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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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돌과 하나님의 백성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ㄱ)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사 28:16
(벧전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ㄴ)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시 118:22
(벧전 2:8) 또한 ㄷ)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사 8:14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1)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벧전 2: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벧전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벧전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벧전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그리스도의 고난

(벧전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2)아름다우나 마5:11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마5:10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1. 또는 심판하시는 2. 헬, 은혜

2:1-10 산 돌이신 예수
1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악독" kakivan(카키안) 원어의 같은 이 단어는 골3:8 "악의"로 번역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해악을 말하는 단어이다(롬1:29, 엡4:31, 골3:8, 딛3:3).
"궤휼" dovlon(돌론)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미끼를 활용한 교활한 술책을 말한다(마26:4, 행13:10, 고후12:16).
uJpokrivsei"(휘포크리세이스) "외식, 기만, 정죄"는 '아래' uJpo(휘포)와 krivsei"(크리시스)의 합성어로 겉과 속이 다른 판결을 의미한다.
"시기" fqovnou"(프토누스)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시기하는 질투심을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막15:10, 롬1:29), 좋은 의미로 약4:5 사용된 적이 있다.
"비방하는 말" katalaliav"(카탈라리아스)은 "중상, 악담, 험담"으로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수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방을 하고있음을 가리킨다. 이런 비방은 악의찬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롬1:30, 고후12:20).
"버리고" !Apoqevmeno(아포데넨오)는 원문에는 절 맨 앞에오는 단어로 2절의 '사모하라'와 대조되어 믿는 자들의 바른 생활로 버려할 것을 하나 하나 지목한 것이다(엡4:22, 골3:8, 10, 약1:21).

2절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ajrtigevnnhta(아르티겐네타) "갓난" brevfh(브레페) "아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의미한다. a[dolon(아돌론) "순전, 순수한, 속임수 없는"으로 1절의 "궤휼" dovlon(돌론)과 반대되는 용어이다. 갓난아이는 어른들처럼 교활하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령한" logiko;n(로기곤)은 말씀, 진술, 교리 등으로 해석되는 lovgo"(로고스)에서 파생된 용어로 "합리적인, 분별 있는, 이치에 맞는"의 뜻이다. 아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곧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젖" gavla(갈라)을 먹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구원은 바른 양식에 지속적으로 먹음으로 이르는 것이다. 요6:54-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했으며 요4:34절 예수님의 양식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했다. 신령한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3절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본 절은 시편34:8의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를 인용한 것으로, 원문 처음에 eij(에이) "만일 ...이라면"의 가정법이 있다. 이 조건문은 실제로 있었던 경우 중 한가지를 가정하는 것이다(마6:30, 눅12:28, 롬6:8). "인자하심" crhsto;"(크레스토스) "친절한, 좋은"은 "공급하다, 고용하다" cravomai(크라오마이)에서 파생된 용어로 주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 것을 뜻한다. ejgeuvsasqe(에규사시데) "맛보다, 먹다, 경험하다"는 직설법 부정 과거형으로 '한번 맛보았으면'이 된다.

4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예수께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막8:31, 눅9:22, 행4:11). 비록 세상사람들과 유대인에게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는 "택하심" ejklekto;n(에클레크톤) "선택받음, 인정받음"을 입었다. "보배로운" e[ntimon(엔티몬) "존경하는, 귀한"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신 영광을 말한다(눅7:2, 눅14:8, 빌2:29).
예수께서는 "돌" livqon(리돈)로 비유되셨는데 베드로마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를 기억한 것 같다. '산 돌'은 유대인 사이에서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내려왔으며 예수께서는 이 외에도 '머릿돌'(눅20:19, 벧전2:7), '기초석'(고전3:11), '생명수의 반석'(고전10:4)으로 표현되었다.

5절 너희도 산 돌같이 베드로는 앞 절에서는 '산 돌' livqoi zw'nte"(리도이 존테스)의 두 단어는 모두 복수로 사용되어 [돌 들]로 그리스도인에 비유하고 있다. 앞 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본 절에서는 zw'nte"(존테스)는 현재형으로 지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신령한" pneumatiko;"(프뉴마티코스) "영적인, 성령의" oi\ko"(오이코스) "집"은 제사장과 연결되고 있어 확실하게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키고 있다(시69:9, 사56:7, 막11:17). 이 신령한 집을 건축하는 것은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다. 이러한 예배는 영적 예배(롬12:1)를 의미하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12:33)고 대답한 어떤 서기관의 말과 같은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이 될 것을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죄는 자신이 씻고, 회개할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드리셨고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각자가 제사장되어 죄를 속해야 된다. 그것은 오로지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드린 그 제사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히13:15, 빌2:17).

6절 경에 기록하였으되 diovti(디오티) "왜냐하면"이 원문에 있어 [왜냐하면 성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로 베드로는 앞에서 말한 내용이 성경안에서 이미 확증된 사실임을 시사한다. 이 성경은 이사야 28:16의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 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를 인용한 것으로 이 내용은 이사야 선지자가 북쪽의 앗수르의 위협을 받으면서 자기의 조언을 거부하고, 애굽과 동맹했던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급절하지 않은 것은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모퉁이 돌" ajkrogwniai'on(아크로고니아이온)은 건축물이 완성될 때 꼭대기에 놓는 돌이 아니라 건축물의 기초를 이루는 벽과 벽 사이를 잇는 돌로 건축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돌을 말한다. 이 돌은 이미 시온에 두기로 확정되어있는 상태이다. 롬9: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mh;(메) "...을 하지 않도록" kataiscunqh'/(카타이스퀸데) "수치를, 모욕을"로 예상치 못한 다급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을 뜻한다.

7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본 절은 시편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의 인용이다. "버린" ajpedokivmasan(아페도키마산) "거부하다, 거절하다"의 뜻으로 그리스도는 믿지 않은 자들로부터 거절당하신 것이다(고전9:27). 예수께서는 이미 이러한 사실을 예언하신 바 있다(마21:42, 눅20:17-18).

8절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본 절은 사8: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의 인용이다. "넘어지나니" proskovmmato"(프로스코프투신) "걸려 넘어짐"을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eij" o}(에이스 호)는 문자적으로 "이것에 대하여"로 "넘어지나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 "정하신" ejtevqhsan(에테데산) 것임을 말한다. 불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정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의 결과를 정하신 것이다.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사43:20의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의 인용으로 "족속" gevno"(게노스) "혈통, 출생"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영적 신분의 혈통을 가리킨다.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출19:6의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의 인용으로 basivleion(바실레이온) "왕다운"으로 실제의 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위적인 면에서는 실제의 왕과 같은 뜻이 된다.
거룩한 나라요 출19:6의 계속되는 인용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구별된 사람들임을 시사한다.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출19:5의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사43:21, 말3:17)를 인용한 것으로 "소유된" peripoivhsin(페리포이에신)은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소유물을 뜻한다. 원어의 이 단어는 살전5:9에서 '세우심', 살후2:14 '부르사', 히10:39 '믿음을 가진 자'로 번역되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이사야 42:16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시편36:9을 인용한 것이다. "어두운데" skovtou"(스코투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영적 무지'를 뜻하는 것이다.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의 표현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전하게" ejxaggeivlhte(엑상게일에테) "발표하다, 축하하다, 선전하다"로 예수그리스도의 "빛" fw'"(프호스)에 대해서 증거하고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는 빛이시요(요1:4, 9, 요8:12) 우리는 이 빛(불)을 옮겨야 한다.

10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본 절은 호2:23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의 인용이다. 바울도 본 절을 인용하면서(롬9:25)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사랑치 아니한 자로' 바꾸어 인용했다.
수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과 그 이후를 비교하여 말한 것으로 "얻지 못하였더니" oujk hjlehmevnoi(우크 엘레에메노이)는 오래 동안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제는" nu'n(뉜) 지금, 현재는 "긍휼" ejlehqevnte"(엘레에덴테스) 부정과거로 이미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말한다.

2:11-17 주를 위하여 순복 하라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Agaphtoiv(아가페토이)는 베드로가 본서와 후서에서 모두 7번 사용한 애정 어린 사랑의 표현이다(벧전4:12, 벧후3:1, 8, 14, 15, 17). 바울도 특별한 권면이나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 사용했다(롬12:19, 고전10:14, 고후7:1, 빌2:12, 4:1, 살전2:8).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베드로는 1:1에서 사용한 어법을 다시 구사하고 있다. "권하노니" parakalw'(파라칼레오) "요구하다, 훈계하다, 위로하다"로 베드로는 이 단어를 세 번 사용했다(벧전5:1, 12). 이 단어는 '간구'(마8:5, 막1:40)로도 사용되었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sarkikw'n ejpiqumiw'n(사르키콘 에피튀미온) 원죄에서 나오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이 용어는 성령을 쫓는 영혼에 방해되는 벧전1:14의 '사욕'을 의미한다.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싸워야할 이러한 영과 육의 갈등은 롬7:23, 13:12-14, 고후10:3-4, 갈5:16-24, 골3:5, 약4:1에서도 나타난다.

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이방인" e[qnesin(에데네신)은 원래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말하나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선하게" kalhvn(칼렌) "아름다운, 가치있는, 덕스러운, 정직한" 매력적인 사람을 말한다. 이 용어는 딤전1:8, 3:7, 6:12, 13, 히13:18 "선한"으로 마13:8, 23, 막4:8, 20에서 '좋은 땅'을 말할 때 '좋은'으로 사용되었다.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의 권면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을 반영한 것이다. "권고하시는 날"은 눅19:44을 반영한 것으로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고 사죄하는 날을 가리킨 것이다. 구약의 이러한 사상은 '위로와 해방을 주시는 날'(출3:16, 삼상2:21)을 의미한다.

13절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인간" ajnqrwpivnh/(안트로피네)이 세운 "제도" ktivsei(크티세이)는 문자적으로는 "피조물"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처럼 어떤 생명체의 피조물도 창조하거나 만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ivsei(크티세이)를 사용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제도들도 하나님의 피조물들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위에 있는 왕이나"는 당시의 로마 황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롬13:1). 왕의 권위에 순종하되 "주를 위하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14절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순종해야 하는 범위를 왕과 더불어 그의 명령을 따르는 방백들에게까지 확대하고 있다. 본문은 롬13:3-4을 반영한 것으로 통치자나 위정자의 역할에 따를 것을 권면한 것이다. "포장"은 표창을 말하는 것으로 e[painon(에파이논) "칭송"하기 위해서이다.

15절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어리석은" ajfrovnwn(아프로논) "자기중심적인, 몰지각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고전15:36) 여기서는 위정자나 혹은 비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ajgnwsivan(아그노시안) "무식한"은 단지 지식이 부족한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배우거나 수용하기를 거절하는 것을 말한다(고전15:34). "막으시는" fimou'n(히모운)은 재갈을 물려 잠잠하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원문에는 하나님 qeov"(데오스)가 있어 하나님께서 직접 강압적으로 막으심을 나타낸다.

16절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wJ"(호스) "대로, 만큼"으로 자동으로 앞 절의 선행으로 연결되고 있다. 자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선한 행실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이 께서 주신 자유를 바로 누리는 길은 '서로 사랑의 종노릇'(갈5:13) 하는 것이다. "자유" ejleuvqeroi(엘류데로이)는 "노예가 면제되다"는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 주심으로 자유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우리는 바울의 고백처럼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17절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공경하며" timhvsate(티메사테) "존경하다, 가치를 두다"로 모든 책임 이행을 총칭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해서 모든 가치를 두고 인정하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며" ajdelfovthta ajgapa'te(아델포테타 아가파테) '사랑'의 동사는 명령법 현재형 2인칭 복수로 지금즉시 사랑할 뿐만 아니라 많은 형제들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랑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형으로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두려워하며" fobei'sqe(포베이스데) "공경하라" fobei'sqe(티마테)는 명령형 현재 중간태로 행동의 지속성을 나타낸다. 왕은 공경의 대상이나 하나님을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2:18-25 순종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
18절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들아" oijkevtai(오이테) "집안 식구"를 말하는 것이나 가정에 소속된 하인을 나타내는 말이다(눅16:13, 행10:17, 롬14:4).

노예제도
본문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종의 제도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바클레이(W. Barclay)가 설명한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로마 제국에는 육천만 명이나 되는 많은 노예가 있었다. 노예 제도는 로마의 정복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주된 노예는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이었다. 아주 이른 시기에는 노예가 거의 없었으나, 신약성경 시대에는 백만 명 단위로 헤아리게 되었다. 노예가 하는 일은 결코 천한 일만은 아니었다. 의사들, 교사들, 음악가들, 배우들, 비서들, 청지기들이 노예들이었다. 사실상, 로마의 모든 일은 노예들이 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의 태도는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과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다. 일은 노예들로 하게 하고, 시민들은 욕망껏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으름을 부리며 살게 하였다. 노예의 공급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노예들은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동거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동거 생활에 의해 출생한 아이들은, 마치 새끼 양이 낳은 양의 것이 되지 못하고 양떼의 주인의 것이 되는 것처럼, 부모가 아니라 주인의 재산이 되었다.
노예들의 운명이 항상 비참하고 불행하고, 또 항상 잔인하게 취급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많은 노예들은 주인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의 중대하고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전체 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다. 로마의 법률에는 노예란 인간이 아니라 물건이었다. 따라서, 노예에게는 법적 권리들이 전혀 없었다. 그 때문에 노예와 관련되는 곳에는 공정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생명이 없는 것들에 대한 우정과 정의란 있을 수 없다. 정말로 말이나 소에 대해서도 그렇고, 또한 노예에 대해서도 그렇다. 주인과 노예는 공통적인 점이 아무것도 없다. 노예는 생명이 있는 연장이고, 연장은 생명이 없는 노예이다."라고 말하였다. 바로(Varro)는 "농사 도구는 세 종류, 즉 말을 사용하는 것과 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말이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말을 사용하는 것에 노예가 포함되고, 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가축이 포함되며, 말이 없는 것에 운반 기구들이 포함된다."라 고 말하였다. 노예와 가축 또는 농장용 운반 기구들의 유일한 차이는, 노예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불과하다.

페터 크리솔로구스(Peter Chrysologus)는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주인이 노예에 대하여 부당하게 행동하든, 성내어 행동하든, 자의로 행동하든, 마지못해 행동하든, 생각 없이 행동하든, 신중히 생각한 뒤에 행동하든, 알고서 행동하든, 모르고 행동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간에 다 심판이고, 정의이며, 법이다." 노예에 관계된 주인의 의지, 심지어 변덕까지도 유일한 법이었다.
노예의 생활에서 지배적인 사실은, 비록 노예가 우대 받았다 할지라도, 노예는 여전히 하나의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의 기본 권리들조차도 갖지 못했고, 노예에게는 정의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 그리스도교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존귀하다는 것과, 주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죄와 죽음, 자기와 세상 등의 속박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라는 전언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는 사회적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두 가지의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 비극적인 결과가 생기기도 하였다. 첫째, 노예 교인들 중에는 노예로서의 일은 물론, 아예 노예의 신분을 거부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둘째, 노예 교인들 중에는 노예들을 선동하여 주인들에게 반항하게 만들거나, 더 나아가 노예 제도를 폐지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내 수많은 노예들이 살해되거나 불구자가 되는 비참한 결과를 남긴 채로 진압되고 말았다. 또, 교회는 파괴적이며 혁명적인 위험한 단체라는 평판을 듣게 되었고, 따라서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누룩이 작용해야만 할 상황들이 있고, 또 서두는 것이 바라는 목적 달성을 지연시키는 가장 확 실한 방법이 되는 상황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누룩이 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세상에서 작용한 다음에야 비로소 노예 제도 폐지가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 어떤 상황이 변화될 수 없는 때,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고, 누룩이 작용하기까지 변화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지금도 가끔 발생한다."

19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사환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거나 까다로운 주인 때문에 부당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아름다우나" tou'to ga;r cavri"(투토 가르 카리스)는 문자적으로는 "왜냐하면 이런 것은 감사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는 '인정받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인데 마5:10-12을 반영한 것으로 주인에게 부당한 처사를 당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으면 그 행동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뜻이 있다.
"아름답다" cavri"(카리스)는 '은혜'(눅2:40, 요1:17, 행4:33, 롬1:7, 롬5:15, 20, 롬6:1, 롬11:6, 고전1:3, 고전15:10, 고전16:23 등)로 번역되었다.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매를 맞고" kolafizovmenoi(콜라피조메노이) "주먹으로 치다, 때리다"로 현재형 분사로 계속해서 죄를 짓고 그에 따른 응당의 벌로 심한 구타를 계속 받는 것을 말한다. 19절에 대한 추가 설명이다.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부르심" ejklhvqhte(에칼에데테) 하나님의 은혜로운 큰 부름을 말하는 것으로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로 이미 부름을 입어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원문의 이 용어는 고전1:9, 갈5:13, 엡4:1, 4, 골3:15, 벧전3:9에 나타난다. "본을 끼쳐" uJpogrammo;n(휘포그람몬) "복사, 사본"을 말하는 것으로 단순히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복제품과 같은 상태 상태로 "이를 위하여", "너희를 위하여" i{na(히나) "- 위하여, - 때문에"로 완전한 본을 보이신 것을 의미한다.

22절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사53:9을 인용한 것으로 예수께서 무죄함과 "궤사" dovlo"(돌로스) "거짓, 교활한 술책"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오직 우리의 본이 되시고자 스스로 고난 받으심을 말한다.

23절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베드로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사53:7을 암시하며 기록하고 있다(마26:64).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oujk ajnteloidovrei(우크 안텔로이도레이),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oujk hjpeivlei(우크 에페일레이)는 모두 미완료 시제로 예수께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돌리지 않는 태도를 의미하며, oujk(우크)는 "아니다, 결코 아니다"로 강하게 부정하는 형용사 부사이다.
"부탁하시며" paredivdou(페레디두)는 미완료 시제로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부탁하고 계시는 상태, 즉 쉬지 않으시고 기도하고 계심을 말한다. 본 절은 눅23:46 자신을 하나님께 부탁하신 것도 강하게 시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재판권을 가지고 계셨고(요5:22), 천사들과 원수들을 멸하실 수도 있었다(마26:53). 그러나 그분은 멸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음으로 이러한 심판의 권한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계신 것이다.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친히" o}"(호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관계대명사와 aujto;"(아우토스) 강조적 재귀 대명사로 이어져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감당하셨음을 나타낸다.
"담당하셨으니" ajnhvnegken(아네넹켄)은 "들어올리다, 끌고 올라가다"로 십자가에 달리심을 말한다. 부정과거형으로 사용되어 이미 이루어진 상태를 뜻한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죄 aJmartivai"(하마르티아이스)"와 "의" dikaiosuvnh/(디카이오쉬네)를 th'/(티메) "이것과 저것"으로 대조하여 바꾸었음을 말한다. 죄는 복수로 사용된 반면 의는 단수로 기록되었다. 많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인의 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을 뜻한다.

25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사65: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를 반영한 것으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결론을 맺고 있다.
"양" provbata(프로바타) "길들여진 순한 양"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부터 하나님의 선택받은 상태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잠시 길을 잃었던 것이었다.
"목자" poimevna(포이메나) 양떼를 인도하며 꼴을 먹이는 목동이다. 상징적으로는 하나님께 인도하는 지도자를 말한다(삼하5:2, 시28:9, 민27:17, 왕상22:17, 사56:11, 렘3:15, 겔34:23, 요10:2, 히13:20).
"돌아왔느니라" ejpestravfhte(에페스트라헤테) "복귀하다, 돌아오다, 개종하다"로 우리가 원래부터 하나님께 있었던 자들인데 죄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있었던 상태에서 원래대로 복귀되었음을 말한다. 이제 우리를 좋은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며 선하신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 돌아온 것, 그 자체로 크나큰 은혜와 축복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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