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Index Previous chapter, Next chapter, Previous Book, Next Book, KJV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하다

(요 7: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요11:8
(요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요 7: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요 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 7: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 7: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요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요 7: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요7:2
(요 7: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시다

(요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요 7:11)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요11:56
(요 7: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요 7: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요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요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요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요 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요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요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요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수를 잡고자 하나

(요 7: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요 7: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요7:48
(요 7: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요 7: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요 7: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요 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 7: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1)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요 7: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 7: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요 7: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사55:6, 요8:21
(요 7: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요 7: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요 7: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요 7:42) ㄱ)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미5:2
(요 7: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요 7: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요7:30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믿지 않다

(요 7: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요7:32
(요 7: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요 7: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요 7: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고전1:20
(요 7: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요 7: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잠18:13
(요 7: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음행중에 잡혀온 여자가 용서 받다

(요 7:53) 2)[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1. 혹 이적 2. 어떤 사본에, 7:53부터 8:11까지 없음
삼하7:12 이하, 미5:2

7:1-13 초막절 예루살렘에서
1절 이후에요6:4유월절 직전(4월)에 일어났고 2절 초막절이 가까운(10월 중)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 약 6개월 동안 갈릴리에서의 사역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 갈릴리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는 유대(예루살렘)보다는 안전한 곳이었다. 요한은 유월절초막절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6장에서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마태는 마14장-18장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2절 초막절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로 맥추절, 유월절과 같이 구약에서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명문화된 절기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잘 지켜 내려온 것이 틀림없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 한 것(출23:14-16)을 기리기 위한 절기로 가나안 땅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 거처하던 것(레23:42-43)에서 유래했다. 이 때는 유대인의 종교력으로는 제 7월 15일에 지켰는데(레23:33, 36)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대략 10월 둘째 주에 해당하며 초막절은 속죄일이 지난 후 5일만에 시작되고 그 후로 8일간 계속되었다(레23:33, 36, 신16:13-17). 이 절기는 또한 추수감사절의 성격도 갖고 있어 "수장절"이라고도 불렀다(출23:16).

1.초막절의 어의와 명칭
레위기 23장 34에 의하면 "초막절을 지키라"고 했다. 그 구절이 영어 성경에는 "The Feast of tabernacle"로 되어 있다. 히브리 원어로는 (칵핫 숙코-트)로 되어 있으며 신명기 16장 13-17절에서는 레위기와 같은 어근이나,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즉(칵 핫 숙코트)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히브리(와어 홀렘) 대신에 히브리어 모음인 (홀렘-Helem)으로 되어있다. 그 근본 뜻이나, 명칭이 달라진 것이 아니며 같은 뜻의 명칭이다. 또 에스라 3장 4절에는 (하숙코-트)로 되어 있어 절기라는 단어(칵)가 생략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8장 14절에는 (빠숙코-르)로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빠)라는 전치사"....에","....안에"와 (하)라는 정관사(2=the)를 합한 것이며,(숙코트)는 "초막","장막","거처"라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스가랴 14장 16절에도 같은 단어가 기록되어 있으며, 오직 호세아 12장 9절에만 다른 단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에 기록된 초막절은 (칵 하숙코-트)로 통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샤카드) (샤카드)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그 어근의 뜻은 "덮는다"(to cover),"보호한다"(to protect),"덮는 것을 둔다"(to place as a coverings)는 뜻이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샤카드)에서 (숙코-드)가 파생되었다. 그 뜻은 "오두막","토막"(booth)이다.

그러므로 원어에는 "초막절"이나 또는 "초막"이란 의미가 없다 한글 성경에도 "초막"이나,"초막절"로 번역한 것은 의역인 것이다. 이때에는 장막을 지어 그 장막에 거하게 되었다. 즉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실과와 종료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 할 것이라(레23:29-44)고 했다. 느헤미야 8장 15-17절에 보면 이스라엘로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돌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 나무 가지와 종료나무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된 바를 따라 장막 또는 오두막을 지으라"고 했는데, 그 나무 가지들을 가지고, 지붕 위에, 하나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에브라임 광장에 장막을 지었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초막을 짓고 초막절를 지켰으나, 원어의 뜻은 장막(회막, 오두막)을 짓고 장막절를 지킨 것으로 되어 있다.

2.초막절의 유래
초막절 또는 장막절은 그 역사적 기점을 광야생활에 둔다고 하겠다.132)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 40년 간 이 장막에서 살았다. 그들은 그 장막 생활을 하는 중에 나뭇가지를 사용하게 된 목적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광야 즉 사막의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는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덜고 피하는데 장막 지붕에 나뭇가지로 가리우는 것과, 둘째는, 광야에 거주하는 원수들에게 그들의 거처를 은폐하는 위장의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셋째는 그들은 그들의 예식대로 감람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또 그것이 없을 때 각종 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흔들며,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와서 승리를 가리기 위하여 그 가지들을 장막에 장식하기도 하였다(레23:40). 그러나 위의 학자들의 학설은 이론 뿐이요, 확증이 없다. 그 이유는 광야 생활이 무덥고 추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또 은폐나, 적에게서 승리한 기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레23:33).그리고 그들은 그 명령에 따라서 행했다. 즉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지시에 순응한 것뿐이다(레23:33). 그들은 그 명에 따라서 계속적으로 지켰다(스3:4)

그때에 그들은 누구의 명령에 의하여 소집된 것이나, 지킨 것이 아니라 전례에 따라서 지킨 것이 나타나 있다(스3:1-2). 그러므로 이것으로 보아
(1) 포로시대 이전에 지켜왔다. 그 증거가 겔45:25, 호12:9, 슥14:14 등이다.
(2) 포로후 시대에도 지켰다. 우리는 포로시대에 이 절기를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포로에서 귀환하여 그들은 이 초막절을 지킨 것이다.
(3) 그 후에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다시 지켰다(느8:14).
(4) 그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초막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초막절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초막절의 실행을 암시했다(요7:2).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보아 초막절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하여 지켜온 것이다. 이 절기는 전통적인 절기이다.

3. 초막절을 지키는 방법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지켰다. 그때는 추수를 다 마친 때이다(레23:39). 그 추수를 마친 후에 8일 동안 지키게 되어 있다. 첫날부터 7일동안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말고 매일 화제를 드리라고 하였다.

(1) 화제의 방법
매일 드리는 화제는 레위기 23:37절 이하에 보면 나타나 있는데, 번제, 소제, 희생과 전제를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민수기 29장12-40절에 보면 일주일간 매일의 행사법이 잘 기록되어 있다. 즉


 첫째 날    a) 번제로:수송아지 13 수양 2,1년된 수양 14.
            b) 소제로: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13에 각기 에바
               십분지3,수양 2에 각기 에바 십분지 2,어린양 14에 에바  십
               분지일을(그리스도의 속죄 희생과 영,육의 은혜와 축복에 감
               사하는 감사제).
            c) 속죄제로:수염소1.이상은 번제와 소제와 전제외에 드리는 것
               이다(민29:13-16).
 둘째 날    a) 번제로:수송아지 12,수양2,어린 양 14.
            b) 소제와 전제는:수송아지와 수양관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고.
            c) 속제제로:수염소 1.그 이상은 첫날과 같다(민29:17-19).
 셋째 날    a) 번제:수송아지 11,수양2,어린양 14.
            b) 소제와 전제는 위 짐승들의 수효에 따라서 규례대로 드리는
               것이다.
            c) 속제제로:수염소 1,이상의 네 번제, 소제와 전제 외에니라
               (민29:20-22).

 넷째 날   번제와 쓰는 수송아지는 10일 뿐이요, 다른 짐승은 다른 날과 같고, 
           그 짐승에 따라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되었고, 속제제로 수염소 하나를 
           드리는 것도 같다(민29:23-25).
 다섯째 날 번제와 쓰는 수송아지가 9이고, 다른 것은 네째날의 규례와 같다(민29:26-28).
 여섯째 날 번제의 수송아지는 7이고, 다른 규례는 전날과 같다(민29:31).
 일곱째 날 번제의 수송아지 7이고, 다른 규례는 위와 같다(민29:32-34).
 제 8일은  "거룩한 대회"로 모이는데 아무 노동도 하지말고 화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되었다(레23:3639). 이때의 화제는 민수기 39장 35절 이하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a) 번제:수송아지 1, 수양 1, 1년 된 어린 흠 없는 수양 7,
           b)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수양의 수효에 따라서 규례대로 
              드리게 되었다.
           c) 속죄제는 수염소 1이다.
              이상의 것을 보면 8일간에 번제에 쓰는 수송아지의 수효가 매일 다른 
              것이다. 또 그 수송아지의 수효에 따라 소제와 전제가 다른 것이며, 
              속제죄는 같은 것이다. 
(2) 초막적의 실행 대상자
초막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신명기 13장 16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성구에 의하면 이하의 사람은 절대로 공수로 여호와께 나와서는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데 따라 힘써 물건을 드리게 되어 있다.
  a)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
  b) 이스라엘 백성의 자녀.
  c) 이스라엘의 백성의 노비.
  d) 이스라엘의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e) 이스라엘의 손님(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f)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며 잔치하면서 지키는 것이다. 

(3) 초막을 세우는 방법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지키는 첫날에 아름다운 나무의 과실을 초막에 두고,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의 가지와 시내버들의 가지를 취하여 지붕 위에와 주위에 장식하게 되어 있다(레23:40). 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에 따라 1천여 년 동안 실천하여 내려 왔는데, 주전 450년경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초막절은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돌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 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지붕 위에, 뜰 안에, 하나님의 전 뜰에, 수 문 광장에,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 애굽에서 나온 것과 광야의 생활을 기념하면서 크게 즐거워하였다. 즉 과거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인도와 그의 축복과 아울러 조상들의 고난과 그 누린 덕을 기리면서 자기들의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서 즐겼던 것이다.

4. 초막절의 영적 의미
초막절은 7월 15일에 지켰다. 이때는 농산물의 최종 수확기이다.133) 이때에 절기를 지켰다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레위기 23장 40절 이하를 보아도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과실"을 가지고 가서 초막절를 지킨 것이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추수기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아름다운 열매와도 관계를 가진다.
신약성경을 찾아보면 예수님은 추수의 열매와 성도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다.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하라고 했다(마9:37,눅 10:2).이것은 복음선포와 교회 형성을 말씀하신 것 같다. 또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요4:25)라고 했다. 이것은 복음선포와 영혼을 수확하여 주의 창고인 교회에 저장하는 것과 같다.
전에 논한 제사들은 교회에서 실행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 구원만이 아니라 천국 시민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리며 즐거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대적 마귀와 죄악의 세력을 주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고 개선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이 아니다. 성경은 그것보다 더 영적이고, 신령한 추수를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보면 교회와 천국을 씨뿌리는 것과 추수로 비유하였다. 즉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는데 추수 때에 추수군 들에게 명하여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했다. 이것은 현재에 교회에 참 신자와 사탄의 종자가 같이 자라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혼란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의 재림 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그것들을 심판케 하신다. 그들에게 상벌이 있게 된다.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마4:29도 같다). 더욱이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을 보면 심판을 추수로 비유했고, 천사가 땅 위의 인간 즉 곡식을 수확하는 기록이 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주님이 재림하심만 아니라 그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택한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겠고" 천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했다.

3절 그 형제들은 예수의 친족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막3:31 이하에서 예수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은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막6:3에는 그의 자매들은 나사렛에 그대로 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가버나움으로 이동해 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일시적으로 여럿이 다니러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1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메시야 되심을 유명한 절기이며 유대(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메시야임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전하면 요6:66에서 잃었던 많은 제자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4절 이들은 예수께서 이런 갈릴리 촌구석에 묻혀서 일한들 무슨 메시야가 되겠느냐고 말하며 세상에 드러낼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예수를 믿지않고 있었다.
6절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kairo;"(카이로스) "때"는 흘러가는 crovno"(크로노스) "시간"(요5:6, 12:35 등)과는 다른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의미한다. kairo;"(카이로스) "때"는 요7:6, 요10:22, 요19:14에 더 나타나며 눅9:51에서는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로 나온다. 신약의 다른 곳(롬2:14, 고후6:2, 고후10:10, 엡5:16, 딤후3:1, 딤후4:3, 히5:12, 벧전4:3, 17, 5:6, 계1:3, 계12:12, 계14:15, 계22:10)에도 나타난다.
예수의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정해진 때가 없이 아무 때나 유대에 오고갈 수 있었지만 예수께는 때가 따로 있다는 말씀이다.

8절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고 10절 자기도 올라가셨다. 이런 상황은 첫 번째 표적(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예수께서는 왜 이렇게 상반되는 말씀을 하셨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형제들의 불 신앙적 요소를 거부한 것이지 예루살렘에 가는 것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 지금 가지 않겠다는 뜻은 형제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가는 무리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단순히 성전을 방문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가지 않겠다는 등의 뜻으로 보고 있다.) 어떤 입장을 따르든지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지만 아직까지 그의 때가 이르지 아니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예루살렘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입성하시는 그 때를 말씀하신 것 같다.

11절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에 예수를 찾는 목적이 불순하다고 생각하나 12절의 혹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부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로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이미 예수의 소문은 유대에 퍼졌고 그들은 어떤 목적에서든 예수를 만나고자 했다.

7:14-24 예수의 변호
14절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자신이 드러나게 되는데도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군덕거리고, 미혹하게 한다(12절)는 등의 그들의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15절 기이히 여겨 qaumavzw(데우마조)는 "이상히 여기며 놀라다"이다.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는 말은 이들의 관심이 예수의 교훈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어디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이유다. (칼빈은 이에 대해서 '이들이 예수를 잘 보기 위해서 한 말이기 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멸시의 이유로 삼고자 했다'고 했다.)

16절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단순히 병자들만 고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지식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우리와 같이 아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말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어디서 배운 적이 없는 정통성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는 뜻이다.

17절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한마디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교훈은 단순한 철학과 배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교훈도 진실로 알게된다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와 같은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18절 스스로 말하는 자는 예수께서 자의적으로 이 일을 한다면, 일종의 천재였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면 자기 영광만 구하는 것인데 자신에게는 그 어떤 세상 적인 욕심이 없고 보내신 이의 영광만을 구하기 때문에 불의가 없느니라 12절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는 말에 대한 반론이기도하다.

19절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경우에 비교함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말하셨다. 모세로부터 온 '살인하지 말라'(출20:13)는 기본적인 계명도 이들은 서슴없이 행하려고 하고있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차린 예수께서는 이들이 얼마나 모순이 있는지를 설명하신다.

20절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는 말은 자신들은 계속해서 잘못이 없고,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 회개치 않고 예수께 그 책임을 귀신이 들렸다 함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말은 전에 세례요한에게도 한 적이 있었다(마11:18).

21절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이것은 요5:1-18의 베데스다 못 가에서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쳐주신 것을 말한다.

22-23절 모세의 율법은 "제 팔일에 아이의 양 피를 벨 것"(레12:3)을 명하고 있다. 만일 이 날이 안식일과 겹친다면 이 아니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신체의 일 부분의 정결 예식이 허락된다면 전신을 온전케 하는 일(병자를 고치는 일)도 당연히 아무것도 노여워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24절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이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이들은 진정한 할례의 영적 의미는 잊은 체 보이는 외모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신10:16, 신30:6, 렘4:4, 겔44:7). 바울도 이러한 마음의 할례 받기를 강조했다(롬2:25-29, 롬4:9-13).

7:25-36 예수의 신성
25-27절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예수에 대한 일에 당국자들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예수께서 미혹하는 자라면 가두어야 할 것이고 만약에 메시야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온 목수의 아들일 뿐이라고 육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을 안다는 이유로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28절 외쳐 가라사대 kravzw(크라조)는 탄원할 때 크게 소리를 지르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고함을 말한다. 예수께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씀하신 적은 요한복음에만 이곳에서와 두 곳에 더 나온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요12:44).
예수께서는 조용히 가르치시는 일에서 이제는 선포하시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크게 소리를 높여 말함으로 겉으로도 완전히 드러나셨을 뿐만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이 듣도록 그리고 강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29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이 말은 예수의 일관된 주장이셨다(요6:40, 요7:16). 크게 소리 높여 이 말씀을 다시 하시는 것은 듣는 이들에게 이제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결코 태도를 바꾸지 않으실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 강력한 말씀에 듣는 사람들에게는 '나를 잡아죽이든지 내 말을 듣던지 결정을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군중은 생각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30-31절 예수를 잡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32절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이 강력한 메시지에 군중들은 예수께 돌아서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위기감과 함께 빨리 잡아죽이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하속들이 왔을 때 그들이 듣기에는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고 계셨다.

33절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감될 것인가에 대해서 다 알고 계셨다. 또한 이 일의 결과는 당국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34절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원문에는 e[rcomai(에르코마이) "동반하다"의 용어가 있다. "오지도"는 "예수와 함께 가지 못한다"의 뜻으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에 반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이 말은 수수께끼 같이 들렸다.

35절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 유대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였다. B.C. 586년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귀국 허락이 내렸지만 바벨론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자들이 있었고 알렉산드리아 지방의 헬라인들 속에 사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유대인들의 생각은 참으로 이상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들의 생각에서 예수를 배척하지만 '유대인'의 생각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방인'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7:37-44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오라
37절 명절 끝날은 가장 큰 축제일로 성가대가 노래하는 동안(사12:3) 제사장이 황금 잔에 물을 채우면 그들은 제단으로 가서 물을 쏟아 부었다. 이 의식은 바위에서 물이 나온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민20:8-11, 시78:15-16). 이러한 의식은 행하고 있었지만 진정한 영적 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크게 소리쳤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diyavw(딥사오) "목마르다, 갈망하다, 갈급해 하다"의 뜻으로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에 대한 초청이다. 이러한 축복은 예수께 나아오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38절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예수께서 정확하게 성경의 특정 부분을 가리켰다고 보기보다는 구약 성경의 사58:11, 시78:15-16, 슥14:8, 잠4:23, 겔47:1 등을 염두 해 두시고 하셨을 수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요4:14의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 말씀과 같이 이해된다.

39절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구약시대에도 성령은 활동했다(창1:4, 민27:18, 삼상16:13). 그러나 구약의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회개하였을 때 새롭게 변화되는 성령의 내재를 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성령오순절 이후(행1:8) 예수님의 약속에 의해서(요15:26, 요16:7) 보내졌고 "성령"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는 때를 가리킨 것이다.

40-44절에는 30-34절에 나타난 반응과 비슷하다. 예수를 하나의 선지자로 보는 사람,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사람, 갈릴리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나오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42절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러한 사상은 시89:3-4, 미5:2에 나타나고 마태는 예수의 족보에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기록했다. 이런 논쟁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시비를 만들었고 결국은 예수를 잡고자 하는 쪽으로 분위기는 기울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예수께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7:45-49 예수를 잡으려는 산헤드린의 실패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산헤드린 당국자들은 그의 하속인들에게 예수를 잡아오라고 명령은 했으나 이유도 없이 무조건 잡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포할 빌미를 잡아 바로 잡아오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약점을 이들은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이들도 감동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과 같이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말하며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고 질문하고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49절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고 생각했다.

7:50-53 니고데모의 반론
50절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저자 요한은 요3:1-21절의 사건을 말함으로 니고데모는 분명히 예수를 변호할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51절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예수를 잡고자하는데 만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예수에 대한 말과 행함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결만 서두르려고 한다는 지적을 한다. 이것은 그가 예수를 조용히 만났을 때 니고데모도 전에는 이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를 친히 만나고 이야기한 결과 절대 예수는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율법에도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찌니..."(출23:1, 신17:4)라고 함으로 정확하게 그 증거를 확보하고 판단할 것을 말한다.

52절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말함으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지역적으로 그의 편에 있는가 하는 의혹으로 질문한다.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상고하여 보라"는 ejreunavw(에류나오) "조사하다, 살피다, 검사하다"의 뜻으로 니고데모는 같은 산헤드린공의회 사람들과의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음을 뜻한다. 이들은 오히려 니고데모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53절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같은 산헤드린공의회원의 한 사람인 니고데모의 뜻하지 않은 강력한 반론에 부딪혀 예수를 잡고자한 그 당위성에 상당히 손상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의기 양양하던 태도에서 씁쓸한 마음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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