책을 끝맺으면서 [그 다음에 나는 바로 천국 문에서도 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체포 소식은 이 때쯤 널리 퍼져서 [산헤드린 공회]의 많은 회원들이 대제사장 집에 모여들었다. [산헤드린 공회]는 그 법규에 의하면 해가 뜨기 전에는 합법적으로 소집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야바]와 그 나머지 사람들은 지체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예수님에 대한 심문을 즉시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면 해 뜬 다음의 공식회의에서 해야 할 것으로는 비공식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인준하는 것만이 남게 될 것이고 귀중한 시간이 절약될 것이었다(마26:5727:1). [가야바]는 예수님에 대한 심문을 그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대한 것부터 시작했다(요18:19). 물론 가야바는 예수님으로부터 그가 반로마적 감정을 옹호한다고 뒤집어 씌울 수 있는 진술이 나오기를 바랐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로마 총독 앞에서 재판이 시작될 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첫번째 심문은 실패로 끝났다.[저희가 나의 말을 아느니라.] 사실상 예수님은 이 말만을 하셨다.[내가 은밀히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아니하였거늘,즉 모두가 다 알고 있거늘 어찌하여 나에게 묻느냐?]는 말씀이었다. 이로써[가야바]의 의도는 좌절되었다(요18:20).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두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더 이상의 번거로움이 없이 정죄의 선고가 통과되게 할만한 증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서 증인들을 불러 들였다. 그러나 그 증인들은 서로가 일치하지 않았으며 어쨌든 그들의 증거는 박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다시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막 14:56-59).심문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과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협의를 실증하는 것의 실패로 점점 근심과 불안이 더해 가자[가야바]는 갑자기 그의 최후의 가장 무서운 무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단도 직입적으로 그는 예수님께 스스로 메시야임을 주장하는 가고 답변을 요구했다. 그는 지금 예수님께서 스스로 유죄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영원히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께서 조용히 [내가 그니라'고 대답하시고 덧붙여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의미 심장하게 말씀하셨을 때 대제사장은 그의 적이 드디어 그 자신을 드러내어 고발자의 손에 떨어진 것이 너무 기쁘고 득의한 나머지"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그 입으로 스스로 정죄하니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라고 외쳤다(막 14:63-64).이것과 함께 그 법정은 만장 일치로 사형을 결의하였다.

그들의 모든 의도와 목적대로 유대인 법정은 끝나게 되었다. 그 판결의 공식적 인준은 해뜬 후 [산헤드린 공회]가 공식적으로 회집될 때 몇분 동안에 처리될 것이었다. 그동안 유죄 판결을 받은 예수님은 간수들과 폭도들의 처분에 맡겨질 것이었다. 그 법정의 배심원들 마저도 뒤이은 불경건한 잔인한 짓에 가담했다(막 14;65).이러한 무도한 비행이 저질러지고 있는 동안에 복음서의 기자가 한결같이 기록하고 있는,교회의 양심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시몬 베드로의 부인]사건이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열렬하고 충성스러웠던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 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오게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불안한 느낌을 가졌다. 그를 따라다니며 지켜보는 시건들이 있었다. 그곳은 온통 지켜 보는 눈물과 가득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도전이 갑자기 저면으로 피할 수 없게 찾아왔을 때 그는 용기를 잃고 그리스도가 그에게 아무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맹세하여 외쳤다. 바로 그 때 파수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지나갔으며 예수님은 그 소리를 들으셨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이 생각났더라"(눅 22:61). 그 돌아보시는 눈길에는 슬픔과 비탄,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부끄러움을 느낀 제자는 심히 통곡하면서 어두운 밤속으로 비틀거리며 나갔다. 모든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이 기사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을 그때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 대한 모든 불충성은 베드로의 비극적인 실패만큼 어두운 것이며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다시 만나 베드로에게 그의 양을 먹이라고 하신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4. 재판의 불법성

이제는 예수님에 대한 종교 재판에서부터 세속재판으로 넘어가야 할 차례이다. 그러나 먼저 이 때까지 있었던 재판 절차에 있어서 법률과 공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 점들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어떠한 점에 있어서[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은 불법적이었는가?

a) 예수님의 문제를 결정할 법정 자체가 예수님을 배반한 일의 공범자였다는 점에서 불법적이다.[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은 유다의 배신 행위에서 그 절정을 이룬 은밀한 음모에 뗄 수 없이 연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사람들이 배심원이 되게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은 시초부터 그 재판 절차가 무효였음을 증명한다.

b) 그 재판은 유대인의 법률이 요구하는 대로 피고에 대한 명확한 혐의의진술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대로 [가야바]와 그의 무리에게 정말 어려웠던 문제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줄 만한 혐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증인들의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혐의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그 사건을 기각하는 것이 그 법정의 의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고 재판은 계속되었다.이것 역시 불법이다.

c) 더우기 그 사건을 심리하는 판사는 사건을 기소하는 공소인이기도 했다. [가야바]는 이 두가지 역활을 겸했다. 그는 사전에 유죄판결을 내리기로 결심한 후 그날밤 그 법정의 재판장 자리에 앉았다. 그는 역사상 가장 냉소적이고 냉혈적인 말들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유익하다."(요11:50)고 이미 선언하지 않았던가? 증언 청취가 실패로 돌아가자 재판장 자신이 피고에게 유도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러한 처사가 법률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의 손에서 빠져 나가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백번 이상이라도 법을 어기려고 했다.

d) 더우기 피고를 변호하기 위한 증인들이 없었다. 아무도 소환되지 않았으며 나타날 기회도 없었다. 예수님은 온 세상과 맞서 있었다. 그를 고소하는 자의 음성 외에는 어떠한 음성도 허용되지 않았다.

e)그러나 그 재판의 결정적인 불법성은 재판을 급히 서둘러 마쳤다는 데에 있다. 깊은 밤중에 그 사건은 서둘러 끝마쳐졌다. 밤 사이 되어진 일을 인준하기 위해, 그리고 합법성의 겉 모양만이라도 부여하기 위해 해뜬 후 짧은 공식 회의를 소집한 것도 [산 헤드린 공회]의 심야 재판이 완전한 위법이라는 사실을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악의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혐의 사실을 재판한 경우 사형 선고는 심리가 끝난 다음 날에야 내려질 수 있다는 법률이 있었다. 즉 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더우기 그러한 사건은 안식일 바로 전날이나 큰 절기 중에는 청취할 수 없다는 법률도 있었다. 그들은 이 두가지 법을 다 위반했다. 무리들이 그의 편에 서서 들고 일어날 기회가 생기기 전에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절망적인 안타까움에서 그를 고발하던 자들은 원리 원칙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정의를 조각 조각 찢어 버린 것이었다.

5.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

[가야바]와 그의 추종자들이 자기들의 할 일을 끝낸 후 예수님은 그 다음 단계의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 총독에게로 끌려가셨다.[본디오 빌라도]는 6년 동안 행정관으로 있으면서 그의 직책이 결코 한가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직할 식민지였던 유다는 [디베료]황제의 광대한 영토 중 가장 까다롭고 폭동이 잦은 곳의 하나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당면했던 행정적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하게 가혹하고 무자비했던 [빌라도]는 그가 다스려야 할 백성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다. 그는 유대인을 경멸했으며,유대 민족의 종교적 전통을 전혀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감정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으로 또한 로마가 공식적으로 시인한 유화 정책을 완전히 묵살하고서 [빌라도]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거리로 [가이사]의 神像을 지나가게 했던 일을 잊지 않았다. 또한 [빌리도]가 폭동의 기민을 알아채고 군인들을 군중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유혈의 살륙을 벌이게 했던 일들을 잊지 않았다(눅13:1).[산헤드린 공회]나 일반 대중들도 [빌리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요는 기적을 낳는다.이제 [가야바]와 그 무리의 희망은 그 총독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그를 그들의 편으로 만든 다음 예수님의 사형을 허락받는 것이었다.

[빌리도는]정당한 절차대로 협의 내용의 확실한 진술을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9요18:29).그러나 이것은 매우 난처한 요구였다. 왜냐하면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유죄로 판결했을 때 우리가 이미 살핀대로 그들은 순전히 종교적인 문제 즉 신앙이 없는 로마인에게 중한 죄로 보이거나 사형을 받을만하다고 생각될 것 같지 않은 신성모독죄를 적용했기때문이었다.그래서 그들은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그를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요18:30).당연히 이 답변은 [빌라도]를 만족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빌라도]는 더 이상의 혐의 사실을 요구했다. 그러자 예수님을 고소하던 자들은 이전에 그들이 저질렀던 불법에 하나를 더 첨가하여 슬며시 본래의 신성모독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그 대신 다른 혐의 즉 [빌리도]가 받아들여 심리할 수 밖에 없을 반역 혐의를 내세웠다(눅 23:2). 그들은 먼저 예수님이 "백성을 미혹하고"(이것은 비방에 지나지 않았다). 두번째로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이라고 했다."(이것은 비록 그들이 의미했던 뜻과는 다르지만 사실이었다) 고 주장했다. 이러한 삼중적 고소 내용을 들은 다음 [빌라도]는 예수님을 혼자서 비공식적으로 심문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상 어떠한 사건의 장면도 이와같이 생생하게 온 세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일은 없었다. 이 이야기의 숨은 뜻을 찾아가면서 읽어가면 우리는 [빌리도]가 운명이 그에게 맡긴 이 이상한 죄수를 어떻게 처리할까하고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떤 그 중대한 시간 내내 그 죄수는 재판장 [빌라도]의 영혼을 위해 고심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빌리도]는 아직 절망적이지는 않았다.예수님께서는 기꺼이 그를 그 자신으로부터 구원해 주려고 하셨다. 더우기 총독은 이 사람이 그가 다루어야 했던 보통 범죄자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볼 만큼 이해력이 빨랐다. 그는 그 앞에 서 있는 이 사람, 폭도들이 밖에서 죽여 다랄고 외치고 이는 이 사람의 침착함과 확고함, 그리고 위엄과 왕다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심문을 끝내고 그의 판결을 - [이 사람은 죄가 없다!]라는 판결을 공포하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군중의 감정을 격하게 했다. 이제 처음으로 [빌라도]의 태도에 두려움과 불확실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는 귀찮은 사건이 생기게 될 것을 내다보고 이 어려운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했다.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으로 그는 세가지 방편을 사용했다. 그 첫째는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내는 것이었다(눅23:16).예수님은 갈릴리 사람이므로 헤롯의 관할 아래 있다고 생각해 낸 그는 (다행히 그 때 예루살렘에 와 있던)헤롯으로 하여금 그 책임을 수락하게 해서 그 재판의 시종을 담당하게 하려고 했다. 그것은 교묘한 방편이었으나 불행하게도[빌라도]에게는 그가 바랐던대로 되지 않았다.잠시 후 호송병들이 죄수와 함께 헤롯의 전교를 가지고 그의 궁전으로 되돌아 왔다. 그 전교는 로마 총독에게 베풀어 준 호의에 대해 감사드리나 로마 총독의 특권을 빼앗아 가질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그 사건을 총독이 끝내 줄 것을 간청한다는 취지였다.[빌리도]가 시도한 두 번째 수단은 비겁한 수단이었다. 그는 에수님께서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그를 채찍질한 후 석방하겠다고 제안했다(눅23:16). 이와같이 유감스러운 타협책은 물론 전혀 정당하지 못한 것이며 조리에 맞지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두려움에 쫓긴 가엾은 인간이 예수님께는 그의 의무를 다하고 동시에 군중을 기쁘게 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책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한 제사장들이 그 판결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것도 놀랄 것이 못된다. "십자가에 못박으소서,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는 외침을 웅성거리는 소리에서 점점 소란한 외침으로 변해갔다. 두 번 시도에서 실패한 [빌라도]는 이제 최후의 방안을 시도했다. 그는 예수님과 [바라바]를 놓고 혹시라도 군중들이 예수님을 살리기 원할 것을 바라서 그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했다(요18:39).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바라바]를 살리라는 외침 소리가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벼란간 군중 속에서 한 음성이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고 외쳤을 때 [빌라도]는 어찌 할줄을 몰랐다(요19:12).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지웠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그 위협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장 두려웠던 일으니 그에 대한 불평이 로마에 있는 황제에게 들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과거 생활속에서 심문에 걸리게 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없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기꺼이 그 앞에선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 했으나 그 자신의 이익과 나쁜 과거가 그 길을 막고 죄 없는 희생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소리지르는 군중들에게 굴복하고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 주었다.

6. 재판장으로서의 예수

이렇게 해서 재판 아닌 재판은 끝났다. 이 장을 끝맺으면서 이야기 전체에 있는 이상한 특징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 사건에 대한 성경 기록을 연구해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바로 그의 눈 앞에서 국면이 뒤바뀌어 있다는, 즉 예수님이 [가야바] 나 [빌라도],[헤롯]앞에서 심문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끝나고 예수님이 골고다로 끌려가셨을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에게 심판을 받은 것이었다.[가야바],[빌리도],[헤롯],이들 모두가 잠깐씩 인자(예수님)와 얼굴을 맞대고 서 있었다. 예수님의 탐색등은 그들의 영혼 위에 비쳐서 그들의 가장 깊은 본성을 드러내어 보였으며 온 세계와 모든 시대가 볼 수 있도록 그들을 드러내 보였다. 그 어둡고 혼잡했던 날 밤에 참 재판장이었던 사람은 그리스도였다.

[가야바],[빌리도],[헤롯]이 그날 밤에 섰던 자리에는 모든 인간이 인생 여정의 어느 단계에서, 결정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얼굴을 맞대로 서야만 한다. 또한 각 영혼의 주님에 대한 판결은 깊고 엄숙한 의미에서 바로 그 영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결이 된다.

매일 성경


 요한복음 11;46-57   편리주의의 사도
 누가복음 22:54-62   베드로의 부인
 마태복음 26:57-68   교회의 재판
 마태복음 18:19-26   세속 재판
 요한복음 18:19-26   빌라도의 비극
 이사야   53:        멸시당하고 배척 받으신 자
 계시록   22:11-15   그리스도의 심판대

 

토론을 위한 문제

1.베드로의 부인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떠한가?오늘 우리는 그일을 어떻게 되풀이 하고 있는가?

2.어떠한 점에서 예수님에 대한 재판이 불법적으로 집행되었는가?

3.[빌라도]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에서 당신은 어떤 인상을 받는가?

4.예수님을 재판했던 자들이 사실은 예수님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가?

  • 복음서 예수님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