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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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산 소망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요20:29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눅10:24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6) 기록되었으되 ㄱ)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레 11:44; 19:2; 20:7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1)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전 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4) 그러므로 ㄴ)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사 40:6 이하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 썩어질 것으로

베드로전서 서론
본서의 수신자들은 소아시아(본도, 갈라디아, 갑바도니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던 성도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교인이었다(벧전1:14, 18, 10, 벧전3:5, 벧전4:3). 베드로가 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은 네로 황제에 의한 기독교의 박해가 시작될 즈음에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탄압과 핍박을 받는 일이 있었으며 이러한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교우들을 격려하고, 고난과 핍박에서 승리할 것을 권고하기 위한 서신이다. 그래서 본서는 "소망의 서신(The Epistle of Hope)" 또는 "격려의 서신(The Epistle of Courag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서신은 내용이나 문체 또는 용어 등에 있어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특히 바울 서신들과 매우 비슷하다. 신학적인 면에서도 바울서신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체 때문에 본서의 저자 베드로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갈릴리의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이와 같이 세련되고 헬라의 화려한 문장과 문체로 기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예" 벧전1:3-12은 정교한 분사 구문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은 베드로가 1:1에서 본인이라고 밝힌 것과 실루아노에게 대필시켰다는 벧전5:12에서 그 의심의 실마리가 풀린다. 본서가 바울의 사상을 많이 닮은 것도 실루아노바울의 동역자였다는 사실(행15:40, 행16:19)과 바울의 교육은 초대 교회에 이미 알려졌으며(행15:40, 행16:19), 베드로 역시 바울 서신을 읽어보았다는 점(벧후3:15-16)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본서는 또한 구약성경과 연결되어 역사와 예언이 강조되었고(벧전1:10-12) 구약의 진리들이 '주의 말씀'(사40:8)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벧전1:25)이라고 함으로 기독론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아울러 '삼위일체론'(벧전1:2, 3, 12), '창조론'(벧전4:19), '기독론'(벧전1:20, 벧전3:18), '속죄론'(벧전2:24, 벧전3:18-10), '종말론'(벧전1:13, 벧전5:1, 10)등을 다룬 교리서와도 같다.

1:1-2 소개와 인사
1절 예수 그리스도의 !Ihsou'(이에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 "여호와는 구원이시라"에서 파생된 용어로 주님의 이름이다(마1:21, 막1:1). Cristou'(크리스토)는 cri'sma(크리스마) "기름부음"(요일2:20, 27)에서 유래된 것이며 이 용어는 crivw(크리오) "기름을 바르다, 헌신하다"에서 나온 용어이다. 이 용어는 예수의 공적직함으로 구약에서는 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기름부음으로 그 직능을 수행한 것으로 예수께서는 이 세 가지의 직능의 완성자가 되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ajpovstolo"(아포스톨로스) "보냄을 받은자, 전권대사, 사도"로 그리스도로부터 이러한 사명을 직접 받은 자라는 것으로 권위와 존엄을 나타낸다(마16:18, 19, 막3:16, 요1:42, 요21:15-19). 베드로가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현재 박해 아래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직접 임명하고 보낸 사람임을 말하여 더 큰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Pevtro") "페트로스"로 아람어로는 '바위'를 의미하고 히브리어 '게바'를 헬라어로 부른 것이다. 베드로의 원래 히브리 이름은 Sumew;n(쉬메온) "시몬, 시므온"이었다(행15:14, 벧후1:1). ☞ 베드로 요1:35, 요1:42, 눅22:34, 눅5:8, 마16:13, 마26:69 참고하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비두니아 이곳의 다섯 지역은 당시 로마의 영토로 모두 소아시아에 위치했으며 현재의 터어키 타우루스 산맥(Taurus Mountains) 북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당시에는 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에 거주하였다(행16:6-8).
흩어진 나그네 parepidhvmoi" diaspora'"(파레피데모이스 디아스포라스)에 관사가 없어서 정확하게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파레피데모이스'는 잠시 머무르는 사람들을 말하고 '디아스포라스'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뜻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말한다. 그러나 서신의 성격상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네로 황제(A.D. 54-68)의 박해를 피해 이 지역에 흩어져 떠돌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 택하심을 입은자들 '하나님 아버지'는 구약성경(출4:22, 시68:5, 89:26, 사9:6, 렘3:4, 9, 말2:10)부터 내려오는 사상으로 신약에서 예수께 적용되어 사도들이 전하고 있다. 바울 역시 이와 같이 부르고 있다(롬1:7, 고전1:3, 고후1:2, 갈1:3, 살전1:1, 살후1:2, 골1:2 등). ejklektoi'"(에클레크토이스)는 헬라어 원문에는 1절에 나타난다. 1절에서 이 용어는 parepidhvmoi"(파레피데모이스) "나그네들"과 대비된다. ejklektoi'"(에클레크토이스)는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대상16:13, 시105:6, 사65:9, 15)였으나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용어(벧전2:9, 벧전5:13)로 사용되었다.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미리 아심"은 하나님의 특별한 섬리(선택하심과 통치하심)와 관심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암1:2, 행2:23, 롬8:29-30, 롬11:2). aJgiasmw'/(하기아스모) "청결한, 거룩"의 의미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거룩하게 됨을 말하는 것으로 성령의 인도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롬6:19, 22, 살전4:3, 4, 딤전2:15).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uJpakoh;n(휘파코엔) "경청, 응락, 복종"하는 것으로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순종을 말한다. 원어의 이 용어는 롬1:5, 롬6:16, 롬15:18, 롬16:26, 고전7:15, 고전10:5, 히5:8에 나타난다.
피 뿌림은 구약성경의 제사 의식을 상징하는 것으로(출24:3-8, 레8:22, 레14:1-9) 피를 뿌림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신약에서는 새 언약의 의미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정결케 됨을 말한다(히9:7, 18-21, 계19:13).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때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막14:24)고 하셨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는 축복기도로 인사를 마치고 있다. 이러한 인사법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바울 서신에도 비슷한 경우로 사용되고 있다(고전1:3, 고후1:2, 갈1:3, 엡1:2, 빌1:2). cavri"(카리스) "은혜, 선물, 기쁨"으로 헬라식 인사법이나 베드로는 죄인 된 우리를 피로 사신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감사의 은혜가 있음을 뜻한다. "평강" eijrhvnh(에이레네)는 이스라엘식 인사법으로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의미이다. 즉 베드로는 헬라식과 히브리식 인사를 동시에 사용함으로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안부와 격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을 지어다" plhqunqeivh(플레뒤노데이에)는 수동태로 '많아지다, 더하다'이다.

1:3-12 성도의 구원
3절 찬송하리로다 Eujloghto;"(율로게토스)는 동사 eujlogevw(율로게오) "칭찬하다, 축복하다"에서 변화된 형용사이다. 이런 표현은 유대교의 기도형식 이었는데(왕상1:48, 8:15, 대상29:10, 시41:13, 시72:18, 시106:48, 창14:20, 단3:28) 신약에 와서는 언제나 하나님께 대해서만 사용되었다(막14:61, 눅1:68, 롬1:25, 롬9:5, 고후1:3, 고후11:31, 엡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oJ qeo;" kai; path;r tou' kurivou hJmw'n !Ihsou' Cristou'(호 데오스 카이 파테르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kurivou(퀴리우) "주"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예수께 부여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시작되었다(롬10:19, 롬15:6, 고전12:3, 고후4:5, 빌2:11, 골1:3).
그 많으신 긍휼대로 e[leo"(엘레오스)는 단순히 동정심을 가진다는 뜻만이 아니라 실제로 돕는다는 뜻이다. cavri"(카리스) '은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나 '은혜'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반면 e[leo"(엘레오스) '긍휼'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동기를 말한다(롬14:30-32, 롬15:9, 엡2:4-5, 딛3:5).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사건은 인류 최대의 사건으로 이것을 설명하는데는 바울도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행3:15, 행4:10, 행13:33-37, 행17:31, 고후13:4, 갈1:1, 살전1:10). "거듭나게" ajnagennhvsa"(아나겐네사스) "다시나다"는 분사형 동사로 부정과거 능동태로 과거에 1회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임과 동시에 현재에도 구체적인 사실로 증명됨을 시사한다. 이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되었지만 이 사상은 신약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요1:12-13, 요3:3-7, 엡2:5-6, 딛3:5).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구세주임이 확증된 것이다(롬1:3-4, 롬14:8-9).
육체적 부활의 증거요, 죄로부터의 승리로 영원한 구속의 표명이다(행17:31, 롬5:21, 고전15:20, 44 골1:18).
우리가 천국을 소유할 것에 대한 보증이다(고전15:50, 골1:13).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zw'san(조산) "살다, 살아있는"은 이 서신의 애용어이고(1:2, 3, 2:4, 5, 24, 4:5, 6), ejlpivda(엘피다) "확신, 소망"은 이 서신의 주요 주제중의 하나이다(1:13, 21, 3:5, 15).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줌으로 현실적인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영원한 부활생명과 천국을 바라봄으로 '살아있는 소망'을 갖게 한다.

4절 썩지 않고 a[fqarton(아프타르톤) "부패하지 않는, 불명의"는 침략군에 의해 '황폐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고전9:25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다.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ajmivanton(아미안톤) "다러워지지 않은"는 miaivnw(미아이노) "더럽히다, 손상시키다"에서 파생한 용어로 신을 모독하는 행위에 대해 사용한 용어이다. ajmavranton(아마란톤) "시들지 않는, 불멸의"뜻으로 이 땅의 것은 모두 변화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것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임을 시사한다.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klhronomivan(클레로노미안)은 '재산 상속자'를 뜻하나 신약성경에서는 다섯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 나라(마25:34, 엡5:5)
영생(마19:29, 막10:17, 눅10:25)
구원(히1:14)
약속(히6:12, 행20:32)
축복(벧전3:9)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에" oujranoi'"(우리노이스) "권능, 영원"을 뜻하는 것으로 '하늘 나라'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마5:12, 6:19, 눅12:33). 이곳은 위험이 없으며 제일 안전한 곳이다. "간직하신 것이라" tethrhmevnhn(테테레메넨)은 현재완료형으로 이미 그렇게 준비해 놓으신 상태이고 그것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한다.

5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세에" ejn kairw'/ ejscavtw/(엔 카이로 에스카토이)는 kairw'/(카이로) "때, 정해진 때, 기회"와 ejscavtw/(에스카토이) "최후의, 마지막"이 합쳐진 말이다. kairw'/(카이로)는 '때'(마8:29, 11:25, 24:45, 막1:14, 눅21:8, 롬3:26)로 나오고 '기한', '시기'(행1:7, 살전5:1)로 '기회'(갈6:10, 히11:15)로 번역되었다. 이 '때'는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때', '기회'를 말한 것으로 일반적인 시간(마2:7, 막2:19, 행1:6)과는 다르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을 의미한다(롬8:18-25, 고후3:13, 빌3:20, 골3:4).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할 때 제일 많이 사용된 parousiva(파루시아)와 같은 의미이다.
그리스도 재림은
날과 시는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24:36, 막13:12, 행1:7).
도둑과 같이 예기치 않을 때 오시지만 재림 순간에는 번개가 번쩍임 같이 모두가 알도록 공개적으로 오신다(마24:27, 37, 39, 살전5:2, 벧후3:10).
초림과 달리 위엄과 영광으로 성도들이 함께 강림한다(고전15:23, 살전3:13, 살전4:16).
마지막 심판과 세상의 종결을 말하며 하나님과 대적한 것은 파멸된다(롬1:8, 롬2:2-10, 롬3:6, 고전15:24, 살후2:8).

재림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주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마24:36-51, 살전3:13, 살전5:23, 롬13:11-14).
재림이 지연되더라도 실망하거나 망각해서는 안된다(벧후3:4). 이는 하나님의 시간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벧후3:8).
항상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요일2:28).
근신하고 기도해야 한다(벧전4:7).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능력으로" ejn dunavmei(엔 뒤나메이)원문의 뜻으로는 [능력 안에서]이다. 이 용법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고전1:18, 눅1:17, 행3:12, 롬1:16) 안에서 완벽하게 "보호하심" frouroumevnou"(프루루메노스)은 frourevw(프루레오) "보호하다, 보초를 서다"의 군사용어로 수동태 분사 현재형으로 하나님이 수비대처럼 안전하게 현재에도 보호하고 계심을 말한다(엡2:8).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peirasmoi'"(페이라스모이스) "훈련, 도전"을 말하나 함축적으로는 "역경, 유혹"을 뜻하는 것으로 내면적인 시험이 아닌 믿음으로 오는 외부적인 시련을 말한다(약1:2).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ojlivgon(올리곤) "짧은, 아주 작은, 거의 없는" 이 때에 luphqevnte"(뤼페텐테스) '슬프고, 근심하고,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이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잠깐이고 영구적으로는 ajgallia'sqe(아갈리아스테) "기뻐 날뛰다, 넘치는 기쁨"으로 직설법 현재형으로 지금 기쁨이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성도가 환난 중에도 기뻐해야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든 환난에서 구해주신다(삼상26:24, 시59:16, 행7:10).
구원을 이루는 소망을 가지도록 인내를 만들어준다(롬5:3, 약1:3, 고후1:6-7).
환난을 일시적이며 장차 있을 영광에 이르는 과정이다(마5:10, 롬8:17, 롬12:12, 고후4:17).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천국 기업을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표이다(요15:19, 롬8:17).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길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후1:4).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dokivmion(도키미온) "시험을 받는 것, 시련을 당하는 것"인데 금속의 순수성을 시험해 보거나 동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또는 충분한 금속의 함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불로 연단하는 것을 말한다.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다. 야고보는 인내를 배우는 수단으로 언급된 반면, 베드로는 소멸되지 않는 믿음과 믿음도 시련을 통해서 연단 받는 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런 연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칭찬" e[painon(에파이논)은 하나님께 받을 칭찬을 말한다(롬2:29, 고전4:5, 마25:21).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 칭찬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설령 믿음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해도 예수께서 책망하셨다(마6:5, 눅10:29).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수신자들은 베드로처럼 예수를 oujk ijdovnte"(우크 이돈테스) "보지 못하였으나" 믿고 pisteuvonte"(피스튜온테스) 현재형 수동태로 '현재 믿음으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사랑은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첫 번째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막12:28-34)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요일5:3). 이 사랑을 가지고 만이 영광스러운 즐거움 cara'/(카라)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요3:29).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 용어가 롬14:17, 갈5:22 개역성경에는 '희락'으로 번역되었다.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결국" tevlo"(텔로스) "목적, 종착"으로 마지막까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10:22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3, 막13: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6:22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10절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구원" swthriva"(소테리아스)에 대해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메시야의 때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알기 위해 말씀을 연구했다(눅10:24). 우리는 본 절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여, 단순히 기계적으로 사용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의 인격과 특징, 소질과 재능을 통해서 그에게 맡는 말씀을 깨우쳐 주시고 선포하신 것이다. 선지자들은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선포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폈던 것이다(단9:2, 22-27, 단12:6-13).

11절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 적용된 이 말씀에 대해서 학자들은 첫째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과 둘째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뜻한다고 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시자 성령(롬8:9, 갈4:6)은 바울도 믿고 있었다(롬1:2, 롬8:3, 고전8:6, 고후8:9, 갈4:4). 성령께서는 메시야의 때와 그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해서 예언하게 하셨다(삼하23:2, 눅24:26). 구약의 예언을 간단히 살펴보면 동정녀 탄생에 대한 예언(사7:14), 애굽으로 피난(호11:1),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사40:3-5), 갈릴리에서 전도하심(사9:1), 비유로 가르치심(시78:2-4), 유대인에게 배척 당하심(사53:3), 능욕 당하심(사50:6) 등이 있다.

12절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 예언들은 당시의 선지자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민24:17, 신18:15, 롬4:23, 24, 롬15:4, 고전9:9, 10, 고전10:11).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복음을 전하는 자들" eujaggelisamevnwn(유앙겔리사메논)은 예수께 선택받은 제자들과 그 이후에 사명을 받고 전하는 자들을 말한다. "보내신" ajpostalevnti(아포스탈렌티) 수동태 분사로 성령께서 보내심을 말한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천사 참고하라
"살펴보기를" parakuvyai(파라큎사이)은 '몸을 굽혀서 안을 살피는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천사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전하는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제자나, 사도나, 전하는 자'와 같이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10-12절에서 '선지자 -> 복음 전파자 -> 천사'로 이어지는 전달 과정을 알려준다.

1:13-21 근신하며 순종하라
13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ajnazwsavmenoi(아나조사메나이) "졸라매다, 다시매다"로 군인들이 훈련하거나 싸우려고 할 때 자유롭고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한 준비이다(출12:11). 영적 전쟁을 위한 정신무장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께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셔서 종이 취해야할 행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눅12:35).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teleivw"(텔레이오스) "흔들림 없이, 완전히, 끝까지" ejlpivsate(엘피사테) "기대하다, 소망하다" 종말에 주어지는 은혜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소망을 가질 것을 부탁한 것이다.

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wJ" tevkna uJpakoh'"(호스 테크나 휘파코에스)는 [순종의 자식]인데 이 표현은 전형적인 셈어식 표현법이다. 셈족언어에서 자녀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상속자'라는 의미로 부모의 재산을 이어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둘째 조상의 혈통과 더불어 부모의 인격이나 성품을 이어받음을 말한다. 이런 표현법은 '죽음의 자식'(삼하12:5), '패역의 자식'(사57:4), '멸망의 아들'(살후2:3, 요17:12), '평안의 아들'(눅10:6), '진노의 자녀'(엡2:3), '불순종의 아들들'(엡5:6, 골3:6), '빛의 자녀들'(엡2:3),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살전5:5) 등이 있다.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ajgnoiva(아그노니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말한다. 바울은 이방인의 무지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으며(행17:30, 엡4:18) 베드로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행3:14-17)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욕" ejpiqumivai"(에피튀미아이스)는 "의욕, 바람, 욕망"으로 이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열망과 욕구를 가리킨다. 문제는 욕망의 대상인데 이 당시의 이교도들은 부도덕한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용어는 롬1:24, 딛3:3, 벧전4:2, 3, 밷후2:18에서 '정욕', 롬6:12 '사욕', 엡2:3, 딤후3:6 '욕심'으로 번역되었다.
"본 삼지 말고" suschmatizovmenoi(쉬스케마티조멘오이) "...에 따라 자신을 꾸미다"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 따르던 세상 정욕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자룩한 자" a{gion(하기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자이므로 a{gioi(하기오이)가 되어야 한다. '거룩한 자'는 70역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서 '거룩한 자' 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나타난다(LXX : 시70:22, 77:41, 88:19, 사1:4, 5:16, 12:6, 17:7, 29:23, 30:12, 15, 31:1, 41:20, 45:11, 55:5).

16절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본 절은 레11:44, 레19:2, 레20:26)의 인용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 받은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거룩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엡5:1).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ajproswpolhvmptw"(아프로소폴렘프토스) "외모로 취하지 않는"으로 구약의 히브리어 '나사파님'(얼굴을 보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같은 단어가 신약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명사형으로 사용된 '외모로 취하는 자' proswpolhvmpth"(프로소포렘프테스)가 베드로의 변론(행10:34)에 있고, 동의어인 proswpolhmyiva(프로소포렘피아)는 바울서신(롬2:11, 엡6:9, 골3:25)과 약2:1에 나타난다.
provswpon(프로소폰) "얼굴, 용모, 외모"(눅20:21, 고후5:12, 고후10:7, 갈2:6)로 인간의 영혼이나 인격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외적 조건들(재산, 지위, 지식, 혈통, 인종, 출신지역 등)을 의미한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심판은 불신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된다는 것은 바울도 지적하고 있다(롬14:10-12, 고전3:13-1-7, 고후5:10). "행위" e[rgon(에르곤)은 "수고"를 말한 것으로 단순한 행위만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전제한 행위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이러한 사상은 '네 믿음을 행위로 보이라'(약2:18, 21, 22, 24, 25)고 말한 야고보와 일치한다.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나그네" paroikiva"(파로이키아스) "외국에 거주"하는 것을 말한 것으로 벧전1:2의 "흩어진 나그네" parepidhvmoi" diaspora'"(파레피데모이스 디아스포라스)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나그네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창47:9, 출23:9, 신10:19, 사14:1, 마25:35, 38, 43, 44, 행2:10, 행7:6, 요삼1:5).
두려움으로 지내라 "두려움" fovbw/(프로보) 바울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했다. 엡5:21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 '경외함'으로 번역되었으나 '두려워함으로'번역해도 된다.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eijdovte"(에이도테스)는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기초적인 신앙에 대해서 언급할 때나 표준이 되는 가르침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이 용어적인 뜻은 "초경험적으로 알다, 영감으로 알다"이다. 사도들은 이 용어를 신앙에 대해서 강조할 때(롬6:9, 고후5:6), 보충하여 설명할 때(고전15:58, 엡6:8-9)에 사용했다.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망령된" mataiva"(마타이아스) "빈, 공허한, 무익한"으로 율법의 전통을 지키는 것, 우상 숭배하는 것, 음란한 것은 하나님께와 자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행위이다. 즉 구원받지 못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용어는 특별히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사용되었다(렘2:5, 렘8:19, 행14:15, 엡4:17).
"구속" ejlutrwvqhte(엘뤼트로데테)은 고대 로마 노예제도에서 나온 말로 '몸값을 치루고 나오다'이다. 이 용어를 70인역에서는 이스라엘애굽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실을 말할 때 사용되었으며(출6:6, 출15:13, 신7:8, 사45:13, 사52:3)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몸값을 지불한 결과로서의 구원을 말한다(롬3:24, 고전1:30, 고전6:20, 딤전2:6).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형으로 죽으신 것은 은이나 금처럼 잊어버리거나 없어질 것이 아니다.

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흠 없고" ajmwvmou(아모무) 70인역에서는 육체적 결점이 없는 희생 제물에 사용되었으며 고전 헬라어에서는 '비난할 점이 없는'이다. "점 없는" ajspivlou(아스필루) "더러움이 없는" 의식적 은유라기 보다는 도덕적인 은유적 표현이다. "어린양 같은" wJ" ajmnou'(호스 암누)은 속죄 제물로 우리 대신 죽은 유월절 양을 상징한다(출12:5, 요1:29-34, 사53장).

20절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본 절은 대조하는 방법의 me;n(멘)이 사용되어 '창세전부터와 말세'를 비교하고 있다. "창세전부터"는 세상 기초가 놓이기 전에(요17:24, 마13:35, 눅11:50, 엡1:4, 히4:3)를 말한다. "말세" ejscavtou(에스카토)는 벧전1:5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의 종말을 말한 것이나 여기서는 초림이후 본서가 기록될 시기(현재)를 가리킨다(요1:14, 히1:1, 행2:17, 갈4:4). 창세전부터 이미 그리스도를 알려주시고, 현재 구원을 위해서 다시 한번 fanerwqevnto"(화네로덴토오스) "명백하게 나타나다, 선언하다"로 보여주셨다.

21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eij" qeo;n(에이스 데온)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 안에서]이다. 믿음이 하나님 안에 있다. "말미암아" di!(디아) "통하여, 항상, ...한 이유로"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1:22-25 서로 사랑하라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진리" ajlhqeiva"(알레데이아스)로 학문이나 도덕적인 진리 또는 인간적인 진실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깨끗하게 하여" hJgnikovte"(헤그니코테스) 완료형 능동태로 이미 깨끗하게 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그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회개)을 위해서 이미 그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또 다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깨끗함을 받은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처음 '사랑하기에'는 filadelfivan(필라델피안) "형제의 사랑"이 사용되었고 나중의 "사랑하라" ajgaphvsate(아가페사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용되어 세상의 형제애의 사랑에서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으로 "뜨겁게" ejktenw'"(에크테노스) "열렬히, 시종 일관" 사랑할 것을 권면한다.

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썩어질 씨" spora'"(스포라스) "씨, 출생" fqarth'"(프흐달테스) "썩어질, 깨지기 쉬운"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 자손의 자연적 출생(고전15:42-53)을 말한다.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생명을 제공하고 창조적이어서 살아있다(창1:3, 시33:9, 빌2:16, 히4:12). 전에 베드로는 주님과의 대화에서 요6:68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끌려가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로하는 이사야 40:6-8절을 인용하여 결론을 맺고 있다. 세상에서 잠시 존재할 '육체와 풀'과 영원토록 변치 않고 없어지지 않을 '주의 복음'을 대비시켜 현재의 잠시 지나가는 고난이 장차 올 영원한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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