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선교보고


I. 브라질의 역사와 천주교

M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전에 현재의 페루 중미 멕시코에 인카스,아스테카스,마이아 문명이 있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미 대륙을 발견하고 브라질은 1500년에 폴투갈 사람들이 발견했다. 30년 후인 1532년에 개척을 하기 위해 마을을 시작하고 1555년에 불란서에서 현재의 리오데 자네이므로 지방에 불란서 남극이라고 식민지로 노력하다가 1560년에 철수했다. 1630-1660년에 화란 사람들이 동북지방에 있다가 쫓겨났다. 155년도 불란서 사람들이 정착하였을 때 불란서 칼빈주의자들이 예배를 드렸다고 브라질 역사에 기록하고 있으며 화란 사람들이 동북쪽에 들어왔을 때도 개신교목사들이 정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천주교는 아메리카가 발견되고 브라질이 남미대륙 전도기념되는 날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탐헝여행단이 교황의 허락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신부들이 같이 동행했으며 모든 보고서를 신부들이 기록했다.그 당시에 정부와 교회가 일치되어 있었으며 모든 식민지 정책이 교회의 승인하에 있었다. 이러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서반어사람들이 멕시코나 페루에 도착한후 원주민들에게 전도를 하고 영세를 주어서 천주교인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역사에 보면 무조건 영세를 주어서 천주교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영세를 받지 않겠다고 원주민(현재인디오)들을 칼로 죽였다고 한다. 모든 보물을 강제로 탈취해서 유럽으로 가지고 가고 토지는 서반어 왕족이나 천주교에서 점유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자기들의 농장에서 종으로 부린 것이다.이러한 정책이 최근까지 계속되어 중남미의 거의 80%의 인구가 아주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신부나 수녀가 될 사람들만 교육을 시ㅏ키고 부자들의 자식들은 유럽으로 보내서 유학의 충고 아래서 국민을 다스리다보니 현재와 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상공업,모든 방면에서 어려움이 심하게 일어난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정권을 한손에 쥐고 있었고 정부나 대지주 그리고 기업가들을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중남미의 천주교는 중세의 천주교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1)성경을 무시하고 聖人들의 말이나 마리아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있다.성인들의 우상이나 마리아의 우상 숭배만 가르친 것이다.

2) 기적만 가르치고 일하는 것을 무시하고 잘 노는 것만을 배워 주고 특히 성인들의 경축일(Festa)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을 게으르고 타락하게 만든 것이다.

3) 최근에 중남미에서는 해방신학을 주장하면서 몇 신부들이 빨치산으로 들어가서 군대와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50%이상의 신부들이 해방신학을 주장하면서 사회적으로 공평을 말한다. 참으로 웃음이 나는 일이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을까? 정부일까? 부자들일까? 정부 혼자서 이런 불공평한 사회를 만들었을까? 천주교는 현재 어디 서 있으며 무엇을 했는가? 천주교가 권력이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을까?죄송하지만 현재까지도 천주교는 제일 제삼으로 가는 부자이고 대지주이다. 어떤 칠레의 신부의 말에 의하면 1950-60년도에 공산주의의 사상가들이 천주고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신학을 해서 신부가 되서 현재 해방신학의 주장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신학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칼막스와 레닌의 이론에 기초를 둔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물질문제가 해결되면 영적문제도 해결된다는 엉터리 신학을 만든 것이다.그런고로 천주교신자들이 영혼구원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의 영혼구원문제는 아주 황량한 황무지이다. 브라질에 대해서 말한다면 전남미의 땅중 47.3%을 차지하고 있고 인구는 1억5,000만이라고 한다. 로마 교황청 통계에 의하면은 전라틴 아메리카 천주교인수가 3억 7800만인데 전세계 카톨릭교인수의 42.42%라고 하며 브라질 천주교인수가 전인구의 87%(이 숫자는 1980년 통계)였고 1990년에는 76%로 줄였다고 한다.그래서 교황은 이렇게 걱정스러워서 금년 10월에 브라질에 오게된다. 왜 천주교인 수가 줄어가고 있는가? 원인은 물론 신부들이나 수녀들의 숫자가 증가 되지 않은데도 그 원인이 있지만 주로 해방신학문제 때문이라고 본다. 로마교황은 현재 해방신학자들을 감시하고있으며 인터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얼마전에 신부 Boff를 캐토릭 출판사의출판인의 직위에서 해직시키고 일년동안 입을 열지 못하게 근신의 벌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은 주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이로 인하여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영혼구원에 분발하여 총력을 기울이여야 할 때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거의 500년동안 모든 방면에서 권력과 재력을 ㅈ바고 있으면서도 국민을 교육시키지 않고(지식으로나 과학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우상만 숭배하도록 한 결과 전국민의 30%가 글을 모르는 문맹자이며, 빈곤하고 미신 생활하는 사람들은 캐토릭교인들이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요 비참할대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에 선교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으시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셨다고 보는 것이다.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순종할 때 이곳은 황금어장으로 완전탈바꿈을 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II. 30년간 목회와 선교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무한히 감사드린다. 과거 지난 날들을 생각할 때에 다만 감사함을 드릴 뿐이다.여러번 죽음의 골짜기에서 저를 건져내 주시고 중립국 인도나라를 통해서 반공포로로 이곳 브라질에 도착하여 (1956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부족한 저를 택하여 신학공부하고 목사로써 지금까지 전도하고 목회할 수 있음을 거듭 감사함을 드린다. 어렸을 때에 이북에서 목사가 될 생각은 없었으나 저를 죽음의 길에서 건져내주신 주님은 당신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저를 불러서 세우셨다.폴투갈언어는 별로 시원치 않았으나 주님은 저를 Campinas신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으셨다. 그때 생각하기를 언어는 부족하나 주님의 뜻이라면 성령님께서 도우시리라 믿었다. 자신감을 갖고 1958년 2월 초순에 신학교에 입학이 되었다.처음에는 아주 어려웠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방학때마다 쌍빠울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선교사님들과 협력하여 전도하면서 훈련도 받았다. 그때에는 도르가 없는 곳이 많았는데 몇일씩 여행을 하면서 브라질의 여러개의 주를 알게 되었고 원주민 목사님들도 여러분을 알게되었다. 신학교 졸업 3개월전에 어떤 원주민 목사님이 저에게 편지를 주었다. 자기 생각에는 중서지방으로 와서 전도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그때 전도할 지역에 대해서 기도중이었다. 주님이 주시는 응답으로 알고있었고, 또 어떤 선교사님은 쌍빠울로 지역에 있으라고 충고하였다. 제 마음에는 원주민 목사님의 편지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고 젊고 홀로 있을 때 믿음의 모험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몇일 기도한 후에 원주민 목사님께 회답의 편지를 보냈다. 1963년 1월 13일 GOIAS(고이아스) 남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곳 브라질 중서지역(內地목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목회자로는 알라깔사스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인구가 약 3,000명 정도 살고 있고 주말에는 이곳 지방에 다이아몬드 캐는 사람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5,000-6,000명 정도로 인구가증가되는 곳이었다. 그때에 모든 사람들의 어깨에 황색권총알을 몸에 지니고 다녔으며,사람마다 권총과 칼을 가지고 다닌 것을 볼 때에 미국의 18-19세기의 TEXAS주나 ARIZONA주를 연상케 했다. 아라깔사스란 곳에는 미국선교사들이 경비행기로 일년에 한번씩 와서 설교를 하였고 세례도 주어 6명의 신자가 확보되었다. 조그만한 개척교회가 서기도 했다. 그곳을 중심으로해서 6개의 면소재지를 순회하면서 전도를 시작했다.그 지역에는 동양사람이 한 사람도없었고 도로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선교사님의 후원으로 미군용 JEEP차를 받았다.이 차를 가지고 천천이 6개의 면소재지를 다니면서 개신교 동정자들을 발견하면서 그리고 나무 그늘에서나 동정자들의 집에서나 예배를 드리면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한 면소재지에서 다른 면소재지까지는 대개 300KM였다. 이런 거리를 매주일 멀다 않고 정성껏 한번씩 순회하면서 동정자들을 심방하고 위급한 환자들은 병원으로 데려다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주의 이름으로 위로해주고 이해해주고 사랑으로 수고를 해주었다. 저는 진실로 즐거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하였더니 일년 후에 12명의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서 세례를 주었다. 알라깔사스 소재지의 교회도 어느 정도 부흥은 했으나 주말에만 머물러 있으니 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때 느낀 것이 예수님 말씀이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없구나 한 말씀이 기억이 났다. 여섯 곳의 이름을 소개하자면 (1) 까이아뽀니아 (2) 삐란야 (3)봉자르딩 발리까 (4) 또 이쇼레우 (5) 모힌유(동장) (6) 빠하뚜깔사스 였다. 이중에서 삐란야,모힌유,알라깔사스,빠하뚜깔사스 이 4곳은 개척교회로 어느 정도 규모가 잡혔다. 왜냐하면 경건한 교회일꾼들이 (지도자) 있던 곳이었다. 그 외에는 발전이 더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까이아뽀니아, 빠란야,봉자르딩,알라깔사스,바하뚜깔사스에 개척교회들은 조직된 교회로 성장이 되었고 이지역이 이제는 한 노회로 조직이 되었다. 할렐루야! 그리고 또이쇼레우,발리까,모힌유의 개척교회들은 미조직상태로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이사하기 때문이다. 2년간을 전도하면서 여행을 했는데 경제적으로 곤란을 받게 되었다. 저 혼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결혼을 한 몸이라서 곤란이 생긴 것이다. 결혼할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오직 한 몸 밖에 없었다. 가난한 원주민 아내와 땅에 누워서 자고 먹는 것도 그저그렇고한 신혼생활이 계속되었다. 아무곳이나 원조 받은 곳도 없고 개척교회에서 나오는 것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식생활을 덜어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도는 더욱 효과가 있었다.이것도 초기에는 좋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척교회는 빨리 성장하지를 못했다. 주간 중에는 학교에서 부부가 학생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개척교회들을 한번씩 다녀온 것이었다. 이렇게 교회를 섬기어 왔기 때문에 개척교회들이 유지할 정도였다. 시간이 있고 많은 신자들과 접촉하고 가르치면서 틀림없이 부흥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현재는 이곳들이 모두 성장 발전되어 기성교회로 조직이 되고 전도사나 목사님들을 모시게 되었다. 1977년 초기에 MINAS 주 북쪽 지방에 있는 몬치스끌라스라는 도시에 있는 장로교회의 당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그쪽으로 목회지를 옮겼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정말로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간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을 떠나 가나안따으로 가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13년이란 긴세월을 중학교 교사로 있던 곳이요 또 그 직책을 버리고 그쪽으로 홀가분하게 주님의 말씀따라 간 것이다. 교회는 좀 적어 성도 수가 100명이 안되었다. 그리고 그 지방에는 3년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서 주민들이 심한 고생을 하고 있었고 목회하시던 목사님들이 견디다 못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곳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우리 가정은 그쪽으로 갔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목사님,우리 교회는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은데 원하시면 중학교 교사로 계시면서 목회하시라고 권했다. 그때 나의 대답은 나는 13년동안 교편을 잡고 생활했는데 그 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왔고 주님이 이 교회로 인도해 주셨으니 주님이 책임지시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여 교회를 부흥시키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때 장로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많은 여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 교회가 속한 노회에는 다만 2명의 목사님만 계실 뿐이고 이준희 목사님을 포함해서 3 9개이고 개척교회는 8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일하기로 승락을 한 것이다. 한 교회에서 제일 멀리 있는 곳까지는 700KM였다. 도로는 비포장된 것이었고, 한번 여행을 하고나면 먼지가 옷으로 변할 정도였다. 건조문제로 주민들의 비곤을 볼 수가 있었다. 교회들은 크지를 안했으나 교인수는 육칠십명 정도이고 쌀리나스 장로교회만이 600명이상 모인 대교회였다. 제가 몬치스 끌라스교회에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위의 교회들은 편지를 보내왔다. 목사님 속히 오셔서 설교해주시고 성탄예식도 거행해 주세요 하고 요청한 편지내용이었다. 이런 편지들을 당회에서 장로님들께 보내었더니 모든 장로님들이 그 지방들의 사정을 잘 아시고 이해하면서 한달에 한번씩 9개의 기성교회와 8개의 개척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지도하라고 허락했다.자기들도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을 때 꼭 정성껏 교회를 잘 돌보겠다고 했다.그러다 보니 이지역에서는 제자신의 교구가 700KM 의 넓이가 된 것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하고 심방할 계획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있는대로 심방을 하게 하고 주님께 간절히 육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했다.건강을 잃으면 도저히 이 사역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몬치스 끌라스 도시의 한 방송국에 매주일마다 15분설교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일날 본교회에 있을 때는 방송국에 가서 설교를 하고 여행할 때는 설교문을 작성해서 한 장로님께 드렸다. 할 일은 태산과 같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주히 여행하며 교회들과 개척교회들을 방문하여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에게 희생적인 봉사를 부탁했다. 주님께 충성하면 할수록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교회들이 안정이 되면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켜 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있던 몬치스 끌라스 교쇠는 부흥하면서 그 도시내에다가 4개의 개척교회를 세우게 되고 그곳에서 100KM 떨어진 곳인 브라질리아 데 미나스란 도시에 또한 개척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 은혜요 기적이었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았다.그렇게 많이 여행을 하고 깊숙히 관여함이 부족하였으나 교회는 부흥되었으며 5개의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였다. 현재 두곳의 교회는 조직된 교회로 성장이 되었고 나머지 3개의 개척교회는 계속 개척교회로 진행이 되고 있다. 2개의 개척교회가 조직된 교회로 성장된 원인은 경건한 지도자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셋이 미조직 상태로 있으나 어는 정도 발전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그 교회청년들이 경건하게 성장되어 지도자들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주님께 감사하고 싶은 그 어렵고 곤란한 환경 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수많은 이김 중에서도 한가지 간증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룻밤 새벽에 누군가 우리의 집 대문을 두들겼다. 문에 가까이 가서 누군가 하고 물었다. 두 여자가 서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두려워 마세요.저희들은 형제들인데 여기서 좀 떨어진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저희 아버지가 병을 앓고 있는데 목사님을 찾아 모시고 오라고 해서 집에서 나와 거리에서 방황하던 중 어떤 사람에게 물어 보니 목사님댁이 여기라고 해서왔다는 것이었다. 그때 방에 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 정각이었다. 급히 의복을 가라입고 승용차에 두 여자를 태어고 달려갔다. 집에 들어가보니 늙으신 분이 침대에 앉아서 몹씨 괴로워하면서 저를 자기 옆에 앉으라고 했다. 그분 옆에 앉았더니 그때에 그 늙으신 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일생을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하면서 일평생 살면서 지은 죄를 고백하면서 근 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서 그는 자기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때에 성경말씀을 읽어주고 그 노인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그분은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에 제가 느낀 것은 내가 무엇이길래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브라질 이곳 십자성이 머리위에 보이는 이곳에서 이렇게 주님의 은혜와 사라응로 영혼을 위로하게 됨을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함을 드렸다. 이러한 중대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다만 주님을 성실히 섬기는 종들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주님을 성실히 섬기는 종들에게만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주님을 죽을때까지 섬길 것이라고 맹세했다.그 도시에서 시작한 모든 개척교회들은 교인들의 집에서 집회를 하면서 시작이 되고 회집인원이 만원되면 예배당을 짓기 위해 대지를 사고 조그만 한 교실을 먼저 건축하고 교회가 발전되는 대로 확장을 시킨 것이었다. 아마도 초대교회들도 창립이 이런 형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미나스북노회에서 칠년동안 모든 교회들과 개척교회를 방문하면서 일을 한 결과 주님께서 칠년동안 모든 교회들과 개척교회를 방문하면서 일을 한 결과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전도의 비젼을 폭넓게 해 주시었다. 그곳에서 섬기면서 봉사한 교회들의 이름은 (1)삐라뽀라교회 (2) 몬치스끌리스 교회 (3) 쟈뉴아티아교회 (4) 쟈나우바 교회 (5)뽀떼이리아 교회 (6)살티나스 교회 (7)뻬뜨아줄교회 (8) 알메나라교회 (9) 스피노자교회 (10)히요다스 안따스 교회 (11)라고아스 교회 이외에도 3개의 개척교회를 도와주면서 4개의 개척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후에 나는 1985년초에 수도 브라질리아의 위성도시인 따구와찡까 제일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부임을 했다. 미나스북노회를 뒤로 맡기고 수도서울 (브리잘리아)가까이 왔다. 따구와찡까 제일장로교회의 교인수는 약 600명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 교회에서 개척한 교회가 있었는데 주일학교 때 60명여명이 모였는데 4년후에는 100명이 모였다. 1990년에는 조직된 교회로 성장되었다. 따구와찡까 제일장로교회에서는 그렇게 바쁘지 않았고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어느 정도 교만해질 수 있는 교회 목회자가 될 만한 곳이었다. 교회당도 크고, 교인수도 개신교회 중에서는 그곳이 제일 많았다. 그러나 마음 속에 느낀 점은 좀더 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하고 기도했다.그래서 현재 담임하고 있는 이곳 Goiania Uniao교회로 온 것이다. 따꾸와찡까 제일장로교회에 비교하면은 교회당도 형편없고 교인숫자도 아주 적으나 여기서 만족함을 느꼈다. 앞으로 성령님의 지도와 장래에 전도의 문을 열어 주는 기회라고 확신해 보는 것이다. 이 도시에는 장로교 신학교가 있는 곳이며 브라질의 중서쪽과 북쪽으로 들어가는 전초의 문이다. 교통면으로나 문화면으로나 그리고 모든 면에서 중심지가 되는 선교의 전략기지가 되는 곳이다.

III. 목회 중 얻은 전도와 선교의 방법이 생겼다.

첫째:성령님의 지시이다. 주님께 충성하겠다는 마음과 정신으로 그리고 주님의 뜻만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뜻으로 기도하며 매일 행동과 언어가 일치되고 있을 때 성령님의 지시가 온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또는 교회의 당회를 통해서 성령님은 지시하신다. 내마음에 기후도 좋고 살기도 부하고 교통도 편리한 곳 생활에 편리한 곳 브라질 남쪽으로 가고 싶은 때가 많았으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얼마전 브라질 남쪽의 어느 장로교회서(도시)초청을 하였는데 같은 시각에 현 중부 지방의 장로교효ㅚ의 장로님들에게 내게 직접 와서 초청을 한 것이었다. 그때에 나는 사도행전 16장6-7절의 말씀을 기억했다. 주님은 나를 처음부터 중부지방의 장로교회의 장로님들이 내게 직접 와서 직접 초청을 한 것이었다.그때에 나는 사도행전 16장 6-7절의 말씀을 기억했다. 주님은 나를 처음부터 중부지방을 중심해서 일하도록 만들어 놓으심을 알았다(성령의지).

둘째: 전도와 선교는 절대로 믿음으로 해야 한다. 우선 교회당을 짓고 사람을 불러다가 채우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교회당을 지으면서 사람들의 눈에 나타나고 사람의 마음을 끌것 같지만 그것은 결코 비성경적이다. 교회당도 아무것도 없이 교인의 집에서나 어떤 동정이나 사람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보기에는 우수울 것이나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에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사랑으로 모이다가 사람이 많아지만 땅을 구입해서 조그만한 교회당을 짓되 사치하게 짓지 않고 모이다가 교인수가 증가될 때 교회당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곳 천주교의 전도방법은 우선 성당을 크게 짓고 미사를 베푼다. 신부가 없으면 어떤 교인을 선정해서 지도자로 삼고 임명해서 교회를 유지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교회 안을 보면은 제비나 참새들의 집으로 변견되는 곳이 너무나 많다.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마음 속에 받아드려 자기 죄를 고백하고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더 어렵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전도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충실하고 그분만 의지해서 이일만은 주님의 일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내 자신의 일이 아니고 다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한 도구라는 양심을 가져야 한다. 어렵든 쉽든 간에 아니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내가 하는 일은 주님의 일이며 주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모든 일은 잘 진행이 되는 것이다.

셋째: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가르쳐야 한다. 시초에 잘 배우지 않으면 다시 고치기가 힘이 든다. 그리고 옳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며 영적으로 경건하지 못하며 영적성장이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현 브라질의 오순절 계통의 교인들이 이단으로 많이 빠지는데 그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지도자들의 영적지식으로만 볼 때 아주 미약하고 신앙생활시초에 옮게 배우지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들에게 바른 신앙생활을 심어 주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넷째:개척교회가 속히 부흥발전하려면 경건한 신자들과 지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하나의 개척교회가 아니고 여러 곳에 다니면서 개척교회를 설립하다보면 경건한 지도자들이 1-2명이 있는 교회는 꼭 개척교회가 발전하는 것을 보았다. 경건한 지도자가 없는 곳은 발전이 늦을 뿐만 아니라 이단으로 넘어갈 위험성이 많다.내가 알게 된 어떤 교회에서 개척한 교회인데 경건한 교인이 한분도 없는 곳이었다. 제일 경건하다고 인정받은 사람이라야 성경이나 힘있게 읽는 정도이고 그외 사람들은 모두가 문맹자였다. 그런 개척교회는 발전이 없고 교인수가 줄어간 형편이었다. 경건한 교인이나 지도자가 중요함을 경험으로 느끼었다. 이처럼 필요함을 느끼면서 성경학교나 신학교의 설립이 아주 필요하다. 경건한 지도자가 없으면 개척을 해도 효과는없다. 성경학교나 신학교를 통해서 경건한 지도자를 마음껏 양성해서 바른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지도자들의 훈련은 다만 성경지식 뿐만이 아니라 종교,일반상식(지식),음악전도,주일학교등 여러 방면에서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개척교회를 시작하려면 교통,교육,위생,경제면에서 그지역의 중심지에 선택되어져야 한다. 이런 지역에 교회가 있으면 이웃과 이웃 사이의 인간 관계로써 교히가 알려지며 교회의 영향력을 넓힐 수가 있다. 이렇게 되어질 때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개척교회를 시작할 수가 있고 지원하는데 편리하다.

여섯째:사랑으로 수고가 필요하다. 전도는 말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수고가 헛되게 된다. 복음은 사랑인데 사랑은 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사랑을 행동으로 인간의 모든 방면에서 해석해야 한다. 다만 돈으로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돈이 많아도 불안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가난하다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가많다. 수고는 때를 무시한다는 말이 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다. 그렇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면 수고로써 남을 봉사해야 한다. 그때에 사랑의 수고를 받는 사람이 복음을 받아준다. 바나바가 이런 달란트를 가지고 선교사역에 힘을 썼다(행전 4:36).

IV. 앞으로 선교의 정책과 전략

브라질의 중서부 지역과 북쪽지역을 담당한 우리의 선교팀은 효과있는 복음화를 위하여 아래와 같이 선교의 정책과 전략을 세웠다.

一) 성경고등학교를 설립 운영이 성경고등학교의 위치는 제가 시무하고 있는 Uniao교회 내에 둘 계획임(대지가 600평,본당이 60평:증개축되면 120평이 되고,교육관도 100평을 갖고 있음)본교회의 출석교인은 400여명 (주일학교포함:세계교인 240여명,중고등학생 40여명,유년주교 60여명,초신자 60여명)그리고 장로님이 7명 안수집사 10명이고 서리집사제도는 브라질 장로법이 허용하지 않음.그리고 감사한 것은 2개의 장로교 노회가 Goiania내에 있다는 것이며 이곳에는 500여명이 모인 교회가 5개나 있을 뿐만 아니라 1000여명이 모인 어머니 교회같은 제일장로교회도 있고 또 이곳은 장로교가 부흥되는 우세지역이나 우리의 선교팀은 완전초교파 복음주의로 나갈 예정이다. (1)성경고등학교 설립목적은,브라질 전역에 장로교회 성경고등학교는 단 2곳뽄인데 이곳에 장로교회 신학교가 있다는 좋은 여건에 Goiania에 둔 것이 효과면에서 우리는 이 기관을 통해 교회 제직 훈련 및 유능한 인재 양성, 즉 교역자 양성에 중점을 두겠으며 (2)유치원 교사 양성을 위해 단기훈련과정으로 이 성경 고등학교에 두어 능력있는 사역자를 배출하고 이들이 배출되는 곳은 주로 교회가 없는 곳에 유치원을 설립하여 교회개척에 기초석을 놓게 됨으로 대대적인 선교전략기지로 삼을 계획이다.(5년내로 100개교회 개척은 무한한 가능한 곳입니다)(3) 브라질의 중서부 지역과 북쪽 지역의 7개주에 위와같이 성경고등학교를 세워서 점진적 선교와 전도의 전략기지로 삼아 복음의 씨앗을 효과있게 뿌려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를 할 예정이며 (4) 현재 시무하고 있는 이 교회당이 비좁아서 증개축예배를 이미 드려서 착착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바 92년 2월초에는 기필코 신입생을 많이 모집해서 개교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기도와 협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예산은 3만 5,000$ 가량이 들었다.

二) 교역자 양성을 위해서 현재 Goiania신학교를 우리의 선교팀이 운영권을 받아 육성발전을 시키겠으며 이곳 신학교를 관계하고 있는 저희들이 자세히 알아보나 교수진들의 학문과 경건훈련이 너무나 빈약함을 알았고, 또 브라질 장로교단 자체가 재정적 지원이 너무 약하므로 교수진들이 기본과정인 일반대학과 신학교만 졸업했을 뿐 더 이상의 학문을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르치는 교수님들고 학생들의 실력향상에 또 신학교 발전과 교역자 양성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고 있다.이곳 신학교가 설립된지가 6년이 되었고 신학생들이 50명에 가깝고 열심히 출석하여 공부하고 있고 이를 우해 우리의 선교팀은 기도 중에 교장과 부교장님을 얼마전 만나 장시간 이야기하고 의논한 결과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게 되었다. (1) 교장과 부교장을 (30대 젊은 사람들)미국과 카바난트 신학교 석사코스로 1년간 유학을 보내(현재 입학허가서 받았음)학문을 집중연구하고 노력해서 학문과 경건훈련을 받아 신학생들에게 크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이들은 일반대학과 신학 5년을 했음) 참고할 사항은 1년간 그 가정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학비를 쓰는데 비용은 매월 500$ 가량 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기도와 적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임을 알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장과 부교장 그리고 이곳 노회원들께서 한국교회의 선교팀에게 정식으로 청원한 것은 Goiania 신학교가 교사들이 사두었던 신학교부지를 기증한 22,000평 대지 위에 아담하게 신축교사를 지어 달라는 곳인데, 그래서 우리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하겠다고 했으며 그래서 믿음으로 92년 2월달초에 착공예배를 드림과 동시에 일을 하기로 했다. 대학예산은 5년동안에 20만$ 가량 들것이 같다. 좋은 기회인줄 알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브라질에서는 장로교회 신학교로써 철저히 한국교회 선교사가 운영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 된다. 대략 앞으로의 운연방법은 (1) 재정지원을 교회에서 했으면 한다. (교회수는 개척교회 포함해서 30개 포함) (2) 신학교 운영방법은 추후에 구체적으로 정관등을 만들어서 하겠는데 우선 우리의 선교사들은 자급의 일환으로 직접 선교의 현장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현재 계획중에 있다.참고할 것은 아주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일은 별로 어려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잘 진행될 것으로믿는다. (3)신학생이 졸업 후에 중서 지방과 북쪽 지방에서 주로 사역할 것인데 거의 100% 에 가까울 정도로 열대지방이요 또 고원지방이라서 미개발된 지역이라서 농사와 목축업이 주업이다. 이점을 잘 감안 한 우리들은 22,000평의 신학교 대지를 100% 활용해서1) 닭을 기르는 것과 꿀벌을 치는 것을 가르치고 2) 채소를 재배하는 것도 그리고 과수 재배법도 가르칠 계획이며 3) 일반기능사인 자동차 정비기능과 양재와 봉재기능을 그리고 피혁가공법도 가르치겠다. 사랑하는 선교의 동역자님들이여! 이곳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현장 목회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영육간의 지도자로서 한 사람에게 최소한 한가지의 기능을 소유하고 파송받도록 제도적으로 만들 계획이다. 왜냐하면은 이 방법이 시대의 변천과 브라질 현지의 특수성에 대한 요구조건이기 때문이다(저의경우 부부교사자격 소유와 다른 선교사 부부도 기능을 소유하고 있음)

三) 교육선교에도 크게 마음을 쏟아 계획을 구상중에 있다. 본인인 저와 제 아애가 13년 15년간을 중서지방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크게 느낀 점은 생활이 곤란해서 사범학교 교사직을 가지고 일한 경험에 의하면 천주교는 국민을 가르치는 교육에는 절대 등한시하여 현재와 같이 35%-40%이상의 문맹자로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독교 학교가 전혀 없는 이곳 Golania 대도시 (인구 150만명) 에 믿음으로 마음 아파 하면서 기독신자로서 성경 중심한 철저한 인재양성기관으로써 학교를 설립하겠는데 유치원(어려서부터)에서부터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나아가서는 대학교까지 한개의 종합학교를 기필코 설립해서 교역자 양성은 물론 정치계,경제계,교육계 문화 사회 제반분야에 유능한 기독교인이 되게해서 브라질의 영적 정신적 개혁의 바람이 성령의 역사와 함께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이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6년간 살고 30년간 목회하면서 느끼고 배운점을 말씀드렸다. 이곳은 교육도시이다.그래서 아주 좋은 여건 속에서 하나님 선교의 황금어장을 만들수가 있다.

四) 의료선교의 효과로 복음화의 길을 앞당기겠다. 브라질의 남부지방이나 대서양변은 대개가 개발되어 문화생활 지역이나 중서부지역과 북쪽지방은 미개발지역이라서 주민생활 전체가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주의 사랑으로 치료해 줄 때 이들은 복음의 참뜻을 알고 사랑의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