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부하의 선교


오늘날 우리가 선교해야 할 나라들은 종교의 자유나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나라보다는 억압되고 선교적 접근에 대하여 닫혀진 나라가 더 많다. 아세아를 비롯하여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공산주의나 모슬렘이나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전제주의적 권위정부를 갖고 있다.이러한 권위정부 형태의 국가는 기독교 선교에 대하여 증대되는 반대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선교란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며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여 교회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행하도록 위임받은 일들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정부는 언제나 권위를 갖게 마련이다. 여기서 권위정부라고 말할 때 그것은 기독교 선교를 억압하거나 방해가 되도록 그 권위를 사용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주어진 주제를 다룸에 있어, 권위정부 하에서의 선교는 어떤 신학적 전제와 의의를 가지며 그리고 권위정부의 유형들과 아울러 그러한 정부 하에서의 선교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서술 제시하고자 한다.

I. 권위정부하의 선교의 신학적 전제와 의의

모든 교회의 활동과 선교 사역은 신학적 기초 위에 서 있으며 신학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를 논하려면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그 선교가 어떻게 관련 되는가를 말하여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사역과 교회의 선교에 대한 본질적 이해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적 내용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강생의 목적을 이루심이 곧 그 내용이라 하겠다. 두가지로 요약하면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요일 3:8)과 그의 백성을 저희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다(마1:21).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마귀와 그 사자들의 최종적 멸망(마25:41)과 악인이 섞여 있지 않는 구속된 사회를 의미하는 바(마13:26-43,47-50)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도래케 하시기 위하여 마귀와 그의 사자 곧 귀신들을 정복하며 그리고 구속받은 백성을 준비하셔야 했다.
이 두가지의 일이 창3:15의 원시복음에 이미 계시되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하신 저주 가운데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첫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멸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다(갈4;4,계20:2). 그리스도는 사탄을 결박하고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을 자기에게 이끌겠다고 하셨다(마12:29,요12;32).사탄의 패배는 세 단계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미 사탄은 패배를 맛보았다. 그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무력케 하셨다(히2:14).사탄은 천년왕국 전에 무저갱에 갇힐 것이고 마지막 심판 직후에 볼못에 던져질 것이다.
원시복음의 마지막 구절'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는 예언은 에수의 십자가 상의 죽음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 제사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우리를 대신하여,그리고 대표하여 죽으신 것이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과의 비교는 사탄의 영원한 파멸과 비록 그 고통이 십자가 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큰 것이었다. 할지라도 부활로 인하여 인정된 의인의 죽음이라는 임시적 패배를 대조한 것이다. 사탄의 음모로 획득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은 (눅22:3)사탄의 영원한 멸망의 근거가 되었으니 교수형 틀을 준비한 자가 결국 그 형틀에 영원히 메달리게 된 것이다(눅22:22).

이와같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과 하나님과의 백성을 구속하는 일을 십자가와 자기의 사역을 통하여 다 이루셨다. 이 그리스도의 사역이 없다면 구원도 교회도 우리의 선교도 있을 수 없다. 그는 자기를 믿는 제자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자기 목적을 위하여 선택하여 부른 무리라는 뜻으로 '에클레시아'(교회)라 칭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께서 이룩하셨던 일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의 선교사역도 마귀를 정복하신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권능으로 귀신을 내어쫓고(막 16:17)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과(마6:10)하나님의 나라와 구속의 복음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며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는 것이다.

2. 교회선교의 근본적 성격

교회의 선교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함으로 우리가 수행하여야 할 일의 성격의 그리스도 사역의 성격과 동일하여야 한다. 이것을 세가지로 말해 보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은 지상 나라의 악한 정권과의 투쟁이 기독교 선교의 본질이 아님을 가리킨다(요18:36).예수님 당시에 열심당원들은 로마제국을 하나님께 대한 적대세력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는 것을 그들의 종교적 의무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로마에 세금내는 문제에 대한 답변(막 12:13-17)이나 빌라도 법정에서의 태도는 세상의 권위주위적 정부에 대하여 그가 열심당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셨다. 오늘날 정치신학이나 해방신학 민중신학은 이 면에서 기독교 선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2) 예수가 마귀의 일을 멸하며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도래케 하는 사역은 비역사적이거나 무시간적 사건이 아니며 또한 역사적이라 할지라도 역사의 한 시점에 단번에 이루어질 유대묵시적 방식으로 수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전 15:22-26은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역사가운데 몇가지 단계를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곧 온 우주에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패배시킴으로써 성취된다. 맨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했다. 사망의 정복(부활)과 원수 마귀에 대한 정복은 여러 단계를 통하여 나타난다.

사탄 마귀와 그에게 속하여 세상에서 악을 일삼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기 전에 교회가 사회에서 악의 뿌리를 뽑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적 일의 하나님의 왕국(통치)과 사탄의 왕국이 병존할 것을 계시하신 것이다. (Ladd 1975:95-97)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오기 전에 악의 권세나 무리를 온 땅에서 제거하여 지상의 정의와 완전한 평화를 구하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 아니다. 초림과 재림 사이의 중간기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하며 추구 해야 할 것은 완전한 평화를 지닌 영원한 나라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로부터 자기 백성를 구속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역이다. 이를 위해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는, 성부와 함께,성령을 보내셨으며 교회는 성령의 권능으로 이 일을 수행하여야 한다.

3) 그리스도의 사역의 구속적 성격은 이 구속을 전파하여 구원케 하는 복음 전도의 방식을 교회 선교의 기본이게 한다. 복음주의적 선교는 일차적으로 구원을 사회적이거나 우주적이기 전에 우선 개인적이며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며 죄의 용서 뿐 아니라 죄의 세력에 대한 이김으로 간주한다. 성육하셨다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바로 이 구원에 종사하도록 우리를 구속하셨고 성령을 보냈다. 사탄과 사탄에 속한 모든 악의 세력들을 멸하는 것은 그의 재림시에 나타내실 구원으로써 지금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도와 기다리는 믿음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4) 이러한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이해는 구원받아야 할 인간의 비참한 형편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일치한다. 그것은 복음주의에 의하여 대변되는 전통적 기독교의 견해인 바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비통한 고통은 "하나님과 분리되며, 어떤 경제 수준에서든지 사망을 넘어선 어떤 희망도 없이 윤리적 행동을 위한 어떤 분명한 근거도 없이 죄와 사탄에 굴복하여 사는 것"이다. 여기에 반하여 W.C.C.나 해방신학에서는 그 고통을 '토지,식량,재산,교육의 기회,사회적 보장의 불평등한 분배"로 묘사하고 있다(Glasser and McGavran 1983:뒷표지문).

3. 권위정부 하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한 선교신학적 이해

교회의 선교는 죄오 사망,그리고 사탄의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 백성되게 하는데 있다.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은 많은 경우에 방해나 위협, 또는 핍박의 세력으로 나타난다.

1) 사탄과 그의 사자 귀신들은 하나님과 그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며 이를 위하여 인간과 세상의 이데올로기,권력,문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2) 세상 국가권력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며 하나님 뜻에 따라 부여받은 권위를 행사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 국가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때로는 권력을 오용하여 "종교적인 법률의 제한없이 통치하는 "독재체제(tyranny) 로 변하기도 한다. 정부가 그의 권위의 정당성으리 위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을 의지하지 않으면 정부권력을 생하삼에 있어 제한성과 기준을 잃게 됨으로 세속정부는 자기들이 원하는 모든 짓을 다 자행하는 괴물로 화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통치를 받든지, 혹은 독재자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 저주를 스스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William Penn).때로는 사탄의 조종 아래 기독교를 탄압하기도 한다.기독교를 탄압했던 로마의 열 황제들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을 대적하는 열뿔을 가진 거대한 붉은 용으로 해석된다. 이들 정부는 사탄의 권세를 그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속정부라도 심지어 이방의 제국주의적 정부인 로마정부라 할지라도 기독교 선교에 유용했으며 유대교의 박해 아래 있었던 바울에게 보호자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속권세와 사탄과의 관계는 유동적이며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3)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이데올로기와 문화와 권력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에 매어 있을 수 없다. 그는 초월하실 뿐 아니라 이것들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가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 구속도 그러하다. 복음은 인종과 문화, 국가 이데올로기와 정부권력을 초월하여 적용된다. 그런데 이것들에서 적용되기 위하여 복음은 이것들을 초월하나 이것들을 통하여 또는 관계하여 역사한다(naft 1979:113-115).

4) 기독교선교는 하나님의 권능과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는 이데올로기의 장벽, 문화의 장벽, 권력의 장벽을 넘어서 그리고 그들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의 적은 사탄 마귀이다. 선교사는 사탄의 왕국이라는 적진에 뛰어든 군사와 같다. 선교사의 임무는 사람들의 눈을 밝혀서, 그들로 하여금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능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 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의 특성으로 인하여 선교사는 아군의 화력이 가장 약한 곳에,반대로 적의 화력이 가장 강한 곳에서 자신을 노출하면서 일하게 된다(Kane 1988.4.10).
그러므로 선교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적은 구약에서 보는 바 대로의 적대적 악한 나라들이 아니라 사탄 자신이다. 선교의 본질적인 것과 세상의 선한 일을 구별하여야 한다. 선교사의 궁극적인 것은 선교사와 다른 이데올로기나 문화나 비민주적 정권이 아니라 사탄임을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와 기독교 선교를 방해하고 핍박하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권력행사에 대하여 효과적 선교사역을 위하여 전도의 자유를 얻기 위한 순응과 복종. 이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아니한 구속적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고 가로막는 장벽을 헤쳐 나가기 위한 이적과 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권위정부의 방해와 핍박이 아무리 크다 할찌라도 이것들은 극복되어야 하며 극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선교의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사탄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천지의 대 주제이신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기 때문이다.

II. 권위정부의 유형들과 권위정부 아래서의 선교전략

21세기가 시작할 때 세계 비기독교 인구의 약 83퍼센트가 전통적 선교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닫혀진 나라에 살 것이다(Yamamori 1987.15).세계기독교 연대기 편자인 바렛(David Barrett)에 의하면 서기 2000년의 세계 인구 62억중 약 42억이 비기독교인이며 이중 35억이 닫혀진 나라에 7억이 열려진 나라에 살 것이다고 한다. 1980년대 초를 기준으로 해서 정치적으로 74개국은 완전한 자유를,81개국은 부분적 자유만 누리며, 68개국은 정치적 자유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78개국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2억이나 되는 많은 신자들이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헤셀그레이브 1991 .234).

헤셀그레이브(DJHesselgrave)는 [현대선교의 도전과 전망](Today's Choices for Tomorrows Mission)이라는 책에서 현대 선교의 10가지 동향과 쟁점들을 논하면서 마지막으로 "증대하는 반대 세력-불신앙과 악한 세력과의 대결"을 열거하였다. 그는 근래에 세계적으로 기독교 선교에 대항하는 반대 세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반대 세력의 성격을 여섯가지로 규명하였는데 그 첫째가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등장이었다.
권위정부 하에서의 선교전략은 그 권위정부의 형태에 따라 달라야 한다.
여기서 주로 아세아 지역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유형들과 거기에 따라서 선교전략으로 고려될 만한 것들을 열거해 보고자 한다(참조.전호진 1985 .297-299).

1. 종교적 전체주의 국가와 그 정부 하에서의 선교

종교와 정치가 결합하여 국가 전체를 통제할 때 그 안에서 타종교의 선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정치체제 중 가장 기독교선교에 도전적이고 강한 억압을 가해 온 것은 이슬람권의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에서 이슬람은 종교 이상이다. 생활에 대한 철저한 규범이 있고 그 위에 정치와 경제가 결합되어 있다. 종교와 정치와 일상생활이 하나가 되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공적 규범이 개인 생활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개종은 그 사회 집단에 대하여 배교가 되며 이것을 배교 금지법으로 법제화 하였다. "누구든지 자기 종교를 배교하면 그를 죽여라.그리고 그를 이교도로 간주하라."이것이 바로 이슬람권에서 기독교 개종이 극히 적은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복음을 위해 죽을 각오.주님을 닮은 성숙한 인격, 성령에 온전히 인도받는 사역, 헌신적 사랑이 우선 요구된다. 이슬람권은 종교적 자유와 선교적 접근에 있어서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이 작은 자유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자유나 정부 정책 개정을 요구하다가는 추방 당하거나 주어진 그 자유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회교 국가에서는 병원이나 학교 운영이 정부나 일반 대중에게 환영을 받는다 종교적 전체주의 정부 하에서는 선교사나 종교적 직함을 가진 자로서 보다는 평신도의 신분으로서 봉사와 전도의 일을 감당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의사,간호사,교수,엔지니어,비지니스맨,체육인등이 저들의 전문 분야에서 열려진 인간 관계를 통하여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도 종교적 전체주의 국가이다. 왕과 정부와 국민이 모두 불교라는 종교로 하나가 되어 있다. 이슬람권 만큼 심한 적대성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개종자는 극히 적다. 그곳에는 지금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오순절 교회가 방콕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교가 구속의 도리만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선교(Power Evangelism)이여야 함을 시사한다. 병원, 고아원,문둥병 환자촌,마약퇴치 학교등의 사역이 복음과 함께 나아가야 할 줄 안다. 종교적 전체주의의 범주를 벗어난 태국 산족들 가운데서는 적은 능력(자원)으로 많은 개종자들과 교회 성장이 나타난다는 선교 보고가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 출석(개혁),황원수,정운면,방정일 선교사 보고).

2. 공산국가하 에서의 선교

소련과 동구권의 변화로 인한 아시아 공산주의 국가들의 변화가 크게 기대된다. 중국이 사실상 크게 변했고 선교의 자유가 완전히 봉쇄된 북한이라할지라도 오늘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몇 주 전만 해도 중공 보다 소련이 선교적으로 더 닫혀지고 억압된 나라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중공의 많은 개방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정치 체제의 장벽은 여전하다. 공산 치하의 중국 대륙은 인구 10억의 가장 큰 이방 인구 집단이다. 더욱이 북경을 중심한 중국 문명이 동 아시아 문명의 뿌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 공산당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모른다. 중국선교는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닫혀있지만 영적으로는 열려있다. 닫혀진 중국 사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들을 하고 계신가를 마마 쾅이라는 전도자는 증거하였다. 권위주의적 중국 정부는 삼자 애국교회를 앞세워 기독교 장기 소멸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정교회라는 지하 운동을 통하여 한명의 공적 선교사가 없는 가운데서도 예수가 증거되게 하여 교회를 성장시키신다. 한국교회가 중국 공산정권 아래서 할 수 있는 선교는 중국 교회의 모체인 가정 교회를 직접,간접으로 돕는 것이다. 저들에게 성경을 보내며, 기도하여 헌금하여 저들의 믿음에 격려가 있도록 해야 한다. 중공의 성도를 대면해 볼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리가 저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심한 핍박을 견디어 낸 저들에게서 우리가 은혜를 받으며 경건의 능력을 배운다는 것이다. 복음 전파자와 사역자, 기독교 문서가 없는 저들에게 라디오 방송선교는 귀하고 중대한 채널이 되어 왔다. 공산국가는 아니지만 경제적 실패나 낙후로 인하여 공산화나 공산주의식혁명운동이 있는 상황은 선교에 큰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얼마전까지도 필리핀과 동남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이러한 어려움에 처했으나 상황이 바뀌어 공산 혁명의 위협은 감소 또는 제거되고 있다. 남미의 상황은 해방신학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적 혁명이 제창되고 있다. 그들은 막시즘에 근거한 사회 구조악을 제거하는 혁명을 주장하고 사회주의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한다. 북미의 선교사가 이 혁명에 동조하지 않으면 추방될 것이라고 한다(헤셀그레이브 1986.259).

3.민족주의적 전체주의 국가

로디지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선교사가 저들의 민족주의적 정책을 공격하면 죽음을 당할 수 있다. 백인 선교사가 백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인종 차별 제도를 옹호해도 추방이 아니면 죽음의 위협을 당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등에서 한 국가내의 분쟁과 혁명의 원인이 많은 경우는 민족분규에 있다. 민족주의적 전체국가에서는 인종과 문화 문제가 선교접근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종교적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국가 사회보다는 선교가 좀 더 용이하지만 인종과 문화의 장벽은 실로 크다 아니 할 수 없다. 맥가브란(Danald McGavran)이 인도 선교현장에서 개발한 선교원리들이 전략으로 채용될 수 있다. 동족 단위 원리(Homogeneous Unit Principle) 저항-수용성 구분원리,집단 개종 운동 등은 특히 인종과 문화가 선교의 벽이 되고 있는 곳에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이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