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유학생들이 책임져라....................김승연

* 해외 유학생 선교 운동과 시대적 사명을 중심으로

시작하는 말

일본 삿포로(북해도) 농과대학 교정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그마한 미국 사람의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그 동상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그 사람이 미국 사람이어서도 아니고,세계적인 석학이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바로 그 동상 밑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보이스 비 엠비쇼우스!"(Boyw be embitious!)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바로 19세기에 세게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요, 농학자였던 윌리암 클라크(William S.Clack) 박사이다. 그는 1876년까지 미국 메사츄세츠 주 주립 농과대학 학장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삿포로(북해도)에 농림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초대 교장으로 미국의 클라크 박사를 초청하기로 한 것이다. 초청에 응한 그는 1876년 7월 초순에 조수 2명과 학생 11명을 데리고 미국을 떠나 일본 요꼬하마 항구에 도착했다. 그를 영접하기 위하여 일본 문무 성에서 장학관 한 사람을 내보냈다. 그는 그들 일행을 삿포로까지 안내하기로 되어 있다. 배가 막 요꼬하마 항구를 떠나려고 하는데 이 장학관이 클라크 교수일행의 짐 보따리를 보더니 대뜸 물었다. "교수님! 이게 무슨 박스입니까?" "이게 다 성경책입니다." 장학관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놀란 듯이 클라크 교수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교수님! 우리 일본 대제국에서는 아무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책은 가져가실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장학관의 말을 듣던 클라크 교수는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노기에 찬 언사로 대꾸를 했다. "그렇다면 뱃 머리를 돌리시오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겠오" 장학관은 클라크 교수의 당돌한 자세와 사명감에 넘치는 자신감 그리고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에서 오히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 그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엉겹결에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교수님!가지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절대로 가르치지 말고,강의가 끝난 방과 후에는 가르치십시오. 장학관은 급한 김에 그만 성경교육을 허락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만약에 괜히 '짐 보따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소한 질문이 나중에 간섭으로 비화되어 정부가 초청한 세계적인 석학이 되돌아가기라도 한다면 자기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뿐 아니라,책임 추궁을 받아 문책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클라크 교수 일행은 7월 말에 삿포로에 도착했고, 1876년 9월에 삿포로 농림학교는 개교되었다. 개교 후 일본 개척청의한 관리가 삿포로 농림학교에 교칙을 만들어 가지고 교장을 찾아 왔다. 그때 클라크 교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규칙으로는 인간을 만들 수 없습니다.'be gentleman!(신사가 되라!)' 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는 학교의 교칙을 아예 없애버렸다. 그리고 매일 학교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을 모아 놓고 성경을 가르쳤다. 그런 후 계약 기간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학교를 떠나기 전,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을 모아 놓고 고별 연설을 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 "Boys be embitious!"(소년이여! 대망을 품어라!)였다. 그후 삿포로 농림학교는 북해도 농과대학으로 발전했다. 클라크 교수는 학교를 떠났지만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학교측에선 학교 교정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동상 밑에다 그의 마지막 외침을 새겨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북해도 농림학교뿐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을 향해 "Boys B embitious!"을 외치고 있다. 당시 일본은 1868년에 일어난 명치유신 이후,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국가의 기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일본 역사는 그 시대를 일대 혼란기라고 일컫는 일종의 과도기였다. 당시 서구의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한 때에 삿포로 농림학교 출신들은 졸업 후 사회 각계층으로 배출되어 일본을 바로 이끌어 가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되었다. 예를 한두 사람을 든다면 일본의 간디라고 불리는 '우찌무라 간조'나 대석학 '니토베 이나조'가 바로 삿포로 농림학교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클라크 교수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1877년에 삿포로 농림학교에 입학하여, 클라크 박사에게 1878년에 전도를 받아 학교에서 세례를 받았고, '니토베 이나조'는 16세인 1878년에 입학,클라크 교수에게 직접 전도를 받고 감화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일본의 민주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사상가요, 농정 학자였다. 그는 그 후 미국 유학을 떠났고,미국에서 돌아와 삿포로 농림학교 교수 및 도쿄 제국 대학의 교수를 지냈으며.도쿄 여자 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후 유엔 사무국 차장을 역임하였다. 클라크 교수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이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대할 뿐 아니라, 복음 전도가 자유롭게 허락되지 아니한 나라에서 학생들에게 사명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고,그들을 말씀으로 바로 교육을 시켰으며 도전하고 비전을 제시하여 줌으로 복음으로 무장된,그리고 올바른 정신과 가치관을 가진 제자들을 양육하여 사회로 배출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할 그 때에 일본의 사회 각계 각층으로 흩어져,헌신적인 봉사자로, 희생적인 민족정신을 가진 정신적인 지도자로 일했고, 그 결과 사회 각 계층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을 맺었기 때문이다.

본론

이제부터 해외 유학생 선교 운동에 대한 내용을 전개하기로 하겠다. 여기서 굳이 해외 유학생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주제가 해외 유학생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의적인 의미로는 국내 대학생과 젊은 청년들과 해외 유학생을 포함한 내용의 글임을 전제학 기록하려고 한다. 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로부터 유럽에 파송받은 선교사이다. 지난 1983년 6월 15일 파송을 받아 독일에 도착한 지가 1995년 현재 12년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크고 작은 그리고 많은 선교적인 사역들을 섬겨 왔다. 그리고 한 지역의 교포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이다. 자연히 선교적인 사명과 목회적인 사역을 병행하면서 유럽에서의 현실적인 사역이 무엇인가를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찾아진 사역들을 도외시할 수가 없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해외 유학생을 위한 사역이다. 나는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말 많이 기도하고,묵상하면서 준비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유학생 선교에 대한 분명한 소명과 사명을 바탕으로 그 동안 섬겨 오게 된 것이다.

제1장/유학생 선교는 꼭 해야 하는가?

함부르크 개항 800년 훨씬 넘은 국제항구 도시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국적선들이 드나들고 있다. 그래서 한국 선원들을 선교하는 일을 위해 지난 몇년 동안 정말 열심을 다했다. 그들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고 또 그들을 교회에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렸다. 몇년 전에 입항한 한국의 국적선을 방문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항구에 배가 입항을 하면 보통 이삼 일을 정박하다가 출항을 했다. 그런데 요새는 모든 선박이 컴퓨터화되고 자동화가 될 뿐 아니라 항구마다 선적 하역하는 일도 자동화되어서 십 몇 시간이면 출항을 하고 만다. 그래서 염려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 배의 신앙 좋은 기관장 집사에게 다음의 내용을 물어 보았다. "기관장 집사님, 해운업의 장래는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의 말이 "바다가 존재하는 한 해운업은 계속될 것입니다"고 전혀 염려없다는 투로 답변을 했다. 그 때 그말이 나에게는 상당한 의미를 던져주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 선교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되새겨 보았다. 만약 누가 나에게 "오늘의 대학이 저 모양이 되는데 학원 선교의 장래는 어떻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도 "학원 선교는 지구촌에 학교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분명히 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다.

뿌리깊은 선교 운동

모든 사역은 근거 곧 뿌리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모든 사역, 특히 확실히 있어야 한다. 첫째가,성경적인 근거요, 둘째가,역사적인 근거이다. 셋째가 학문적인 근거 및 경험적인 근거이다. 그러나 선교 사역이 처녀 사역일 때는 그 역사는 창조하면 된다. 그리고 학문적인 근거는 사역을 통해서 정리해 나가면 될 것이고, 경험이야 사역을 수행하면서 쌓아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근거는 사역을 하면서 찾거나 하고 나서 짜 맞추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적인 근거는 그 어떤 다른 근거보다 더 중요하고 오히려 다른 근거는 없다손 치더라도 이 성경적인 근거만은 기본적이고 절대적이다. 학생 선교 운동의 경우 역사적인 근거는 지난 수세기 동안 전세게적으로 이어진 정통 있는 선교 운동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근거는 엄청나게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역사성을 이어받을 뿐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참고하여 학생 선교 운동의 역사성을 부여하면서 계속 기록해 나가면 된다.

유학생 선교 사역은 분명한 성경적인 근거가 있을 뿐 아니라, 지난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삼여을 감당하였던 역사적인 근거가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이 유학생 선교는 그 시대 시대마다 당면하는 시대적인 사명이요, 역사적인 요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음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성경적 근거

성경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물론 젊은이에 대해서만 강조하거나 그들의 선교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분야의 선교가 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린이도, 어른도, 특수 계통도, 어느 민족도 성경은 모두가 선교의 대상을 삼으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목회뿐 아니라 특수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그 선교의 동기를 분명히 성경에서 찾아야 하고, 그 근거를 마땅히 성경에 두어야 한다. 그렇듯이 유학생 선교의 근거도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들 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젊어서 창조조를 신앙하고 기억하게 하라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는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그들에게 창조주를 소개하는 것은 선교의 제일 급선무이며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물론 전도에 있어서 그 어떤 사람에게 청년이 되기 이전인 어린 시절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복음전도를 꼭 어린이나 청년에게만 국한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장년과 노년 세대들에게도 복음 전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불행하게도 어려서 복음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젊은이가 있다면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젊은이들이 그들의 시대를 이끌어 갈 차세대 지도자라면 교회는 결코 그들을 방치할 수가 없다. 물론 그들에게 시급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어린이보다 청년의 때는 더욱 문제가 많고 고민이 많다. 그러면서 청년의 때는 진리를 추구하고 탐구하는 세대이다. 그렇다면 학문적 욕구와 진리에 대한 추구의 열정이 불타고 있는 그들에게 바른 진리, 참된 인생 철학, 참된 하나님 그리고 복된 좋은 소식인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전해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인격적 구주로 영접케 하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억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또한 참된 진리르 안내하고 소개함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보다 진실하고 보다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사역인지 모른다.

2) 청년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잠29:18).
"그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영어 성경에는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번역되어 있다.
"Where there is no vission,the people are unrestrained."비전이 없는 젊은이는 소망이 없다.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정말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비전이 없다고 한다.다른 세대는 몰라도 청소년들에게 비전이 없다는 것은 결코 일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그 문제는 개인을 떠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며 사회를 초월하여 국가적인 아니 세계적인 문제이고 위기이다. 지난 1993년 7월 23일자 함부르거 아벤트브랄트(Hamburger Abendblatt)라는 신문 제1면 톱기사에 이런 글이 실렸다."Jugend ohne Vission"(비전이 없는 청소년).내용인즉 BBDO라는 여론 조사시관에서 구러시아의 모스크바로부터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3천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세대의 젊은이들에게는 비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문제는 먹을 빵이 없다는 문제보다,입을 옷이 없다는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차대한 문제이다. 비전이 있어야 없던 빵도 생겨 날 것이고,없던 옷도 만들어질 것이 아닌가?

청소년들에게 비전이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상이 너무 살기 좋아졌다는 것이다. 정말 살기 좋은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오늘의 청소년들은 할 일이 없다. 과학이 문명을 첨단으로 발전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이 물질이 인간에게 겨우 생물학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고 해서 살기 좋은 세상인가? 아니다. 오늘 이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가?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문제의 종류가 어머어마하고 엄청나다. 그런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과연 청소년 시대는 할일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할 일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우리 지구의 종말이 오는 그날까지 지구촌에는 할 일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화란 사람들은 북쪽 해안에 접해 있는 대서양에 약 40km나 되는 댐을 건설했다. 그 엄청난 댐을 막기 위해서 이전 세대들은 수많은 희생을 무릅썼다. 그리고 역사적 과업을 성취해 놓았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이런 글귀가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우리는 바다를 메워 댐을 건설하는 것으로 우리의 사명을 다했다. 만약 우리가 바다까지 매립을 해버린다면 다음 세대들은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다음 세대가 넓은 땅을 필요로 한다면 그 때에 그들이 이 바다를 메우면 될 것이다"대략 이런 내용이다. 역시 화란 사람다운 면모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청소년 세대 즉 해외 유학생들에게 '왜 학문을 하는가? 학문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에게 학문에 대한 분명한 목적 의식과 사명 의식 그리고 미래를 향한 미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전함으로 스스로의 비전을 분명하게 갖도록 해야 한다.

3) 청년들의 행실을 깨끗케 하라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11:10).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11:10). 청년의 때는 향락과 세속 그리고 죄악에 빠지기 쉬운 세대이고, 세속 문화에 물들기가 가장 쉬운 때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행동적인 세대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비전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게 해야 한다. 곧 청년 때의 행실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젊음의 시기를 분명히 알고 그때를 소종하게 여기면서 내일을 준비토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세속 문화,청바지 문화 그리고 X세대는 청소년이 순결을 지키는 것을 미개시 내지는 원시시해 왔고, 그 결과 청손녀의 성문화를 완전히 타락시켜 버렸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은 지난날의 사악한 성문화를 역류하여 "순결운동"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성간의 순결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강조하고 있다.

4)청년 시절에 헌신케 하라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청년들로 하여금 젊어서 헌신케 하고, 젊어서 멍에를 메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난 역사를 살펴볼 때 많은 주의 일꾼들이 바로 젊었을 때에 헌신했고, 그 결과 그들의 아름다운 헌신적인 생애를 통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해 왔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교회와 선교 사역을 통해 위대한 주의 일을 수행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애3:28).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고 우리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쳤다. 주님 안에서도 복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어서 멍에를 메고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을 가게 해야 하는 법이다. 젊은 세대는 배움의 시절이면서도 내일을 위한 헌신의 시절이다. 그러므로 이런 절호의 기회를 교회대로,학교는 학교대로,사회는 사회 나름대로 놓쳐서는 안된다.

5)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라
"그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33:11).
다음 세대를 위하여 누군가가 민족의 지도자,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을 선교하여 모세나 여호수아,다윗과 에스더 그리고 바울과 디모데 같은 지도자가 되게 해야 한다. 이런 일꾼들을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교회와 선교 단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선교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후계자를 양성 배출했다. 그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이다. 그래서 모세가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표하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가 자기 세대만을 위해 일하고 신실한 후계자를 세워 양성하거나 위임하지 않고 죽었더라도 출애굽의 역사 이후 가나안 정복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문제가 바로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성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유망한 후계자가 나타나면 아예 자라지 못하도록 싹부터 꺽어 버리거나 뭉개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자기가 제일이란다. 군사독재, 유신 정부만이 영구 집권을 꿈꾼 것이 아니라, 사회 각 계층에서도,교회 일각에서도,기독학생 선교운동 단체에서까지도 영구 집권을 꿈꾸었고, 꿈꾸고 있다.

학생 선교 운동의 목적이 무엇인가? 내일의 바른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 아닌가?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는 물론 사회,교회에서 시대시대마다 사명있는 위대한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일으킨 다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때로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성경을 펼쳐 들었다. 그가 읽고 새 힘을 얻었고 사명을 재확인했던 성경이 바로 시편 31편 15절이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우리는 민족의 지도자뿐 아니라 한 시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2. 역사적 근거
기독교 역사를 논할 때 교회 역사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선교 역사를 논할 때 학생 선교역사를 배제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를 정리할때 대학생 선교운동의 역사가 바로 정리되고 조명되어야 한다. 비단 이 운동은 초대 교회를 지나 서구 교회 역사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새롭게 조명되고 바르게 정리되어야 할 부분이다. 기독교 역사뿐 아니라 세상 역사를 살펴볼 때도 어느 사회의 개혁이나 국민의식의 변화에는 항상 지성인들이 앞장섰다. 대학이 있는 곳엔 젊은이들이 있었고,젊은이가 있는 곳엔 의식이 있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그리고 의식이 깨어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나라와 민족 그리고 사회 전역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위클리프와 웨슬리 운동이 그러했고, 독일 할레 대학의 경건주의 운동이 그러했다. 그 이후 캠브리지 대학의 찰스 시므온 운동,미국 윌리엄저의 대학생들 중 다섯 명의 하이스택(건초더미) 운동이 바로 그런 운동이었다. 그 이후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독 학생 선교 운동이 묘연한 불길처럼 타올랐다. 우리는 대학생 선교운동의 역사적 근거를 찾아보므로 어제와 오늘의 학생 운동을 비교할 수 있다. 그러한 운동에서 올바른 역사적인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학생운동을 보다 성경적으로,보다 살아 있는 꿈틀거리는 운동으로 가장 효과적인 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 학생 운동과 선교운동을 시작하고 주도했던 나라와 대학, 그리고 그곳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근거를 찾아보기로 하겠다.

1) 영국의 학생 선교 운동
모든 학생운동의 역사적 시발점은 역시 영국에서 찾아야 한다.
(1) 14세기,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학생 선교 운동
당시 옥스포드 대학교의 교수이며, 신부였던 요한 위클리프는 영국 욕사이어 주에 있는 위클리프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교 교수인 그는 당시 로마 가톨릭과 교황을 정면으로 대항하여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1380년 옥스포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순회전도단을 조직하여 전도하게 했으며 나아가 위클리프의 사상을 전파하게 하였다. 그후 사람들은 이들에게 '롤라드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번역하여 반포하였다. 지금 세계 성경 번역 선교회의 명칭이 위클리프의 이름과 그의 사역을 이어받아 성경번역선교회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위클리프는 비단 영국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그의 올바른 신앙과 사상이 보헤미야 왕국의 개혁자 오한 후스에게도,모라비안 교도의 지도자 진센돌프 백작에게도 미쳤다. 그뿐 아니라 그 외의 유명한 신학자와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 종국엔 다음 세대에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이루게 된다.

(2) 18,19세기,캠프리지 대학의 학생 선교운동
학생운동을 논하라고 할 때에 1779년에 캠브리지 대학에서 일어난 찰스 시므온(Charles Simeon:1759-1836)이 일으킨 학생운동을 결코 빼놓을 수가 없다. 이때 일어난 운동이 결국 영국의 복음주의 기독 청년 학생운동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 이후에 IVF(Inter-Varsity Fellowship,1960년에 UCCF로 명칭 변경:The Universities and Collegiate Christian Fellewship of Evangelical Union)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 운동이 일어난 후 케직(Keswick)수양회에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기독 학생들이 서로 만남으로 1928년에 기독 청년 학생운동을 전국 운동으로 확대시킬 것을 합의하였고, 영국의 기독 학생 운동이 새출발을 하게 된다. 그후 1940년에 존 스토트가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하므로 UCCF운동이 더욱 확산되게 된다. 오늘날엔 이 운동이 세계적인 기독 학생 운동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문서 운동을 전개하므로 기독 청년들에게 바른 신앙과 학문을 통해 바른 사상을 정립시켜주는데 공헌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바나 선교대회를 이어받아 세계선교에 동참하게 된다.

(3) 19세기 영국의 부흥운동과 옥스포드 대학 학생 선교운동
독일이 경건주의 시대가 지나고,합리주의의 물결이 계몽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바로 그 때에,불란서가 합리주의와 불신앙 사상으로 전환하고 있을 그때에,영국은 청도교 주의가 성행한후 반동적인 물결이 일어나므로 자연주의와 자연신론이 영국을 휩쓸고 있을 그때였다. 또한 이러한 사상의 배경 속에 그래도 약간의 믿음을 찾아 볼 수 있었던 곳이 영국과 미국 대학교 내의 뜻있는 소수 기독 학생들이었다. 바로 이런 때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학생 선교 운동이 일어난다. 이 운동의 주역들이 바로 요한 웨슬레,찰스 웨슬레,죠지 휫트필드,오한 윌리암 플레이체 등이다.이들은 '거룩한 단체'(Holy club)라는 공동체를 조직하였다. 처음엔 매주 2회의 모임을 갖다가 나중에 매일 밤마다 일정한 장소에 모였다.매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모여서 그들은 기도,성경연구,고전 연구를 통해 영적 능력을 쌓은 후,나중에 복음 전도와 사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감리교를 탄생시켰지만, '메소디스트'란 신학적인 의미가 담기기 이전에 그들의 생활이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붙여진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웨슬레 형제가 1735년 오글레듭 장군의 초청을 받아 식민지 조지아주에 직접 나가서 선교를 하게 된다.

2)14,15세기,체코 프라하 대학의 학생 선교 운동
후스는 체코 공화국(전,체크슬로바키아) 프라하 대학의 교수이고,프라하 베들레헴 교회 목회자이기도 했던 보헤미야의 개혁자 요한 위클리프 사상의 추종자였다. 그는 위클리프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물론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위클리프의 사상이 철학적 사변성에 머물렀다면 후스는 그 사상을 실제 생활과 교회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후대 역사가들은 그를 사고와 행동에서 위클리프를 훨씬 뛰어 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루터보다 백년 전에 로마 교황의 면죄부를 반대했던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이다. 그는 1370년 체크 남 보헤미야 후시네크(프라하 남서쪽 1백 20킬로미터 지점)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결국 그는 독일 콘스탄즈에서 1415년 7월 6일 화형을 당하지만 1409년 프라하 대학에서는 물론 체크 보헤미야 파의 지도자가 되어 교회의 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프라사 대학의 학생들은 후스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프라하 대학의 학생들은 후스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되어 그의 개혁을 열렬하게 지지할 뿐 아니라 그의 인격과 사상을 추종했다. 백년 후 마틴 루터도 요한 후스의 개혁 정신에 영향을 받았고, 엑크와의 라이프지히 논쟁에서 ㅇ크는 루터를 요한 후스의 후계자라고 매도했고, 로마 가톨릭은 루터를 후스 사상의 추종자로 낙인을 찍게 된다.

3) 독일의 학생 신앙 운동사
독일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을 종교개혁시대와 경건주의 시대로 구분하여 다루고자 한다.

(1) 16세기,비텐베르그 대학의 종교개혁과 학생운동
종교개혁은 곧 학생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마틴 루터 자신이 소명을 받은 때도 대학생 시절이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를 연구해 보면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루터 자신이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위클리프나 체크 프라하 대학의 후스처럼 대학 교수였다. 그리고 그 대학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교수로서 멜랑톤과 함께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종교개혁과 대학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제시할 때나, 교황의 교서를 불사를때 루터의 제자들이 앞장서서 일을 성사시키닌다. 그리고 라이프지히 논쟁을 위해 길을 떠날 때나, 보름스에 재판을 받기 위해 비텐베르그를 떠날 때, 비텐베르그 대학교의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루터의 강렬한 개혁 정신을 이어받은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곧 루터의 종교 개혁 정신을 이어받은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곧 루터의 종교 개혁에 힘을 불어넣어 준 사람들이 당시 비텐베르그 시민들이라고 말하지만 그중에 역시 대학생 제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루터를 도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2) 17,18세기 할레 대학의 경건주의 운동과 학생 운동
우리는 독일 교회 역사에서 일어난 운동 중에 경건주의 운동이 국민과 교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독일의 경건주의를 일으킨 사람은 바로 필립 야곱 스페너(Phillip Jacob Spener,1635-1705)이다.또 스페너에게 영향을 받은 자가 라이프지히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였다.

이 운동에 대하여 라토펫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루터 교회가 개혁의 열기를 상실한 채 생명력을 잃어거자 독일 루터교 목사로 있던 필립 야곱 스페너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당시 루터 교회의 풍습과는 다르게 주말에 한번 그의 가정에서 교인들을 모아 놓고 성경 공부,설교 토론,기도회 등을 가짐으로써 신앙 갱생을 도모하였다."1)

스패너에게 영향을 받은 프랑케는 경건주의 운동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귀족 자녀들을 위해 특수 학교로 설립하였다. 나중에 목사가 되어 할레에서 고아원을 세우고, 사범학교와 신학교를 세웠다. 할레에 대학이 설립된지 3,40년 만에 약 6천명의 신학자가 배출되어 한때는 경건주의가 국가와 루터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모라비아 교도이며 드레스덴(Dresden)이 고향이면서 작센(Saxony)정부 아래 시민 장관을 지냈던 진센돌프(Count Zinsendorf,1700-1760)백작도 10세에게 16세까지 할레에서 교육을 받았다.

예를 들어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도 할레 출신이고 그가 할레대학에 다닐때,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기도 모임에서 큰 은헤를 받고 나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결국 고아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게 된다.

4) 미국의 학생 선교 운동사
미국의 선교운동도 학생운동이 불을 당겼다. 이 선교 운동에 대해서 허버트 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 1802년 어느날 코네티컷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는 사무엘 밀즈(Samuel G.Mills)에게 임했다. 4년 후 하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는 메사추세츠의 윌리엄즈 타운에 있는 윌리엄즈 대학에 사역 준비를 위해 입학하였다. 거기서 그는 세상 끝까지 가야 할 불꽃에 불을 밝혔다."2) 이들은 선교의 열정을 가진 형제들을 중심으로 1808년 9월에 형제단(Society of the Brethren)을 조직하였다. 이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은 제임스 리차드(James Richards) 프란시스 로빈스(Francis Robbins)하비 루미스(Harbey Loomis)고든 홀(Gordon Hall)루터 라이스(Luther Rice)등이었다. 그들은 캠퍼스 근처의 단풍나무 숲에서 기도와 토론을 위해 자주 모임을 갖곤 하였다.

그리고 이 운동을 하이스텍 운동(Haystack Movement:건초더미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806년 6월 어느 날, 위에 열거한 다섯 명의 학생들이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윌리엄즈에서 기도하러 길을 가고 있었다. 길을 가던 그들은 마틴 루터처럼 갑작스런 폭풍우와 천둥번개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황급히 근처의 건초더미 밑으로 대피했다. 천둥 번개를 피해 있던 그들은 거기서 평소에 기도했던 이방 세계를 위한 기도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일어서면서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뜻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다"라고 외쳤다.3) 이 모임의 영향이 결국 다른 대학에 미치게 된다. 1856년 당시 미국에 156개 대학과 46개 신학교가 있었는데 그중 70개 대학에 신앙 단체가 발족된다. 그리고 70개 대학 중 49개 대학에서 해외선교에 역점을 둔 단체가 조직된다.4) 밀즈의 영향으로 1815년 북미 YMCA,YWCA가 생기게 된다. 그후 YM,YW운동은 세계 운동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20세에 들어와 1951년 빌 브라이트 같은 목사가 CCC 같은 대학생 선교회를 창설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먼저 학교를 세웠다. 청교도들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교회 세우는 일 다음으로 여겼다. 그 이후 그리스도인들 중에 영국 캠브리지에 있는 임마누엘 칼레지 출신의 하버드가 보스톤에 하버드 대학을 세우게 되고, 예일,프린스톤,콜롬비아 등 미국의 수많은 명문 대학들도 기독교적 신앙의 성경적인 이념으로 세워지게 되며,대학생 선교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복음적인 대학 출신들이 미국의 정치,경제,사회,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도자로 부각하게 된다.

5) 한국의 학생 선교 운동사5)
일본의 학새운동사는 이미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것으로 약한다. 여기서는 복음 전래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학생 선교 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1) 선교사에 의한 학생 선교 운동
한국의 경우도 기독교가 선교된 이후 1866년 이화학당과 1886년 6월 8일 배제학당이 설립됨으로 한국 학생 선교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화 학당의 스크랜톤(Mary F. Scranton) 여사와 배제학당의 아펜젤러(Henry G.Appenzeller)선교사를 한국 학생 운동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구체적인 학생 선교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우선 1896년에 학생 YMCA 및 YWCA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1946년에 KSCF(Korea Student Christian Federation)이라는 한국 기독학생 총연맹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은 당시 한국 학생들로서는 불가능했고 거의가 선교사들에 의해 탄생되었고 지도,유지되었다.

(2) 해외 유학생 선교를 위한 선교
우리 선교 역사엔 선교 역사상 놀라운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국어 성경이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만주 봉천에 메킨타이어 선교사와 로스 선교사에 의해 번역된 일이라든지, 송천에 소래 교회가 개척되어 예배를 드리고 자발적 전도가 이뤄진 일이라든지,그중에 하나가 바로 해외 유학생을 위한 선교가 바로 선교 초기에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1907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서 7명의 최초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독노회가 조직되면서 7명의 목사를 안수한다. 그 중에 이기풍 목사는 탐라(당시는 제주도를 탐라국이라고 했고 섬나라였기 때문에 선교사로 파송한 것임) 선교사로 파송하고 한석진 목사를 일본 동경에 파송하여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있는 조선 유학생들을 상대로 선교하게 했다. 이 일이 해외 유학생 선교 운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6)
뿐만 아니라,역사적 기록을 보면 학선진 목사보다 1년 전에 일본 내 한국 유학생을 위한 선교가 시작된다. "한국 교회의 일본 선교는 기독교 청년회와 유학생 집회에서 비롯된다. 1906년에 한성 YMCA는 부총무이던 김정식 씨를 도쿄에 파견,도쿄기독청년회(현,도쿄한국YMCA)를 창설했다.7) 1993년 에 도쿄의 YMCA 건물이 넘어가게 될 때 한국교회에다 자금 지원을 호소하게 된 것은 도쿄의 YMCA단체나 건물이 일본인의 단체나 소유여서가 아니라 바로 한국이 도쿄에다 한국 교포를 위해 세운 YMCA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경 교회의 시작이자 재일 대한 기독교회의 발원이다."8) 이로 보아서 한국 교회는 초창기부터 해외 유학생 선교를 위하여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3) 교단 내 학생 선교운동 기관
그런 이후에 교단 배경의 학생 청년운동이 발족하게 되었다. 여기에선 청년 운동은 생략하고 순수한 학생 선교 운동만을 정리하겠다.
A.SFC ; 기독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1952.7.26.창립)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부산 제1영도 교회 목사관에 뜻있는 몇몇 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이 모여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운동과 민족에게 복을 전하는 전도 운동의 불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 모임의 이름을 1947년에 "학생신앙협조회"라고 명칭하였다. 이 모임의 이름을 1947년에 "학생신앙협조"라고 명칭하였다가, 1948년에 "기독학생운동"이라고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학생 선교운동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창립은 1952년 7월 26일이 된다. 그후 이 운동은 교단 내 학생 선교 운동뿐 아니라, 학원선교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어 지금은 각 대학에서 SFC라는 학생 선교단체를 조직하여 학원 선교에 그 사명을 다하고 있다. 교단내외 운동으로 현재 고신(고신,고려) 교단에서 주도하고 있다.

B.SCE : 기독교학생면려회(Student Christian Endeavor)
이 운동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교단의 기독 학생 선교 운동으로써 원래 고신과 합동할 때 SFC란 이름의 교단 내 학생 신앙운동이 계속되었으나 73년 총회에서 교단 총회에서 교단 내 학생 운동과 청년운동이 일원화되어야 한다는 헌의에 따라서 기존 청년면려회 운동인 CE의 이름을 따라 학생신앙운동을 SCF로 일치하기로 결의에 우ㅢ하여 1974년부터 SCE운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교단 내 학생 신앙운동은 1957년에 시작되었고,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63년으로 보면 된다. 이상으로 교단 내 학생 선교운동은 대표적인 두 단체만 소개하였다.

(4) 교단 밖의 학생 선교 운동 기관
우리 나라의 경우도 교단 내 학생 선교 운동보다 교단 밖 학생 선교 운동이 훨씬 활발하게 전개되고 발전하게 되었다. 교단 내 학생운동과 교단 밖 학생 선교운동을 경험한 바, 그 원인을 지적한다면 그 원인이야 많겠지만 우선 가장 큰 원인으로 교단적인 전통의식과 제약,개교단적,개교회적 우선 순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반면에 교회밖 학생 선교운동은 계층의 단일성과 학생이라는 동질성,그리고 학생 선교단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개방된 전도 방법과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자유자재로 실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젊은 학생들에게 호감을 갖게 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야 복음 제시의 방법, 뜨거운 비전 제시 및 도전, 성경 공부의 귀납법적 방법 도입 등 많은 것들이 발전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우선 교단 밖 선교 단체를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 첫째는 외국에서 들어온 선교단체와 둘째는 자생한 선교 단체이다.

A.외국에서 들어 온 선교 기관
a.IVF(Korean Inter-Varsity Fellowship;1956)
"한국 기독학생회"이다. 이 운동은 영국에서 시작한 운동으로서 대학 캠퍼스의 복음화를 목표로 하는 초교파적인 복음주의 세계 학생 선교운동이다. 시므온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이 세계적인 조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1886년부터로 보면 된다. 이 운동이 우리 나라에 들오오게 된 것은 1956년인데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이정윤 선생이 황성수박사의 계열과 연합하여 IVF를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IVF가 시작될 때의 명칭은 한국 복음주의학생연맹(Inter Varsity Evangelical Student Fellowship)이라고 하였다가,1959년에 한국기독교학생연맹(IVF)으로 개칭하게 된다.그러다가 1969년부터 한국기독교학생회라고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b.CCC(Korea Campus Crusade for Christ;1957.11.1)
"한국대학생선교회"이다. 원래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빌브라이트(Bill Bright)박사에 의해 시작된 학생 선교 운동이다. 빌브라이트 박사는 1951년 LA와 UCLA에서 CCC라는 대학생 선교운동을 시작한다. 이 운동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57년인데 그해 11월 1일 김준곤 목사에 의해 창립되게 된다. "오늘은 학원 복음화"라는 비전을 가지고 대학생 선교에 주력하여 많은 엘리트 지성인들을 전도하여 한국 교회뿐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였다. CCC는 대학생 선교뿐 아니라 사랑방 운동을 전개하여 농어촌 선교에도 일익을 담당하였고 그 밖에 73년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EXPLO '74와 '84를 개최하므로 학원 복음화는 물론 민족 복음화를 주도하게 되었고,세계적인 부흥 집회를 통해 복음 전도와 세계 선교 그리고 교회 부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현재 전국 약 36개 대학에 CCC선교 단체가 조직되어 있으며 책임 간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C.DFC(제자들선교회:Disciple for Christ:1942.4.창립)
이 선교회를 해외에서 들어 온 선교 단체로 구분한 것은 그 뿌리가 CCC이기 때문이다. 이 선교회는 1992년 4월에 CCC에서 탈퇴한 학생 선교 단체이다. 400여명의 간사 중 40여명이 탈퇴하게 된다. 처음엔 선교회의 명칭을 가칭CGC(Campus Globle Crusade)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 움직임에서 강한 주장을 세운 대표는 김석환 간사, 진공렬 간사이고 그 외 박수웅 목사 등이다. 이들은 1989년부터 CCC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자연스러운 개혁을 요청 시도하면서 CCC 대표의 김준곤 목사는 물론 국제 대표인 빌 브라이트 박사에게까지 진정서를 내게 된다. 그러나 중재 역할을 기대했던 국제 총재 빌 브라이트 박사가 오히려 개혁을 주장하는 간사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시선을 보내는 바람에 결별을 선언하고 DFC 발족하게 되었다. 개척의 핵심 문제는 CCC의 인사 행정의 부조리,CCC의 모든 재산이 모금을 통해 설립 내지는 유지되었으나,사유 기업화하려는 의도에 반발한 것이다.9)

d.JOY(Joy Mission:1958.5.18)
"죠이선교회"이다. JOY라는 명칭은 'Jesus frirst,Others second,You third의 첫글자를 따서 만든 특징 있는 이름이다. 1954년 주한 미국인이던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몇몇 선교사들과 함께 고등학생들을 위해 JOY Bible Class를 시작했다. 이들이 성장하여 대학에 진학함에 따라 대학생 중심의 복음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당시 대학생이 된 심상권, 김흥수, 이미자 등이 주축이 되어 1958년 5월 18일에 JOY Youth Club으로 발족하게 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명칭 변경을 통해 지금은 JOY Mission으로 불리게 되었다.

e.YFC(Youth for Christ,1961,1962)
"한국십대선교회"이다. 원래 1930년대에 미국,캐나다,영국 등지에서 청년 학생들을 위한 대규모 전도 집회가 열린다. 이때에 젊은이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후 미국의 수많은 도시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젊은이"(Youth for Christ)라는 가치를 든 집회가 물결처럼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4년 여름 어느날,미국의 인디아나 주의 위노라 레이크(Winona Lake)에서 팔머 먼츠(J.Palmer Muntz)박사와 아더맥키(Arther Mckee)등 여러 지도자들에 의해서 YFC가 출범하게 되었고, 이때에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정식으로 탄생을 합하게 되어 임시의장에 토레이 존스(Torry Johnson)박사가 선출되었다. 1944년 시카고 대회에서 국제 YFC가 창립되어 현재 60여개 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해방직후 김홍범,황성수,김치선,조동진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국가적인 혼란 상태로 말미암아 당분간 침체 상태에 있었다가 1960년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김장환 목사와 길치수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고,1961년에는 서울에서,1962년에는 수원에서 새롭게 발족되었다.

f.네비게이토 선교회(The Navigatotors:1963)
이 선교회는 미국의 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에 의해 1934년에 창설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63년 유강식 선생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동이 전개되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발족 동기는 바로 구성 요소 성경 암송과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생애라는 책과 이 엠 바운즈(E.M.Bounds)의 "기도의 능력'이란 책을 통해 크기 영향을 받고 탄생하게 된다.

B.한국 자생학생 선교기관
a.UBF(University Bible Fellowship:1961.9.1)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이다. 전남 광주에서 이창우 선생에 의해 1961년 9월1일에 시작되었다. 당시 배사라 선교사(Miss Scrah Barry)조력과 재정적인 후원에 힘입어 이창우 선생이 주축이 되어 대학생 복음화라는 목표하에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후 많은 문제점이 발생되었다. 그리하여 1977년에 분열되어 "성경읽기회"(SBF:Student Bible Fello- wship)라는 명칭을 분리된다.

b.ESF(Students Bible Fellowship:1976.4.8)
"한국기독대학인회"이다. 이 단체는 UBF와 뜻을 같이할 수 없다는 학생들이 1976년 4월8일에 전주와 서울의 동대문,서대문,한양 지구를 중심으로 모임을 새롭게 하고 그 명칭을 처음엔 SBF로 하였다가 1984년 9월 15일에 ESF로 개칭하여 사역하게 된 단체이다. 지금은 국내에 14개 대학,미주 지역에 2개 지부,영국과 서독에 각각 1개의 연락소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C.한사랑선교회(The Love Mission :1971.10.19)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를 사랑하는 제자를 삼자"는 표어로 1971년 10월9일 김한식 중심이 되어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d.예수전도단(YWAM,Youth With A Misison:1972.11.시작)
1972년 11월부터 오대원(David E.Ross,예수전도단 대표) 선교사의 집에 모여서 시작한 화요 기도모임이 예수전도단의 시발이 되었다. 그후 여기서 만난 임종표,박현주,서상희 등 세 젊은이가 강원도 영월에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 1973년 11월 17일에 정식으로 발족하게 된다. 그후 1980년 여름에 국제 YWAM과 연합하여 1981년 1월부터는 YWAM,Korea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e.학생선교운동(SMF:The Student Mission Fellowship)
이 운동은 1974년 총회신학대학원(예장,합동,사당동)에 재학중이던 김유식,김활영,윤회원,강승삼,이남백,정광호,한경철 등 신학생들이 모여 기도하던 중 세계선교의 비전을 보고 설립된 학생 선교 운동이다. 그후 많은 헌신자들이 참가하였다. 그들 중에 한성수 김철수 선교사가 대표적이다(지금 이들은 다 해외 선교사로 나가 사역하고 있으며, 강승삼 목사는 나이제리아 선교사로 10여년 사역하다가 현재는 예장(합동)총회 선교국장이다). 지금은 안대혁 목사가 대표로 있으며 중등부(MMF) 고등부 (HMF)대학부(UMF) 일반부(LMF)라는 조직을 두었으나 상징적인 단체로만 남아있다. 그러나 학생선교운동 출신 현역 선교사들이 초창기의 순수한 선교 열정을 이어받은 새로운 선교운동으로의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f.학복협(학원복음화협의회)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외국에서 들어온 학생운동이든지 아니면 한국에서 자생한 학생운동이든지 간에 한국 선교 운동은 60,70년대에 교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 학생 선교 운동의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상의 단체들 중 몇 단체가 중심이 되어 학복협(학원복음화협의회)를 창설하고, 각개 전투적인 학원 복음화 운동에서 서로 연대하고 연합하는 인해전술적인 선교 운동으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게 된다. 이곳에서 "선교한국"을 개최하여 1994년 현재 3회에 걸쳐 수많은 선교 헌신자를 발굴하였다.

g.기타.
그밖에 동숭동 구서울대대학 캠퍼스에서 당시 재학생이었던 손봉호,김명혁 김상복 학생 등이 조국과 교회를 위하여 함께 일할 뜻을 모으고 기도하던 모임의 출신들이 오늘의 한국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이 되기도 하였다.그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기독 학생 운동 출신들이 많다. 예를 들면 학생운동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귀국하여 1910년 6월 YMCA의 간사로 활동하였고,윤치호,조만식,이상재(하령회,당시 기독학생들의 모임),강원용(대한기독전국학생연합회:Korea Student Christian Federration 1948.4.25 총무),황성수 (IVF 및 SCE 출신),김영삼 대통령(SFC)등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학생 선교운동 출신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국 교회 지도자 가운데 김의환 목사,김영철 목사(IVF)광주중앙교회 변한규 목사, 남서울교회 홍정길 목사,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안상동산교회 김인중 목사(이상 CCC),상도제일교회 유용규 목사,한국선교훈련원장 이태웅 박사(이상 JOY),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YFC)등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교수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는 자들과 직접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에 나가서 사역하는 일꾼들의 수는 여기서 다 헤아일 수가 없을 만큼 많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 대학생 운동의 경우,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는 성도교회 대학부 지도목사 시절 학생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도전하여 양육한 결과 오늘의 사랑의 교회가 시작되었으며,그중에 한정국 선교사(KOMF대표)나 "E-랜드"의 사장 박성수 집사같은 귀하고 훌륭한 주의 일꾼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여기서 다른 기독 학생 선교 운동 출신들을 일일이 언급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5) 해외에서 발족된 한국 유학생 선교운동 기관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해외 유학생 선교는 맨 먼저 일본 유학생들을 선교하기 위한 운동으로 1906년과 1097년에 시작되었다.10) 그 이후 한국의 해외 유학은 경제 성장과 해외 유학 자유화에 힘입어 현재 미국의 경우는 "한국 유학생 수가 3만 1천76명으로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11) 고 한다. 이들 유학생들을 위한 선교는 한국에서 대학생 선교 단체를 통해 경험한 일꾼들이 이민이나 유학을 통해 또는 선교사로 해외에 진출하게 됨에 자연히 해외 유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유학생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1) 미국 내 SFC학생 수양회
한국 SFC(기독학생신앙운동)에서는 미국에 있는 간사들을 중심으로 학생 수양회가 매년 LA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다.

(2) 미국 내 CCC 학생 수양회
CCC가 물론 미국에서 한국으로 1957년에 들어 왔지만 한국에서 대학생 시절 CCC를 통해 주님을 영접하고 대학 생활을 통해 신앙생활을 했던 졸업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이민을 감으로 미국 내 한국 유학생들과 교포2세 고등학생,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LA지역에서는 매년 CCC미국 수양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3) 북미주유학생수양회(KOSTA:Korean Student in America) 미국 워싱톤 한인침례교회(현재는 지구촌 교회로 명칭 변경)를 목회 하던 YFC출신인 이동원 목사와 CCC 출신인 남서울교회 홍정길 목사가 주축이 되어 북미주 유학생 수양회를 1986년에 개최하므로 말미암아 북미주 내 한국 유학생 수양회가 시작되었다. 1990년 이후에 와서 국제복음주의 유학생연합회(Korean Students Abroad)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이 명칭은 이미 유럽에서 실시되고 있는 수양회와의 차이를 두기 위해서 사용된 명칭이다. 처음엔 북미주유학생수양회로 출발했다.

(4) 유럽유학생선교회/유럽유학생수양회(KOSTE:Korean Students Mission in Europe) 한국 SFC(현,SCE)에서 학생 신앙운동을 전개하였고,CCC를 통해서 민족 복음화에 대한 비전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세계 선교 비전을 받았던 김승연 목사는 1983년 6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서 독일 주재 선교사로 파송받는다. 독일을 중심으로 사역하면서 유럽 내 유학생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1986년 전유럽의 주요 도시 목회자와 선교사들과 유학생들에 대한 전략을 가지고 구체적인 협의를 하게 된다. 제1차적으로 유럽 유학생 수양회를 개최하자는 데 의견을 일치하고, 1987년에 개최하려다가 시간,장소,재정적인 준비부족으로 한 해를 연기하여 1988년 3월 7일부터 10일까지 북부 독일 힡작커(Hitzacker)에서 첫번째 수양회를 개최하게 된 이래 95년이면 8회째 수양회를 개최하게 되며 지금까지 약 1천5백명의 결신자와 헌신자들을 배출하였다.

이 일을 수종드는 동역자들은 국제적으로 구성된 지도위원과 후원이사회가 있으며 전유럽과 대도시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 조직으로는 각 나라와 도시에 간사들이 임명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2장/유학생 선교는 중요한가?

영국의 UCCF(IVF)총무였던 존슨(Douglas Johnson)은 말하기를 "내일의 세게를 정복하려면 오늘의 대학을 정복하라"고 말했다. 그렇다 오늘의 대학은 내일의 지도자들이 될 일꾼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와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뜻있는 기독 대학생들이 먼저 기도하고, 회개하고, 모범을 보이면서 현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빛과 소금이 될 뿐 아니라,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고 복음선교의 사명을 다했던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마틴 루터는 구동독 아지제나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마틴 루터는 일생 일대에 자기에게 영향을 준 사람의 딱 둘이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 한 분이 아이제나흐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신 트레포니우스라는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어거스틴 수도원장이었던 슈타우피츠였다.교장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루터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트레포니우스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만나기만 하면 항상 큰 절을 했다고 한다. 사실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에게 큰 절을 해야 할 판인데 정반대였다. 하도 이상해서 하루는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께 물었다.
"교장 선생님! 왜 우리 학생들에게 매번 큰 절을 하십니까?"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이야 여러분이 코흘리개에 지나지 않고 더러는 밤에 이불속에서 어머니의 젖꼭지를 빠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장난꾸러기는 얼마나 많나요 그렇지만 20년,30년 후에는 여러분 가운데서 시장도 나오고, 법관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학자도 나오고,박사도 나오고,장군도 나오고, 그 밖에 별별 훌륭한 사람들이 다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내가 먼저 여러분에게 인사를 안할 수 있나요.그렇지 않습니까."12)
루터는 그 교장 선생님의 고명하신 인격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분에게 인격적인 큰 감화를 받았다고 그는 개혁자가 된 먼 훗날 고백하였다. 이렇듯 학생들에게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접근하는 학생 선교 운동은 정말 중요하다.

1. 독일의 경건주의
마틸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독일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침체되어 가고 있을 때,할레 대학에서 일어났던 경건주의 운동이 독일 교회를 살렸다. 이 운동도 따지고 보면 결국 대학에서 일어난 기독교 학생 신앙운동이었다.

2. 영국과 미국의 대학운동
영국 교회가 침체되고, 복음의 생명력을 잃러가고 있을 때,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일어났던 학생선교운동,교회갱신 운동이 바로 영국 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당겼다. 그리고미국의 윌리엄즈 대학의 사무엘 밀즈의 하이스텍 운동이 바로 그렇다.

3.내일의 일꾼들
뿐만 아니라 대학과 젊은이는 내일의 사회를 이끌어 갈 인적 자원이다. 자연계에 아무리 많은 자원이 있어도 그것을 개발하여 사용할 인간의 지혜와 기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듯이,대학에 아무리 인적 자원이 많아도,해외에 아무리 우수한 두뇌들이 많아도 그 자원을 발굴,양육,사용하는 기성 세대의 과감한 투자와 지도력이 없이는 내일을 훌륭하게 설계하거나 건설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미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비전을 제시하여 헌신케 하는 일이 선해오디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국내 대학생들과 해외 유학생들은 내일의 지도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국내 대학생 선교나 해외 유학생 선교는 당연히 기성세대나 교회가 감당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시대적인 사명이다.

4. 성경운동
그리고 학생 선교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운동 자체가 성경 운동이기 때문이다. 성경과 기독교 세계 역사와 인류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러므로 모든 운동은 성경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진리요,생명이신 주님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그리고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손에 성경책이 들려질 때에 민족의 장래에 희망이 있다"고 역설했다. 영국의 킹 제임스 번역 성경이 영국에 영향을 끼쳤다."영국은 두 권의 책을 가진 나라다. 한 권은 성경이요 다른 한 권은 세익스피어의 문학 전집이다.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만들었고,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요한 칼빈이 불란서어로 성경을 번역함으로 불어가 정립되었고 그 민족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함으로 독일어가 정립되고 민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개역 한글 성경이 번역 출판되므로 복음 진리가 전파되어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한문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민족 스스로가 언문을 경시하는 풍조에서 한글을 사랑하게 되어 일상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언어가 통일되므로 국가 발전과 국민 총화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그들이 장차 인류와 역사 앞에 영향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제3장/유학생 선교 운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해도 일을 진행하면서 또는 역사가 흐르다 보면 원래의 목적에서 이탈하거나 일하는 자세가 흐트러질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일하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 어떠한 역경이 와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일은 지양해야 하며 보다 진실하게,보다 정직하게 이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 선교 운동만큼은 언제나 순수해야 한다.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학생 운동의 목적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적인 그리스도인'곧 '주님을 닮은 사람,올바른 지도자 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지도자 육성을 전제로 하면서 그동안 유학생 사역을 수종들어 오면서 생각하고 정리한 목적들을 나름대로 제시하고자 한다.

1. 지도자 육성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제1장 1-5)유학생 선교 운동의 목적을 크게 보면 결론적으로 '지도자 육성'이다. 선교사로 선교지에 나가든지, 아니면 국내외에서 전문 직장에서 활동하든지,대학생과 유학생은 일단 지도자가 되는 지성인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잘 인도하고 육성하여 다음 세대의 진실하고 참신한 그리고 신앙으로 무장한 말씀의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다. '종교 개혁가들은 교육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칼빈의 경우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대학을 세움으로써 개혁의 불길을 유럽에 확산시키는데 전략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스코틀랜드에 장로 교회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존 녹스는 유배 생활중 제네바(Geneva)대학에 와서 칼빈에게 교육을 받음으로서 사상적인 큰 전이를 경험하였다"13)고 웰레이스는 그의 책 [칼빈]에서 말하고 있다. 개혁가들의 교육을 통한 지도자 양성 방법은 그 이후 개신 교회가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유서 깊은 대학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개신교회가 교육을 통한 신앙 및 인격 교육에 투자하여 큰 결실을 거두는 것을 본 로마 가톨릭의 신부 익나티우스 료율라는 말했다. "나에게 7세 이하의 자녀들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천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녀들로 양육하겠습니다."가 의미 있는 유명한 말이다. 지도자는 국민 모두가 또는 성도 모두가 될 수는 없다. 항상 많은 대중 또는 성도들 속에서 소수가 지도자로 부각된다. 그러므로 이 소수는 다수에 비해 열세하고 열악한 소수가 아니라 창조적인 소수이다.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힘을 가진 소수이다.

2. 유학생 복음화를 위하여!
올리버 버클리는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방법 중에 한경의 인도를 말하고 있다.14) 해외 교포들의 기독교인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 이유는 외국생활을 하다보면 그 만큼 사람이 그립고,때로는 외롭고,정보가 어둡기 때문에 교회를 찾ㄱ 되어있다. 그렇듯이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개인적인 구원 이전에 우선 환경의 인도를 받아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외국에 유학을 나온 유학생 사회는 복음 선교의 황금어장이다. 그래서 유학생 선교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복음화에 있다. 환경의 인도든지,전도를 통해서든지,아니면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우선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물론 주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를 삼는 것이다.

3. 기독 유학생의 신앙 지도를 위하여!

해외 유학 생활이 비 기독 학생들이 기독교에 접하기 쉬운 결정적인 계기인 반면에,기존 기독 학생들이 유학을 계기로 인하여 오히려 훨씬 탈선의 계기가 되기 쉽다. 고국의 부모 밑에서 또는 주위의 간섭 속에서 긴장하며 살다가 외국이라는 외딴 곳으로 홀로 훌쩍 떠나오므로 순간적인 해방감으로 인하여 긴장이 풀려서 자유방종을 하여 신앙을 상실하거나,정신을 잃고 세속에 빠져들기가 훨씬 쉽다. 일반 성도 가정의 자녀들은 물론,때로는 많은 한국 교회의 목회자 자녀들까지도 신앙 상실은 물론 세속에 물들어 탈선해 버리는 경우는 어제 오늘의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직접 접하거나,파악된 통계에 의하면 많은 목회자 자녀들이 오히려 믿지 아니하는 가정의 자녀들보다 더 향락적이고 세속적인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유학생 선교는 불신 학생들의 복음화와 아울러 기존 기독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신앙을 유지시키며 지도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하다.

4. 유학생에게 도전,비전을 제시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해외 유학을 떠날 때는 남달리 비전을 갖고 유학을 나왔지만,막상 해외에서 겪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그리고 사회 환경과 문화 그리고 언어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일단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 오랜 세월 학문 연구를 하다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적으로 긴장했던 것이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도전할 뿐 필요가 있다.그리고 보다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므로 자신의 올바른 신앙과 사상을 정립하여 유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5. 유학생의 당면한 문제점 해결을 위하여!

생각보다 의외로 유학생들의 문제는 많다. 개인적으로,가정적으로,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때로는 좌절,방황,실의,허탈감 등.상대가 아는 문제보다 오히려 모르는 문제들이 더 많다. 이들을 선교하는 것은 구원 문제를 넘어서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당면한 문제들을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이러한 문제들은 지역의 지도위원 내지는 협동 총무를 통해서,또는 말씀으로 훈련된 성숙한 간사들을 통해서 아니면 일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전체적인 수양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게 함으로,수양회 기간 중 상담을 통해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수양회 기간 동안에 강사들과의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본부에서는 강사들에게나 학생들에게 항상 상담의 범위를 제안해 준다. 섬기는 지역 교회 목사님과의 문제나 개교회의 제반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신청해서는 안된다. 물론 강사는 그런 상담에 응하여서도 안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러나 유학생 개인의 신상과 신앙에 관한 문제들을 위한 상담들은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하게 한다. 또한 전문 상담을 위해서는 전문 강사를 모시고 강사를 들은 후 상담을 하게 되면 많은 결실들을 얻는다. 그래서 강사들과의 상담을 통하여 많은 문제들을 해결받는다. 그뿐 아니라 수양회 기간 동안 매시간마다 선포되어지는 설교 및 강의를 통해서,전체 기도와 개인 기도를 통해서,참가한 유학생들과의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서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봉사 활동에서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 그리고 전공 분야별 모임과 같은 시간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받는 것은 물론 미래의 지도자로서의 사명과 동역자로서의 연대의식을 가지고 오히려 비전을 받아 꿈을 꾸며 희망에 부풀어서 돌아간다.

6. 인재를 양육하는 제자 훈련을 위하여!

제자 훈련하면 각 교회에서 목회 계획에 의해 실시하는 것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 교회 차원을 떠나서 특수 계층을 상대로 실시하는 제자훈련도 매우 중요하다. 개 교회의 제자 훈련은 그 대상이 거의 다양한 계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학생 선교나 유학생 선교를 통한 제자 훈련은 일단 그 계층이 동일하거나 단조롭다. 그래서 제자 훈련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운영의 묘미가 있고 이해의 폭이 일치하기 때문에 효과 면에서 기대 이상으로 확대된다. 가장 정직하고, 가장 보람있는 투자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대시대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길러야 한다.잡초는 장마철에도, 가뭄에도 그리고 농부의 섬세한 손길이 미치지 않아도 잘 자란다. 그러나 곡식은 농부가 시시때때로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심는 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거름을 주고,때로는 물을 주고, 잡초를 베어주면서 잘 길러야 하낟. 마찬가지로 해외 유학생들은 차세대의 일꾼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잘 자라도록 누군가가 애정을 갖고 아껴주어야 하며 사명감을 갖고 길러주고, 보살표 주어야 한다. 곧 그 일은 내일의 지도자가 될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7. 올바른 의식과 사랑 정립을 위하여!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신앙관 정립은 우리 모두에게 기본이다. 기독교인은 모든 면에 있어서 깨어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 곧 관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분명히 성경에 기초해야 하고,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교훈에 근거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져도 모든 기준이 되는 것이며,상황이 변화되어 혹시 일시적으로 그 기준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곧 회복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나 관은 철학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이념이요,정신이요,사상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관이 있어야 하고, 바른 생각과 사고를 할 수 있는 의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신앙관과 생활관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어서는 안된다.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이뤄야 한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하고,교회에서의 믿음과 세상에서의 믿음이 똑 같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신앙인이 배출된다면 그 사람이 교회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활동할는지 몰라도 사회에서는 이중적인 인격자로 지탄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원론적인 기독교인,양면적인 성도,이중적인 인격자들을 많이 배출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일은 못하고 그동안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아왔다. 그러한 사람들이 결국 세상에 나아가서 빛과 소금은 고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선에서 직무 유기를 하거나 오히려 부정과 부조리와 짝하거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 곧 기독교인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지난 1995년 3월 21일 힐튼 호텔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지도자를 위한 세미나를 인도했던 이원설 박사는 오늘의 한국과 사회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자질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진단했다. "바닷물에 소금이 3%있어도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데 전체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라는 우리 나라에서 조금만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의 역할을 했다면 사회가 이처럼 부패하지는ㄴ 않았을 것이다"고 역설했다.15) 그러므로 일개인에게 성경적인 신앙과 올바른 사상이 정립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이 일을 바로 교회가,선교 단체가 그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힘써 사역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일개인은 물론이요,그가 이끄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기독 학생들로서 다음과 같은 의식 곧 觀이 참된 믿음에서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서 올바른 생각이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바른 생각을 한 사라의 정신은 건강하게 되고, 그 사람의 건강한 정신에서 정당한 행동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1) 인생관 정립 일개인의 인격에 있어서 인생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인격은 짐승과 달리 사람의 기본 덕목이다. 물론 개성은 각자가 다를 수 있으나 그 인격의 근본인 심성은 티없이 깨끗해야 하고 오색찬란한 무지개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개성이 올바른 인격 위에 형성되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혹은 성장 과정에서 잘못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형성되었을지라도 힘쓰고 애써서 바꿀 수 있어야 하낟. 이 일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교육을 통해서,개인 경건 생활을 통해서, 자기 인격 수양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허다한 보통 사람들을 보면 욕심으로 가득찬, 혹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 심리에서 만사를 추진하려고 한다. 만약 이렇게 되면 개인의 정신 건강에도 좋지않을 뿐 아니라,나중에 그 일이 스트레스가 되어 자신을 망쳐 놓게 된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하기 전이나 어떤 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시켜야 하고 그 상태를 매번 확인해야 하낟. 어떤 경우를 보면 잘못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무슨 일을 하다가 유익은커녕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있는 것을 종종 본다.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행동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올바른 인생관과 성숙한 인격은 그만큼 중요하다.

2) 교회관 정립
기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교회관은 신앙생활뿐 아니라 사회생활과 봉사 사역에 있어서 중요하다. 특히 대학생 선교 및 유학생 선교를 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교회관 정립이다. 우리 나라 교회의 경우 지난 역사에 학생 선교 단체와 기성 교회간에 수없는 마찰이 있었다. 그 문제야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관 문제였다. 그러므로 학생 선교는 그 근본을 올바른 교회관에다 두고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지체인 지역교회를 귀중하게 여기고,목자로 세우신 목회자를 존중하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교회관이 잘못되면 결코 바른 신앙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 선교의 장점만을 잘 살려야지 기성 교회의 비리나 목회자의 결점들을 지적 내지는 공격하면서 학생들에게 접근한다면 결국 비판력만 길러주고 반대만을 위한 사람으로 길러 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성 교회의 비리나 개혁되어야 할 부분이나 대상들에 대해서 영적 감각없이 묵과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그런 문제가 있다면 자기 스스로가 먼저 개혁하면서 그런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그리고 우리는 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해야 한다. 교회란 불완전한 인간 공동체가 모여서 성숙과 완전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하여 신앙적 성숙과 신앙적인 인격을 형성시켜야 한다. - 어느날 한 청년이 스펄전 목사를 찾아 왔다고 한다. 그청년이 스펄전 목사에게 질문했다. "목사님! 제가 지금까지 완전한 교회를 찾아 다녔는데 아직까지 그런 교회를 찾질 못했습니다. 혹시 목사님께서는 아시나 해서 이렇게 찾아 와서 여쭙니다. 안내해 주십시오. 이 런던에 어느 교회가 가장 완전한 교회입니까?"
나 같으면 "이 사람,자기가 스스로 영국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말 그대로 완전한 교회를 찾아와서 완전교회를 찾다니'하면서"다음 주일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게나"고 했을 텐데 스펄전 목사는 그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청년! 나도 아직 완전한 교회를 찾지 못했다네."
"아니,목사님께서도 아직 못 찾았다고요?"
하며 그 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펄전 목사는 그렇다면서 그 청년에게 부탁을 했다.
"이보게 젊은이! 내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네.자네는 이왕 완전한 교히를 찾으러 나셨으니 나선 김에 계속 찾게나."
청년이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답변과 함께 인사를 하고 막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스펄전 목사님이 그 청년을 다시 불러 세웠다.
"이보게 젊은이! 나 자네에게 또 한가지 부탁이 있네."
"무슨 부탁이십니까? 말씀하십시오."
청년은 스펄전 목사님에게 또 부탁이 있다는 말에 긴장을 하고서 있었다.그때에,
"자네는 그 완전한 교회를 찾거들랑 그 교회를 나가지 말게나."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완전한 교회를 찾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찾으면 그 교회를 나가지 말라니요."
스펄전 목사님은 그 청년의 얼굴을 주시한 채,
"자네가 그 교회를 나가는 그날부터 그 교회는 불완전해질테니까."
유명한 이야기이다.

지상교회는 불완전한 교회이다. 그리고 전투적인 교회이다. 그러나 천국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이며 승리하는 교회이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은 먼저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또한 남에게만 완전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내가 먼저 그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리고 상대와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3) 국가관 정립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분명한 국가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 나라는 지난 30여년 동안 군사 통치를 받으면서 순수했던 학생운동이 좌경화 되었다. 그 결과 일부 대학생들이 한동안 잘못된 의식으로 이념화되었다. 그러므로 자연 현상적으로 학생 세대는 국가관이 바르지 못하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지는 국가관은 국민의 당연한 정신이다. 특히 월남 전쟁의 패전과 공산화 그리고 쿠바의 독재 정치로 발생한 보트 피플이나,동구라파의 개가의 정치 망명객들을 보면서 우리는 국가의 존립이 그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좋은 나라, 좋은 국민이 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나라가 일본의 속국으로 있을 기미년 1919년 3월 1일에 파고다 공원을 중심으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순수한 독립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지만 일본의 강압 진압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만다. 그 때에 조국의 장래를 염려하던 안희제 등 영남의 유학유지들이 같은 해 11월에 기미육영회를 결성한다. 이 육영회는 뛰어난 청소년들을 선발하여 해외 유학을 시켜 장차 국권 회복의 대들보를 양성하려고 하였다. 당시 기미육영회 회원 43명은 회비를 각출하여 일차적 5명(김정설,이병호,이제만,전진환,문시환)의 해외 유학생들을 선발하였다. 그리하여 전진한을 일본으로 안호상,이극로를 독일로,신성모를 영국으로 유학보냈다."16) 결국 바른 이념을 가진 학생 세대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4) 가치관 정립
모든 사물과 사건을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치관이다. 염세주의나 부정적인 사고로서의 가치가 아니라,하나님 창조 질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정립되는 가치관이다. 지금을 가치관의 혼란 시대라고 표현들을 한다. 너무나 못 살다가 갑자기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 시대를 선진국처럼 많이 가지지는 못하고 조금 가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말하긴 하나,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때에 오히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보며, 모든 사간을 판단하고,슬기롭게 대처해야한다. 일 개인의 가치관의 혼란은 곧 사회의 혼란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계층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로 지금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이 시대를 책임지는 사명자들이 필요하다.

5) 세계관 정립
학문과 사물의 시야를 넓혀서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세계관이라고 할 때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관만이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세계관의 정립이 중요하다. 우리 나라 학생들의 세계관은 과연 무엇인가? 별로 없었다. 지금 해외 유학생들이 홍수처럼 밀려나오고 있지만 그 학생들에게 세계관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이들에게 끝없이 추구해야 할 학문과 넓은 세계를 바라보면서 올바른 세계관이 정립되도록 지도하는 일이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그 비전이 현실로 실행될 수 있고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6) 역사관 정립
한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한 지도자는 지난 역사를 되살피며, 현실을 바로 평가하며,미래를 바로 직시하는 역사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일반인에게도 있어야 할 역사 의식이 특히 지도자에게 없다면,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게되고,매사에 무리를 일으키게 된다. 현재를 사는 나는 과거의 역사에는 책임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이 없다고 해서 그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교훈도 전혀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흘러가버린 지난 역사가 잘 되었든지, 아니면 잘못되었든지 간에 그 역사에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우리는 그 역사적 교훈을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교훈을 통해서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역사에는 피할 수 없는 분명한 책임이 있다. 그 이유는 내가 현재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 이뤄질 역사는 분명히 책임 및 관계가 있다. 나의 자손과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그 시대에 역사를 이룩하는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책임이 있고,내가 그들과 한 시대에 같이 존재했기 때문에 관계가 있다. 이게 바로 나의 역사관이다. 그러므로 그만큼 책임과 사명이 따른다. 이를 무시하면 역사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직무유기다. 바른 역사관을 가질 때 현실적인 일의 수행,더 나아가서는 보다 나은 내일과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7) 직업관 정립
어느 직장이든지, 사업가든 올바른 직업관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교수로서,직장인으로서,기업인으로 가져야 할 당연한 것이 바로 직업관이다. 성경에는 분명 바른 직업관을 제시하고 있다. 유학생들도 학업을 마치면 일단 직장인이 된다. 그러나 독일 같은 나라에선 학생들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세금도 내고,혜택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적이고,올바른 직업관을 정립하므로 바른 직장인으로서 또는 주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 - 한 흑인 청소부가 미국의 거리를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서 오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이,광경을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목격하게 된다. 킹 목사는 젊은 청소부를 향해 외친다. "여보시오! 젊은 형제! 무엇이 그리 못마땅해서 그렇게 욕지거리를 하면서 청소를 하고 있소"하니까. "아니 우리는 인간이 아니요? 왜 우리는 백인들이 어지러 놓은 거리나 쓸어야 하고 백인들이 사용한 사무실,화장실이나 청소를 해야 합니까?제기랄 더러워서 못해 먹겠소." 라고 흥분하며 대들었다. 그 때 킹 목사님은, "형제여! 당신은 지금 백인들의 길거리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시오."라고 말하고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생각의 차이에서 엄청난 결과를 산출한다.

훌륭한 직업 의식은 바로 신앙에서 발로되고,그 신앙은 성경에 근거한다. 아무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나 인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노벨 평화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백인뿐 아니라 흑인으로서 아무나 미국 백악관에 기념 흉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흑인들의 인격적 대접과 비성경적인 인간차별을 항거하면서 무폭력 저항운도을 일으켜 가장 연소한 나이로 노벨 평화를 받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검은 흉상은 미국 백악관 내부에 버젓이 서 있으며 지금도 그는 외치고 있다.

8) 윤리관 정립
진정한 기독교 윤리관을 가진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부조리 내지는 세속과 싸우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이 의식은 투철한 윤리관에서 발생된다. 올바른 윤리관이 정립되어 있는 사람은 우선 무슨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상식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 마저도 일반 사회 윤리보다 더 지독한 기독교 윤리를 알고 있으면서 일반 사회인들이 중요시하고,지키는 윤리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바른 윤리관을 정립하므로 오늘은 물론 내일의 밝은 사회를 설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다고들 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기성 세대들에게 일단 그 책임이 있다. 물질,명예,권력,출세를 위해서 도덕과 윤리적 가치기준을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출세와 영달을 위하여 때로는 악랄한 수단과 유치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때마다 모두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니 때로는 비열하게 착취하고,쟁취하고, 짓밟고 소유했다. 우리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분단된 국가에다가 3면이 바다여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유럽의 학생들보다, 그리고 세계 여행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떤 선진국 사람들보다 훨씬 폐쇄적이었고, 진취적이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해외 여행이 자유화되었다. 언제 지금처럼 해외 유학을 마음대로 나올 수 있었는가? 그러므로 해외에 유학을 나온 학생들은 이를 벗어났으므로 올바른 세계관을 정립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의 상황은 정치,경제,교육,문화,예술 그 어느 한 분야도 예외가 없이 과도기적인 시대를 지내오고 있었다. 그런 동안 사회 전반에 누적된 문제는 나타난 것은 빙상의 일각이고 오히려 감추어진 것이 더 많을 정도였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정부대로, 사회단체는 사회단체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효과는 별로였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기성세대들의 가치관과 윤리관이 이미 형성되어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자신도, 다른 힘으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젠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뒷북이나 치는 차원에서의 진단이나 치유가 아니라, 아예 그런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향후 지도자가 될 해외 유학생들이 올바른 사상을 정립해야 하며 성숙한 인격이 형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음악과 입시 부정 문제가 수없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유럽에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 중에 절반 이상이 음악인들이다. 이들이 유학생 선교회가 주최하는 수양회에 참석하고 나서 부조리 척결을 위해 스스로 결단하는 모습들이 매번 일어나고 있다. 우리 나라는 93,94년도에 엄청난 대형 사고들이 일어났다. 하늘,바다,육지,지하할 것 없이 온통 사고 천지다. 옛날에는 천재가 주종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모두가 인재다. 성수대교 붕괴,열차 사고, 지하철 사고,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세금 도적질 왜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에서 지적한 이념과 철학을 정립하지 못한 통치자, 정부 관료, 기업가, 공무원들을 양성(?)했거나 배출하여 그 동안 서로 공존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독교 정신에 필요한 이념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기초 위에 올바른 이념과 생활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8.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한 사람의 올바른 삶은 좁게는 가정 넓게는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복음으로 무장되고, 사명감과 비전에 넘치는 학생은 주님이 명하시는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다.그리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나 니토베 이나조 같은 사람들이 그 시대를 책임진 지도자들이 되었고, 주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 역사가 바로 그런 역사이다. 우리 나라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회와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KOSTE하면 유학생은 물론 불신자간에 잘 알려져 있다. 그 동안 그만큼 이 운동은 유럽 사회 전역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 "지난 유럽의 교포 역사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순수한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어온 운동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KOSTE를 적극 지지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고 유럽의 원로 언론인이며 유럽신문의발생인인 남정우 씨는 말한다. 일단 KOSTE에 참석한 학생들은 변화된다. 주로 지역 교회에서 적응을 잘못하는 학생들이 참석할 경우,도전을 받고,은혜와 비전을 받고 돌아가면 지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좋은 반앙을 얻는다. 그래서 우선 일선 교회 목회자들이 좋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 유학생들이 이제 조국과 민족에게 그리고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칠 사례이다. 영향을 끼치려면 그만큼 준비하고 무장을 해야 한다.

9. 사회 구조를 개혁하기 위하여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모든 의식과 관들은 일개인뿐 아니라 바로 내가 사는 사회를 아름답게 건설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인간이 사는 사회의 구조가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인류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며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기독교 정신으로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현실을 우리는 후진국일수록 더욱 절감하게 된다. 지난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구조 악을 개혁하기 위하여 수많은 혁명이 일어났고 개혁조치가 있었지만 그 효과 면에서는 별개 아니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기 좋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회용 그릇처럼 상대적인 혁명이나 과시적이고 전시효과적인 개혁을 통해서는 도지 않는다. 허버트 케인은 말하기를 "사회구조를 한 사람의 힘으로 개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17) 고 하였다. 곧 참된 그리스도인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를 스스로 발견하고 그 일부터 실천하는 유학생들이 되어야 한다.

10. 지속적 학생 선교 운동과 세계선교를 위하여!

지난 역사를 살펴볼 때 학생 선교 운동은 계속되었다. 물론 잘못된 학생운동이 일어날 때는 전반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혔고,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건전하고 복음적인 학생 선교 운동은 그 시대를 리드해 왔고 세계 선교를 책임져 왔다. 그리고 그 시대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 선교 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 운동은 그 어느 시대고 지속되어야 한다. 물론 학교가 없어지고,학생이 없어진다면 모르겠지만 지구상에 학교가 존재하고 그 학교에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학생 선교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학생 선교 운동은 곧 세계선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학생 선교는 자발적 선교운동으로 일어났다. 대학생 내지는 해외 유학생들이라면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이 운동을 일으키고 동참할 수 있다. 성령께선 의식이 있고,깨어있는 대학생들과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며 그들을 사용하시어 세계 선교 사역을 감당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1734년부터 1744년까지 영국과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조지 윗트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한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이 일어나게 된다. 이 부흥 운동은 조나단 에드워드에 의하여 선교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 운동은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며 신앙 선교 운동의 기원이 되었던 윌리암 캐리와 허드슨 테일러에게 영향을 주어 19세기에 이르러 선교의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이미 언급한 미국에서 1806년에 일어난 윌리엄즈(Williams) 대학의 건초더미 기도 운동이 바로 이 운동의 결과이며, 1830년 예일(Yale)대학에서 일어난 복음 각성운동(The Evangelical Awakening)과도 연결된다. 윌리엄즈 대학에서 있었던 건초더미 기도회에 참여하였던 일곱명의 (혹 다섯 명) 학생들이 주축이되어 엔도버(Ardover)프린스턴(Princeton),워싱턴(Washington) 대학 내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선교 조직을 결성하고,1810년에는 미국 최초의 초교파적 개신교 선교단체를 결성하게 되는데 그 명칭은 "외지 선교를 위한 회중적 선교부"(Congeregational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였다.이것이 1812년에는 '미국 외지 선교부'(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로 그 명칭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 선교 단체를 통하여 1812년 프린스턴 신학교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사무엘 밀즈(Samuel Mislls)와 버마 선교의 개척자인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이 선교사로 자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 최초의 선교 전문 잡지이며 학생 자원 선교 운동에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던 [세계를 위한 선교 평론집](Mission Review of the World)를 발간하였던 로열 와일더(Royal G.Wilder)가 1846년 인도에 선교사로 파송되기도 하였다. 선교에 불이 붙은 이들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1883년 프린스턴 신학교 내에 해외 선교부가 조직되고 사무엘 챔머 및 로버트 스피어 등이 중심이 되어'프린스턴 선교 현장'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883년에는 하트포드(Hartford)에서 선교를 위한 신학교 연맹(Inter-Seminary Alliance)이 결성되었는데 이 모임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언더우드(Underwood)와 아펜젤러(Appenzeller)가 신학교 재학시절 회원으로 참석하였다."18)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의 선교 운동은 188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발달과 초기의 성공은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이었던 로버트 윌더(Robert P.Wilder)의 선교비전과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였던 무디(D.L Moody)의 성령의 역사,당시 코넬 대학교 학생이었던 존 모드(John R. Mott)의 전체적인 조직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것은 1886년 여름 메사추세츠주 마운트 헐몬(Mount Hermon)에서 있었던 두 주간 동안의 무디 집회에서 100명(참석 인원은 250명이었음)의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외선교사가 되겠습니까"라는 프린스턴 서약(Princeton Pledge)에 사인함으로써 시작되었다."19) "100명의 선교 지원자 중 한 명인 존 모트(John Mott)가 중심이 되어 1888년 11월 6일 뉴욕에서 학생 자원 선교 운동(SVM: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결성되고 1891년에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런드(Cleveland)에 매4년마다 선교대회를 열기로 하고 제1차 SVM 선교대회가 개최되었다. 바로 이 SVM이 1895년 세계학생 선교 연맹인 WSCF를 창립하게 되고 WSCF가 사회 복음주의 신학 사조에 의해 좌경화 되자 1945년 IVCF가 조직되고 일리노이 (Illinois)주립대학 내에서 매3년마다 개최되는 어바나(Urbana)국제 학생 선교 대회로 모이게 되는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20) 어바나 국제 대학생 선교대회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886년 여름 매사추세츠주의 마운트 헐몬에서 열린 이후 "매4년마다 열린 이 운동은 1891년에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Cleveland,Ohio)에서 최초로 열렸다. 수년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들 대회에서 참가하여 선교사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소명을 받아 프린스턴 서약에 사인을 하였다. 1920년의 데스 모네스 대회(Des Moines Convention)가 그 결정을 이루었고 이후 이 운동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마지막 대회는 1936년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열렸는데 이때 자발적 학생운동은 실상 지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50년 동안에 이 운동은 대부분 북아메리카 출신이었던 20,500명의 학생들을 해외 선교지에 파견하는 도구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이다. 실제적으로 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의 학생선교회(Student Missions Fellowship)가 자발적 학생운동의 후계자이고"21) 어바나 학생 선교 대회를 이어 받은 것이다.

그 이후 환영할 만한 변화는 여러 요인에 기인했던 바, 그중의 하나는 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가 매3년마다 개최하는 저 유명한 어바나 선교대회(Urbana Missionary Convent-ion)였다. 1981년에는 14,000명의 대학생들이 어바나 대회에 참가하였다. IVF 지도부는 5,000명의 학생들이 세기 말까지 전임 선교사역에 종사할 것을 바라고 있다.22) "1984년 12월에는, 18,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포기하고 기독학생회(IVF)가 주최하는 저 유명한 어바나 선교대회(Urbana Mission Convention)에 참석했다."23) 한국에서도 1988년부터 "선교한국"이라는 대회가 열리고 있다. 88년에는 430명의 선교 헌신자들이 나왔다. 1990년 대회에서는 단기 선교 헌신자 747명과 장기 선교 헌신자 1,258명,합계 2,050명이 헌신하였다. 지금까지 '선교한국'을 통해 나온 선교 헌신자는 약 6천명이나 된다. 이 대회는 한국 교회의 성장과 함께 선교 열기를 더하여 가고 있다.24) 유럽에서 열리는 KOSTE(Korean Students Mission in Europe)에서도 1988년부터 1995년까지 1,500여명의 유학생들이 일생을 주님께 헌신했으며 200여명의 선교 헌신자들을 배출하였다. 학생 선교 운동은 계속 그 사명을 잘 감당해 가고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복음주의 학생 연합'(The 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s)은 현재 60개 개국에서 전임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무총장 챠위한 (Chua wee Hian)은 "우리는 수백 명의 졸업생들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선교 명령에 순종하여 국경과 문화적 장벽을 넘어 갈 그날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25) "위클리프 성경 번역선교사에는 4,200명의 멤버가 사역하고 있고, 대학생선교회는 150개 국에 6,000명의 회원들이 사역하고 있다."26) "1960년대 중반,한때 대학 캠퍼스를 중심을 선교 활동에 대한 관심이 극히 낮았던 적이 있었다. 선교 지도자들은 선교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상황은 호전되었다. 다시 한번 기독교 선교는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27)고 허버트 케인은 말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학생 및 유학생 선교 운동은 곧 21세기의 세계 선교 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대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이 운동을 주관하시면서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한번도 쉬신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쉼없이 계속될 것이다.

제 4장/해외 한국 유학생 현황과 구체적인 사역

1. 해외 유학생의 역사
우리나라의 최초 유학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라 진평왕 때 설계두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항상 친구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도대체 신라 사람들은 골품28)이나 논하고 문벌만 따질 뿐 뛰어난 재주나 걸공29)를 보지 못하니 답답해 못 견디겠다.나는 멀리 중국 땅에 가서 비상한 공을 세우고 영달의 길을 걸어 항상 신검을 차조 천자 곁에서 천하를 호령하고 싶다.]그리고는 어느 날 남해에 일엽주30)를 띄워 망망 대해로 사라져 갔다. 신라 젊은이들에게 이 같은 모험적인 개척정신이 왕성했던 어느 한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당서]31)에 보면 이 신라 청년의 프론티어쉽은 훌륭히 결실하고 있다. 설계두는 당태종에 발탁돼 무위장권으로서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태종이 입었던 옷을 손수 벗어 시신을 덮어줌으로써 그 공을 기렸다 했으니 말이다. 당시 당태종이 주변 1백여 나라들로부터 유학생들을 받아들였을 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학생들이 제일 많았다는 당회요의 기록이 있다. 당시 유학생들에게 옷과 양식을 급여했다는 책부원구의 기록을 보면 고창이나 토번국에서는 단 한 명뿐인데 신라에서는 2백 16명에 이르고 있다. 당 나라 때 그 나라 대과에 급제한 신라 유학생은 김운경, 김가기 최치원등 58명에 이르고 있으며 고려 때까지도 그 유학열이 계승되어 이곡 이색 부자를 비롯하여 원나라 대과에 급제한 유학생이 무려 32명에 이르고 있다. 스님들의 유학은 보다 왕성했었다. 문헌에 나타난 통일 신라시대 이후의 유학생만도 1백16명에 이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멀리 천국축 곧 인도까지 가서 공부하는 유학승 9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당시 당나라의 천축국 유학승이 58명인데 비하면 신라 스님들의 유학열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있다.32) 당시에는 국교가 불교였고 기독교가 전래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스님들의 유학이 역사에 언급되었지만 1885년 기독교 전래이후에는 수많은 선각자들과 목사들이 선교사들과 미국 교회 및 학교의 도움으로 해외 유학을 남보다 먼저 떠났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신학교육은 물론 일반 교육계에도 역시 기독교인에 해외 유학생 출신들이 큰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 분들의 이름을 여기에서 일일이 거명하지 않겠다.

2. 유럽 유학의 역사
쇄국에서 빗장이 풀이자 최초로 미국에 유학한 분이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이요, 최초로 프랑스에 유학한 것이 후에 김옥균을 암살하는 홍종우다. 언어 장애 등 갖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나름대로의 업적을 남긴 것을 보면 미지의 문화 공간에서 개척해 나가는 우리 한국인의 유전질을 절감케 해주는 선구자들이다.33) 당시 미국은 비자를 받아야 하지만 독일은 여권만 있으면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했기 때문에 독일 유학이 유리했다(지금은 독일뿐 아니라 서구 유럽은 물론 동구 유럽의 일부까지 여행비자로 3개월동안의 체류가 가능하다).프랑스의 경우도 천주교와의 교류로 유학이 자유롭게 시도되었다.34) 그 이후 1905년 11월 7일에 을사 보호조약이 체결됨으로 통감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런 국가적인 상황에서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한국인으로서 독일을 간 최초의 사람은 김중세박사이다. 김중세가 어떻게 해서 독일 유학을 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구한말인 1908년 이미 베르린 대학에 유학하여 철학과 고전학을 공부하였고,1923년에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이후 안중근 의사의 사촌형인 안봉근 씨가 1910년에,이미륵 씨가 3.1운동에 참가하여 피신 차 1919년에 각각 독일로 유학을 왔다. 이미 1883년 한독조약이 체결되어 있던 상태이므로 공식적으로 양국이 유학생을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 외에 1908년 독일의 베네딕트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진출한 이후 그들을 통하여 한국인과 독일인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의 근거로는 안중근 의사의 집에 드나드는 노베르트베어(Nobert Weber)신부가 쓴 유명한 '조선에서'(In Lande der Morgenstille)35)라는 책에 이 사실이 잘 서술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형인 안봉근이 1910년대에 독일을 내왕하고 있었다. 안봉근과 연결되어 독일로 유학을 간 사람 중에 이의경씨가 있다. 일명 이미륵 박사이다. 이 박사는 3.1운동에 쫓기는 몸으로 독일 유학을 결행하였다. 그후 이미륵 박사는 독일에서도 유명한 문학가가 되었다. 지난 유신 정권 시대에도 많은 대학새들이 정부의 권유 내지는 도피차 해외로 유학을 떠났었다. 1920년대 초반에 독일 유학을 간 사람은 안남규(일명 안용팔,안용구의 부),안동혁,유재성(가수 모니카 유,유주용의 부),배운성,김형태,도유호,이한호,최정우,이성용,신용 등이 있었다. 사실 이때는 독일 유학이 어렵지 않았다. 돈만 있으면 일본 여권을 가지고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3.1운동에 실패하자 뜻있는 사람들이 기미유영회를 설립하고 뛰어난 청소년들을 해외에 유학시켜 장차 국권회복의 대들보를 양성하려 하였다. 기미육성회의 장학금으로 독일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은 안호상,이극로였다. 안호상은 1925년 5월부터 독일의 예나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였다. 1929년 동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는다.그는 한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으며, 한독협회 한국측 회장을 역임했다. 이극로는 1928년 베를린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김준연은 1922년 독일 베를린 대학 법학부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였다. 이강국도 베를린으로 갔으나 결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외에 1920년에 백성옥이 뷔르츠부르크 대학에(1925년)서 철학박사 학위를, 김현준이 베르린 대학(1928년)에서 신문학 박사 학위를, 윤치형이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이갑수가 베를린대학(1924)에서,박계명(1926년)정석태(1927년)가 푸라이 부르크 대학에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미륵의 경우는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t)를 써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1950년 3월 20일 뮌헨 교외에서 타계하였다.

3. 대학생과 해외 한국 유학생 현황

그럼 한국 유학생 선교운동을 하는 차원에서 지금 한국의 해외 유학생 수는 얼마나 되는가? 를 살펴 보기로 하자. 한국 유학생을 파악하기 전에 세계 대학생과 한국 대학생을 알아야 그 통계 비율을 알 수 있다. 우선 현재 전세계의 대학생 숫자는 1994년 11월 기준으로 약 6천만명이라고 한다. 이들 중 기독 학생은 1천만명이다. 약 16%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생은 1994년 현재 모두 1백6십만명이다. 이들 중 기독 학생이 35만명이다. 전체 대학생 중에 약 22%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 중 개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거나 15개의 선교 단체에서 제자화되어 있는 학생들은 고작 16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약 10%만이 적극적인 기독 학생이라고 보아야 한다.37) 그러면 해외 한국 유학생들은 얼마나 되는가? 1993년 5월에 발행한(1992년12월현재)외무부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62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숫자는 남자가 5만2천3백11명이고, 여자가 3만3천5백44명으로 총8만5천8백55명이다.38) 이 숫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난 2년 사이인 93,94년도에 증가된 숫자를 볼 때 십만 4천명 정도로 보면 된다. 여기다 정식 학교에 등록한 학생 외에 미등록 학생이나 지역 유학생회나 공관에서 파악하지 못한 비통계 학생과 단기 언어 연수를 위한 학생들을 포함하면 필자의 통상적인 통계로는 십삼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할 수 있다. 한국 유학생이 진출한 나라가 62개국이니 한국 유학생들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 구 공산권의 붕괴로 구소련을 비롯하여 중국, 동구라파는 물론 모슬렘 권까지도 진출해 있다. 이전에는 선진국만을 선호하던 해외 유학이,이젠 전문성을 띤 유학이기 때문에,비록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나,보건 위생적으로나,문화적으로 후진국일지라도 언어와 문화,예술과 학문 연구를 위하여 한국 유학생들은 어디든지 나가 있다. 특히 언어를 위하여서는 베트남도,인도도, 아프리카도 개의치 않는다.

 1) 대륙별 현황 39)
 대 륙 별          남          여         합계      비고
1.아시아         14,688      9,426      24,114
2.북미주         27,780     16,492      44,272
3.라틴 아메리카     146         77         223
4.동서 유럽       9,608      7,527      17,135
5,중동아시아         82         22         104
6.아프리카            7                      7

 2)국가별 현황 40)
 대 륙 별   나 라 별       남         여        합계      비고
1.아시아  1.일본        10,441      6,343     16,784
          2.뉴질랜드       433        342        775
          3.대만           570        545      1,115
          4.말레이지아      23         17         40
          5.몽골            15         10         15
          6.미얀마           2          0          2
          7.베트남           2          0          2
          8.스리랑카         2          7          9
          9.싱가폴          20         11         31
         10.호주           987        776      1,763
         11.인도           110         55        165
         12.인도네시아      34         36         70
         13.중국           579        302        881
         14.태국           202        200        402
         15.파키스탄         4          0          4
         16.파푸아뉴기니    19         13         32
         17.필리핀       1,190        747      1,937
         18.홍콩            55         12         67
          합   계       14,688      9,426     24,114

2.북미주 1.미국         27,352     16,273     43,625
         2.캐나다          428        219        647
          합   계       27,780     16,492     44,272

3.라틴  1.과테말라           8          6         14
아메리카2.멕시코            47         31         78
        3.베네수엘라         1          0          1
        4.볼리비아          27         14         41
        5.브라질            15          8         21
        6.칠레               1          0          1
        7.코스타리카         5          4          9
        8.콜롬비아          40         13         53
        9.페루               2          1          3
          합   계          146         77        223

4.동유럽1.네덜란드          48         15         63
        2.덴마크             3                     3
        3.독일국가연합     371        228        599
        4.독일           3,965      2,869      6,834
        5.루마니아          15          4         19
        6.벨기에            34         21         55
        7.불가리아           4          3          7
        8.스웨덴            40         29         69
        9.스위스            61         52        113
       10.스페인           168         65        233
       11.영국           1,150        349      1,499
       12.오지리           329        414        743
       13.유고               4          2          6
       14.이탈리아         681        730      1,411
       15.체코               1          5          6
       16.크로아티아         1          0          1
       17.터어키            11          6         17
       18.포루투칼           3          7         10
       19.폴랜드            14         11         25
       20.프랑스         2,638      2,686      5,324
       21.핀란드             2          3          5
       22.헝가리            54         22         76
       23.희랍              12          5         17
        합   계          9,608      7.527     17,135

5.중동  1.리비아             1          1          2
        2.모로코            10          2         12
        3.사우디아라비아     7          3         10
        4.수단               1          1          2
        5.요르단             4          1          5
        6.이스라엘          46         11         57
        7.이집트             8          2         10
        8.튀니지             5          1          6
         합   계            82         22        104

6.아프리카1.가나             1          0          1
          2.남아공           6          0          6
         합   계             7          0          7
  총     계             52,311     33,544     85,855

위에서 본 바로는 유학생이 가장 많은 대륙은 4만4천2백72명으로서 역시 북미주이고,다음이 아시아로서 2만3천6백25명으로 제일 많다.410이로 보아 우리 나라의 해외 유학이 아직도 미국 중심으로 진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이 일본으로서 1만6천7백 84명,그리고 유럽 중에서 독일이 6천8백34명이다.

4. 유학생을 위한 구체적인 사역

우리나라가 1970년대 이전만 해도 해외 유학생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경제 발전을 힘입어 해외 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자유롭게 외구 ㄱ학교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국내 대학의 정원이라는 수적 제한 때문에 입학의 문이 좁아서 매년 재수생이 수십만 명씩 발생하였다. 그래서 뜻있는 부모들은 아예 일찍부터(고등학교 재학이나 졸업후)자녀들의 해외 유학을 유도했고,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 분야는 국내보다는 아예 어렸을 때 해외에서 공부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중에 하나의 원인을 든다면 지방이나 시골에서도 대도시에 대학을 보내는 학비 및 생활비도다 해외 유학비가 저렴하고, 음악이나 예술 분야의 경우 국내 교습비가 해외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비싸므로 국내 교습비로 해외 유학을 시키면서 생활비 및 교습비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공부를 해도 어차피 해외 유학을 하지 않고는 안되는 국내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먼저 세계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외 유학생 선교는 방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고급 두뇌인 해외 유학생들을 전도하며 헌신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물론 지역 교회가 유학생들을 위한 선교 및 목회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동질성을 가진 유학생ㄹ들이 한데 모여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도전받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같이 미래를 꿈꾸게 하며 이들이 서로 연대하여 사역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생을 위한 사역은 다양할 수 있다. 꼭 한 가지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선교 현지에서 해외에서 유학생을 위한 사역자들이 성실하게 사역에 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에서 유학생을 위한 사역을 명분으로 현지 사역자들의 사역에 방해가 되거나 분열의 불씨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 일에 관계되는 자는 누구든지 앞으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1) 신앙 수양회
어바나 학생 선교대회를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듯이 유학생들을 위한 신앙 수양회는 매우 중요하다. 본인이 그동안 기도하고, 계획하고 실시한 유학생 사역을 예로 들어보겠다. 1985년에 본 선교사가 함부르크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유학생 수양회를 개최키로 했으나 예산은 일 마르크도 없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수양관을 계약하고 1987년 9월 준비차 일시 귀국을 하게 되었다. 재정 지원과 강사 초청을 위해서였다. 재정 지원과 강사 초청 수락을 받고,독일로 돌아와 준비한 결과 역사적인 첫번째 수양회가 1988년 3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4일 동안 당시 동독과의 국경지역에 인접해 있는 소도시 힡작커(Hitzacker)에 있는 청소년 수양관에서 열리게 되었다. (Jugendherberger Hitzcker,Wolfsshlucht 2,An der Elbufer Strasse,3139 Hitzcker,West-Germany). 유럽 각 나라와 도시에서 대표적인 유학생 120명을 초청하였다. 그래서 유럽의 유학생 선교회와 수양회가 태동하게 된다. 이제 1995년 2월이면 8년째 맞이하는 수양회가 된다. 지금까지 일곱 번째까지의 수양회는 독일(1,2,3,5,6회)과 불란서(4회),오지리(7회)등지를 순회하면서 개최하였다. 매 수양회 때마다 불신 유학생들이 전도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수십 명씩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다. 그리고 매회마다 90% 이상의 학생들이 자신의 일생을 주님께 드리기로 헌신했고, 선교 헌신자들도 수십 명씩 나왔다.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6회와 7회의 경우는 99%가 결신하고 헌신한 경우도 있었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의자에서 내려앉아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간곡한 모습에서의 영적 감동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모두들 젊은이답게 뜨거웠다. KOSTE는 말씀 중심,기도 중심, 학문과 신앙 중심으로 모으는 공동체이며 수양회 때마다 자체 행사를 통해 공동체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매시간, 매회마다 일어난 역사는 실로 놀랍다. 어떤 학생들은 기적을 체험하기도 한다.그리고 그들은 조국과 민족을 뜨겁게 사랑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학문과 삶에 충실하게 임한다. 그 동안 강사는 연인원 약 70명이 자비량 하여 동역해 주었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강사들과 유럽과 한국 그리고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이에 적극 후원해 주었다. "해외 유학생 가운데 70%가 도피 유학이고, 20%가 연고지 유학이며,불과 10%가 참된 유학생이라는 통계"를 호주에서 낸 적이 있다. 그러나 20%의 연고지 유학생 가운데도 참된 유학생이 있고, 70% 도피유학생으로 규정받은 학생들 가운데도 참된 유학생들이 수 없이 도피 유학을 떠났던 학생들의 수가 많았다. 그래서 유학생 사역자로서 나는 70%의 유학생들을 무조건 도피 유학생으로 생각하거나 단정짓고 싶지가 않다. 그 통계를 다시 세분해야 한다. 곧 도피유학과 조기유학으로 구분해야 하낟. 그리고 어떤 유학을 도피유학으로 규정해야 하는 문제도 현실적으로 민감하다. 그러나 유학생 선교의 입장에선 일단 해외에 유학을 나온 학생들이 어떤 유학의 형태로 나왔든지 간에 모두가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실 한국 유학의 동기를 가지고 유학생을 구분한다는 판단은 섣부른 행위다. 한국 유학생이 증가한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경제적인 여유와 조기교육을 위한 부모의 결단 등이 전제되었지만,우선 한국 교육 어려서든지,,고등학교 재학중이든지,대학 재학 및 졸업후 결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학생들 중에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발휘하지 못한 실력과 재능을 외국에서 발휘하면서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물론 국제 무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유학생,유학생 출신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은 한국 교육 제도의 모순이 만든 작품에 희생된 학생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전화위복의 열매로 보아야 한다. 즉 해외 유학생 선교는 그 어던 특정 대상을 전제로 한 선교가 아니고 유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한 선교이다.

2) 순회 선교 사역
전체 수양회를 개최하는 것과 병행해서 각 지역 유학생들을 찾아가 특별 집회를 개최하는 일과 그들과 상담하고 성경공부를 실시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일은 각 나라와 도시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 동역자들과 연계하여 협력하는 것이 좋다. 집회나 성경공부를 겸하여 각 나라와 지역에서 지역 유학생들을 보살피는 일을 저극화해야 한다.

3) 미국 교회의 유학생을 위한 사역
미국에는 수십만 명의 국제 유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다. 허버트 케인은 "현재 최소한 30만 명의 외국인들이 미국 내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고 있다"고 42) 한다. '미국의 병원에서 일하는 많은 인턴들도 인도,한국.태국 등 아시아 나라 출신들이다. 참으로 그들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만약 그들이 떠난다면 병원들이 자격 있는 요원들의 부족 때문에 절름발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고43)예리하게 지적했다. 유학생들을 선교 현장으로 바로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대선교가 산업 사회의 도래로 인구 이동이 대도시로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20세기의 선교 전략이 도시선교 전략으로 전향했다(그렇다고 농어촌이나 부족선교를 완전 배제하거나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도시는 세계 선교의 황금 어장이다. 도시 선교 및 유학생 선교는 선교사들이 들어 갈 수 없는 나라의 민족을 복음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회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 중 수많은 사람이 선교사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토착 교회가 하나도 없는 나라에서 오기도 하였다. 젊은이는 내일의 지도자들이다.그리고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면 정치,경제,기술(교육,예술)등 각 분야에서 요직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외국인들을 소홀하게 넘길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 와 좋은 친구가 되어 고국에 돌아갔을 때는 우호사절이 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어떤 이들은 고국에 들아가 반미 감정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들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어떻게 취급받았는가에 따라 다르다. 1978년 아프가니스탄을 공산주의자의 손에 넘겨준 쿠데타는 UCLA(로스엔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다녔던 아프간 학생들이 계획한 것이다. 이들 국제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아시아로 가는 선교사들이 당면하는 것과 다름없이 심각한 문화 충격을 여기서 경험한다. 그들은 우리의 날씨,음식,예절,도덕관,그리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숱한 것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들은 자유가 넘치는 우리의 개방된 사회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문화의 어떤 측면-마약,섹스,폭력-에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특히 초기에 극도의 외로움을 느낀다. 심지어 캠퍼스 내에 사는 학생들도 외로워진다. 미국 학생중 아주 소수만이 국제 유학생들의 어려움을 보살펴줄 뿐이다. 교회도 이들 외국인들의 특별한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별로 하는 일이 없다. 심지어 캠퍼스에 있는 선교단체들도 이들을 간과해 버리는 것 같다. 물론 예외는 있다. 어떤 교회는 전담 목사가 따로 있어서 그 도시에 있는 대학 내의 외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도 한다. 많은 캠퍼스에 있는 국제학생회(International Students,Inc)는 그러한 학생들에게만 중점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유학생들 속에서 선교적 차원에서 큰 가능성을 본다. 만약 미국에 있는 동안 주를 알게 되기만 한다면,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게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서구 선교사들에 대해 지금은 문이 닫힌 나라들도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출입국 관리국장으로 뽑힌다면 그문이 열릴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44) 유럽도 마찬가지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이슬람국가,아시아의 힌두교 국가에서 수많은 유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 미국이 유학생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반면 미국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선교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은 세계선교에 전례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85년에는 아프리카 15게국에서 온 약 15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텍사스주 콜럼버스에 모여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선교의식을 불어놓어주기 위한 수양회를 가졌다. 이 수양회는 아프리카 기독학생회 주관으로 열렸는데,이 단체는 35개 대학에 회원이 500여명 된다. 여러 해 동안 유럽의 교회들을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갖지 못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유럽 선교회(Greater Europe Mission)의 10개 성경대학을 졸업한 학생 2,500여명이 이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2년 크리스마스때 유럽선교연맹(European Missionary Association)은 [선교 '83]이라는 선교대회를 열었는데, 42개국에서 7,000명이 참석했다. 전시장에는 250개가 넘는 기독교 단체들이 와서 자신들의 사역을 소개하기도 했다.[선교 '83] 유럽 청년들 사이에 선교의 비전을 고취시키고 선교에 동참시키기 위해 특별히 계획된 것이다."45) 이외에도 해외 유학생들을 위한 사역을 얼마든지 개발하여 사역할 수 있다. 해외의 우수두뇌 인력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유학생 선교는 다음 세대의 일꾼을 양성하는 데 기성세대가 꼭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5. 유럽유학생수양회(KOSTE)

유럽유학생수양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학교선교 운동의 구체적인 사역의 실제적인 예로 이미 앞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바 있지만 여기서 그 역사와 현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제5장/유학생 선교 운동의 방향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학생 선교 운동이 그 목적과 방향을 상실할 때, 오히려 복음을 왜곡시키고,원대한 비전과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한 학생 선교운동을 분열 내지는 몰락시킨 쓰라린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학생 선교 운동 단체가 성경 연구와 복음 전도, 영혼구원, 헌신, 해외 선교에 역점을 두지않고 인종문제,사회 문제, 정치 문제, 경제 문제와 주도권 문제에 역점을 두고, 그 문제점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너무 강조한다든지 주도권을 강탈하게 될 때 여지없이 몰락하게 되었다. 즉 context(상황)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text(복음)가 약화된다. 다시 말해서 기독 학생 선교 운동의 리더는 항상 context와 text와의 우선 순위와 당면하는 문제들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영국의 피트 로우만(Pete Rowman)이 The Day of His Power라는 책에서 지적한 "복음주의 기독 학생 운동은 어떤 종류의 운동을 추구해야 하는가?"에서 다음 12가지의 지침을 제시하였다.
 1. 기독학생 운동은 전도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2. 기독학생 운동은 그리스도의 순수한 제자 양성 운동이어야 한다.
 3. 기독학생 운동은 기도에 전념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4. 기독학생 운동은 성경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5. 기독학생 운동은 철저한 성경 연구 운동이어야 한다.
 6. 기독학생 운동은 효과적인 그리스도인인 학자들을 배춝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7. 기독 학생 운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운동이어야 한다.
 8. 기독 학생 운동은 선교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9. 기독학생 운동은 생활의 전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10. 기독학생 운동은 창조적인 기독교 사상 및 문서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11. 기독학생 운동은 학생 책임에 위탁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12. 기독학생 운동은 민족적 지도력에 위탁하는 운동이어야 한다.46)
만약에 순수한 복음주의 학생 선교 운동이 그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면 안된다. 우리는 이상의 원칙을 근거로 해서 학생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한국 교회의 분열이 학생선교운동의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학생선교운동의 순수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제6장/유학생 선교의 전망

[국민일보]"한마당"이라는 컬럼에 이런 글이 실렸다. 이 이야기는 어느 택시 운전사와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으로 된 것은 서울대 등 몇몇 대학 출신들 때문이요 그 학교들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우리는 희망이 없어요 부정부패 비리 등 각종 사고에 그 사람들 안 낀 데 있으면 대봐요"47) 그렇다고 해서 명문대학 출신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택시 기사도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닐 줄 믿는다. 그러나 개중이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또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러면 비명문 대학 출신들은 그 동안 정직하고 순수했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소리를 이렇게 바꾸어 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인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 때문이요 부정과 부패,비리가 기독교인들 안낀 데 어디 있나 대봐요." 만약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기독교는 물론학생 선교는 정말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학생 선교 사역의 전망은 밝다. 이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진 신실한 지도자들이 깨어 있는 한 말이다. 벌써 유학생 사역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고, 헌신한 젊은이들이 한국과 미국, 사회 전반에 두각을 나타내며 지도자로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한 소망은 있다. 기대해 볼 만하다. 그 기대는 바로 남이 아니고 우리들 자신의 것이다. 이 일이 계속되어 20-30년이 지나면 분명 한국 사회는 달라질 것이 확실하다. 앞으로 한국 유학생들이 가면 갈수록 늘어 날 것이다. 그리고 세계 도처로 흩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된다. 선교사들이 현지 사역에도 성과 열을 다해서 해야 하겠지만,현지 한국 유학생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을 돌보며, 양육해야 한다. 이보다 더 좋은 선교 자원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150여개국에 12,000여명의 전임 사역자 및 자원봉사자를 쓰고 있는 대학생 선교히는 48) 앞으로 20년간 영화 "예수"를 20억내지 30억 사람들에게 보여 줄 계획으 ㄹ갖고 있다. 이 영화는 이미 200여개 언어로 더빙되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결신한 사람들을 위한 육성계획도 다양하다. 90개 설교가 녹음된 테이프를 비롯하여 좋은 책자들을 각 마을에 배부할 예정이다.49) 1985년 12월부터는 10만 명의 학생들을 훈련시켜 전세계적인 전도를 펼칠 계획을 하고 있다. 빌 브라이트는 1990년까지 세계 모든 대학에 복음을 전하기로 했다."50)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선교의 장래는 밝기만 하다. 과거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수많은 박해와 핍박 속에서 기독교는 전래되어 왔고, 마치 쓰레기 통에서 피어나는 장미처럼 그 향기를 발해 왔다. 허버트 케인은 선교의 장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재자들은 왔다가 가고, 왕국은 일어났다. 쓰러지고, 문명은 찬란하게 꽃피우다가 시들어 버리지만 세계선교는 온갖 역사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다. 서구 선교사들이 쫓겨나게 되면 비서구인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선교사를 쫓아낸다고 하나님까지 쫓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51) 허버트 케인의 말은 역사에 그 현실로 실현되었다. 구소련이 그렇고,동독이 그렇고 동구라파가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 모슬렘권 국가들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머지 않아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제 북한에도 복음의 문이 열릴 것을 확신한다. 왕국이나 독재자들뿐 아니라 "다른 운동들은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선교운동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계속되는 이유는 그리스도 자신의 권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 24:14)52) 는 말씀처럼 모든 민족 가운데는 모든 대학과 유학생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오는 말

끝으로,어느 나라에서 또는 어느 선교지에서 사역하던지 그곳에 한국 유학생들이 있다면 디아스포라의 선교적 차원에서 그들을 지도해야 하고,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복음 전파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게 만들고,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사회를 위해 헌신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국내의 학생 선교 운동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외국에서의 유학생 선교 운동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절대적인 사명이다.

해외 유학생 선교 협력을 위한 제언
긍정적인 면에서의 제안
부정적인 면에서의 제안

01.선교는 특허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유화해서는 안된다. 해외 유학생은 선교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피선교지에서 파송되어 있는 지역 선교사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해당지역 선교사가 유학생 선교 사명을 수행하고 있을 때 한국 교회는 어떻게 협력해야 할 것인가? 어느 특정 선교의 경우라도 어느 특정 목사, 어느 특정 교회의 특허품이나 사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혹은 당회장의 사유물처럼 전락되고 있는 또 선교를 후원하는 물질이 선교를 사유화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말하면 해외 유학생 선교 운동이 지교회의 운동처럼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02.실족시키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해외 유학생을 선교하는 일에 있어서 학생들을 복음화하고 헌신케하는 일이 목적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선교 대상인 해외 유학생들을 실족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선교지에서 발족된 선교 운동을 한국 교회는 격려하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야 할 것이다.

03.해외 학생 선교운동은 선교지에서 일어난 자발적 운동을 침해해서는안된다. 해외 선교지에서 일어난 자발적 선교운동을 그 어떠한 명분과 이유로도 침해해서는 안된다.

04.그리고 해외 유학생 선교 운동은 어떤 명분으로도 분열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분열된 위기를 당했을 때 오히려 분열을 방지하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의 일치 운동과 해외 유학생 사역은 별개가 되어서는 안된다.

05.한국 교회는 해외 유학생 선교 운동을 위하여 특별 후원을 해야 할 것이다. 해외 유학생 사역을 위해서 선교비가 필요하다. 특정 교회에 수립된 예산을 집행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매년 모금에 주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차 세대 지도자들을 위한 선교에 한국 교회의 특별 후원이 있어야 한다.

06.해외 유학생 사역 단체는 서로 연대하여 공동 사역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해외 유학생 사역은 어느 특정인의 사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 연대하여 공동전선을 펼쳐 나갈 때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

07.해외 유학 생활 중에 받은 복음과 구원의 확신 그리고 순수한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귀국할 때 모국 교회는 이들을 영접할 주닙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적인 신앙을 가지고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