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선교전략


여는글

우리 시대는 지금 전통종교가 부흥하고 있다. 금세기 후반부에 공산화된 아시아의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가 부흥하는데 특히 불교국은 더 심하다. 태국에는 3천개가 넘는 절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실정이며 일본에는 불교의 변형인 창가학회가 1951년 5천세대였는데 지금은 30여개 국가에 30만명이 넘는 신자로 성장하였으며 미국에도 신자가 있다. 불교서적이 영어로 버마와 태국에서 출판되며 자신들의 선교회를 통하여 선교사를 서구국가로 파송하고 있다.이렇게 불교는 세상의 빛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인류를 해방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만주로 부터 자바와 중앙아시아와 일본열도까지 공략하고 있다. 그럼으로 기독교는 국내외 선교의 효과적 전략을 모색하기 위하여 먼저 불교의 선교운동과 열정을 파악해야 한다. 본 원고에서는 불교의 일반적인 경향과 선교운동및 가능한 선교전략을 논하고자 한다.

I. 현대 불교의 일반적인 특징들

불교는 여러지역과 국가에 따라서 다양한 교리가 나타난다. 마하야나(대승불교)-중국,일본,한국 그리고 베트남,히나야나(소승불교)-서남아시아구들,탄트라야나(밀교불교)-부탄,몽골과 티벧,이렇게 다양한 교리들에도 불구하고 불교안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볼 수 있는데,첫째로 석가의 최초의 가르침은 알려져 있지 않고, 둘째로는 많은 미신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들 나라의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에 대해서 매우 동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1. 석가교훈의 적절한 지식부재

석가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다음의 세가지 말속에 포함되고 있다. 세상과 ㅇ니생과 최대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을 일반불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1) 불교의 세계관은 세상을 망상(Illusion)으로 보는 것이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존재는 망상이요 계속 변화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self)이나 자아(Ego)나 영혼이라는 어떠한 사상도 부정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Anatta).그러면 나라는 개체는 무엇인가? 석가는 인간의 존재는 다섯가지 요소인 물질,감성,인식,정신적 형태,의식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상의 두가지 교리에 근거하여 4성체 교리중의 첫째인 번뇌(Dukka)가 실존의 본질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교리가 되는데 이것은 세가지이다. 육체와 정신적 번뇌(Dukka), 변화로 인한 번뇌,이미 규정된 상태에서 번뇌이다. 따라서 이미 언급한 다섯가지 요소(오온)은 번뇌와 동일시 되는 그것은 인간실존의 육체와 정신의 일반적인 번뇌와 밀접하게 관련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은 항상 변화하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이상의 언급한 교리에 대하여 거의 무지하다. 실례로 태국의 불교도들은 경험상으로는 우주의 망상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을 망상으로 보지 않을려고 한다. 태국인들의 세계관은비불교도 처험 현실적이다. 불교도들도 인간의 몸은 육체,영,혼이 있는데 육체는 물질적이요 영과 혼은 비물질적이요 영(Khwan)은 혼에 생명과 건강과 번영을 주며 혼은 개인에게 사유,의지,개념과 의식을 주는 개인의 혼이라고 믿는다. 영은 육체밖에 있어 잃거나 상처를 받으며 병들거나 죽는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석가가 가르치는 무아(Anatta)와는 전혀 다르다.

2) 불교는 변화와 무상의 교리에 의거하여 생을 반복으로 보고 전진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윤회사상(Samsara)은 불교의 신이 인간이 되는 화육교리의 기초가 된다. 윤회사상으로 인하여 한 우주 다음에 다른 우주가 나타난다는 우주진화론 교리가 형성된다. 윤회사상에서 업(Karma)이 중요한 교리가 된다. 업이란 일종의 인과율로서 의존적기원(Dependent Origin)이라고도 하는데,모든 개인은 원인과 결과라는 12개의 괴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12고리는 무지,자발적 행동,의식,마음,물질,육감,접촉,감정,사모함,집착,생성과정,재생,늙음과 죽음이다).그러나 불교의 업의 교리에 대하여 많은 오해가 야기된다. 라훌라박사는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불교의 업의 교리에서 모든 행위가 아니라 다만 자발적 행위가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용하는 것 같이 업의 결과가 아니다. 불교용어 업은 결고 겨로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는 업의 열매 혹은 결과(result)이다.

3) 불교교리에 3번째 중요한 교리는 고의 중지인 열반이다. 열반이란 고에서 해방을 의미한다. 즉 열반(Nirvana)은 존재의 중지이며, 멸절이며,분리이다. 이렇게 해서 개인은 완전한 평화와 무로 들어간다. 열반은 아울러 미래의 환생과 불행에서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행복이 된다. 열반에 도달하는 방법은 달리될 수 없고 8정도를 통하여 가능하다. 8정도는 正見,正思惟,正言,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이다. 그러나 불교의 이러한 교리에도 불구하고 불교도들은 여반에 도달하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플랑크 무어가 지적한 것같이 극소수의 태국사람만이 개인적 자아가 완전히 멸절되는 열반에 도달하겠다는 희망을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공적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적을 쌓는 것은 윤리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물질적으로 나타낼려고 한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불교도들도 석가가 가르친 교리를 잘 이해못하고 있다.

2. 불교신자들의 미신적 신앙

어느나라에서도 석가가 가르친 순수한 불교를 발견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불교가 중국에서는 도교의 일본에서는 신도의 영향을, 한국에서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태국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의 영향도 받았다. 태국인들의 우주에 관한 전통적 신앙에 대하여 웬델 블란샤드는 태국의 세계관은 태국의 중앙에 위치한 프라 므루산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우주의 집단으로 구성되었으며,이것은 7개의 산을 가르는 8개의 대양벨트가 있다. 대양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는데 이 섬들에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 브라만의 천사들이 사는 지역,다음은 하늘의 천사들이 거하는 지역과 마지막으로 지옥이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태국인들의 왕국관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므루산은 우주의 중심이고 천사들이 거주하는 곳이며,왕궁은 왕국의 마력적 중심지이고 비쉬누라는 성육한 왕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왕이 즉위할때 왕의 몸에 들어왔다. 그래서 왕국은 므루산과 유사한 표현인 프라멘 통(황금의 므루)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우주관 때문에 태국의 왕과 왕후는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태국의 수도 방콕을 태국살맏르은 천사의 도시라고 말하낟. 왕과 우주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이러한 노력의 배후에는 인간 왕은 번영과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별들과 위성들로 부터 해방하는 힘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는 오래된 사상이 생겨났다.

이상 언급한 오래된 신앙은 인도에서 온 것이다. 이 신앙에서 태국 사람들은 개인과 국가는 우주의 힘과 조화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이렇게 지방의 사상과 종교로 변형되어 미신과 아니미즘적 신앙도 가미되었다. 미신적 신앙이 일반사람들에게 다 침투되었다.

3. 불교전통에 대한 강한 동정의식

다른 불교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태국사람들도 자신들의 전통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다. 이 전통들은 가족적인 것과 집단적인 (국가적인) 것이 있는데,첫째, 이러한 집단전통의식이 다음의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1) 외세의 침입을 경험했던 이들 국가들 중에는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집단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이 발생하였다. 과거 식민통치가 기간동안 이들은 국가의 구구건과 자연뿐아니라 문화적인 유산의 가치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집단주의(내셜리즌)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회복시키려고 한다.
2) 국수주의적인 운동(정신)이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어떤 국가들에서는 다시 일어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의 외세의 침략 아래 있을 당시에도 그들은 선조들이 전수하여준 전통을 소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은 태국에서 더 잘 볼 수 있는데,이는 태국이 결코 한번도 외세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집단주의적인 의식은 국가의 성장으로 고무되었다. 경제적인 성장은 세계에 잘 알려진 것이다. 정치적으로 그들은 금세기 후반의 민주적발전을 이룩하고 있고 군사적으로도 서양과 맞붙을 수 있는 만큼 성장한 것이다. 비록 자신들은 패하였지만 서양의 제국과 싸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여기고 있다.
둘째로 불교전통에 대한 동정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아시아 국가특유의 강한 가족유대감 때문이다. 가족유대는 조상제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여기서 대가족제도로 발전한다. 이런 연유로 불교도 조상숭배를 한다는 편견으로 불교에 호의적이다. 이렇게 민족적 감정과 가족유대는 불교에 대한지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불교의 전통을 따른다.

II. 불교선교전략

태국에 로마 천주교가 들어옴으로 불교는 기독교와 접촉하게 되었지만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초기이다. 태국의 불교선교를 논하기 전에 불교가 성한 아시아 몇 나라의 선교상황을 고찰하고자 한다. 홍콩,일본,한국,스리랑카,태국의 총인구는 약 272백만(1985년통계) 인데 이중 불교인구는 147백만으로 인구의 54%이다. 다음 공산권국가인 중국,부탄,버마,캄보디아,북한,몽고,티베트,베트남의 총인구는 약 12억 5천만인데 이중 32%인 4억이 불교도이고 개신교는 5천만으로 4%에 불과하다.

불교권선교활동의 특징

불교권 선교활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심리적으로 불교도들은 선교사들에게 적대적이 아니다. 그 이유는 모든 종교는 다 선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가르치기 때문에 선교사에게도 적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요,둘째는 기독교도 불교가 가르치는 사랑,자비,동정심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으로 인하여 전도를 하면 믿지 않으면서도 일단 "예"라고 답변을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선교사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선교학적으로 불교도들의 선교에 대한 반응은 대단히 느리다. 태국은 개신교가 1828년부터 선교를 하였지만 1%만이 신자이다. 불교가 국교인 부탄,스리랑카,태국은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아주 낮으며 반면 홍콩,대만,한국등 혼합적 불교가 강한 나라는 복음에 대한 수용도가 강하다. 다음 과거 서양나라에 식민지였던 동남아 불교국가는 한국에 비하여 복음에 대한 수용이 비교적 낮다. 세째로 신학적으로 선교사들의 상이한 신학사상이 전혀 다른 선교전략을 초래하였다. 에큐메니칼선교는 사회봉사를 선교로 간주하고 여기에 치중하며 복음주의는 영적인 것에 더 치중한다. 전자는 회심자를 얻지못하는 문제점이 있고,직접전도의 복음주의는 개종자는 많이 얻지만 일부 지역에서 중복되는 문제가 있다. 네째로 사회학적으로 기독교 선교는 불교국가에서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III. 불교선교에 대한 문제제기와 가능한 해답

불교선교 전략을 논함에 있어서 다음에 문제를 제기하고 가능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선교사의 생활이 경건한가 세속적인가?
불교도들은 선교사를 종교의 선생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종교적 선생은 고행을 하는 불교의 중을 연상한다. 불교도들은 부부생활을 하는 선교사를 이상하게 보기 때문에 물질적 생활은 검소하게 하고 사랑으로 희생을 보여주어야 한다. 헤셀그레이브박사가 지적한 것같이 자비도 중요하지만 통전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2) 선교사의 자세는 불교사상에 적합한가?
불교인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하여는 정숙과 세속에서 이탈을 강조하는 불교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너무 행동적이고 전조에 성급하여 덤비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벼랑에 선 아이를 보는 어머니는 소스라치지 아니하고 조용히 과자를 주어서 달래어 위험에서 건진 다음 책망을 한다. 선교사도 이와같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면서 달래야 한다. 고수케고야마는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숙을 이상화하는 지역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성경 메시지는 오히려 걸림이 된다. 분노하는 하나님,그것은 말도 안된다. 연단된 중은 진노를 초월한다. 진노는 반열반적 감정이다. 이러한 하나님은 통하지 않는다.

3) 선교사들의 방법은 사람 중심인가 프로젝트 중심인가?
많은 선교사들은 프로젝트에 몰두한 나머지 사람은 잊는 경우가 있다. 선교사들은 프로젝트 보다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필요욕구를 냉정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4) 선교사들은 교회개척을 위하여 노력하는가?
회교권이나 공산권과는 달리 불교문화권은 교회개척이 비교적 자유롭다. 교회는 사도들을 계승하여 전도하는 사명을 가졌기 때문에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 개척을 힘써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개척을 하는 원주민 지도자들을 키우는 것이다.

5)선교사들은 기독교가 외국인의 종교라는 인상을 제거할려고 노력하는가?
불교국가의 사람들은 불교를 모르면서도 스스로 불교도로 자처한다. 불교의 문화와 전통이 그들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외국인의 종교로 간주하며 기독교를 믿는 친척이나 이웃을 배신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모든 일에 원주민 지도자를 앞세우고 자신은 뒤에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원주민 지도자들을 양육해야 한다. 아울러 선교사는 원주민을 고용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6) 불교도에 대한 선교사들의 이해는 충분한가?
많은 선교사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불교문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은 가졌지만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정보는 부족하다. 사람을 알기 위하여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그들과 어깨를 부비면서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하며 사람들을 알기위한 지속적 방법으로 연구소 설립도 필요하다.

7) 선교사의 메시지가 이해하기 쉽고 호소력과 상황에 적절한가?
선교사가 자신의 메시지를 바로 전달하기 위하여는 그 메시지속에 다음의 몇가지의 접촉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불교도들의 신앙과 그들의 교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둘째 심리적인 접촉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그들 마음의 평온함을 이해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접촉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공적"의 개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8) 선교사역에 있어서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선교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에큐메니칼선교는 영적인 문제를 등한시 하는 동시에 복음주의보다 내적회개의 촉구가 약하다.그래서 영적인 문제에 선교의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반대로 복음주의는 사회참여운동이나 프로젝트,물질적인 지원면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선교방식은 서로 상호보완되어야 한다. 내 견해로는 우선 영적(내적)으로가 하나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모든 면에서 협력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9) 선교사가 정부의 방해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자유스러운 국가들에서는 정부의 간섭은 그리 심한편은 아니고 선교사의 자격을 가지고 입국비자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국가에서는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정부의 방해가 심한 국가에 입국을 할 경우에는 선교사의 자격보다는 법률인이나 정부가 필요로하는 지역의 일을 담당하는 자격으로 들어갈 수 밖에는 없다.남자나 여자나 이러한 제한속에서 선교를 수행할 수 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