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유년기와 소년기

1.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환영

그리스도가 오실 때가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임하실 때 세게는 처음에 그를 반기지 않는듯했다.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니라](눅2:7). 여관 주인은 그날밤, 피로하게 보이는 두 나그네를 거절해 버렸다. 이것은 그가 세상에서 당할 거절의 예고이기도 했다. 여관 주인의 거절상황을 분석해 보자.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 발표에 이 여관은 만원이 되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주인에게는 더 없는 행운이었다. 그에게는 조금의 여가도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하였다. 이처럼 분주한 사람에게 밤늦게 찾아온 두 나그네의 딱한 사정이 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만일 거절하지 않는 다면 이미 들어있는 다른사람을 내어 보내야만 했다.그들의 차림새가 가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돈이있는 사람처럼 보였더라면 여관 주인이 끝까지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탄생하실때 당하신 거절과 같이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기의 바쁜 수입 때문에 예수를 거절하고 있다. 지금 당장 그리스도가 오셨다해도 사람들은 다른 일을 위하여 딴 곳으로 가버릴 것이며, 자기들의 문 밖에 초라하게 서 있는 예수를 멸시하고 다른 일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이미 사도 요한이 밝힌 바 있다. [그가 자기 땅에 오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니라](요1:11)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거절만 당하시지는 않았다. 그를 환영할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복음서가 밝혀준다.

(1) 그의 모친이 영접했다.

성경에는 모성애를 찬양하는 기사가 여러 곳에 있다. 십계명에 어머니에게 행할 이상적인 효도의 기록이나(출20:12),잠언서에 [그 자식들이 일어나서 사례하며](잠31:28) 한 귀절이나 사26:13에 [하나님의 위로는 자식을 위로하는 어머니의 위로와 같다]는 말씀과, 신구약에 기록된 유명한 어머니들,즉 한나,룻,스빔여인,엘리사벳,살로매,유니게 등 여러 어머니들의 행적을 성경은 높이 평가한다. 그 여러 어머니 중에 가장 숭구한 어머니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다.

첫째, 마리아는 경건한 여자였다. 세상의 많은 여자 중에서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시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뽑힌 여자다. 어리신 예수께서 맨 처음 기도를 이 마리아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드리셨다.

둘째, 마리아는 고독을 참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여자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우주적인 사업 계획을 천사로 부터 전달받은 시간부터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였던 숭고한 의로움의 경험자였다(눅2:19).예수께서 어린 시절 지내시던 그 집을 자기의 사명 때문에 떠나시는 날도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더할 수 없는 고독의 날이었고, 더우기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 마리아가 서 있었다](요19:25)-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 아닐까?

세째, 마리아의 고귀한 희생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그를 우러러 보게 하낟.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했다.[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워지이다](눅1:38).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칼이 그의 마음을 찌름같은 일이 있으리라](눅2:35)고 말할 때에도 마리아는 그에게 주신 하나님 아들의 아름다움과 그 거룩함에 대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 목자들이 그를 환영했다. 그림 : 목자들의 경배 :별을 따라 찾아온 목자들이 암굴로 된 마굿간에서 막 탄생 한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의 훌륭한 옷과 왼쪽 두 목자들의 옷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91*111cm 미국 내셔널 캘 러리 소장.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보려고 목자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주님의 환영 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그들의 노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편23편)와 같이 목자의 기사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예수 자신이 자기를 선한 목자라고 말했으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하나님의 목자라고 증언했다(요10:11).

주의 영광을 가장 먼저 바라본 사람들은 특수층의 사람이 아닌 평범한 베들레헴 목자들이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이 영광에 가장 먼저 접했다는 것은 첫째, 자기들의 일에 충실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지키는데서 환상을 본것이며, 둘째 항상 깊이 있는 생활의 내면을 가지고 순진한 태도로 경건을 지키며, 어린 아이의 심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가장 쉽게 열리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덜붙임으로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를 새벽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는 그에게 기적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다(눅5:8).로렌스 형제(Brother hawrence)는 어느날 시골 길을 홀로 걸어가는 도중 움을 피우는 봄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했고 잔다크는 소년시절 그가 출석하는 시골 교회에서 영을 체험했고,프란시스 톰슨은 런던 거리의 소요 중에서 묵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야곱의 사다리는 하늘과 고민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이에 놓여졌다고 말했다 (창28:12).

(3) 박사들이 환영했다.

전설에 의하면 박사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아시아인이고 한 사람은 아프리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예물을 가지고 아기 예수를 찾아 베들레헴까지 간 데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복음은 모험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그들의 사랑하는 가정을 멀리 떠나[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못하는 길을 걸어 갔다](창12:4,히11:8).

둘째, 복음은 시대와 사상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박사들은 당시의 과학자요 사색가였다.

세째, 복음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에게 도전한다는 것이다.

[두로의 딸이 예물을 드리고](시45:12). [구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시68:31). 고 노래한 바와 같이 어둠이 짙은 동양과 아프리카에 사는 각 민족이 자기들이 가진 가장 귀중한 보물들을 바쳤다. 이렇게 하여 박사들은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하는 세 가지 조건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는 모험을 요구하신다. 특별히 청년들에게 모험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는 사상가를 요구하신다. 이 세례를 받고 예수의 이름 아래 엎드리기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의 공헌을 요구하신다.각국 사람들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정신적 이해의 풍성을 바치기를 요구하신다.

(4) 시므온과 안나가 환영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눅2:25)고 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종교를 위하여 크게 공헌한 사람이다. 팔레스타인은 종교가 만연된 국가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심령에서 울어나오는 종교심보다는 외부적인 사건을 처리하는 객관적 요소에 의하여 의식으로 지키고 있었다. 서기관들은 종교를 직업화시켜서 그 속에 하나님의 성화는 무미건조한 교회주의 (교권주의)로는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타오르지 않고 세속 속으로 종교를 끌어 들이고 있었다.그들은 회의적이고 기회적이었다.

다음 세롯당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들은 종교를 민족주의에 토착시킨 사람들이다. 로마 정부에 항거하고 유대국을 회복하자는 야망에 집착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의 심령을 집착시킬 수 있는 정당은 못되었다.

이스라엘의 참된 애국자들은 겸손하고, 조용하고 경건한 사람들로서 사두개인이나 서기관들과는 단 5분의 대화도 빈번하게 생각했으며, 지혜로운 랍비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자로 보였고, 열광적이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세롯당을 충고할 기회조차 없었던 무명의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 가령 기도라든지,하나님 앞에서 갖추어야 할 마음의 청결같은 일에 대하여서는 전술한 모든 종교가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다.시므온과 그 동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누룩이 되었으며 기둥과 주춧돌이 되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올라 왔을때 시므온은 예수를 품에 안고 축복해 주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 시골 여인이 안고 온 아기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시므온만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보는 영적 식별력과 예수를 알아보는 영안이 있었다. 그가 예수를 품에 안고 환영하는 광경을 주의해 보라.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새 시대를 받아들일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낡은 시대의 풍속을 고집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나무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마음은 열려 있었으며 하나님의 지선이 그에게 임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의 상승인 아기 예수를 마음껏 축복해 주었다. 마치 황혼이 깃드는 석양에 피로한 노동자가 종업을 고하는 종소리를 들은듯,또는 여명을 보고 기뻐하듯이,시므온은 그 아기를 말미암아 찾아온 새 시대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다. [주재여 이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눅 2:29). 하나님은 이렇게 육신을 입으셨다. 그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부서진 세계를 수선하는 하나님의 사업은 서장을 올렸다. [아기가 자라며 강건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

2. 아버지의 일

그림 : 콜롬바의 제단화(중앙부) 19세기 중엽까지 쾰른의 콜롬바성당에 있었던 그 림으로 이 부분은 동방 박사의 경배장면이며. 이 그림의 왼편에는 수태고 지. 오른편에는 성전봉헌과 그리스도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시간적인 순서로 그려져 있다. 패널.유화.138*153cm.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이전,30년 동안의 생애에 대하여는 전해 내려오는 기록이 없다. 신약 외전에는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모양의 전설로 전하고 있으나 그것은 신빙성이 없고 관심 둘만한 것이 못된다. 오직 30년 간의 생활 중에 우리에게 알려진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12세 때 유대인의 다른 어린이들과 동등하게 [율법의 아들]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 축하에 참석한 사실이다(눅2:42이하).(스콧틀랜드의 소년들이 교히 의식에 참석하고 성찬식 때 신앙 고백을 하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0.

예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 성전과 그 도성에 대한 인상이 어떠했겠는가 상상해 보자. 기념식이 끝난 다음 그는 성전에서 발견되었다. [왜 나를 찾으시나이까?] 고 물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곁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 2:49). 이 말은 복음서 기자가 우리에게 전해준 예수님 최초의 말씀이다. 이 말 한마디가 그의 생활 전모를 전해 주는 약도라고 하겠다. 그의 생애의 모든 기록과 십자가의 사실까지가 이때에 하신 말씀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때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짊어지고 가실 십자가의 무거운 짐으로 말미암아 외롭게 살아가야 할 전조를 볼 수 있다(눅 4:23,요6:667:5).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여기에 [집]과 [일]이란 두가지 번역은 같은 의미를 가진다.여기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점이다.청년기는 그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후의 다른 기록이 없으니 그후 18년간의 생애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 이 알 수 없는 장면을 복음서 기장 중 누구가 말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실을 그 기록으로 알 수 있었겠고, 또한 그의 소년기와 나사렛에서 지낸 청년기와 동시대 사람들의 기록이 있었다면 예수의 생애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누가가 누가복음을 편집한 이면에는 예수의 모친 마리이가 제공한 재료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누가마저도 이 닫힌 문을 열어 주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그것이 감ㄷ추어지는 것이 더 잘된 일인 것 같다. 감추어 둔 그 사실은 신자의 경건 수행에 유익하고 그리스도의 준비 기간의 침묵은 한 거룩한 기초라 할 수 있다.

3. 소년기의 감화

그러나 그리스도의 준비 기간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내면적인 문제 보다 우선 외부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의 생애와 관계된 자연,인간성, 그리고 성경, 아버지의 일터 및 그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외부의 제반 관계를 통하여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깊고 끝없는 영교의 생활을 계속한다.

(1) 자연과의 관계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셨는가에 대하여 분명히 나타나 있다. 복음서 기자들이 이런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전기독교 역사와 세계를 다스린 많은 스승들의 아름다운 교훈들, 즉 들의 백합화(마6:28),추수의 비유(요4:35),자라는 씨앗(막 4:28).공중의 새(마8:20),양을 기르는 일(눅15:4)등을 통하여 어느 시인 보다도 그가 자연을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농촌 출신이었고 그의 생애의 기록 여러 곳에 농부의 비유가 전개되었으며, 나사렛에서 보낸 청년 시절에 자연을 사랑했던 흔적이 자연의 묘사 자연을 통하여 들을 수 있는 음성이 보여 준다. 이런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과 대조시켜 보면 흥미 있는 일이 있다. 왜냐하면 도시 출신인 바울의 글에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도회지의 광경이 여기 저기 나온다. 예를 들어 건축가(고전3:10).군장 (엡6:13),헬라의 육상경기(고전9:24)등은 모두 농촌에서는 취재할 수 없는 도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언덕과 골짜기,그리고 봄의 곡식밭,지나가는 바람의 광경을 바라볼 수 있으리 만큼 농촌의 냄새가 풍긴다. 그리고 그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자비를 베푸시는 증거를 보여 준다.

(2) 인간성과의 관계

그의 준비 기간이 침묵 중에 흘러갔지만 여러 면으로 보아 예수는 그 기간에 인간성을 배운 사람이다. 장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광경(눅 18:1),농촌에서 자란 한 청년이 도시로 뛰어나가 허랑방탕하는 광경(눅15:11),한 광부가 지방 관리에게 가서 사정하는 광경(눅18:1).회당과 거리 입구에서 기도하는 외식가들의 모습(마6:5)등, 이런 모든 것은 그가 인간성을 배운 좋은 재로들이었다고 하겠다.따라서 그는 나사렛 침묵 기간에 이런 것을 배웠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인간성을 잘 배웠다는 것을 요한이 솔직하게 소개한다.[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오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게 대하여 아무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라](요2:24).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을 심리학적으로 연구만 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그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의 모든 희비곡절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약점과 장점을 통하여, 또한 그들의 범죄와 그 극복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을 사랑하셨다.

(3) 성경과 예수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이었다. 구약은 유대인 교육의 주초였으며, 기둥이었다. 유대의 다른 어린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창세기,신명기,시편,이사야,예레미야 등의 성경을 읽으며 자라났다고 하겠다. 그가 장서한 때까지 오랜동안 성경을 읽고 반복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목표를 세우고 연구했을 것이다. 광야에서 시험을 바으실 때, 성경 말씀으로 그 모든 시험에 승리 하셨다(마4:7-10). 거룩한 영이 자기에게 임하심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가르쳐 주셨다(사61:1,눅4:18).그가 만민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될 때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어떻게 고통받으실 것을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성취하셨다(사53).그의 영혼은 자기 백성들에 대한 구약 성경의 말씀에 몰두되어 있었다.

당시 히브리어는 죽은 문자로서 일반에게 사용되지 않고 다만 母語였다.70인역에 이미 구약이 헬라어로 번역은 되었지만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고 연구하셨다. 당시 상용어는 히브리어가 아니고 셈계통의 아랍어였다. 그러나 헬라어 상용의 시대로 바뀌어 팔레스틴의 주민들은 두 가지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도 헬라어를 사용하실 수 있었지만 아랍어를 사용하셨다. 복음서가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그중에는 예수께서 아랍어를 널리 사용하신 흔적이 있다. 모두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씀으로서,[달리다굼](막5:41),[예바다](막 7:3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등이 그 예다.그러나 구약 성경 인용에 보면 예수님은 히브리어를 더 잘 알고 있었다.

(4) 직업 관계

예수님은 나사렛의 목수였다(막 6:3).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지상에서 보내신 생활의 대부분을 목공예로 소비했다는데 깊은 의미가 있다.[직장 기계를 제작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람을 연단시키는 곳이다.]라고 헨리.드로몬드가 말한다.예수님이 하신 목공업은 그리스도의 영혼을 다듬기에 좋은 처소였다고 하겠다. 이 나사렛 사람이 그 익숙한 기술을 발휘하여 멍애와 농구와 가구들을 만들어 봉사한 것은 곧 ㅏ나님을 위한 봉사가 되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모친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 아버지의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고로 노동의 신성이 예수님의 생활에서부터 인정되었다. 직업 귀천의 차별이 그리스도에게는 없었다. 수공업이든,중노동이든, 기술직이든, 어떤 일이라고 하나님을 모시고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거룩한 일이다.

죄인이 받을 비난도
수욕의 십자가도
사랑으로 대신 짊어지셨네
나사렛 목수가 걸어가신 길
등에 지신 무거운 그 짐
모두가 다 같이 하는 일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바쳤네.

나사렛 목수예수의 집 문밖에는 [내 멍에는 쉽다](마11:30)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그런 간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만드신 멍에는 나사렛 사람들이 쓰기에 가볍고 쉽고 또 꼭맞는 것이었을 것이다. 소에게 메울 멍에를 만드신 그 예수님이 또한 하늘나라 일군들을 위한 멍에를 만드셨다.

(5) 가정관계

예수님은 대가족을 가진 가정에서 자라났음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마13:55,막6:3). 그 아버지 요셉의 이름은 별로 그의 전기 중에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그는 일찌기 세상을 떠났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는 맏아들로서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정의 책임과 의무를 담당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가정에서 된 일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잃어버린 동전 한푼을 찾기 위하여 온 집안을 쓸고 찾았다는 이야기 (눅15:8),가루와 누룩 이야기(마13:33), 밤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이웃집 사람을 깨워서 떡을 빌려온 이야기(눅11:5),등경 위에 둔 등불 이야기(마5:15),어린애들이 무엇을 먹고 싶어서 간청하는 이야기(마7:9)는 모두 마리아의 가정에서 일어난 구차했던 생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예수의 가정 생활에서 윤택함을 보여 주는 귀절은 없다. 후일 무리들이 예수를 조롱할 때에 [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13:55)고 한 사실로 보아 그의 가정이 당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한 곳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자란 곳이며 화평한 가정이었고 하나님도 이 가정에 함께 했었다. 기록되지 아니한 침묵의 기간에 이 가정에 그는 충성을 다했으며 자기의 가정을 그는 신성하게 이끌어갔다. 이 다섯 가지 관계가 그의 지상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 요소들이다. 30년의 생활기록이 우리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혼돈한 세계를 다시 일으키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자세하게 보여 주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이 갑자기 그에게 임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위에 보내어 일하게 하셨다.

매일 성경


 눅 1:26-35    주의 사자
 눅 1:46-56    마리아의 노래
 눅 2:8-19     베들레헴의 들
 마2:1-12      동방박사들
 눅 2:25-40    노년이 청년을 환영함
 눅 2:41-52    성부의 사업
 눅11:5-8      소년시절 가정에 대한 기억
 눅15:8-10           "

 

토론을 위한 문제

1.나사렛에서 예수의 "고요한 시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2.그 복음서는 예수의 구약성서 묵상에 대해 어떤 증거를 제공하며 오늘의 구약성세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3.성육신이 어떤 의미에서 유년과 부녀와 가정 생활을 구했는가?

4.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매지 아니하였으나 역사는 이점에서 반복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