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선교지도자의 협력....................배순호

I. 서론

과거 수세기 동안 일부"선교적 영웅들"에 의하여 각처에서 선교가 이루어졌던 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어쩌면 시대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이제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1970년의 세계의 비그리스도인 숫자는 24억이었던 것이 1995년도 비그리스도인의 수는 38억으로 증가되었다). 또한 사역의 교역자나 전문적 선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세계복음화의 과업을 이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대부분 교회에서 구성원의 약 98% 정도는 평신도이며,이들이 교회성장과 선교확장 외 실제적인 동역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 선교지도자의 동원과 협력은 이와 같이 시대적 요청이요 순종으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1988년 1월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서기 2,000까지와 그 이후의 세계복음화를 위한 95세계대회"에서 작성한 지상명령 선언문에서는 협력(Cooperation)과 동반자관계강화(partner- ship)만이 세계선교 과업수행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II. 평신도 선교지도자의 협력의 당위성

A.교회내 평신도 지도자들의 증가

현재 57억의 인구 중 약 19억이 기독교 인구이다. 이들 중 천주교 각종 이단 중에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Active Great Commission Chri- stians)7억 5,000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에 약 400만 명은 전임 사역자들이다(Internation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95,1월호).그렇다면 활성화될 수 있는 평신도 선교지도자만 따져도 7억 4천 6백만 명이나 된다. 전세계적으로 7억4천만명이나 되는 평신도들이 선교사지도자들이나 자비량 선교사들이 되어서 세계선교에 활성화 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세계선교 폭발 잠재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B.성서적 당위성

1.구약 언약의 집단적 성격 및 협의원칙 : 구약의 모든 언약은 집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담에게 한 언약이나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에 언급된 모든 선교개념도 하나님의 백성 전부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어떤 특정계급이나 엘리트 선교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 온 모세도 바로왕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요구하기 전에 아론과 맨 먼저 의논하였고,후에 장로들과 의논하였으며,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의논하였다.

2. 신약의 선교 대사명은 열두 제자들이 대표로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열두 사도의 기초 위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선교적 직분은 그리고 협동하라는 명령은 교회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협력을 통해 하나가 되도록 특별히 기도하신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성부,성자,성령)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0-21).또한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도시에도 협력의 모델을 친히 실행하셨다. "이후에 주께서 달리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리를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눅10:1-2).

C. 협력에 관한 시대적 요청

1. 도날드 맥가브란, 카메룬 타운센드 등 현대 선교운동 지도자들의 현실에 부응한 시대적 요청이다. U.S. Center for World Mission을 이끄는 랄프윈터는 (Mission Frontier 93.3월호) 협력체제의 주저야말로 세계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하면서, 범세계적이고 초교파적인 선교 동역자간의 협력체제의 구축이 없는 한 남은 과업의 완수는 21세기까지는 커녕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1989년 7월 마닐라에서 개최하는 제2차로 로잔선교대회 때 발표한 "Manila Manifesto"에서도 세계선교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역을 위해서 모든 교인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경쟁의식도 버리고 협력하는 정신을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기독교 선교단체들과도 손잡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복음화의 큰 사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함께 참여하고 동참하여야 한다고 사료된다.

3. 1993년 3월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에서 열린 제2차 미전도종족입양 촉구대회(The Second Adopt-A-People Consulatation)에서 채택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 제자들에게 드리는 호소문"(An Appeal to Disciples Everywhere)에서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계복음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동원하고,협력하고 화합할 것을 촉구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III. 협력부재의 제이유들

A. 평신도선교 지도자로서 자아상 미흡

1. 성경에서 평신도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베드로전서 2:9에서 나오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단어에서 그 의미가 유래된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라"하였다. 성경적으로 평신도라는 단어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다 포함한 개념이며 하나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영예로운 단어이다. 보통 평신도란 교회내에서 교역자와 구별되는 개념 정도로만 생각하면 성경을 곡해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고백한 장년의 남자와 여자는 물론 청년과 소년 소녀 모두를 포함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포괄적 개념이다.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면에 있어서도 교역자가 담당하는 부분과 평신도 선교지도자가 담당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고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교회 내에 아직도 상당히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2. 지도력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한계까지만 다른 이를 지도할 수 있다.따라서 평신도 지도자란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바른 삶을 통해 영적으로 남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혼자서 살 수 없고 둘 이상의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항상 남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지도자의 역할을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에게 영적 영향을 미치는 평신도 지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은 몇몇 사람에게 제한될 수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평신도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3. 하나님께서 교회에 교역자를 주신 목적을 에베소서 4:12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구비케 하기 위함이다. 봉사의 주체가 교역자보다 평신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봉사의 일이 마치 교역자의 주된 일인 양 애매하게 번역되어 원문의 뜻을 오해시킬 여지가 있다. 봉사의 주체는 교회의 98%를 차지하는 평신도이다.

B. 교파주의로 인한 협력선교 부진

한국교회가 공통적인 약점을 안고 있음은 이미 세게 교회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분열이다. 기독교 대연감의 자료에 의하면 1950년대에 5개 교단, 1960년대에 29개 교단이 새로 생겨 났다. 이후 계속 분열되어 1970년대엔 14개교단,1980년대엔 21개 교단이 새로 생겨났으며 1990년 현재 한국교회는 12개 교파에 87개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다. 이중에서 100개 교회 미만으로 구성된 교단이 31개나 된다. 특히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의 다발적인 분열 현상은 가히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교파주으ㅟ는 자연 배타적이고 독선적이 되어버리므로, 교리나 생활에 결함이나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다른 교파나 교인들과 비협조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또 심한 경우는 남의 교단이나 교회를 마귀의 집단인 양 규정짓고 중상모략함으로써 교회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교회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교파주의는 평신도 지도자보다 교역자들에 의하여 지금까지 연유되어 왔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그결과 평신도 선교지도자는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협력의 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고 그 마음 깊은 곳에서 협력정신과 당위성마저 상실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C.교권주의로 인한 평신도 지도자 자원의 동결

루터(Martim Luther)는 '만인 제사장론'을 말하면서 특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벧전 2:) 는 말씀을 중요시하였다. 그는 평신도인 성도의 거룩한 단체인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교통을 나누는 장소로서 성직자는 다 같이 교역의 사무를 맡았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교직주의(clericalism)는 목사를 제사장으로 이해하도록 하여 로마 가톨릭의 사제관에 접근함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의 목사관에서 이탈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교직주의는 교회를 성전으로,새벽기도회를 새벽제단으로,헌금을 제물로, 신학교를 선지학교로, 신학생을 선지생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30년 전에 핸드릭 클래머는 평신도를 교회의 '동결된 재산(frozen assets)'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따뜻하게 녹여'활용하지 않으면 평신도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각성시킨 바 있다. 실제로 교회 구성원의 거의 98%이상을 차지하는 일반교인,다시 말해서 평신도의 참여가 없는 선교 사역은 풍성한 영혼 구원의 결과를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장로교합동측 모 교회는 장년 15,000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나 교직주의 영향으로 인하여 고작 목회자 선교사 7명만 파송하고 있는 실정이며 평신도 선교지도자나 선교관심자에게 선교에 대한 찬물을 끼얹으며 선교지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필자가 봉사하는 서울 사랑의 교회는 95년 5월에 현재 장년성도 만 명 출석에 파송 및 협력선교사의 숫자는 80가정인데 이중 56가정(70%)이 평신도 선교사이다. 또한 통계에 의하면 서구 선교사 75%이상이 비교적 평신도 선교사이다.

D. 물량적 성장주의로 인한 전시적 선교

오늘날 한국적 현실에서 볼 때 교회 성장이 잘 안되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도 많지만 반면에 성장이 잘되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도 많다. 그래서 여러 가지 교회문제의 쇄신이 요청되고 있다. 교회마다 선교를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좋으나 문제는 순수한 동기에서보다 전시적이고 명분위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명분-선교사 파송 교회라는 명분을 주요시하며,그 명분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선교사의 가시적인 업적 보고가 오기를 기대하고 그것을 선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혹 선교보고라도 시원치 않을라치면 선교비 후원을 중단한다느니 집어 치우라느니 하면서 후원하는 선교사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선교의 동기가 순수하고 분명해야 한다. 선교는 결코 가져올 숫자 놀음이 아니다. 선교사의 수나 선교비 양이 곧 풍요한 결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전시적인 교가 평신도 선교지도자로 하여금 실망케 하며 협력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빼앗아가고 마는 것이다. 전시적선교 유혹에 빠진 교역자는 자기교회에 소속된 평신도 지도자가 경쟁교회 평신도 지도자와 협력하는 것을 싫어하며 정보교환까지 금지시키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E. 철저한 개교회주의로 인한 선교의 무관심

오늘날 한국교회를 진단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개교회의 대형화 경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대황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 개념을 상실한 채, 개교회 주의로 빠져 자기 교회만이 가장 중요하고, 이웃 교회나 약한 교회를 돌보지 않는 데 그 심갃겅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개교회 주의는 도시 내에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다른 이웃교회나 약한 교회를 형제 교회나 한몸된 지체 교회로서 존경과 돌보는 마음으로 대하기보다는 상업을 하는 기업인들이 말하는 소위 선의의 경쟁,또는 적자 생전의 철학이 목회자나 교회 성도들에게까지 뿌리를 깊이 내린 채, 이웃교회와 철저한 대결 내지는 적대감까지 뿌리를 깊이 내린 채, 이웃교회와 철저한 대결 내지는 적대감까지 일으키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중요하게 취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 선교지에 관심을 갖고 선교다운 선교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들 중에는 사도행전의 선교명령(1:8)을 시간적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선교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국내전도가 더 시급하다고 떠벌인다. 그러나 그 반대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에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그것은 이기심인 것이다.

태국의 신흥식 선교사는 지역교회가 선교를 미루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역시 그 근본적인 동기는 이기심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선교를 뒤로 미루는 이유에는 작은 교회는 좀더 크면 하겠다는 'size complex',큰 교회는 안할 수 없어 한다는 'secondary complex'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세계 선교의 긴급성에 비하면 자기 유익만 구하는 'self complex'에서 오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사실상 한국교회는 지나친 개교회 중심 선교이거나 80% 이상의 교회는 선교에 무관심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complex에 쌓여 있는 교역자나 평신도 선교지도자는 협력의 장에 나아오기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IV.선교지도자 협력증진 제 방안들

A.교회내 교역자간의 선교협력

1. 목회자의 비젼과 상응하여 선교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즉 세계선교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교이들 사이에 선교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며,현재 교회와 관련되고 있는 선교사들의 선교보고서,사역관련 정보를 교회에 지공하는 것이다. 선교 관련 서적을 소개하고, 교회적으로 선교집회와 대화를 개최하는 데 있어 실무적인 일을 맡을 수 있다. 선교지침이나 정책을 입안할 수도 있다.

2. 선교사 후보생 발국을 지원한다.목회자가 직접 선교사 인력을 찾는다는 것은 대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중형 이상의 교회의 경우에는 목회자가 일반 교인을 모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평신도 선교지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대학생과 청년층 또는 선교에 관심 있는 장년층에서 선교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참여하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목회자 자신의 일일 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의 활약으로도 가능하다.

3. 선교비 관리에 있어서도 평신도 지도자가 감당할 부분이 있다. 우선 선교비 모금에 있어서 실제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또한 관리 문제에 있어서도 목회지와 협력하여 보다 세밀하게 행할 수 있다. 금전을 관리하는 일에 평신도 지도자의 신앙적이며 지혜로운 관리가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4.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회자가 세계 각처에 흩어진 선교사들이나 선교지를 자주 방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목회자는 교회 전반적인 사역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자주 출국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선교적 열정을 가진 평신도 지도자들을 활용하여 기존 선교 사역을 돌아보게 하고 또한 새로운 사역자를 물색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일 것이다.

B.선교동역회 운동

1. 각교회 평신도 선교지도자들이 모여 선교동역회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교파를 초월하여 기도와 재정 기타 봉사 활동을 통해 선교사역을 후원함으로 세계복음화에 동참할 수 있다. 이 선교사역은 어떤 특정 선교단체를 위해 특별히 조직할 수도 있고(예:GMF,OM)또 칼라와 호흡을 같이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의 평신도 선교지도자끼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예:사랑의 교회,남서울교회,온누리교회,지구촌교회).또는 한 교단 내의 교회나 특정지역 내에 있는 교회끼리 뭉쳐서 동역회 운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선교동역회는 다음과 같은 사역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a.해외선교를 위한 기도운동
 b.해외선교에 관한 홍보활동
 c.국내외의 안식년 및 노후를 위한 복지사업
 d.선교사의 안식년 및 노후를 위한 복지사업
 e.선교사 자녀교육에 관한 연구와 지원
 f.전문인 지원 선교사의 발굴,훈련 및 파송에 관한 협력

C.전문인 선교학교 공동개설

제대로 말씀으로 양육되고 있는 성도들은 상당한 분들이 선교에 관심을 갖고 또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때가 많음을 본다. 전문적 경험이 많은 평신도 선교지도자들이 모여 전문인 선교학교를 공동개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교파를 초월해야 할 것이다. 선교역사나 선교의 성서적기초 등 이론적인 분야는 목회자나 전문선교사에게 맡기고 전문분야에 관한 과목들을 평신도 지도자들이 협력하여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D. 선교대회 개최

하나의 지역교회가 선교대회(Mission Festival,Mission Conference)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는 것은 자원,재정 및 시간의 낭비가 따를 수 있다. 한 도시나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선교대회를 개최함으로써 타교회나 타교단의 선교전략 선교정보,선교동향 등을 배우고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개교회 개교단 자체로서만 선교에 임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능률적이다. 최근 95.2월에 대구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선교대구"는 공동주최 선교대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다. 한 교회는 음악부분, 한 교회는 영상부분,한 교회는 강사 선정니나 진행부분을 맡아 진행했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V. 결론

출애굽 당시 출애굽이라는 목적에 맞추어 모든 가족들은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 2,000년까지 모든 종족에 교회를 세운다는 목표는 어느 한 단체나 교단이 자신의 과업으로 떠맡기에는 너무 큰 일이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 전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응당 참여해야 할 과업이다. 평신도 지도자간이든지,지역교회든지,교단이든지,기독교 단체이든지간에, 이것은 모두 협력해야 하며, 이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일은 정통적 선교회냐,신생 선교회냐,서구 선교회냐,비서구선교회냐,남자냐,여자냐,젊은 세대냐,기성세대냐를 따져서는 안된다.

어느 한 쪽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엄청난 과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서 각자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허드슨 테일러는 선교의 6가지 중요지침을 이야기하면서 "능력있는 성도와 동역하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며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라고 역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