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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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시다(마 28:1-10; 막 16:1-8; 눅 24:1-2)

(요 20:1) 1)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마27:60, 마28:2, 막15:46
(요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요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눅24:12
(요 20: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요 20: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요20:11, 요19:40
(요 20: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요 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요11:44
(요 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요20:4
(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요 20: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막 16:9-11)

(요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요 20: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눅24:4
(요 20: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요20:2
(요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요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요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20:13
(요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요 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막16:10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마 28:16-20; 막 16:14-18; 눅 24:36-49)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창2:7, 겔37:9
(요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도마가 의심하다

(요 20: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11:16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0, 막16:11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눅24:40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벧전1:8

이 책을 기록한 목적

(요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2)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 헬, 그 주간의 2. 또는 이적

20:1-10 부활하신 그리스도
1절 안식 후 첫날 유대인들은 일주일의 기준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식일로부터 계산하는 습관이 있었다. 안식일은 토요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였다. 지금은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는 일요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다. 이 여인은 일곱 귀신 들렸다가 예수께서 고쳐주신 후 예수를 따르며 봉사한 인물이며(막16:9, 눅8:2),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라왔으며 운명하실 때도 지켜보았던 여인이다(요19:25). 공관복음에는 이 여인 외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함께 있었다(마28:1, 막16:1, 눅23:55, 24:1). 요한이 2절에서 "우리"라고 복수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저자 요한도 막달라 마리아 이외에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예수의 무덤은 큰돌로 닫혀져 있었고(막16:3-4), 로마 총독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서 봉인되어 있었다(마27:65-66). 이 돌문은 입구에 움푹패인 홈이 있어 고정되게 되어있으며 장정 다섯 명 정도가 힘을 합해야 겨우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이 여인들의 힘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을 여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면서 길을 떠나는 것을 막16:3에 기록했다.

2절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요한은 공관복음에 비해 이 부분은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마28:2-7, 막16:5-7, 눅24:4-7). 어쨌든 여인들은 무섭고 놀란 마음에서 그 제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아마 시체를 누가 다른 곳으로 옮겨 더렵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져갔다" !'Hran(에란)은 비인칭 동사로 예수의 시체를 누군가 훔쳐갔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는 막달라마리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3-4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갈새" h[rconto(에르콘토)는 미완료형으로 두 제자가 함께 뛰어가고 있음을 연상케 한다. 얼마나 급히 뛰어갔는지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도착했다. 눅24:12에는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 제자는 베드로뿐이었지만 요한은 다른 제자(요한 본인)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을 증거 함으로 당시에 생각할 수 있는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옮겨놓고 예수께서 부활했다고 말했다면(마27:63, 64) 이런 반응을 베드로와 요한이 보일 리가 없었다.

5-6절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요한의 성격으로는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푸려" parakuvya"(파라큎사스) 몸을 안으로 굽히며 자세히 관찰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침없이 무덤 안에 들어가 확인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용기 있는 행동에 8절 요한도 함께 들어가서 확인했다.

7절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5, 6, 7절이 함께 전하는 것은 "세마포" ojqovnion(오도니온) "베옷"(마27:59)이다.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개켜" ejntetuligmevnon(엔테튈리그메논) "봉하다, 싸다"로 접혀있는 것이 아니라 동그랗게 말려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갔다면 세마포가 이렇게 잘 정돈되어 있기는 힘들다.

9절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베드로와 요한은 성경에서 예표한 부활의 의미를 아직까지 깨닫고 있지 못한 것을 덧붙였다(시16:10-11, 110:1, 4, 사53:11-12).

10절 11절에 마리아가 무덤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반해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눅24:12).

20:11-18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11절 제자들은 돌아간 상태에서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울면서" klaivw(클라오)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말한다.

12절 흰 옷 입은 두 천사인 사람이 있었다. 성경에서 천사가 나타날 때 후광을 가지고 날개를 달고(사6장) 나타나는 경우보다는 보통 사람으로 나오는 예가 더 많다. 또한 이런 광경을 처음 목격했을 마리아에게는 충격이었고 어리둥절한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복음서 저자들이 조금씩 차이가 있게 기록한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일치된 기록을 전하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또한 마리아가 전해준 이야기를 제자들의 상상이 포함되어 이렇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태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마28:2), 마가는 "힌 옷 입은 한 청년"(막16:5), 누가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눅24:4)으로 각기 기록했다.

13절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삼일 전에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하고 그 처참함과 슬픔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유대인들에게는 장래와 장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무덤에 둔 예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또 한번의 기막힌 일이었다. 예수를 사랑하고 따라다닌 그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도 그의 슬픔에 제일먼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천사가 그가 우는 슬픔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모르고 슬퍼하느냐'의 뜻이었다(눅24:5, 6).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는 처음에 무덤에 함께 왔던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과 달리 "내가"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아무도 없고 혼자임을 말해준다.

14절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나타나실 때의 어떤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천사가 가리켜 일러주었는지 모르지만 돌아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못하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이전의 몸과는 다른 상태 즉 신령한 '썩지 않는 영원한 몸'이었다(고전15:51-53). 마리아뿐만이 아니라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눅24:13-16), 해변에서 제자들(요21:4)도 처음에는 몰라보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유대인들 역시 예수의 부활 사건의 첫 증인이 그들의 생각에 보잘것없는 한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꾸며낼 사람은 없었다.

1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예수께서도 13절 천사가 마리아에게 질문한 것과 같은 내용을 하셨다. 마리아는 이 때 까지도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있었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덤 주위에 있을 사람은 '동산지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여기서 "주여"는 Kuvrie(퀴리에)로 kuvrio"(퀴리오스)와 다르게 일반적인 존칭어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 님을 부른 것은 아니다.

16절 계속해서 마리아가 알아보지 못하자 먼저 예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다. 이에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Rabbouni(흐랍보니) "나의 "라고 대답했다. 이 단어는 아람어 형태로 헬라어로는 didavskalo"(디다스칼레) "주인, 선생님"에 해당하는 말이다.

17절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는 왜 예수께서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했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예수께 단순히 만지려 했던 것(KJV:Touch Me not)이 아니라 포옹하려고 했기 때문에 NIV 번역과 같이 "나에게 매어 달리지 말라"(Do not hold on to Me)는 의미로 '새로운 관계성'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지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마28:9, 요20:27). 그러나 원어의 a{ptou(합토우)를 "만지다"를 "매달리다"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단어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매달리는 것으로 표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즉시 승천하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아버지께로 간 후에를 승천하시는 것으로 보면 마24:9과 모순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생전의 모습을 가지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태도를 보였고 예전으로 복귀하려는 그의 생각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 올라간다 하라를 혹자는 전반부의 부분과 연결하여 다시 해석하기를 '나를 만지지 말고 먼저 형제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기 전에 이 사실을 전하라'로 옮기기도 한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올라간다는 사실은 구원의 역사를 마무리 하는 것이며(요6:53-62), 그가 다시 오실 것을 뜻하며(요14:18, 23), 또 약속하신 성령을 임재를 말한다(요7:39, 요16:7).

18절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 이르니라의 본문에는 ajggevllousa(앙겔루사)가 있는데 이 단어의 뜻은 a[ggelo"(앙겔로스) "천사, 기쁜 소식을 전한다"의 파생어로 현재 능동태 분사이다. 이 단어는 "이르니라"는 ei\pen(에이폰) "말을 전하다"는 단어와 함께 지금 마리아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대변한다. 마리아가 전한 내용은 내가 주를 보았다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목격하고 확인한 사실과 또 주님이 당부하신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마리아와 다른 이의 이 소식에 대해서 누가는 제자들이 믿지 못하고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눅24:11) 믿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9-25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19절 안식 후 첫날 이 날은 안식일(토요일 오후 해가 지고) 다음날로 현재의 일요일이 된다. 이 날에 그리스도가 새벽에 부활하시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이 날은 "주의 날, 주일"이라고 부를만한 날이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첫 열매되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주의 날'이라는 공식적인 칭호는 고전16:2, 계1:10에 나타나지만 이 날이 안식일과 구별되는 분기점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로마인들의 태양의 날(Sun day)로 인정되어 A.D. 321년 콘스탄틴(Constantine, 274-337) 대제에 의해서 공휴일이 되면서 '주일'을 성수하기 좋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태양의 날'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날'로 지킨다는 것이다.
눅24:37-44에는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를 유령인가 착각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떨고 있었다.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fovbo"(프로보스) "공포, 놀람, 두려움"으로 자신들의 선생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또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몰라 겁에 질려 떨고있으면서 문을 "닫고" i{sthmi(히스테미) "붙잡다, 고정하다" 있었다(눅24:33-36).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Eijrhvnh(에이레네) "평강"은 '샬롬'에 해당하는 말이나 좀더 넓은 의미의 "고요, 번영, 다시 하나가 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말도 "샬롬"과 같이 일상적으로도 사용되었던 것이나(왕5:21, 삼상1:17, 마10:12, 행16:36) 예수께서 평안을 말씀하신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임이 분명하다(요14:27).

20절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육체를 보여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 상처를 보여줌으로 제자들은 이전에 입으셨던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계심을 알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부활 후의 몸은 이전의 몸과는 다른 상태였다. 눅24:39-40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이 발에도 있음을 기록했다.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ejcavrhsan의 어근 caivrw(카이로)는 "환영하다, 행복하다"의 뜻이다. 제자들은 두려움이 컸던 만큼 주님을 다시 만나는 기쁨은 컸던 것이다. 이 단어는 마2:10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에 사용되었다.

21절 평강이 있을지어다 19절의 말씀과 같지만 앞에서는 처음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에게 주신 말씀이며 지금은 그들을 보내시기에 앞서 주시는 말씀으로 그 뜻은 갔지만 의미는 다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주제는 요한복음 13장-17장까지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인데 부활하신 후에도 연속시키고 계신다. 요한 이런 사상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연결시키고 있고 결코 혼자가 아니시라는 것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요3:34, 요5:36, 요6:57, 요7:29, 요8:42, 요11:42, 요17:3, 8).

22절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는 마치 창2:7의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의 모습과 같다. 예수께서는 이 때에 성령을 주셨지만 제자들성령을 50일 이후 오순절이 되어서야 받게된다(행2:1-4). "받으라" Lavbete(라베테)는 "영접하라"는 뜻으로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떡을 축복하시고 "받아 먹으라"(마26:26, 막14:22)고 하신 것과 같은 용어이다.

23절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죄를 사하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권세는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막2:6, 10). 그러나 예수의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또한 그를 믿고 따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선포를 할 수 있다. 이 권한이 처음 부여된 것은 제자들이었다. 또한 만약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그 죄 가 그대로 있다고 선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설교의 특징은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24절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던 자리에 없었다. 어쩌면 도마가 믿음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디두모" Divdumo"(디뒤모스) 아람어를 옮겨서 Qwma'"(도마스)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아람어의 뜻은 '쌍둥이'이다.

25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다른 제자들(10명)은 도마에게 주님을 만났던 사실을 말했다. "이르되" e[legon(에레곤) "말하다, 자랑하다"는 미완료 시제의 동사로 계속해서 여러 제자가 중복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자들님을 만났던 사실을 자랑하면서 그의 못 자국과 상처들에 대해서도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마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다. 부활의 사실을 도마가 믿지 않는 것은 도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제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믿지 못했었다(막16:11).

20:26-31 두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26절 여드레를 지나서부활하신 이후 8일이 지났으면 일주일이 지난 다시 주일(일요일)이 되었을 때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만날 것을 약속하셨다(마26:32). 이 약속은 천사들을 통해서도 알려주었다(막16:7).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유대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이런 제자들의 행동에 제자들이 믿음이 부족하였다고 보는 견해와 도마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고 보기도 한다.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주님이 나타나셨다. 문이 닫혀있던 사실을 언급한 것은 제자들의 두려움이 계속되어 닫혀 있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이 그 문을 열고 오시지 않았다는데 있다.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예수께서 이곳에 나타나신 것은 '도마' 한사람 때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이미 나타나셨던 적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마가 제시한 믿음의 조건들에 대해서 허락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기독교의 믿음에서 부활의 믿음을 빼고는 믿음이 존재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믿는다는 것은 '곧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a[pisto"(아피스토스) "믿지 않는, 믿음 없는" ajlla;(알라) "그러나" pistov"(피스토스) "확신하는, 충실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해 주신다. a[pisto"(아피스토스)는 마17:17, 막9:19, 눅9:41 고전6:6, 고전14:22, 고후4;4에서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켰다.

28절 도마가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어보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으나 분명한 것은 도마가 이미 예수님을 확인했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ajpekrivqh(아포크리노마이) "스스로 말하다, 자진하여 대답하다"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kuvriov" mou kai; oJ qeov"(퀴리오스 무 카이 호 데오스)라고 고백한다.

29절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께서는 도마의 믿음은 인정하셨고 이 말씀은 도마에 대한 책망이라기 보다는 교훈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믿음에 있어서 보는 것이 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육체적 표적에 의지하지 않고 믿음의 자리로 나오는 자들에게 축복하셨다(요20:29, 벧전1:8). 오늘날의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이 다니고 보지는 못했지만 반면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축복'을 가질 수 있다.

30-31절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shmei'a(세메이아) "기적, 이적, 표적"이 poluv"(폴뤼스) "양이 많은, 수가 많은" biblivw/(비블리온) "책, 파피루스"에 모두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요한은 신학적인 주제로서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공관복음에서 나오는 이적과 기사 35개 중 요한은 7개만 다루었다. 자신이 이적과 기사를 중심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31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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